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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 내 삶은 언제나 너를 향하고 있었다 [2-2]

Medeo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1.23 23:22:59
조회 544 추천 1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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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JJ1d6


Medeok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의 언니 엘사 여왕님께

 -폐하, 진심을 다해 여왕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언니, 14년 만에 비로소 볼 수 있었던 언니는 언제나처럼 예뻤어. 깜짝 놀랄 정도였지. 대관식 날 나는 아침부터 얼마나 기쁨에 차 있었는지! 일어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노래를 불렀어.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언니가 내 노래를 들었는지도 모르겠어. 일부러 언니 들으라고 크게 불렀거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성으로 온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지. 언니도 사람들을 봤어? 그 많은 인파를 봤지? 정말 흥분됐었어.

 오전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물론 큰 문제는 아니야. 내가 노래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는데, 불청객이 한 명 있던 거야. 달려가다가 그만 말에 부딪혔지. 어찌나 추하게 넘어졌는지, 발은 양동이에 들어가고 넘어져서는 나룻배에 쓰러지고 머리엔 미역이 올라갔지. 언니가 내 꼴을 봤으면 아마 웃었을 거야. 불청객은 생각보다 잘생겼었어.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손을 건네는데, 예의를 아는 남자라고 생각했지.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데 얼마나 설레던지. 그는 자신을 서던 제도에서 온 한스 왕자라고 소개했어. 왕자라니. 깜짝 놀랐지. 나도 아렌델의 공주라고 했는데 한스는 나보다 더 놀랐어. 언니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대관식을 알리는 종이 울려서 우린 거기서 헤어졌어.(그 와중에 나는 또 난간에 부딪혔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어. 

 대관식이 시작되고 나는 긴장했어. 언니가 어떻게 할까. 나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사람들 앞으로 나가서 손을 흔들었다니까.(아까 그 남자도 거기 있었어.) 언니도 봤어? 어찌나 바보 같던지. 카이가 언니 옆으로 나를 들어 옮겨주지 않았더라면 난 계속 거기 서 있었을 거야. 정말 다행이었어. 언니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 언니가 어떤 반응을 할까. 언니가 나를 한 번 쯤은 봐 주겠지? 하고 말이야. 은은한 조명 때문인지 바로 옆에서 보는 언니는 더욱 더 예뻐 보였어. 문제는 우리 분위기였지. 어찌나 어색하던지! 언니도 눈치 챘어? 그 다음엔 언니가 먼저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지. 와, 내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어. 정말 너무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순간이었던 거야.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기도 했고 이게 꿈인가 싶기도 했어.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다니! 처음엔 물론 당황했어. 곧 상황을 이해했지. 그래서 나도 언니한테 인사했지. 그 다음에도 언니의 목소리는 내 귀를 맴돌았어. 언니의 작은 입에서 나온 단어는 초콜릿을 입힌 듯 달콤했지. 또 얼마나 맑은 울림을 가졌는지! 마치 어머니가 연주하시던 오르간 소리 같았어. 내 언니라곤 하지만, 다른 사람 같았어. 아예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느껴졌지. 

 언니의 목소리를 계속 귀담아 두려고 애쓰고 있는데, 뭔가가 방해했어. 그게 뭔지 알지? 초콜릿이었어. 우리 둘 다 너무 좋아했지.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 줄 몰랐는데, 놀랐어. 진짜 자매처럼 우린 똑같이 행동했지. 아직도 우리의 목소리가 섞인 그 순간이 생생해. ‘음~차컬릿.’ 얼마나 웃기던지. 사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웃겼어. 이렇게 간단하게 우리가 같이 웃을 수 있다니. 왜 전에는 이러지 않았을까. 왜 내가 언니에게 다가가지 못했을까. 또 언니는 왜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을까. 그 순간으로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서 같이 웃고 싶을 정도였어. 나는 언니에게 뭔가 물어볼 게 있었는데, 그 때 공작이 왔지. 내가 물어보려 했던 게 뭔지는 까먹었는데, 아마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을 거야.

 공작이 언니에게 춤을 권했고, 언니는 거절하며 나에게 떠넘겼지. 하! 언니에게 한 방 먹은 거지 내가. 그마저도 난 즐거웠어. 언니가 ‘미안’ 하며 손가락을 접는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던지! 나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춤을 췄어. 위즐튼 공작은 어찌나 춤을 이기적으로 추던지. 내 허리를 잡고 뒤로 꺾었을 땐 정말 깜짝 놀랐어. 사실 살짝 재미있었지. 그 상태에서 언니와 눈이 마주친 나는 깜짝 놀랐어. 언니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구나. 조금은 감동이었어. 한 가지 아쉬운 건, 공작이 내 발을 밟았다는 거지. 굽이 어찌나 높던지, 아픈 게 한동안 계속 갔어. 춤을 추고 언니에게 돌아가는 길이 험난했지.(하하)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언니 옆에 다시 섰지. 나는 너무 즐거워서 언니에게 말했어. “지금보다 좋았던 적은 없었어.” 정말이야. 언니와 함께 서 있는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정말이지 멋져! 늘 이랬으면 좋겠다.” 그것도 진심이었어. 늘 오늘처럼 언니와 함께 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도 그래”언니의 대답을 듣고 다시 한 번 심장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지. 우리 생각이 이번에도 통했구나. 언니가 나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표정에 나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어. 그 기분은 오래 가지 못했지. 언니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며 어두운 그림자가 잡혔으니까. “하지만 그건 안 돼.” 아까보다 더욱 강하게 내 심장을 울렸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 “왜 안 돼? 만약…….” 언니는 내 말을 끊고 아예 뒷모습을 보이며 말했지. “그냥 안 돼.” 마치 사형을 언도받는 느낌이었어. 나는 언니에게 항의하고 싶었어. 그럴 수 없었지. 내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언니를 더 이상 자극했다간 아예 사라져버릴 것 같았거든. 잊고 있던 슬픔이 복받쳐 올랐어. 나는 다시 언니와 먼 곳에 있다는 걸 느끼며 군중들 사이로 도망쳤지. 그래, 그건 도망이었어. 거기서 난 또 추하게 넘어질 뻔 했지. 옆에 있던 사람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엉덩이를 내 쪽으로 미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거든. 그걸 한스가 잡아줬어. 동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이었지. 정말로 백마 탄 왕자님이었어.

