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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TS충들이 프롤로그 써도 관심을 안 준다...

죄 악(180.67) 2016.04.10 00:19:11
조회 60 추천 0 댓글 2

#


 주점은 위험하다. 해가 저물고 난 밤의 주점은 특히 위험하다.


 '정보를 모으려면 주점에'란 말도 있고, 모험가가 동료를 찾는 것 역시 주점이 제일이지만, 결국 주점의 본질은 술을 파는 가게다. 난폭한 모험가가 득실거리는데다가 그 반절 이상이 술에 취해 있다.


 요컨대 어린, 특히 가슴이 봉긋 올라오기 시작한  풋풋한 나이의 소녀가 혼자서 들어올만한 장소는 아니란 거다.


 문이 열리고 소녀가 들어왔을 때 점원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제 아비를 찾아오라는 어미의 심부름을 온 것이리라 추측한 탓이다.


 하층민 중에는 그렇게 아이에게 못 시킬 일을 시키는 집이 많았다. 빈궁한 처지에 아이들을 일일히 챙길 겨를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소녀의 옷은 어마어마하게 비싼 물건이었다. 당장 상의만 팔아도 이 술집을 며칠은 전세낼 수가 있다. 상의'만'이라고 하기에는 소녀는 상의'밖에' 걸치고 있지 않지만.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주점이다보니 그 옷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는 드물었다. 오직 한 소년만이 이상한 차림의 소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의 차림은 기묘했다. 본래는 성인 남성용인 듯 소녀에게는 지나치게 큰 튜닉을 입어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왔다. 바지가 보이지 않아 얼핏 원피스로 착각할 법 했다.


 허리에는 튜닉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벨트로 고정해두었는데, 역시 남성용에 평민은 평생 만져볼 일 없는 최고급품이었다.


 그런데 또 신발은 신지 않았다. 마치 몸이 갑자기 작아져 걸리적거리는 것은 다 버리고 오기라도 한 듯이.


'설마 그럴 리가.'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선 관심을 끄려 했다. 소녀는 왠지 귀찮은 일을 잔뜩 몰고올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모험가들이여."


 소녀가 갑자기 옆 테이블의 남자들에게 말을 걸지만 않았다면 끄려고 했었다.


"지금 이 나라가 큰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느냐?"


 소녀가 말을 건 네 명의 남자는 좋은 의미로는 강해보였고, 나쁜 의미로는 험악해보였다.


"또 무슨 약을 팔려고."


 짜증을 내며 돌아본 남자들은 소녀의 얼굴을 보고 일제히 눈알을 굴려 몸을 훑었다.


"그래. 무슨 얘긴데?"


 평소에는 짜증나는 종교쟁이지만 이런 생김새라면 괜찮다. 오히려 말을 걸어줬으면 한다. 그룹의 리더 에릭은 그리 생각하며 소녀의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지금 국왕 전하께서는 안타깝게도 악마에게 조종당하시고 계신다. 나 또한 악마를 막으려다 저주받아 이런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지. 그래. 이 몸이 바로 왕위계승서열 2순위, 제2왕자 아스티리아 윈드와이즈 데 아르카디아다."


"오오. 그렇습니까?"


"믿기 힘들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소녀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물론 믿습니다. 왕자님. 그래서 저희에게 악마를 물리치는 걸 도와달라는 말씀이시죠?"


"그렇다. 이해가 빨라 좋군."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기꺼이 도와드려야죠. 그럼 숙소에 가서 얘기를 계속할까요?"


"좋다. 안내하거라."


 퍽. 정말 아플 듯한 소리와 함께 소녀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야야."


"리아야. 그런 장난 치지 말랬지?"


"그게 누구냐. 이 몸은 이 나라읍읍."


 소년은 소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아. 실례했습니다. 동생이 요즘 이상한 망상에 심취해서."


 소년은 허리를 숙여 사죄하고 소녀를 끌고 나가려 했다.


 일행 중에 가장 덩치가 큰 험블이 소년의 팔을 잡았다.


