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릴레이문학-8

8번주자(211.177) 2014.06.25 23:49:39
조회 1053 추천 22 댓글 9
														

 

viewimage.php?id=2bafdf3ce0dc&no=29bcc427b18b77a16fb3dab004c86b6fb2a09527f01f968383b54400f385e2528ebe06662f47b06270f5589f78c82818b2b77ad51648aee3

 

릴레이문학 전편 통합 링크

https://job.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1713492

 

=========================================================================

 

"크리스토프 대체 무슨 생각이냐? 게다가 안나 공주까지 데려오다니..."

 

 

패비 영감의 표정이 한층 더 단단한 암석이 된 양 굳어졌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크리스토프와 안나를 훑었다.
크리스토프는 그런 패비 영감의 태도에 불안감이 이내 자신을 덮쳐오는 걸 느꼈다. 두꺼운 털모자를 벗어 쥔 그의 손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발 도와줘. 아렌델이 위기에 빠졌어. 어떻게 해야 카이를 물리칠 수 있지? 또 할아버지가 말했던 그 '운명'이란 건 대체 뭐야...?"
"......"

 

크리스토프의 간절한 부탁에도 패비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패비의 표정은 이내 깊은 수심에 잠겼다.
무언가 말 못할 비밀이 바위인 그의 등허리를 돌덩이처럼 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패비가 머뭇거리자 안나 역시 조급해졌다.
안나는 두 주먹을 꼭 쥔 채로 패비를 보챘다.

 

"오랫동안 저희를 보필했던 집사 카이가 저희를 배신했어요. 카이의 손에서 아렌델 왕국과 언니를 구해야만 해요! 제발요!"
"...카이를 물리친다고 해서 아렌델의 평화가 찾아오진 않아. 이미 뒤틀려진 운명의 조각을 다시 맞출 수 있어야 해."

 

 

패비 영감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 할 수수께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패비의 태도에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발만 더 동동 굴렀다. 패비는 이만 돌아가라는 손짓을 하고 다시 처소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재빨리 패비의 손목을 붙잡고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패비에게 간청했다.

 

"할아버지, 제발 부탁이야. 이건 숨겨야 될 일이 아냐. 아렌델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럼 결국엔 할아버지와 트롤들도 안전하지 못해."
"...그쯤은 다 감수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이 위기를 헤쳐나가려면...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 그리고 안나 공주도 마찬가지지..."
"전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패비는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얼굴에 서려진 굳센 의지를 손쉽게 읽을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의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단 걸 알게 된 패비는 두 사람을 불러모아 손을 맞잡게 했다.  
그리고 패비 자신도 그 위에 손을 얹었다. 패비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낮은 소리로 알아듣기 힘든 주문을 중얼거렸다.
이윽고 패비의 거친 곰보 손 위로 차가운 파란 기운이 솟구쳐 오르더니 패비의 반대쪽 손가락의 지휘에 맞춰 공중을 휘감았다.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내 시퍼런 냉기는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팔목을 단단히 감는 사슬로 변하였다.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갑자기 파란 사슬에 묶여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없자 당황하여 서로 손을 빼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파란 사슬은 두 사람의 손목을 더욱 단단히 옥죄었고 이내 두 사람의 살갗 안으로 타들어갔다.

 

 

"앗...!"
"으앗!!"

 

 

파란 사슬이 피부를 뚫고 연기를 내며 팔뚝 안으로 파고 들어가자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모두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패비는 눈을 지긋이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파란 사슬을 두 사람의 몸 속으로 밀어넣는 데 집중하였다.

 

 

"안 된다...! 조금만 더 참아!!"

 

 

이내 사슬은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손목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그 자리에 검은 사슬 형태의 표식만이 남았다.

 

"이, 이게 뭐지?"
"할아버지. 대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두 사람은 자신의 손목에 새로이 새겨진 검은 사슬 문양의 문신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패비는 무겁게 입을 열며 설명을 이어갔다.  

 

"너희는 방금 '진실의 서약'을 한 것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함부로 떠벌려선 안 된다.
혹시 이 일에 대해서 너희가 발언하게 되어도 거짓을 얹는 순간...너희 팔에 새겨진 그 표식이 그 책임을 물을 것이야.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들은 언제나 그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지. 내 말을 명심해라."
"...알았어요."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패비의 말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만 해도 그들은 패비의 말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진실'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난 패비는 '진실의 서약'을 한 자들에게만 말할 수 있는 사실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패비는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는데 그러자 패비의 손 끝에서 하얀 김 같은 것이 피어났다.
하얀 기체는 패비의 손짓을 따라 공중으로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이내 한 덩어리가 되더니 희미한 영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안나는 약간 눈을 찌푸리고 부연 가스 덩어리 사이로 떠오르는 희미한 영상에 집중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붉은 입술 한쪽 끝을 떨면서 가늘게 그 이름을 내뱉었다.