 우린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췄어. 언니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나는 굳이 언니가 없더라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고. 내가 어리석었던 거지. 우린 정원에서 대화를 나눴어. 그중 기억에 남는 건 한스가 내게 했던 질문이었어. 내 머리를 보며 뭐냐고 물어봤거든. 사실 난 그게 뭔지 몰랐어. 트롤이 키스하는 꿈을 꾸긴 했지만. 우린 연회장 발코니에서 또 대화를 나눴어. 내가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를 거야. 특히나 나이가 비슷한 이성과 대화를 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그래서인지 더욱 끌렸지. 설ㅤㄹㅔㅆ어. 한스 위로는 12명이 있다는데, 그도 나와 비슷했지. 난 동질감을 느꼈어. 생각보다 우리 사이가 가깝다는 걸 느꼈지. 우린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어. 사랑은 열린 문이라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지붕에 같이 앉아 밤하늘을 봤어. 언니랑 보고 싶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보는 밤하늘은 한스와 함께였지. 그게 아쉬웠어.

 나는 한스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어. 정말 착한 사람 같았거든. 사랑을 해 본 적 없지만, 이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지. 한스를 언니에게 데려갔어. 기억해?(언니가 언제 이 편지를 열게 될 진 모르겠지만, 언니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상세하게 기록하려 해.) 사실 우린 뒷산에서 결혼을 약속했어. 언니에게 가서 나는 허락을 구했지. 얼마나 떨리고 기대되던지. 언니가 허락해줄 거라고 확신했어. 왠진 몰라도 언니는 그동안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내 예상이 틀렸어. 우리 대화 내용이 생생해. 살벌했지. “얘기 좀 할 수 있겠니? 단 둘이서?” 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지. “싫어. 무슨 말을 하든 우리 둘에게 말 해 줘.” 나는 언니가 둘 앞이라면 대답이 다를 줄 알았어. “좋아. 방금 만난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어.” 나는 살짝 화가 났지만 참았어. 언니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있었지. “진실한 사랑이면 할 수 있어.” 언니는 날 비웃듯 말했지. “안나, 진짜 사랑에 대해 뭘 알기에 그러니?” 난 정말 화가 났지. 참을 수가 없었어. 언니가 사랑을 논하다니, 내가 얼마나 언니를 사랑했었는지 알아? “언니보단 잘 알아. 언니가 아는 거라곤 사람들을 내치는 것뿐이잖아.”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실수했다는 걸 알았어. 언니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던 거야. 순간 나는 가슴이 쌔 한 느낌을 받았어. 그럼에도 언니에게 지기 싫어서 여전히 당당한 태도로 서 있었지. “내 허락을 바랬겠지만 내 대답은 ‘안 돼’란다.” 절망적이었어. 언니가 화난 게 느껴졌어. “폐하, 제가 좀…….” 한스가 언니를 잡아 세우려 했지만, 언니는 단호했지.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이제 가 주시는 게 좋겠어요.” 언니는 단호하게 걸으며 롤프씨에게 “파티 끝났으니 성문을 닫아라.” 하고 말했지. 어찌나 단호하던지. 언니가 내뱉은 단어들에 위압감이 녹아 있었어. 나는 정말 화가 났었어. 대관식인데. 우리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한 날인데. 이렇게 끝낼 수 있는 거야? 나는 언니 손을 잡으려다 그만 장갑을 뺏었지. 덕분에 언니는 한 번 더 나를 봤어. “엘사, 안 돼. 안 돼. 잠깐만.” 애원하고 싶었어. “장갑 이리 줘!” 그렇게 당황한 표정은 처음이었어. 나는 더더욱 매달리고 싶었지. “엘사! 제발! 제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눈물이 차올라서 언니 얼굴이 흐리게 보였어. 한 가지 확실한 건, 언니도 슬퍼하고 있다는 거였지. “그럼 떠나.” 그 말은 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깊숙이 찌르는 기분이었어. 가슴이 무너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몸소 느꼈어. 슬픔은 곧 다시 화가 되더라. “내가 언니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그건 마치 엄마에게 투정부리는 기분이었지. “그만해, 안나.” 불안한 듯 어디론가 향하는 언니를 보고 눈치 챘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바보 같고 생각이 짧았던 거지. “아냐, 왜? 왜 나를 내치는 건데? 왜 세상을 그렇게 내치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나는 정말 이기적이었지. “그만 하라고 했지!” 그리고 벌어진 일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놀란 순간이었어. 얼음이라니! 언니가 그렇게 감추고 싶어 하던 게 얼음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 언니가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생생해. 마치 어린아이가 귀중한 물건을 깨뜨린 표정이었지. 언니의 얼굴에서 그 감정들을 읽지 않았더라면. 언니의 감정이 내 가슴에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어. 언니를 잡아야 한다. 언니가 이대로 가게 둬선 안 된다.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지.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 한스가 부축해준 덕에 일어나서 언니를 뒤따라갔어. 점점 불안해졌지. 왜냐면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으니까. “괴물, 괴물이다!”라고 소리치는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뒤늦게 언니를 발견했을 땐, 이미 사람들이 언니를 발견하고 난 다음이었어. 왠진 몰라도 가슴이 너무 아팠어. 머리로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슴으로는 이유도 모른 채 너무 아팠어. 언니를 안아주고 싶었어. “엘사! 엘사!” 내가 소리쳤는데 언니는 끝내 도망갔지.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가슴이 너무 뜨거운 거야. “기다려! 제발! 엘사, 멈춰!” 언니가 협곡을 얼리며 산으로 도망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약해보였는지. 나보다 작아 보일 정도였으니까.