"네 구질구질한 면상이야 그렇다고 치고. 머리색 피부색 눈동자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는데?"


 소녀는 불꽃 같은 적발에 같은 빛깔 눈동자, 새하얀 피부를 지녔지만 소년은 명백하게 황색이 섞인 피부에 흑갈색 눈동자와 머리칼을 지녔다.


"아하. 저희 아버지가 바람이 나셔서요. 이복남매랍니다."


"거짓말도 좀 그럴듯하게 해야지. 왜? 우리가 범죄집단으로 보이기라도 하나?"


 물론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적어도 소년이 보기에 눈 앞의 남자들은 신분 확인도 안 되는 정신병자 소녀를 친절하게 대해줄 인상은 아니었다.


"둘이 아는 사이 같지도 않은데. 너야말로 그 애를 데려가서 뭘 할 셈이냐?"


 그새 소녀는 소년을 깨문답시고 입을 바둥거리고는 있는데 영 여의치가 않았다. 소년은 결국 귀찮아져 적당히 실력행사를 할까 싶어 손을 놓아주었다.


"누가 감히 이 몸의 입을 막으려 드는 거냐. 악마의 하수인인가?"


 소녀는 약간 분노한 듯 그러나 기품 있게 소년에게 호통을 치려 했다.


"응?"


 소년의 얼굴을 확인한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굴을 찬찬히 훑고 소리쳤다.


"매그놀리아!"


"윽."


"그대는 매그놀리아가 아닌가. 오랜만이구나. 아. 이 몸은 아스티리아 윈드와이즈 데 아르카디아. 비록 악마의 저주로 이런 몸이 되었지만, 의심할 여지 없는 이 나라의 제2 왕자다."


'의심할 여지가 엄청 많은데요.'


"풉."


"이름이. 아하. 아주 예쁘네. 아하하하."


"남매가 아니라 자매였나보구만."


 남자들은 웃기 시작했다. 매그놀리아는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쉬었다.


"저는 보다시피 남자입니다만."


"이 몸도 성별은 남성이다. 아니, 이 영혼이라 해야하나?"


 소녀는 그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를 인신매매범 취급한 것은 사과를 받아야겠는데."


 소년은 몹쓸 짓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남자들은 팔아치울 생각이었던지 제 입으로 털어놓고 있었다. 물론 이쪽도 몹쓸 짓이기는 하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사과로 끝난다면 양호한 편이다. 사과는 돈도 들지 않고 딱히 힘들지도 않다. 그냥 미안한 표정을 짓는 정도의 수고가 들 뿐이다.


"아니. 말로만 해서 되면 경비병이 왜 있겠어? 성의를 보여야지 성의를."


"그, 얼마나 드려야 할런지."


"금화 한 닢."


 금화는 가장 높은 단위의 화폐다. 동전으로 자그마치 만 개 가량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통 노역꾼의 한달치 월급과 비슷한 액수다.


"아, 아쉽게도 제가 가진 돈이 좀 부족해서요."


"얼마나 있는데?"


"동전 다섯 닢?"


"이 자식이!"


 험블이 화를 냈고 일행도 같은 표정이었다.


"돈은 됐다. 몸으로 갚아줘야겠어."


"음. 안마라도 해드릴까요?"


"그런 의미가 아니야!"


"헉. 그렇다면, 그렇고 그런 취향?"


 에릭은 소년의 헛소리에 어울려주는 대신 주먹을 날렸다.


"안타깝지만 저는 여자가 좋습니다."


 에릭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소년은 그의 주먹을 꽉 잡고서는 그대로 들어서 던져버렸다. 테이블과 함께 나뒹군 에릭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꼬맹이가 힘이!"


"매그놀리아. 이 나라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는 걸 알고 있는가?"


"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오오. 역시 그대는 믿어주는구나! 실은 이 몸이 왕자라고 해도, 아니지. 이 몸에 든 영혼이 왕자라고 해도 도통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 곤란하던 참이었다."