 

 

"에...엘사..."

 

 

그러했다. 그 영상이 이내 선명해지면서 비춘 것은 감옥 안 간이 의자 위에 드러누워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던 엘사였다.
엘사의 양손에는 여전히 그녀를 옭아매는 수갑이 굳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반신은 이미 얼어붙어 투명해져 있었다.
사실상 엘사가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상체 뿐이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그녀의 몸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얼음이 뒤덮어 가고 있는 엘사의 가녀린 신체 위에 붉은 가루와 파란 가루를 뿌리며 날아다니는 붉은 나비와 파란 나비가 보였다.
엘사는 자신을 덮쳐 오는 차가운 고통 앞에 몸부림치며 얼핏 들어선 알아듣기 힘든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도...도망쳐...안나...도망쳐...여긴...위험해..."
"엘사..."

 

 

생사의 기로 앞에서 허덕이는 와중에도 13년 동안 얼굴 한 번 마주보지 못한 동생의 이름을 외치는 엘사
앞에서 안나는 그저 눈물을 짓는 일 말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두터운 장갑을 낀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얼어붙어가는 언니를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은 울음을 토해낼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이 그녀의 폐부를 날카롭게 찔렀기 때문이었다.
패비는 감옥 안에서의 엘사를 보여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아렌델의 시조 마녀로부터 전해 내려온 최상급의 저주란다.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결박하고 이내 자신을 소멸시키는 저주이지."
"네...? 저주라고요...? 그게 뭐죠? 왜 그런 저주를 건 거예요?"
"선대 마녀들도 모두 엘사 여왕님과 똑같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야. 마녀라는 낙인, 이방인이라는 고독...
 자신같은 존재는 없어져버려야 한다는 자기 비하와 함께 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이중적인 욕망이 만들어낸 저주야.
 마녀의 피를 이어 받은 자는 모두 이 저주의 본성을 타고 태어난단다. 엘사 여왕님은 지금 그 저주가 각성했기 때문에 속박당하고 있는 거고."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어떻게 해야 언니를 구할 수 있는 거예요?"

 

 

안나는 간절히 외쳤다. 그 말은 그녀의 진심의 전부였다. 안나는 당장이라도 엘사를 옥죄고 있는 냉혹한 얼음 폭풍을 그치게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자신을 억누르지 말라고...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이란 감옥에 갇혀 있던 엘사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아렌델 전체를 휩싸고 있었던 매서운 눈의 폭풍은 곧 황량한 엘사의 내면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잠자코 크게 떨리던 안나의 두 어깨를 붙잡아주며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옆에 서 있었다.
그러나 패비 영감은 안나의 기대와는 달리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대로 냅둬. 이대로 엘사가 가게 두어라..."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언니가 지금 저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이 저주가 자신에게 걸었다는 뜻을 모르겠어? 이대로 사라져서 자유롭고 싶다는 거다! 이대로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야! 그것이 엘사가 정한 자신의 '운명'이다! 자신의 얼음 마법은 모두를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니 이대로 없어지겠다는 '운명'을!
크리스토프! 네가 그녀를 구해서 틀어지게 만든 거다! 마녀의 말로를 한낱 평범한 인간이 바꾸려 하다니! 그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어!"
"그런 운명이라면 없어져도 좋아요!!"

 

 

안나가 크리스토프의 부축을 뿌리치고 당당하게 일어서며 눈을 부릅 뜬 채 말했다.
안나의 말에 패비도 크리스토프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안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굳센 표정을 지으며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단 한 번 뿐인 인생인데 기껏 정해진 운명이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라니!! 너무하잖아요! 엘사의 운명이 그런 거라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요!! 사람이 살면서 알아야하는 게 꼭 슬픔과 고독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현실엔 끔찍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구요!!"
"그럼...어떻게 할 건데?"
"제가 엘사의 운명을...바꾸겠어요! 더 이상 엘사가 슬픔에 갇혀 살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라져
 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겠어요! 엘사는...행복을, 기쁨을 알 필요와 권리가 있다구요!! 제가...제가 꼭 알려줄 거예요. 언니가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언니의 운명은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희망을 배우는 거라고요. 언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줄 거예요!!"
"착한 동생이로군. 그런다고 네가 이미 뒤틀린 운명의 축을 맞출 수 있을까?"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패비는 다시 손짓을 하며 공중을 휘저었는데 그러자 엘사를 비추던 가스 덩어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패비의 손길에 따라 이번에는 샛노란 기체가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눈앞에 떠올라 공중을 메우며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공중에 떠오른 그림자는 한 성인 여성의 그림자와 커다란 덩치를 가진 한 짐승의 그림자였다.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그 그림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패비가 허공에 떠오른 그림자를 움직이며 설명했다.