 성으로 돌아온 우리는 추위를 느끼며 상황에 대해 생각했어. 나는 머리가 복잡했지. 그렇게 머리가 복잡한 적은 처음이었어. 위즐튼 공작은 언니를 괴물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었지. 내가 했던 말들이 기억나. “제 언니는 괴물이 아니에요.”, “그건 사고였어요. 언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구요. 그럴 의도도 아니었고 그렇게 할 의도도 없었다구요.”, “오늘 밤은 제 잘못이었어요. 제가 언니를 너무 몰아세웠으니…… 제가 가서 언니를 찾아볼게요.”, “언니를 데려 온 다음 모두 다 제대로 돌려놓을 거예요.”, “제 언니에요. 저를 다치게 하진 않을 거예요.” 정말 확신했지. 언니에 대해서 나는 확신하고 있었어. 언니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으니까. 문제는, 언니에게 가는 길이 너무도 험난했지.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니까. 말은 도망가지,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지, 하늘은 어두워져 가지. 언니를 따라가려다 내가 아렌델로 돌아가지 못할 뻔 했으니까. 방향감을 잃고 헤매는 와중에 불빛을 발견한 건 정말 기적이었어. 얼마나 반가웠으면 “불이다!” 하고 입으로 소리를 냈으니까. 곧 다시 문제가 생겼지. 발이 미끄러지면서 물에 치마부분이 물에 빠진 거야. 어찌나 차갑던지! 말도 제대로 안 나왔어. “춰, 춰, 춰, 춰”라니……. 누가 봤으면 분명 날 보고 웃었을 거야. 불빛이 나오던 곳은 ‘떠돌이 오큰의 거래소’였어. 꽤 아늑하게 생긴 집이었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계산대의 남자가 오큰이라는 것을 알았어. 푸근하게 생긴 인상의 아저씨였지. 여름 파격 세일이라는 말이 얼마나 웃기게 들리던지. 겨울용 부츠와 겨울옷을 찾았는데 초라하게 구석에 있는 모습이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어. 나쁜 건 아니야. 아무튼 나는 언니의 행방을 물었어. 알 리가 없겠지만. “이렇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데 밖에 있을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은 당신뿐일걸요.” 그 말이 맞았지. 이 날씨에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렌델에서 나 밖에 없었을 거야. 바로 그 때 한 남자가 들어왔어. “당신이랑 저 친구요.” 그 상황에 나는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지. 저 남자는 뭔데 이 날씨에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차림새도 무슨 이상한 복면 같은걸 쓰고, 나는 말로만 듣던 산적인 줄 알았어. “당근.” 그가 내게 말하는데 나는 딴청 하느라 못 들었어. “허?” 내가 다시 물어봤지. “당신 뒤에.” 그제야 나는 내가 그가 사려는 물건을 막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아, 그러네요. 실례했어요.” 정말 민망한 순간이었지. 뜻밖에도 남자와 오큰의 대화에서 언니의 행방에 대한 갈피를 잡았어. 북쪽 산에서부터 눈보라가 시작되었다고 말한 걸 들었어. 나는 이 남자와의 협상에서 승리했지.(당근과 로프, 그리고 곡괭이를 내 목걸이로 사 줬거든.) 순록이 끄는 썰매는 나름대로 재미있었어.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마주치는지! 늑대무리가 우리를 발견해서 추격도 당했어. 썰매를 희생시키면서 우리는 늑대에게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가 절벽으로 떨어져 죽을 뻔 했던걸 내가 살려줬지. 크리스토프(남자 이름이야.)에게 미안했어. 나 때문에 새로 산 썰매도 잃고……. “썰매 새로 바꿔 줄게요. 안에 있던 것도 전부 다. 그리고…… 더 이상 저를 돕지 않고 싶다고 해도 이해할게요.” 그 말을 하고 나는 혼자 언니를 찾아 나서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이 길인가? 아니면 저기? 저기 있는 것 같아.” 방황하고 있는데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 “가만히 있어요! 곧 갈게요.” 착한 사람이었어. “정말요? 그러니까…… 좋아요! 따라오게 해 드릴게요.” 그리고 우린 걸어서 언니에게로 다시 향했지.

 중간에 우리는 뒤돌아서 아렌델을 봤는데, 완전히 얼어붙은 모습이 걱정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웠어. 그러나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도 괜찮을 거 에요. 엘사가 녹일 테니까요.” 그에게 말한 거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 언니를 믿었으니까. 북쪽 산은 생각보다 가파른 곳이었어. 와, 언니는 어떻게 이 경사를 극복했는지. 존경스러웠지.

 중간에 우리는 천사들이 만든 정원 같은 곳을 지나쳤어. 겨울의 요정들이 사는 세상 같았지. 어쩜 그리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낙원에서 우리는 올라프를 만났어. 올라프! 기억 해? 물론 언니가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알고 있겠지만, 올라프였어. 우리가 어릴 때 같이 만들었던 그 올라프가 살아 움직였어.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난 올라프야, 그리고 따뜻한 포옹을 좋아해!” 언니가 어릴 적 올라프 흉내를 내던 것과 똑같았어. 감동적이었지. 올라프도 언니가 만든 거겠지? 아직 우리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았구나. 언니도 어린 시절이 그리웠구나 하고.

 일행에 올라프까지 생기니 기분이 좋아졌지. 앞으로 언니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어. 올라프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아 써 볼게. “그렇지. 엘사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친절하고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인걸.” 나는 백번 옳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곧 또 다른 장애물에 가로막혔지. 언니에게로 가는 길을 온 세상이 막고 있는 기분이었어. 그래도 나는 언니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계속 움직였어. 크리스토프와 절벽 아래에서 나눈 대화는 기억에 남아서 그대로 적어볼게.

 “엘사가 당신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요?”

 크리스토프가 먼저 물었어.

 “집중해야 하니까 당신 말 안 들을래요.”

 “있잖아요, 산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있고 싶어 하거든요.”

 “누구도 혼자 있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 말이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어. 언니 때문에 언니를 변호하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내 처지가 생각났는지. 아마도 둘 다 일거라고 생각해. 

 올라프가 찾은 우회로가 있어서 우린 절벽을 오르지 않고 언니에게로 갈 수 있었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 온 성은 정말 아름답더라. 사실 언니가 만든 것 중에서 아름답지 않은 건 없었지. 크리스토프는 언니의 성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했어. 크리스토프는 언니의 성을 보고 나무랄 데 없다고 했어. 나도 성은 정말 완벽했다고 생각해.

