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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와 무기수 - 2

운영자 2011.07.05 14:36:40
조회 378 추천 0 댓글 0

  며칠 후 대전교도소의 슬레이트 막사 접견실. 나는 무기수 최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눈송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사십대 초쯤의 남자가 깨끗하게 빨아 다림질한 옷을 입고 내 앞으로 왔다. 굵은 눈썹에 커다란 눈이었다. 접견 부탁받은 무기수 최씨였다.


  “눈이 내리고 있네요.”

  나는 날씨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흰눈은 마음을 열어주었다.


  “ 변호사님이 사는 세상에선 눈은 낭만이겠지만 이런 날 저희는 고역입니다. 운동장에 쌓인 눈을 재빨리 치워야만 해요. 그래야 운동을 할 수 있거든요. 하루 30분간 허용되는 운동시간이 우리들 재소자에게는 정말 포기할 수 없는 값진 거예요.”

  내가 모르는 운동의 귀한 가치였다. 그의 입에서 막혔던 말들이 봇물같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9살 때까지 고아원에서 크다가 도망 나와서 청계천 3가에서 거지노릇을 했다. 깡통 들고 나가 얻어온 밥을 거지형들 하고 연탄불에 데워 같이 먹었던 게 좋았다고 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 가서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의 횡재를 얻을 때면 20원을 주고 변두리 동시상영극장에 들어갈 때가 행복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감옥에 온 내막을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내가 88년 여름 아이들 몇 명하고 한강 고수부지로 놀러갔어요. 그런데  몇 명의 건달 아이들이 몰려와서 시비를 걸었어요. 다구리 붙었죠. 그런데 상대편 애중 한 명이 물에 빠져 죽었어요. 신고를 받고 온 파출소에서 참고인 진술을 받고 가라는 거예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어요. 내가 본 대로 말했죠. 바로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그게 아닌 거예요. 강력계 형사들이 내가 진짜 살인을 했는 줄 알고 한 3시간 동안 반 죽이더라구요. 저도 매 맞는 데는 이골이 나서 그 정도 터지는 건 고문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환장하는 건 말이죠  형사들이 후배아이들을 겁줘서  내가 살인했다고 조서를 꾸며 놨더라구요.”

  사실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었다.


  “저는 거지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검찰은 다를 거로  알았어요. 저를 담당했던 검사 발목을 잡고 엎드려 15일 동안을 사정했어요. 그랬더니 그 양반 저 보고 이 새끼 검찰에 와서 부인한다고 화냈어요. 하루 종일 검찰청에 있는 비둘기장에서 꼼짝 못하게 했어요. 또 불러서는 책상위에 있는 긴 자로 얼굴을 막 때리고 밟고 패고 정말 죽겠더라구요. 차라리 죽였다고 하면 다시는 검사가 부르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죽였다고 했어요.”

  그는 결국 자업자득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해 줄 일이 뭐죠? 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오랜 세월 진범도 모르고 증거도 없어졌다. 방법이 없었다.


  “나도 그걸 알아요. 그렇지만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길 바랬어요. 그리고 내 말을 들어주길 기다렸어요. 오늘 와 주셔서 그냥 감사해요.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는 체념하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제가 여기서 살아보니까 말이죠. 하나님이라는 사람은 인간 세상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 양반이데요. 누가 억울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아요. 목사들은 죽은 다음에 저 하늘나라에 가서는 모두가 공평하게 심판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전 필요 없어요. 이 지상의 일에도 관심이 없는 하나님이 거기서 과연 잘 할까 의심해요. 난 지옥에 떨어져도 좋아요. 그냥 이 세상에서 억울한 살인누명이라도 벗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눈에 물기가 순간 맺혔다. 그가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전 열 여덟 살 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감옥을 살고 있어요. 사실 전 거지라  그 흔한 불고기 한번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나도 언젠가는 나가서 연애도 해보고 월급도 받아보고 싶어요”

  땅거미가 지는 겨울의 대전교도소 앞은 차들도 모두 끊어져 버렸다. 나는 얼굴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수한 불행의 손들이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 손들은 사랑하고 가족하고 함께 밥 먹고 일하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게 작지만 진짜 행복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게 넘치게 주어진 혜택을 나만 위해 쓰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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