 

"엘사는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지. 아렌델의 시초부터 위협이라 여겨진 마녀인 최초의 통치자가 되었으니까.
 아렌델에 이런 위기가 처음인 건 아냐. 대대로 왕가에 위험이 닥쳤을 때 그들이 종종 사용한 방패는 바로 신의 애완동물인 야누였다."
"야누...?"
"그래. 야누는 신성한 동물로 왕가의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지. 따라서 야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왕권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는 엘사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너희는 이 야누를 찾아 아렌델로 돌아가거라."
"야누를 찾은 다음엔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야누를 죽여."

 

 

드디어 짙은 어둠이 다스리던 바닷가에서 한 줄기 빛을 뿜는 등대를 만난 듯 희망찬 미소를 지은 안나였다.
하지만 안나는 이내 돌아온 패비 할아버지의 대답에 다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엘사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도와줬던 야누를 죽여야만 한다니...

 

 

"야누를 죽여야...한다고요?"
"그래. 그래서 그 가죽을 벗겨 여왕의 모포로 만들고 여왕이 직접 야누의 피를 마셔야 한다. 그럼 엘사는 여왕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 받고
 저주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거야."
"왜...그렇게까지 해야 되죠? 야누는 아렌델을 대대로 지켜온 수호 동물이라고요!"
"바로 그 신성함 때문이다. 지금 엘사가 저주에 강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자신이 왕으로서의 자격이 없고, 부정당한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야.
 하지만 야누의 가죽과 피를 얻은 사람은 야누의 신성함을 그대로 몸에 입은 자가 된다. 야누를 취함으로 엘사는 야누의 가호를 받은 신성한
 사람이 되는 거지. 그럼 사람들은 모두 엘사를 여왕, 아니 여신으로 경배할 거야. 엘사는 그러면 그동안 부정당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고 그러면 스스로를 환멸해서 걸었던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는 거지. 어때, 야누를 죽여서 언니를 구원할 수 있겠어?"
"저...정말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요?"   

 

패비의 말을 듣고 나서 안나의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심한 경련을 느꼈다. 크리스토프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부축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안나의 머릿속은 혼돈과 절망이 뒤섞여 매우 탁해진 상태였다. 안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힘조차 없었다.
패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야누를 죽이는 건 외에 엘사를 구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답을 확인사살했다.
안나는 그런 패비의 대답을 듣고 그만 극심한 충격을 받아 혼절하고 말았다. 크리스토프가 그런 그녀를 안아올리고 썰매 위에 뉘었다.
크리스토프는 썰매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다시 재정비하여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날 채비를 했다. 패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셈이냐?"
"몰라. 일단 얀센에게 찾아가 보려고. 공주님이 정신을 차려야 될 거 아냐. 근데 할아버지,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어?"
"난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한 거다. 너희가 '진실의 서약'을 했기 때문이야. 진실을 알려는 자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아무튼 고마웠어, 할아버지. 가자, 스벤!"

 

 

크리스토프는 무거운 마음으로 썰매 위에 올라탔고 스벤과 썰매를 연결한 줄을 흔들며 거친 설원 위를 내달렸다.
점점 더 거세지는 눈보라 사이로 그들은 썰매를 타고서 잘도 미끄러져 곧 점이 되어 사라졌다.
패비 영감은 홀로 점차 작아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건 결코 그들이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너희가 감당하여야 할 진실이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크리스토프는 두꺼운 모포로 안나의 허리춤을 덮어주고 나서 거세게 흩날리는 눈발 가운데서 시야를 확보하려고 인상을 썼다.
그리고 그는 스벤에게 연결한 고삐를 흔들며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한참을 달린 끝에 마침내 거센 눈보라 사이에서 희뿌옇게 빛나는 낯익은 오두막집에서 새어나오는 등불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한 얀센의 오두막집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고삐를 쥔 손에 더 힘을 주며 썰매를 몰았다.