 내가 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시험대 앞에 놓인 기분이었어. 문, 문이었지. 언제나 문. 언니가 13년 동안 열어주지 않았던 그 문. 이번이라고 다를까?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민하는 그 순간이 영원처럼 길었어. 그러나 포기해선 안 됐지. 내가 머무르면, 주변 상황도 단지 머무를 뿐이니까. 그저 상황을 따라가며 사는 것 보다, 내가 상황을 이끌면서 사는 편을 택했어. 결과가 어떨지라도. 그래서 내가 문을 두드린 거야. 사실 열리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언니가 나올 때 까지 계속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열려있는 문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를 거야.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어. 모든 나쁜 감정들이 날아가는 기분이 얼마나 상쾌했던지. 나는 언니와 단 둘이서 만나고 싶어서 둘을 밖에 세워놨어. 그리고 성 안에서 언니를 발견했지. 언니가 나를 보고 반가워 하는 표정을 짓는 걸 봤어. 그럴 거면서 왜 도망간 거야? 안타까웠지. “엘사, 언니 뭔가…… 달라 보이네. 좋은 쪽으로 말야. 그리고 여기…… 정말로 멋져.”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생각해 뒀는데, 막상 언니를 만나니까 전부 까먹었어. 언니 앞에서 난 또 바보가 된 기분이었지. “고마워. 내가 뭘 할 수 있었는지 몰랐거든.” 언니는 성을 자랑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어. “그 일에 대해선 정말 미안해. 내가 알았더라면…….” 언니에게 사과하고 싶었어. 사과하고, 모든 일을 제자리에 되돌릴 필요가 있었지. 우리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이 눈보라 까지도. “아니, 아니. 괜찮아. 넌…… 사과할 필요 없단다. 하지만 이제 가 줘야겠구나. 제발.” 언니의 표정은 무슨 감정이었을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머리로는 언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어. 언니가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몰랐으니까. 물론 지금도 언니가 왜 13년 동안 문을 닫았는지 모르겠어.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법 때문이란 건 알고 있었어. 나는 어릴 때부터 상황파악이 빨랐으니까. 마법은 상관없었어. 나는 언니만 있으면 됐어. 언니가 겨울을 녹이기만 하면 끝나는 간단한 문제였거든. “하지만 방금 왔는걸!” 언니와 함께 돌아가야만 했어. “넌 아렌델에 있어야지.” 언니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건 알겠는데, 왜 걱정하는지 알 수 없었어. “언니도 그래.” 진심으로 언니에게 연민을 느꼈지. “아니, 안나. 난 여기 있어야 해. ……혼자.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고,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라니, 그것이 언니가 13년 동안 바라던 게 맞아? 나는 의문이 들었어. 언니가 원한 게 과연 이런 상황이었을까? 아니야. 언니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배려한 나머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쪽을 선택한 것이겠지. 알 수 있었어. 진정한 언니? 진정한 언니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사실 그 일은…….” 말을 하는 중에 올라프가 난입했지. 난 조금은 두려웠어. 언니가 올라프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 “안녕! 난 올라프고 따뜻한 포옹을 정말 좋아해!” 언니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던 것 같아. “올라프?” 그 말을 듣고 올라프는 살짝 실망한 표정이었어. “네가 날 만들었잖아. 기억나?” 언니의 표정에 웃음이 스쳤지. “그리고 살아 있어?” 나는 언니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꼈어. 이때다! 싶어서 언니에게 말을 걸었지. “꼭 우리 어렸을 때 만들었던 것 같이 생겼어.” 언니의 미소가 아름다운 순간이었어. “그래.” 언니의 미소에서 나는 희망을 봤어. “엘사, 우린 참 친했었잖아.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어.” 나는 몇 초라도 빨리 언니와 함께 아렌델로 돌아가길 원했지. 그런데 갑자기 언니의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아니, 그럴 순 없어. 잘 가라, 안나.” 라고 했지. 얼마나 놀랐는지.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어. “엘사, 잠깐만!” 언니의 뒷모습은 여전히 작았어. “안 돼. 널 지키려는 것뿐이야!” 날 지키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날 지키려 할 필요 없어. 난 두렵지 않아! 또 날 외면하지 말아줘!” 절박했어. 다시 찾은 언니를 이런 방식으로 잃기 싫었으니까. “나랑 거릴 두려 하지 마.” 언니를 따라 올라가서 함께 부른 노래는 인상 깊었어. 어떻게 노래가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아렌델이 눈에 덮였다는 것을 언니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언니가 녹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니……. 그래도 난 언니가 할 수 있다는 걸 이 때부터 알았어! “난 못해!” 언니의 비명과 함께 우리 주위에 내리던 눈이 모여서 칼날처럼 내 몸에 박혔지. 얼마나 아프던지.(물론 지금은 괜찮아!) 언니가 만든 마시멜로한테 던져졌을 때 얼마나 처량하던지. 마시멜로한테 눈덩이를 던졌는데, 마시멜로가 화가 나서 우리를 쫓아오는 거야. 최선을 다해서 도망쳤는데, 낭떠러지가 나오더라. 우린 200피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편을 택했지. 다행히도, 아래는 솜털처럼 깔려있어서 모두 무사했어. 정말 무서운 순간이었지. 크리스토프가 걱정스럽게 내게 물었어. “당신 머리카락 걱정이나 하죠?” “네? 방금 절벽에서 떨어졌잖아요. 당신 머리나 봐요.” 거기까지만 해도 나는 크리스토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어. “아뇨,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고요.” 사실이었어. 트롤이 키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언니한테 마법을 맞고 이렇게 되다니……. 걱정스러웠지. 다행히 크리스토프가 이 일과 관련된 인물들을 알고 있었어. 편지엔 쓰지 않았지만 그의 친구들, 사랑 전문가들이지.(당연하게도, 그들은 트롤이었어.) 거기서 패비 할아버지를 만났어. 어릴 적 꿈에서 봤던 트롤이랑 똑같았어! 어찌나 놀랍던지.(도착하자마자 난 트롤들이 부른 노래 때문에 그 자리에서 결혼할 뻔 했어. 그래서 더 놀랐지.) “이상한 마법이 깃들어 있군.” 패비 할아버지가 날 보더니 하신 말씀이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 “안나, 네 생명이 위험하다. 언니가 심장에 꽂아 넣은 얼음이 박혀 있어. 제거하지 않으면, 이 얼음이 널 영원히 얼려 버릴 거란다.” 내가 살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언니에게 내가 죽을 수 있다니! “진실의 사랑의 행동만이 얼어붙은 심장을 녹일 수 있단다.” 진실한 사랑의 행동. 그것이 나를 구해줄 유일한 방법이었어. 나는 당장 한스가 떠올랐지. 크리스토프가 스벤에 날 태워서 아렌델 입구까지 데려다 줬어. 성에 들어가면서 살짝 뒤를 돌아 봤는데, 서서히 문이 닫히면서 크리스토프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데 가슴 한 편이 아쉬운 느낌이었어. 이대로 헤어진다면 다시 못 만날 것 같았지.