 글쎄. 신통력이 있는 미치광이 소녀인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맥이라고 불리고 싶은 소년은 그리 생각했다.


"그래. 그대의 힘이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 부디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힘을 빌려주거라! 물론 왕궁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내 크게 사례할 것이다."


"맥?"


 험블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흠칫 놀랐다. 소년은 키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긴 대검을 차고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검의 극의를 깨우쳤다는 검성 맥이라고?"


 소년은 자신을 알고 있는 듯 하자 은근히 미소지으며 가슴을 폈다. 물론 알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이 나라에 소년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드물며, 특히 모험자는 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맥이라는 외 자 이름인줄 알았는데. 매그놀리아의 준말이었다니!"


"왜 자꾸 남의 이름으로 시비야."


 매그놀리아는 일반인은 보기만해도 전의를 상실하는 검성 특유의 살기를 뿌리며 화를 냈다.


"으, 으윽."


 험블 일행은 거물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걸 눈치채고는 아직도 일어나질 못하고 있는 에릭을 챙겨 달아나버렸다.


"저기요. 손님."


"네? 아.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죄송은 됐고, 저 테이블 값이랑, 그 남자들 계산 안 하고 도망가버렸거든요. 은화 열 닢은 주셔야겠는데."


"네? 은화 열 닢이요?"


 매그놀리아의 전재산이 동전 다섯 닢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왕자님. 혹시 돈 좀 가진 것 있으십니까?"


"음.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비상금정도는 챙겨올 수 있었다."


 소녀는 튜닉 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아마 금화겠지. 열 개 정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


 소녀가 연 주머니의 내용물을 확인한 맥은 미친 듯이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왕실100주년기념주화. 백금으로 만들어진 틀에 금강석이 촘촘히 박힌 주화는 시중에는 유통되지 않는 것이다. 쓸 수 없는 주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겠지만 왕실 기념주화는 왕실이 그 가치를, 그러니까 금화 100개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물건이다. 그런 물건이 정확히 열 개가 들어있었다.


'잠깐. 천 골드면 그러니까. 음. 평생 놀고 먹어도 되겠군.'


 최연소 검성은 이 소녀를 돕는 것과 뒷통수를 치고 평생 놀고먹을 돈을 손에 넣는 것을 진지하게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


 매그놀리아는 결국 술집에 변상하기 위해 아끼던 고급 가죽 장갑을 내어줘야했다.


 왕실기념주화의 제 값을 받으려면 왕실에 직접 가져다 줘야하는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출처를 밝혀야한다.


"매그놀리아.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안 되겠느냐?"


 아까부터 졸졸 따라오는 소녀가 진짜 저주 받은 왕자고, 주화의 출처가 왕실이라 쳐도, 절대로 그대로 밝힐 수는 없다.


 왕자에 계승서열도 높으니만큼 고위귀족들 대부분과 면식이 있을 터인데, 굳이 믿기 어려운 모험가들을 포섭하려 했던 것은 이미 귀족들을 믿기 어려운 상황이란 거겠지.


 굳이 믿느냐 마느냐를 따지지 않더라도 저런 소녀의 모습으로 내가 왕자요 하고 왕실에 쳐들어갔다간 왕실모독이나 왕족사칭으로 단두대로 향하기 마련이다.


"매그놀리아."


 그렇다고 암시장에 팔아넘기는 건 더 미친 짓이다. 너무 비싸서 팔 수가 없다면 웃긴 말이지만, 제값을 못 받는 건 차치해도 암시장에 이런 물건을 열 개나 팔아치웠다간 반드시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매그놀리아!"


 소년은 뒤로 돌아서 도저히 보폭이 맞지 않자 뛰어오고 있던 소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소녀는 화가 났는지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왜 따라오는 겁니까."


"나에게 믿을 사람이라고는 그대 밖에 없다. 부디 이 나라를 구하는 일에 동참해주지 않겠느냐?"


 소녀는 무언가를 참느라 이를 악물고 새는 발음으로 말했다.


