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BBC의 <블랙애더>(Blackadder)</H2>
로완 앳킨슨이 ’미스터 빈’으로만 영원히 기록되는데 딴지를 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블랙애더>의 팬일 게다. <몬티 파이튼> 시리즈 이후, 그리고 <앱솔루틀리 페이뷸러스> 이전, <블랙애더>는 영국 TV계가 가장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코미디 시리즈의 역사적 승리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진짜로 ‘역사적’ 승리라는 의미다. <블랙애더>는 로완 앳킨슨이 연기하는 역사적 인물 블랙애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각각의 시대를 풍자하는 코미디 시리즈다.<블랙애더>는 모두 4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시리즈 <더 블랙애더>(The Black Adder/1983)는 장미전쟁 직후가 배경이다. 블랙애더는 리처드 4세의 아들 에드먼드의 별명으로, 그는 형을 없애고 영국을 통치하고 싶어하지만 모자라는 건 머리요 부실한 건 몸이다. 그에게 붙어서 기생하는 시종 볼드릭 또한 주인과 마찬가지로 덜 떨어진 바보다. 하여간 이 모자라는 것들이 암흑같은 중세시대에서 온갖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을 벌이는 게 <블랙 애더>라는 시리즈의 메인 콘셉트였다.
<H3>4개의 시대, 4명의 블랙에더 </H3>
|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블랙에더는 심지어 현명해지기까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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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BBC가 후속편을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도 이해는 간다. 첫 번째 시리즈는 여전히 훌륭한 코미디 쇼였으나 자기파괴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의 클리셰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4년 새롭게 취임한 BBC의 경영진은 시리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로완 앳킨슨을 위시한 <블랙애더> 제작진과 상의한 끝에 두 번째 시리즈를 만들기로 결정했다.물론 첫 번째 시리즈처럼 무한한 바보쇼 만으로 두 번째 시리즈를 끌어가는 건 제작진 스스로도 바라지 않았다. 새로운 작가 벤 엘튼을 끌어온 제작진은 주인공 블랙애더를 멍청이에서 뭔가 꿍꿍이로 가득한 영악한 바보로 재창조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블랙애더가 살아가는 해당 시대를 좀 더 고차원의 우스갯거리로 사용하기 위해서 캐릭터의 변화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전편의 무시무시한 성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블랙애더 2>(Blackadder II/1986)는 이제 바보 주인공들을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는 영국으로 데려간다. 블랙애더는 좀 더 현명하고 능수능란한 사기꾼으로 변모했다. 조지 3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블랙애더 3>(Blackadder the Third/1987)에서 블랙애더의 신분은 집사로까지 내려앉고,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시리즈 <블랙애더 4>(Blackadder Goes Forth/1988)에서 블랙애더는.....영국군 장교다. 그게 집사보다 더 높은 직책 아니냐고? 매일매일 죽음의 위기에 봉착한 인간이라면 직위가 높다한들 집사보다 나을게 뭐가 있겠는가. 어쨌거나 시대가 진보함에 따라 블랙애더의 바보짓은 조금씩 줄어들며, 심지어는 점점 더 현명하고 똑똑해지기까지 한다.
<H3>정녕 당신이 하박이란 말인가요?</H3>
| 로완 앳킨슨이 전쟁터의 대위로 나왔던 <블랙에더4>(왼쪽)와 휴 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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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애더>는 로완 앳킨슨을 비롯한 훌륭한 코미디 배우들의 개인기를 감상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하지만 더욱 즐거운 것은 시리즈의 작가들이 빚어내는 역사적 농담들이다. 첫 번째 시리즈부터 세익스피어의 고전들을 온갖 괴상망측한 방식으로 파괴한 제작진은 이후 시리즈를 거치며 점점 고단수의 풍자로 영국의 역사를 골려댄다. 하지만 <블랙애더> 시리즈는 의외로 진중한 역사 비평문이기도 하다. 특히 영국 TV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엔딩 중 하나로 손꼽히는 <블랙애더 4>의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뜨겁게 만들만큼 감동적이다. 정신 나간 군 수뇌부는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군인들에게 끊임없이 진격을 외치고, 4번째 시리즈의 전 에피소드들을 통해 전장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던 주인공들(블랙애더 대위와 볼드릭 이등병)은 결국 전장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간다. 거대한 역사적 수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블랙애더의 시도는 결코 야비하거나 지리멸렬하지 않다. 바보 같은 소시민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쨌거나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법이니까. <블랙애더>는 영국 TV가 낳은 가장 웃기는 코미디인 동시에 가장 가슴 쓰린 비극이기도 하다.
종영한 지 20여년이 지난 시리즈이긴 하지만 <블랙애더>의 팬들은 여전히 로완 앳킨슨을 비롯한 예전 멤버들이 모두 모여 근사한 극장판을 하나 만들어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이러저러한 극장용 장편들을 거치며 슬랩스틱 코미디의 클리셰 덩어리가 되어버린 로완 앳킨슨이라면 충분히 귀 귀울일 만한 소원 일게다. 하지만 시리즈의 조연들을 모두 불러모으고 싶다는 소원은 빌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하우스>의 열혈팬들이라면 휴 로리의 껑충한 바보짓 따위 상상조차 못하고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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