 한스를 만난 나는 바로 말했어. “한스, 제게 키스해요. 당장이요!” 주변에 귀족들이 있었지만, 그건 상관없었어.(물론 상관없지는 않았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진실한 사랑의 행동만이 절 구할 수 있대요.” 내가 한스에게 설명했어. “진실한 사랑의 키스?” 그 말을 하며 한스가 내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키스를 하려 했어. “오, 안나. 저 바깥 어딘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당황스러웠지. 정말 당황했어. 한스는 내게서 빛과 열을 앗아갔어. 그 모습이 얼마나 악마 같던지. “진짜 나와 결혼이라도 할 생각으로 사랑을 갈구하더군. 우리가 결혼하면, 일단 엘사를 위해 작은 ‘사고’를 벌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 하지만 혼자 자멸해버렸지. 너도 멍청하게 그 뒤를 쫓았고. 이제 남은 거라곤 엘사를 죽이고 여름을 되돌리는 것뿐이야.” 치밀하고 악마 같은 사람이었어. 언니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후회가 들더라. 고작 이런 인간 때문에 우리가 싸워야 했을까? 언니한테 미안해졌어. “넌 엘사의 상대가 안 돼.” 언니가 한스를 아렌델에서 내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니, 네가 엘사의 상대가 안 되지.” 한스의 그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를 거야.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하지 않던 생각. 마법 때문에 몸이 아픈 와중에 나는 가슴이 더 아팠어. “반면에 나는…… 망할 위기에 놓인 아렌델을 구할 영웅이야.” “이러고 무사할 것 같아?” 한스가 벌 받기를 간절히 바랐지. “이미 무사한걸.” 한스의 그 말이 어찌나 소름끼치던지. 천천히 식어가는 체온과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 추위에 무감각해지는 피부와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내가 있는 방문을 열었어. 올라프. 언니가 만든 올라프였지. 그 순간 올라프를 보고 언니를 본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니까. 올라프 덕에 나는 뭔가를 깨달았어. 자신의 몸이 녹아가면서도 내게 말해준 하나의 진리.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네가 원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거야.” 올라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데 놀랐어. “크리스토프가 널 한스에게 데려다 주고 영영 떠난 것처럼.”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이번엔 확신했지. 크리스토프를 오큰네 거래소에서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어. 그건 운명이었어! 크리스토프와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하기 위해 나는 밖으로 나갔지. 용맹하고 강한 순록의 왕을 만나기 위해! 아렌델은 복도마저 얼어붙어 있었어. 곳곳에 날카로운 얼음이 자라나고 있었지. 우린 옆에 있는 창문을 열고 미끄럼틀 타듯 내려갔어. 강한 바람 때문에 올라프는 나와 함께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날아갔지. 거기서부턴 나 혼자였어. 크리스토프가 나에게 제때 도착하길 바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약해지는 몸을 이끌고 움직였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걸었어.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기 위해서.

 얼마나 걸었을까. 한 걸음 움직이는 게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지. 갑자기 모든 눈보라가 사라지고 시야가 환해졌을 때, 나는 크리스토프를 발견했어. 반갑고 감동적이었지. 정말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그때 어디선가 칼 소리가 들렸어. 가슴은 이미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어. 한스가 언니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본능적으로 뛰어갔어. 이미 내 몸이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어. 언니에게 달려가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어. 나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정지해 있는 것 같았지. 언니에게 도착했을 때, 나는 후회하지 않았어. 그 때의 감정은, 안도감이었지. 언니를 지켰다는 안도감. 칼을 막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 발끝에서부터 내 몸이 얼어가는 게 느껴졌어. 그리고 곧 몸 전체가 얼어붙었지. 아무것도 없는 적막. 눈앞에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 보였어. 함께 놀던 어린 시절. 아직 서로 상처주지 않았던 그 때. 손을 뻗어 그 때를 붙잡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 닿지 못했어. 그리고 귓가에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어. 주위의 모든 공기마저도 언니를 따라 슬퍼하는 것 같았어. 언니가 나를 올려다봤을 때,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지. 내가 다시 돌아온 거야! “날 위해 널 희생한 거니?” 언니의 표정에서 슬픔과 감동 모두를 봤어. 나도 감동했어. “언니를 사랑하니까.” “사랑이 녹일 것이다…….” 언니는 모든 얼음을 녹였지! 내 생에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가 될 거야. 아름다운 광경이었어. 정말이지 그 날은 내 생에 최고의 날이었어.

 그리고, 빚을 갚았지. 한스의 얼굴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리는 것으로. 배 아래로 떨어지는 게 얼마나 통쾌하던지. 아참, 그리고 크리스토프에게 새 썰매를 사 줬어. 좋아하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게다가 우린 키스까지 했어! 아마도 내 미래의 신랑이 될 것 같아. 언니가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노는 건 정말이지 완벽했어. 다신 문을 닫지 말자고 우린 약속했지. 영원히 지켜야 할 약속이야. 어느 쪽도 다신 문을 닫지 않을 것.