 

 

"됐다! 스벤! 조금만 더 힘내! 거의 다 왔어!"

 

 

그런데 그 오두막집으로 향하는 무리는 안나와 크리스토프 뿐만이 아니었다.
맞은편에서 역시 오두막집을 향해 다급히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가 고요한 설원을 묵직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일행의 정체는 화려한 금테를 두른 궁정 마차를 이끄는 말 두 필을 모는 마부와 그 주변을 호위하는 병사들이었다.
눈 속에 파묻힐 듯 쏟아지는 눈발을 다 맞고 이를 악물며 필사적으로 열악한 썰매를 모는 크리스토프 일행과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아늑한 궁정 마차 안에 편히 앉아 여유롭게 지도를 들여다보며 홍차를 마시는 사내는 바로 카이였다.
카이는 홍차를 한 모금 들이킨 다음 찻잔을 옆에 내려놓고 이내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창 밖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던 병사를 불렀다.

 

 

"이 근방에서 안나 공주가 죽은 게 확실하냐?"
"네, 카이님!"
"어서 가서 작은 공주의 시신을 수습해라. 여왕을 처형한 다음엔 함께 국장을 치러야 하니까. 서둘러야 한다."
"네!"

 

 

대답을 마치자마자 병사는 곧 뒤에서 말을 타고 따라오던 다른 병사와 함께 설원 저편으로 재빨리 달려가 사라졌다.
그렇게 얀센의 오두막을 기점으로 크리스토프가 모는 썰매와 카이가 타고 있는 궁정 마차가 서로 마주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눈이 매서운데다 바람도 심하게 불어 썰매가 자꾸 미끄러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썰매의 방향이 계속 틀어졌고 스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폭풍의 위력을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리고 한 번 미끄러진 썰매는 빙판 위에서 끈 풀려 떨어진 팽이 마냥 바람이 돌리는대로 그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카이가 탄 궁정 마차를 보필하는 일행이 일제히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진중하게 온 설원을 진동시키며 가까워졌다.
갈피를 완전히 잃은 크리스토프는 그저 안나가 썰매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 그는 카이가 타고 있는 궁정 마차의 실루엣을 발견하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눈 폭풍 때문에...움직일 수가 없어요! 부탁이에요!"
"응...이게 무슨 소리지?"

 

 

크리스토프의 간절한 외침은 공중에 흩어져 희미한 메아리로 카이의 귓가에 와닿았다.
카이는 반대편 창문을 흘깃 보고는 매서운 눈보라 너머에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챘다.
그래서 그 옆에서 말을 탄 채로 걸어가던 병사에게 카이는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오라며 크리스토프가 있는 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카이는 다시 신경을 점차 선명해지는 얀센의 오두막집 정문에 집중했다. 곧 카이는 나지막이 한 마디 내뱉었다.

 

 

"야누...그것만 찾을 수 있다면..."

 

 

한편, 크리스토프는 지금 자신이 탄 썰매를 뒤흔들고 있는 눈보라보다 매서운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갈색 갈기를 흩날리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병사는 18년만에 숨겨왔던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카이가 보낸 심복이었기 떄문이었다.
만약 그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안나 공주를 보호하고 있는 크리스토프를 발견하면 어떻게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병사의 시야에 한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 크리스토프의 썰매가 포착되었을 때였다.

 

 

"으아악-!!"

 

 

허공을 찢으며 갈라진 병사의 외마디비명이 어느 새 마차에서 내려 얀센의 오두막집의 문턱을 넘어서려던 카이를 붙잡았다.
카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했다. 카이를 호위하던 병사들도 일제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그들은 모두 날카로운 눈빛으로 일제히 주변을 경계하였다. 그러다 카이는 곧 온통 새하얗던 세상에 색이 하나 더 덧칠된 걸 볼 수 있었다.
바로 하얀 눈발과 함께 뒤섞이며 흩날리는 선명한 핏빛이었다. 그런데 계속 거세게만 휘몰아치던 눈발이 붉은 피와 함께 조금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카이는 어슴푸레하게 모습이 비치지만 그 위용만큼은 당당한 그 자리에 선 네 발 달린 생물체를 한 눈에 분별할 수 있었다.

 

 

"저건 야누...! 틀림 없는 야누잖아!"

