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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잘못 살았어요 1

운영자 2010.01.19 12:55:36
조회 519 추천 0 댓글 0

     넓적하고 각진 얼굴에 눈썹이 튀어 나온 서른 살 가량의 P씨가 쩔룩거리며 교도소 내의 접견실로 들어섰다.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 아마도 ‘돈 없고 빽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잘난 체 하려고 찾아왔오?’하고 말하는 듯하다.


     “국선변호를 맡고 온 변호삽니다. 악수나 먼저 한번 합시다.”

     나는 웃으면서 일어서서 마치 찻집에서 아는 사람 만나듯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네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대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무신경하고 자연스럽게 행도하려고 애를 쓴다. 나는 덤덤하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공소장을 보면 밤늦게 남의 차를 훔쳐서 달아나다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다치게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맞습니까?”

     “전부 다 맞아요.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범행을 시인했다. 보통은 어떻게 해서든지 동정 받을 요소나 책임을 미룰 사유를 만드는데 뜻밖으로 자백해 버리는 것이다.


     “수사서류를 보니 그전에도 절도전력이 십이 회 이상으로 되어 있던데 이것도 사실입니까?”

     “네, 맞아요. 그건 전부 소매치기예요. 제가 어렸을 적 소년원에서 소매치기 기술을 배웠거든요. 그걸로 그동안 밥 먹고 산거죠, 뭐..”


     “....”

     나는 잠시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변호사는 아무리 잔악한 살인범에게서라도 동정의 요소를 끌어내야만 했다. 그러데 범행을 한 당사자가 자학을 하면서 모두 시인해 버리고 입을 닫는 데는 막연할 뿐이다. 그는 아예 마음 문을 꽁꽁 닫아 건지 오래인 사람인 것 같았다.


     “너무 쉽게 말하는데, 좋습니다. 그러면 범죄얘기는 그만두고 한이 있다면 그거라도 들어봅시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도와주려고 이렇게 왔는데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라도 알고 갔으면 해요. 어때요? 해줄 수 있어요?"

     나는 얘기의 방향을 선회해서 그의 가슴 속부터 파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이요? 한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는 망연히 우윳빛 유리가 깔려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그리고는 침묵에 잠긴다. 나는 아무 말 않고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 냉소의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변호사님, 제가 절뚝거리면서 들어오는 걸 보셨지요? 저는 이번 사건으로 다리가 잘려 버렸어요. 한번 보실래요?”

     그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가 앉은 쪽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려 잉크 빛 죄수복 바지를 입은 그의 넓적다리를 만져 보았다. 살과는 다른 금속성의 딱딱한 것이 손에 잡힌다. 의족인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한 다리를 이렇게 잃어버렸어요? 정말 이번 사건에서 그런 겁니까?”

     나는 놀라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구속된 범인이 몹시 다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쉬는 날이라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어요. 정신을 잃을 정도였어요. 공소장에는 내가 자동차 절도라고 되어 있지만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날 밤 세브란스 병원에 실려가 다리가 잘려져 나갔는데도 몰랐어요. 다음날 다리가 없는 줄 모르고 가려운 것 같아서 긁기도 하고 또 걸으려고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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