 처음에 이 편지를 쓴 이유는, 글로 남겨서 계속 기록하고 싶었어. 오늘의 내 감정이 날아가기 전에. 나중에 그땐 그랬지. 하면서 같이 펼쳐볼 수 있게. 혹시라도 이 편지를 발견하면, 편지를 들고 내게로 와 줘. 그때가 되면 같이 읽자. 

 그리고 앞으로는 편지를 안 쓰게 될 것 같아. 언니를 되찾았으니까. 아마도 이게 언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일 거야. 편지라고는 했지만, 사실 일기에 가깝게 됐네. 아무튼, 밤이 깊었으니 나는 이만 여기서 마칠게.

 언니와 다시 만나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 내 글 솜씨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야. 잘 자, 언니. 영원히 함께하자.


언니의 영원한 동생, 언니가 가장 사랑하는 안나가


 p.s 오후에 언니가 쳐 준 피아노는 굉장히 그리운 음색이었어. 아마도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종종 들려주시던 음악이었던 것 같아. 이 편지를 발견하면, 그때 한 번 더 쳐줄 수 있지?




 페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둘의 갈등이 그렇게 계속 지속되지는 않았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절대 풀 수 없는 갈등은 없다고 확신했다. 어느 새 그는 엘사의 방 문 앞까지 도착했다. 그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마법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마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엘사의 방에서 그것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방문을 열면서,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하고 있는가?


 엘사의 방은 안나의 방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은, 책꽂이가 있었고 책이 꽤 풍부하게 꽂혀 있었다. 엘사의 방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여전히 밝았다. 책꽂이에 흥미를 느낀 그가 가까이 다가가서 가장 윗부분에 꽂힌 책들을 살폈다. ‘아렌델의 역사’, ‘아렌델의 전설’, ‘군주의 길 -작자 H. Samuel’, ‘고독한 나그네의 노래 -작자 Virtue’ 그 중에서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자매를 사랑하는 방법 -작자 A. O. ELAN’ 이었다. 동생을 사랑하는 방법을 책으로 배울 정도라니, 그의 생각보다 그녀는 동생을 아끼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전과 동일하게 그녀의 책상에 앉았다. 그가 서랍을 열자 두툼한 책-마치 전해주려 한 듯 깔끔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다.-이 나왔다. ‘역시, 언니 쪽도 뭔가를 글로 남겼구나.’ 예상대로의 상황에 안도하면서도 정말 엘사가 안나에게도 글을 썼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는 표지를 넘겨 첫 번째 장을 펼쳤다.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똑같은 내용의 다른 종이뭉치가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쓴 흔적이 보였다. 모두 똑같은 글이 아니라, 몇 문장씩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아마도 처음 쓰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수정한 것이리라. 결국 완성된 편지를 그렇게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동생 쪽이 일방적으로 고통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전하고 싶은 말은 언니 쪽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책 자체에서 나는 좋은 향기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




귀여운 나의 작은 천사 안나에게


 너에게 몇 번의 편지를 썼다가는 모두 날려버려서, 몇 번째 편지인지 모르겠구나.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일까?

 벌써부터 네 작은 모습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항상 웃고 있던 너의 입과 보는 사람마저 미소 짓게 만드는 너의 눈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여동생을 둔 언니의 마음을 넌 상상할 수 있겠니? 그리고 그 여동생에게 다가가서는 안 되는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니? 나는 너에게 언제나 웃게 만들 수 있는 언니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변해야만 했지. 다른 어른들에게 나는 어려서부터 조숙하고, 생각이 깊고 배려가 많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쩌면 너와 나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와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장난스러운 언니가 되고 싶었다.

 네가 가장 먼저 한 옹알이를 기억 하니? 그 당시의 나는 어렸지만, 너는 나보다 더 어렸지.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네가 세상의 빛을 보고 가장 처음 발음한 단어는, ‘언니’였다고. ‘엄마’나 ‘아빠’보다 ‘언니’를 먼저 말 한 동생의 언니라는 건 어린 나조차도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너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내가 프라우드 선생님과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막 두 살이 된 네가 아장아장 걸어왔다. 너는 내 치맛자락을 작은 손가락으로 꽉 쥐고 천사처럼 입을 열었지. “언니, 눈사람.” 그때의 내 마음을 너는 상상할 수 있을까. 프라우드 선생님과 나 모두 놀랐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구나. 열린 창문으로 따뜻함과 시원함이 섞인 기분 좋은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왔다. 프라우드 선생님은 그 특유의 이해심으로 자리를 피해주셨지. 나는 수업 도중 두 살짜리 너를 최대한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기억할 수 있겠니? 너는 내 인생에 있어서 사막 한가운데 존재하는 오아시스를 뛰어넘는 인물이라는 것을.

