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초는 자기가 식인귀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방 문 맞은편에 걸터앉아 검은 빵과 양파, 치즈를 꺼내서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당글라르는 문틈으로 산적이 먹는 음식을 흘끗 내다보며 말했다. '세상에! 저런 냄새나는 음식을 잘도 먹는군."
-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 중에서
"수프 건더기는 날마다 똑 같았다. 그것은 그해 월동용으로 어떤 것을 저장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해에는 소금에 절인 당근이었다. 그래서 9월부터 5월 말까지 당근 수프만을 먹어야 했다. (중략) 감자는 두 그릇 중, 체자르의 국그릇에만 한 개 들어 있을 뿐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물론 얼어서 상한 것이다."
-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당근과 양파, 감자는 오랫동안 서민들의 식탁을 책임져 온 대표적인 작물들입니다. 다만 '서민들'이 주로 먹는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그렇게 고급 재료로 대접받지는 못했지요. 그저 고픈 배를 채우는 용도 아니면 기껏해야 다른 고급 요리의 부재료로 들러리를 서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가지 재료의 궁합이 나름 잘 어울리는지라 요즘 들어서는 크로켓이나 카레 등에 "당.양.감"이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궁극의 당.양.감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포타주 수프입니다.
당근, 양파, 감자가 재료의 전부거든요. 여기에 맛을 더하기 위한 소금과 후추, 치즈, 올리브유, 월계수 잎 등의 부재료가 추가됩니다.
채소들의 껍질을 벗기고 대충 잘라서 냄비에 담습니다.
어차피 다 갈아서 수프를 만들 예정이기 때문에 굳이 공들여서 예쁘게 자를 필요가 없습니다.
양파와 당근을 자르면서 남은 자투리는 따로 냉동실에 모아두었다가 채소 육수를 끓이는 데 사용하면 좋습니다.
감자는 전분기가 많아 육수를 낼 수는 없고, 남는 조각을 모아다가 매쉬드 포테이토를 만들곤 합니다.
식용유를 두르고 볶다가 물을 붓고 끓입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월계수잎을 넣어서 풍미를 더합니다.
모든 재료가 푹 익을 때까지 대략 30분 정도 끓여주면 됩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이대로 토마토 소스 넣고 끓여 수프 만들어 먹어도 맛있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미네스트로네는 워낙 자주 먹으니 이번에는 꾹 참고 포타주를 만듭니다.
완전히 익으면 망에 걸러서 건더기와 국물을 분리하고 식혀줍니다.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치즈를 갈아줍니다.
평소에는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를 갈아서 쓰는데, 얼마 전 마지막 조각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이번에는 고다 치즈를 갈아넣습니다.
파마산 치즈와는 확실히 다른 질감과 맛을 보여줍니다.
숙성 기간이 짧으면 부드러운 맛에 여러 음식과 잘 어울리지만, 오래 숙성시키면 점점 자기 주장이 강해지면서 치즈 자체의 맛을 즐기는데 적합하게 변합니다.
왠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고집이 세지는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이네요.
식은 수프 재료들을 블랜더에 넣고 갈아줍니다.
요리학교에서 사용하던 백만원 넘어가는 바이타믹스 블랜더는 펄펄 끓는 재료 그냥 넣고 막 갈아도 상관없는데
집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블랜더는 좀 식혀서 넣어줘야해서 불편하네요.
갈기 전에 분리해놓은 육수를 한꺼번에 다 넣지 말고, 농도 봐가면서 조금씩 더 넣어서 적절한 농도를 맞춰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다 갈고 나면 조그만 냄비에 끓이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합니다.
그릇에 담고 갈아놓은 치즈를 뿌리면 완성. 취향에 따라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거나 파슬리를 뿌려도 좋습니다.
당근과 양파, 감자가 워낙 친숙한 재료들이다 보니 그 맛 역시 꽤나 익숙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투닥거리던 소꿉친구가 어느 날 화장한 모습을 보고 갑자기 두근거리며 이성으로 느껴졌다는 연애담처럼,
항상 먹던 요리법이 아니라 갈아서 수프를 만들어 먹으니 맛은 비슷해도 전체적인 느낌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요리가 됩니다.
굳이 희귀한 재료를 써서 이국적인 요리를 만들지 않아도 흔한 재료로 이렇게 색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으니 요리의 세계란 심오하기 그지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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