 

 

카이는 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하지만 홀연히 나타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분명히 야누였다.
야누는 매섭게 노란 눈동자를 치켜 뜨며 카이를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야누의 입가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또한 야누는 말 없이 병사의 뜯긴 한쪽 팔을 가만히 물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이는 덜덜 떨며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뭐, 뭐하고 있어? 당장 저 놈을 잡아! 꼭 잡아서 내 앞에 데려와! 어서!"
"예, 예..."

 

카이의 명령에 역시 당황한 병사들은 허둥지둥 야누를 향해 깊은 눈 속에 발을 담그며 걸어갔다.
그들 역시 갑자기 나타난 동료를 물어뜯은 야누에 압도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야누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게다가 야속하게도 병사들이 채 몇 발자국 뗴기도 전에 야누는 홀연히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야누가 사라지자 카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워하며 말했다.

"야누를 놓치다니! 아누를!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지만...야누가 전설의 동물이 아닌 건 알았으니 됐어..."
  
그리고 카이는 등을 돌려 한 병사가 미리 열어놓은 얀센의 오두막집의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 * *

 

 

한스는 오두막집의 지하실에 놓인 식탁에서 굴라르와 마주 앉아 크로커스 잎을 진하게 우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그는 창 밖으로 드세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말 없이 바라본 다음 입을 열었다.

 

 

"굴라르...이제 움직일 때가 됐다. 마녀란 죄목으로 축출 된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라도 난 기필코 왕이 되어야 해..."
"알았습니다. 한스 왕자님."

 

한스는 다시 크로커스 차를 목구멍으로 들이키며 쓰라렸던 지난 과거를 곱씹었다.
첩이라는 이유로 온갖 구박을 받은 것도 모자라 아버지와 배다른 형들에게 마녀로 몰려 성 밖으로 쫓겨난 어머니...
불길한 숫자인 13번째 왕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가족들로부터 외면받았던 자신의 모습...
왕위를 놓고 성에서 왕자들끼리 서로 베고 베이는 피바람이 몰아쳤을 때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성문 밖으로 도망쳤을 때...
그렇게 잠시 기억 저편으로 묻어뒀던 과거의 편린들이 한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 한스는 기필코 아렌델의 왕위를 차지해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 각오를 되새겼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한이 있어도 그가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끼이익'

 

 

지하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한스는 흠칫 놀라 뒤돌아보았다. 굴라르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빼들었다.
한스는 황급히 식탁 위에 내려놓았던 가짜 수염을 어떻게든 턱에 붙이려고 용을 썼다.
그러나 밖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온 것은 한 중년 사내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굳이 제 앞에서까지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스 왕자님."
"무...무슨 말씀이신지요, 손님? 저는 무역중개소의 얀센입니다만..."
"제가 왕자님의 정체 하나 모르고 이 곳까지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중년 사내는 목소리를 급하게 변조한 한스에게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다가가 식탁 앞에 놓인 의자를 빼내어 마주 앉았다.
굴라르는 중년 사내를 뒤따라온 호위 병사들에게 순식간에 결박 당해 손에 쥔 칼을 휘두를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한스는 계속해서 능글 맞게 웃는 사내를 노려보며 가짜 수염을 내려놓고 그에게 물었다.

 

 

"너는...누구냐?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지?"
"전 아렌델 왕궁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수석 궁중 집사 카이라고 합니다."
"아렌델의 집사가 나에겐 어쩐 일이냐?"
"왕자님께 거래를 하나 제안하러 왔습니다."
"거래라니...?"
"제가 왕자님을 아렌델의 왕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카이의 뜻밖의 제안에 한스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토록 염원하던 왕이 될 기회가 의외로 제 발로 찾아온 셈이었다.
그는 내심 뛸 듯이 기뻤지만 수상한 차림의 카이를 손쉽게 믿을 수는 없었고 왕자의 체면이 있기 때문에 밖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한스는 애써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카이에게 다시 질문했다.

 

 

"뭐라고? 자네 지금 진심인가? 이건 반역일세. 그건 당연히 알고 하는 소리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현재 엘사 여왕께선 아렌델 전체에 겨울의 저주를 불러오고선 돌아가시는 중입니다.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안나 공주님마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언니마저 그리 되자 충격을 받아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 돌아가셨겠지만요. 지금 병사들을 풀어 안나 공주님의 시신을 찾고 있는 중이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날 찾아온 거지?"
"당신이 얼마나 왕위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아니까요."
"뭐...?"

 

 

자신의 본심을 카이에게 간파당한 한스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반면에 카이는 태연하게 한스가 마시던 크로커스 찻잔을 들어 손수건으로 컵을 한 번 닦더니 자신이 그 차를 들이키며 말했다.