 어느 날 밤, 네 살이 된 너는 내 침대위로 올라와 나를 깨웠다. “언니, 나야.”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잊히지 않는다. 까마득한 먼 옛날 들은 것처럼 어렴풋이 남아있지만, 단어의 울림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구나. “언니야.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나를 흔들어 깨우는 네가 귀찮게도 느껴졌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했으니까. “안나, 돌아가서 자.” “잘 수가 없어. 하늘이 잠을 깨서, 나도 깨어난 거야. 그러니까 놀아야 되는 거야.” “그냥 혼자 가서 놀아.” 내 이불 위에서 너를 밀어냈을 때, 너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너는 포기하지 않고 내게 올라와서 속삭였지. “우리 눈사람 안 만들래?” 그 부탁을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었겠니. 아기 특유의 향기가 나는 따뜻한 네 손이 내 눈꺼풀을 만질 때의 촉감이 아직도 남아있는 기분이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내 손을 잡아끌고 우리가 평소에 놀던 무도회장으로 향하는 네 뒷모습은 요정과 같았다. 아니, 요정에 비할 바가 안 됐지. 무도회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너는 나와 논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너는 말했지. “마법 좀 해봐, 마법 좀 해봐!” 평소처럼 난 마법으로 폭죽을 만들었다. 몇 번이고 보여줬지만, 너는 그 때마다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마법을 봐줬지. “올려?” 내 마법의 푸른 조명이 너를 비출 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얼음 폭죽이 터지자 넌 “우리 언니 마법이다!” 하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거 잘 봐.” 나는 너를 좀 더 즐겁게 할 생각이었다. 무도회장 바닥을 얼음으로 만들었지. 내가 만든 눈으로 우린 같이 눈사람도 만들었지. (그래, 네가 기억하는 바로 그 눈사람, ‘올라프’란다.) “안녕, 난 올라프야. 난 끌어안기를 좋아해.” “널 사랑해 올라프!”하고 눈사람으로 뛰어와 폭 안기는 네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운명은 우리에게 소리 없이 찾아왔다. “미끄럼놀이!” 미끄럼놀이 직후 너는 내가 만든 눈 무더기에 뛰어들었지. 너는 그것을 즐기며 앞으로 위험하게 뛰어나갔다. 한 번, 두 번……. “조심해.” 처음 네가 뛰었을 때 말했다. 너는 계속 뛰었지. 네가 다섯 번 쯤 뛰었을 때, 생전 처음 느끼는 오싹한 기분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훑었다. 네 도약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나는 네 도약을 따라가지 못했어. “천천히 가!”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뛰었지. 나는 바닥에 미끄러져 너를 구할 시간이 없었고. “안나” 본능적으로 너에게 뻗은 내 손길은, 끔찍했다. 마법이 내 손에서 떠나는 그 순간,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넌 곧바로 짧은 비명과 함께 아래로 굴러 떨어졌지. 그 때 내 기분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다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너의 흰 머리는 이 사건에서부터 유래되었지. “엄마! 아빠!” 부모님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네가 나아질지 몰라서 그저 양팔로 감싸 안을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자, 나는 거기에 없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프라우드 선생님과 수업하던 순간에 가 있었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로 다가와 “언니, 눈사람.”이라고 말하던 순간에 있었지.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바로 이 끔찍한 상황, 피할 수 없는 비극의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너의 작은 몸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생명의 기운이 현실감각을 일깨워줬다. “안나, 괜찮을 거야. 내가 있잖아.” 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무도회장은 어느 새 불안정한 마법으로 얼려졌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뛰어들어 오셨다.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지. “엘사! 무슨 짓을 한 거니. 함부로 마법 쓰지 말랬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우연한 사고였어요. 미안해 안나.” 나는 그것 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력했지. 어머니께서 너를 안아 올리셨다. “얼음장 같아요.” 어머니께서 놀라셨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이 있소.”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새벽에 말을 타고 어딘가로 향하셨지. 그 순간 침묵하고 있는 공기의 건조함이 나를 비난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옛날 책에나 나올법한 돌로 된 신전에서 아버지는 외치셨다. “제발 좀 도와줘! 내 딸이 다쳤어.” 돌들이 우리에게 굴러왔지. 나는 그것이 어릴 때 들은 적 있는 트롤이라는 것을 알았다. 트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트롤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폐하, 타고났나요? 저주 받았나요?” “타고났어. 그리고 점점 강해져.” 아버지는 익숙하게 대답하셨지. “심장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심장이라면 정말 고치기가 힘들답니다. 하지만 머리야 어떻게든 고칠 수 있죠.” 트롤이 말했다. “꼭 낫게 해 주게.” “마법을 본 모든 기억을 다 지워버리겠습니다. 추억까지 도요. 안심할 수 있게요. 허나 걱정 마세요. 즐거운 기억은 남길 테니.” 트롤은 그렇게 말하며 너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괜찮을 겁니다.” 푸른빛이 네 머리에서 빛나는 순간까지. 나는 네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봤다. “그럼, 내 마법도 기억 못하나요?” 내가 물었다. “이게 최선이야.” 트롤 대신 아버지께서 대답해 주셨다. “잘 들으세요, 공주님. 그 마법의 능력은 커질 겁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아주 위험하기도 합니다.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돼요. 두려움은 공주님의 적이 될 겁니다.” 트롤이 마법을 통해 내게 경고했다. 그 때 나는 고작 일곱 살이었지. “안 돼, 우리가 보호할 거야.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진, 문을 잠글 거야. 시종들도 줄이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제한하고. 아무도 엘사 공주의 마법을 모르게 할 거야. ……안나 까지도.”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내게 형량의 선고처럼 들렸다. 너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하여 역설적으로 나는 너와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 내게 주어진 이 운명을, 너는 이해할 수 있겠니?

 우리의 방이 따로 나뉘고, 네가 내 방에 왔을 때, 너는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큰 눈망울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이 나를 바라보는 너를 오래 볼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안타까워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너는 내게로 와 문을 수없이 두드렸다. 처음에 나는 네가 문을 두드리는 횟수를 세기 시작했다. 곧 포기하고 말 거라는 희망 같지 않은 희망. 또 나는 역설적으로 네가 포기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너의 소리를 세지 않기 시작했다. 인내하기 어려울 만큼 너의 거대하고도 순수한 사랑 앞에서 숫자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네게로 가기를 소망한다.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어 하는 언니가 너의 11번 째 생일을 축하하며.


 p.s. 너의 생일에조차 가지 못하는 나는 언제까지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너는 내 사정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마냥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페리는 이 지독한 운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했기에 역설적으로 멀어져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랑.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그는 엘사라는 인물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위협적으로 나 있던 서리는 어느새 녹아있었다. 창밖은 여전히 하얀 빛을 찬란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그는 보는 것만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좋았다.


 편지는 꽤 많았다. 일기 수준으로 일상적인 내용도 여러 가지 엮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중에서 그는 엘사의 마음이 온전히 안나에게로 향하는 편지만을 몇 개 추려냈다. 그는 새로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나의 여동생에게


 아침부터 시종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으로 나는 오늘이 네 생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벌써 너는 12살이 되었구나. 내가 너를 외면함에도 불구하고 밝게 자라나는 모습만으로 나는 크나큰 위안이 된다.