"싫습니다."


"어째서인가."


"저는 귀찮은 일과 위험한 일은 싫어합니다."


"그대는 기사를 꿈꾸지 않았는가. 분명 백성들을 수호하고 나라를 위해 충정을 바치는 것을 동경했던 것일 터. 지금 이 나라는 굉장한 위기에 처해있네. 부디 그대의 힘을 빌려주게."


"그건 어렸을 땐 철밥통에 빈둥거리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고, 요즘 보니 아닌 것 같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상당히 속물적인 발언이군. 그래.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는가."


 소녀는 입에 주먹을 대고는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대여. 당연하지만 나라를 구한 영웅에겐 그에 걸맞은 대접이 있을 것이네. 내 자리를 되찾는다면 평생 부족함이 없을 재물을 약속하지."


 맥은 속지 않았다. 여러모로 썩은 동앗줄이었다. 애초에 왕성의 악마를 처치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게 귀찮아보이는데, 처치한다 치더라도 왕위계승서열 2위라는 애매한 신분으로 권력투쟁에 말려들기 딱 좋은 위치였다.


 무사안일주의인 소년이 발을 들일만한 일이 아니었다.


"싫습니다. 위험한 일은 안 합니다."


 단호한 소년의 거절에 소녀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강요할 수는 없겠지. 알겠네. 무운을 비네."


 소녀는 뒤로 돌아 터벅터벅 걸어갔다. 새빨간 발자국을 남기면서. 소년은 왠지 불안한 그녀의 등을 바라보다가 위화감을 느꼈다.


"아."


 그러고보니 맨발이었다. 익숙한 사람은 돌길을 맨발로 걷는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왕족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발이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견딜 리가 없었다. 그냥 걷기만 해도 아플 터인데 소년을 쫓는답시고 뛰기까지 했으니 발바닥이 성할 리가 없는 거였다.


"으으."


 맥은 탄식을 흘렸다. 소녀는 정말로 단념했는지 한 번 뒤돌아보는 일 없이 꿋꿋이 걸어갔다. 


"젠장."


 소년은 붙잡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결국 소녀를 붙잡고 말았다. 원래의 아스티리아, 키가 소년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체격도 건장한 데다가 항상 당당한 태도가 재수 없는 제2 왕자 아스티리아라면 잡지 않았을텐데. 소년은 그런 부질 없는 생각을 했다.


"왕자님."


"응? 무슨 일인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셔야죠. 거리에 핏자국을 찍어놓고 다니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백성들이 신음하고 있는데 그걸 막지 못한 내가 어찌 내 자신의 아픔만을 호소한단 말이냐."


"아아! 아아아!"


 맥은 머리를 손으로 싸매고선 비명을 질렀다.


"매그놀리아. 어디 아픈가? 내 의원을 불러오지."


"맥이라고 부르라고요. 아. 진짜."


"몸은 괜찮은가? 예쁘고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만."


"예뻐서 싫거든요. 계집애도 아니고."


"알겠네. 내 명심하도록 하지."


"악마인지 뭔지 해치우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거 맞죠?"


 미심쩍은 눈으로 묻는 소년의 말에 아스티리아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물론이네. 구국의 영웅으로서 부족함이 없이 대우할 것일세."


"그래요. 하죠 뭐. 합니다."


 맥은 소녀에게 등을 보이며 무릎을 굽혔다.


"업히세요."


"아. 잠깐 실례하겠네."


 말은 그렇게해도 실은 발이 상당히 아팠던 것인지 소녀는 순순히 소년의 등에 업혔다.


"읏."


 그러고보니 없는 것은 신발뿐이 아니었다. 등에 닿는 소녀다운 말랑말랑한 감촉에 맥은 확인차 물었다.


"그, 바지는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 속옷은 어쩌셨습니까?"


"도저히 고정이 되질 않기에 버려두고 왔다."


"갸아악."


 최연소 검성은 악마가 도사리는 왕성 대신 속옷 매장을 최우선 목표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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