 

 

"왕위엔 역시 그에 걸맞는 사람이 앉아야 합니다. 엘사 여왕은 왕이 되기엔 너무 여리고, 안나 공주는 지나치게 철부지에요. 하지만 서던 아일랜드
 에서 그 매서운 피바람을 헤치고 살아나와 누구보다 왕위를 염원하는 당신은 누구보다 그에 걸맞는 재목입니다. 또 일개 궁중 집사인 제가 왕좌에  오르는 것보다 왕가의 피를 타고 난 당신이 보위에 오르는 게 더 정당성이 있기도 하고요. 서자라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원하는 게 뭐냐...?"

 

 

한스의 무거운 질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카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이는 크로커스 찻잔을 식탁 위에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별 거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기억하시면 돼요. 왕좌에 오르시면 제게 당연히 재상 자리는 주시겠지요?"
"...좋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카이는 그에 잠시 헛기침을 한 후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야누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죽과 피를 반드시 왕자님이 손에 넣으셔야 해요."
"야누? 그건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동물이잖아. 지금 무슨 얘기를..."
"아닙니다! 야누는 실존해요! 왕자님이 왕이 되시려면 꼭 야누가 필요하다고요!"

 

 

그러고 나서 카이는 '신의 애완동물'이란 별명을 가진 신성한 아렌델의 수호 동물인 야누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했다.
요지는 타국의 쫓겨난 왕자이자 서자라서 입지가 불안한 한스가 귀족들과 백성들을 설득해 왕이 되기 위해선 야누가 필요하단 것이었다.
한스가 야누의 모피를 두르고 야누의 피를 마시는 의식을 공개적으로 거행하면 그는 '신성한 야누의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 받기 때문에 한스에게 걸림돌이 되는 왕이 될 정당성과 명분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이는 잠깐 숨을 돌리고 또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니에요. 야누에 관해서 전해오는 또 다른 전설이 있어요. 그 때문에 야누가 신성한 동물이라고 하는 거죠."

 

 

* * *

 

 

크리스토프는 타닥타닥 불꽃이 튀어오르는 모닥불 근처에서 한참동안 웅크린 채 앉아있었다.
그는 한 손에 얼음을 캐는 곡괭이를 꼭 쥔 채 옆에서 모포를 두른 채 잠들어 있는 안나를 감싸며 앉아있는 야누를 쳐다봤다.
야누는 연신 긴 혓바닥으로 잠든 안나의 붉은 머리칼을 핥았다. 처음에 기절했던 안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피로가 몰린 듯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스벤은 크리스토프와 안나 사이에 네 다리를 포개고 앉은 채 크리스토프와 함께 계속 안나의 곁을 지키고 있는 야누의 눈치를 봤다.
그들은 모두 사나운 눈발과 매서운 추위를 피해 아늑한 한 동굴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야누가 구해온 장작을 모아 크리스토프가 부싯돌을 맞부딪혀서 일으킨 불길로 모닥불을 피워놓은 상태였다.
스벤은 울음소리를 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리스토프의 눈치를 봤다. 크리스토프는 한숨을 짧게 내 쉰 다음 스벤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벤, 나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내가 야누를 어떻게..."

 

 

그러면서 크리스토프는 날카롭게 닦인 곡괭이의 은빛 날을 바라보았다. 불꽃에 비춰 곡괭이의 날이 선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 위에 안나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야누의 모습이 비쳤다. 크리스토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과 얼마 전에 있던 일들을 되새겼다.
크리스토프는 똑똑히 그 모든 광경을 분명히 지켜보았다. 거센 눈보라를 뚫고 자신들을 향해 말을 타고 열심히 달려오던 한 병사를.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야누가 그보다 더 날쎄게 달려들어 병사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그의 사지를 갈갈이 찢은 모습을.
그 광경을 목격한 크리스토프는 머릿속에 새하얗게 되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완벽하게 두려움에 잡아먹힌 상태였다.
하지만 입가에 붉은 피를 흥건히 묻힌 야누는 평온하고 그윽한 눈동자로 크리스토프를 바라보았고 얌전히 제 등을 내주었다.
처음에 크리스토프는 한참동안 야누가 왜 순순히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크리스토프는 스스로 먼저 야누의 등 위로 올라탄 스벤을 보고 야누가 제 등에 올라오길 기다렸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그는 썰매를 버리고 잠든 안나를 두 손으로 안아들고 조심스럽게 야누의 등 위에 올라탔다.
야누는 안나와 크리스토프마저 올라타자 순식간에 먼 거리를 한 번에 달려 이 외진 동굴로 그들을 데려왔다.
그 뒤로 그들은 오직 모닥불 하나에만 의지한 채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의 머릿속은 온통 혼탁해진 상태였다. 
사람을 잔인하게 짓이긴 크리스토프 일행의 목숨을 구하고 안나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는 야누.
둘 중 어느 모습이 야누의 진짜 얼굴인지, 둘 다 거짓인지 혹은 진실인지 전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크리스토프는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렌델에 몰아닥친 이 위기의 겨울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야누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야누에게 목숨을 빚진 이상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손으로 도저히 야누의 목을 벨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야누를 해치려는 낌새를 보이면 야누가 순간적으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음..."

 

 

그 때였다. 오랫동안 꼼짝않고 누워 있던 안나가 몸을 움직이며 눈을 떴다.
단정하게 땋아내렸던 붉은 양갈래 머리는 흰 눈에 묻혀 어느 새 다 헝클어져 있었다.
안나는 눈을 비비며 윗몸을 일으켰는데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없었다.

 

 

"음...어떻게 된 거예요?"
"잘 잤니, 안나?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안나에게 안부를 전하는 근엄한 목소리가 새어나오자 크리스토프와 스벤도 모두 놀라 주변을 살폈다.
그들 외에 안나에게 말을 걸만한 사람은 주변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그 목소리는 야누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놀라고 충격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안나였다. 안나에게는 더 없이 친숙하고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안나의 둥글게 확장된 맑은 사파이어색 동공에 어느 새 물기가 차오르면서 촉촉해졌다.
야누는 다정한 눈길로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야누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아바마마...?"

 

 

안나를 다정히 부른 그 목소리는 틀림 없는 전왕인 아크다르였다.

 

 

* * *

 

 

카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스를 마주보며 야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야누는 한 왕이 다스릴 때마다 한 마리 밖에 나타나지 않는 아주 귀한 동물입니다. 그런데도 야누는 대를 이어서 아렌델에 계속해서 나타났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선 야누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한 선대 국왕의 영혼이 깃든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야누의 가죽과 피를 손에 넣은 자는 '선왕이 지목한 후계자'가 되어 왕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야누는 서거한 선왕이 환생하여 태어난 동물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신성한 존재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한스의 질문에 카이는 가볍게 대답하고선 다시 크로커스 잎을 우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카이가 목구멍으로 넘긴 차의 뒷맛이 유난히 씁쓸했다.

 

=====================================================

 

너무 늦어서 미안!! 요 며칠동안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작 문학엔 손을 못 댔다.

(게다가 요 며칠 프갤이 도배 때문에 갤망진창이어서 올릴 타이밍을 찾기도 좀...이라면 좀 핑계가 되려나?ㅎ)

분량이 너무 길어졌지만 꼭 필요한 내용들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어ㅠㅠ

전편에서 주어진 떡밥들을 좀 정리하고 갈등 구도를 좀 더 확실히 세우려고 노력했음.

다음 주자들이 뒷수습을 잘해주길 바라며...그럼 난 이만 뿅☆

 

    

    

 

추천 비추천

22

고정닉 0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논란보다 더 욕 많이 먹어서 억울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9/23 - -
1723234 프갤러들에게 한가지 고백한다. [1] 작은행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83 1
1723230 겨울왕국 갤러리 여러분 안녕하세요~ [3] EL-M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79 0
1723227 아침에 예약 해달란 사람들한테 예약 안된다고 말을 하던가 ㅇㅇ(203.226) 14.06.22 47 0
1723224 떡밥뭐임? [1] 안나볼기여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63 0
1723223 tv에 효린나오는데 [1] 엘산나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52 0
1723220 찰스카드 산다 [1] ㅇㅇ(223.33) 14.06.22 55 0
1723219 캬 지루새끼가 월드컵 1골1도움이라닠ㅋㅋ 안나처럼(58.122) 14.06.22 39 0
1723218 합성) 설국열차 안나 (수정) [2] 프갤문(112.166) 14.06.22 81 3
1723217 클래식돌 중고나라에서도 4만에 파는걸 7만잼ㅋㅋ [3] ㅇㅇ(203.226) 14.06.22 110 0
1723213 사람이 세명인데 치킨도 세마리 ㄷㄷ 4B연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36 0
1723211 콘맘떼 윗뚜껑 까는거 어떻게 하냐 [1] ㅇㅇ(110.70) 14.06.22 50 0
1723210 오늘 저녁은 치킨ㅋㅋㅋㅋㅋ [1] 4B연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39 0
1723209 내일 좆제리전 발릴게 뻔한데 거리응원 갈까말까 [3] 안나처럼(58.122) 14.06.22 56 0
1723207 이제 병풍이라 그만 불러라.. [2] kristof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54 0
1723206 스틸북 or 디지북 ? [2] 청주맛새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68 0
1723205 한스헤어머리잘짜르냐? [1] tg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51 0
1723204 우리동네에도 있네 ㅋㅋㅋ [1] 그래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53 0
1723202 장사꾼니뮤ㅠ 팜플렛도 팔아재낌ㅠㅠ [2] ㅇㅇ(203.226) 14.06.22 69 0
1723201 레딧에서 친목하는 짤보고 왔는데 푸갤라미랑 차이를 못느끼겠어 [2] Frozenhoo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59 1
1723200 LP를 가격을 올리든 경매를하든 [1] FrozenMan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68 0
1723199 굿즈모아볼까 [1] Orian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40 0
1723198 솔직히 좀 저거 보기싫네 [4] ㅇㄴ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99 0
1723197 여왕님 커피 한잔 하실래요? [2] ab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45 0
1723195 요맘때로 간만에 갤 흥했는데 저 장사꾼이 개판치네 [1] ㅇㅇ(203.226) 14.06.22 72 0
1723194 이제 이중성이라 그만불러라... [8]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100 0
1723191 지웰 일반관 클라쓰.. [1] ㅇㅇ(223.62) 14.06.22 50 0
1723190 존나 보기싫다 갤에서 장사하지말고 꺼져 [4] ㅇㅇ(183.103) 14.06.22 117 0
1723189 파랑색이 좋겠군 ㅇㅇ(223.33) 14.06.22 57 0
1723188 진돗개 하나로는 부족한거 아닙니까?.jpg [6] 시베리아왕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121 0
1723187 엘탄절 분석글링크 아무도 안가짐? [2] 엘느님(182.215) 14.06.22 64 0
1723186 프갤러들 이중성 보소ㅋㅋㅋㅋㅋ [13] ㅇㅇ(203.226) 14.06.22 238 0
1723184 꾸준글) 신텀블러 신청 받고있습니다 [5] ㅇㄱㄹㅇㅍㅌ(112.156) 14.06.22 151 1
1723183 노잼어홀스의 폐해.txt [5] 짜장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93 0
1723182 내생각에는 굿즈판다는애 일부러 저러는듯 [1] ㅇㅇ(183.103) 14.06.22 102 1
1723181 나 lp 어저개부터 기달럿어 나 죠 [1] ㅇㅇ(223.62) 14.06.22 81 0
1723180 이사람 좆목하네 [1]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103 0
1723179 피규어랑 인형중 뭐가더 덕후같냐? [1] Orian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70 0
1723178 ? 개념글 요맘때BM은 뭐냐 ㅋㅋㅋㅋ [2] 프문학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107 0
1723177 내가 프갤안할떄 뭐하는지 알고 갤질하냐 fㅁㄴㅇㄻㄴ(220.92) 14.06.22 56 0
1723175 개추가 필요한 합성물 [1] ㅇㅅㄴ(175.223) 14.06.22 60 0
1723174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스벤 [2] kristof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52 0
1723173 다른기능은 다빠릿한데 와이파이가 끊기는 핸드폰 어떻게 생각하냐 [1] 한스나이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38 0
1723171 굿즈에 너무 연연하지마셈ㅎㅎ Orian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47 0
1723170 클돌은 재생산일이 3개월에 한번인가 맞음? 디아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46 0
1723168 컼ㅋㅋㅋㅋㅋ 여왕님ㅋㅋㅋㅋ [4]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71 0
1723167 주말에 싸지방에서 눌러앉아 살 불리는 군인들 극혐 ㅇㅇ(110.47) 14.06.22 48 0
1723166 크으 요맘때 더 사야겠다 [1] 짜장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29 0
1723164 더빙 한스 성우는 유얼유 불렀으면 ㄹㅇ 어울렸을듯 [3] 뭐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85 0
1723163 [영상]로페즈 부부 가족이 엘산나를 만나다 [3] 3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70 1
1723162 싸인 lp사고 싶었는데 ㅠ towngu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6.22 38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