 매년 네 생일 며칠 전부터 나는 대견함으로 가득 차 있다. 네가 잘 자라고 있구나. 무사히 자라고 있구나. 네가 얼마만큼 컸는지, 생각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기에 그저 몰래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네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네게 들킬까봐 조마조마 하면서도 너의 생일축하를 몰래 바라보는 것은 가슴 뛰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네 노크소리는 그칠 줄 모르는구나. 처음엔 네 노크소리에 맞춰 내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왔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슬프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안 되는데. 나는 네 노크소리마저도 사랑한다. 내 일부가 되어버린 노크소리도 네가 만들어낸 소리 중 하나이기에 웃음소리만큼이나 사랑한다. 노크소리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네 노크소리에 정말 감사하다.

 나는 가끔 네 상상력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너의 상상력 속에 있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두렵다. 너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어쩌면 부모님보다도- 존재가 자신을 미워한다면 그 사실을 견딜 수 있겠니? 나는 네 상상력이 두렵다. 내가 너를 외면해야만 하는 사랑을 알아줬으면 한다. 열두 살. 충분히 생각하고도 남을 나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가진 천성을 믿기에 큰 걱정-먼 훗날, 네가 나를 싫어하고 있는 상황-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너는 나를 이해해 주고 있겠지.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아이다. 나와 다른 점은, 내가 너를 간절히 축복했다는 것이지. 네 앞날에 밝은 일만 일어나길 매일같이 눈을 뜨면 기도한다. 적어도 너는 매년 생일을 사람들 사이에서 하지 않니. 부모님을 제외한 타인과 접촉할 시간조차 내게는 허락되지 않아 가끔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네게 걱정을 끼칠까봐 두려워 그것은 매번 생각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 나도 내 생일을 타인들과 훈훈한 온기 속에서 보내고 싶구나. 나는 네가 사랑스러운 만큼 부럽기도 하다.


 너의 그 착한 마음씨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내 방에 오실 때 마다 이야기하신단다. 너의 그 착한 마음씨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진심으로 기도할게.


 여전히 작은 여동생을 사랑하는 언니가




 편지는 짧았다. 편지를 제외하고도 많은 이야기들을 책에 기록했기 때문에 편지에 적을 이야기가 적어진 것이었다.




언제나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생에게


 13번 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모든 네 생일에 참석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너무도 슬프다. 그래도 나는 마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 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순간만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너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무엇인가에 이끌려 네 방으로 향했지. 내 행동으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다. 네 방문 앞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네 방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불에 덴 것처럼 손가락이 뜨겁게 느껴졌다. 깜짝 놀랄 만큼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고리를 과감하게 돌렸다. 방문을 열었을 땐, 네가 아닌 그리운 향기만이 나를 반겼다. 그리운 향기. 너는 그것이 뭔지 아니? 어릴 적 맡았던 냄새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맡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 순간의 추억을 나도 모르게 음미하게 되는 것이지. 10년 만에 다시 느끼는 너의 향기는 정말이지 발을 떼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혹시나 네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들까 걱정했지만, 다행인지 너는 자고 있었다. 너의 자는 모습이 어찌나 슬펐는지 나는 네가 깨지 않게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너의 눈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왜 슬펐니? 말해줄 수 있겠니? 나는 너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네가 왜 슬퍼하는지 알 것 같으니까. 아니, 알고 있으니까. 내가 눈치 채지 못했다면 그건 내가 너를 전과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너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아직도 너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소녀처럼 사랑스럽다. 

 나는 창가 옆에 켜 둔 촛불이 다 탈 때까지 네 옆을 지켰다. 그 순간동안, 나는 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 너의 숨소리, 너의 심장이 뛰는 소리, 네가 자면서 뒤척이는 소리, 너의 모든 행동들……. 그 순간 세상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박제되고 싶은 생각마저도 들었다. 나는 네가 깨어나지 않길 바랐지만, 정말로 깨어나지 않아 조금은 실망했었다. 네 방에서 나올 때, 나는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봤다. 자는 모습마저도 너는 행복하더구나.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너는 모르는 사람과도 금방 마음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오랜 시간 너를 관찰한 결과다. 네 능력이 부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걱정될 때가 종종 있다. 타인과의 거리두기는 타인과의 벽을 허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는 타인을 대할 기회가 없어 타인과의 거리두기에는 재능이 별로 없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네가 거리두기를 배웠으면 한다. 네가 그들로 하여금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세 번째 생일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혹시나 네가 나에게 다가올까 두렵다. 나는 마법이 저주스럽다. 지금의 나는 그저 평범한 자매를 동경하며 살 뿐이다. 너에게로 가고 싶다.


 열세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너의 언니 엘사가




 페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편지는 오로지 안나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의지를 품고 안나를 의식하며 쓴 편지였다. 단순히 편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녀의 글에서 절제된 슬픔과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딱딱하게 쓰인 문체는 그녀의 감정을 일부러 숨기기 위한 방어막과 같았다. 과연 그녀는 어떤 감정들을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을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훈훈한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는 다시 한 번 엘사의 방을 살폈다. 절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방이었다. 그녀의 감정만큼이나 그녀가 세상에 잠시 머물렀던 공간은 절제되어 있었다. 그는 아델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정리가 필요했다. 책을 옆구리에 낀 그가 아델을 찾아 나섰다.


 아델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밝은 느낌의 곡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보고 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녀는 연주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순간 놀랐다. 처음 봤을 때와 그녀의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보다 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죽은 시점 이후에 쓴 안나의 편지는 증오가 담겨있다는 것, 대관식 이후로 안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것, 엘사는 생각보다 안나를 굉장히 사랑했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다가가지 못하는 운명이었다는 것. 아델은 차분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가 종종 말실수를 할 때에도 그녀는 인내심을 갖고 들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없는 자기혐오와 다른 사람을 향한 무한한 사랑.”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엘사. 그녀는 자신이 상처 입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주변 사람을 사랑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동생 안나를 사랑했죠. 그녀는 안나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있었어요. 안나의 유년과 청소년기를 망쳤다는 책임감. 그 책임감 때문에 그녀는 안나에게 더더욱 연민과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엘사는 단 한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녀는 마법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녀의 모든 호기심은 그녀의 내부로 향했어요. 덕분에 그녀는 자의식이 뚜렷한 사람이 됐죠. 자의식이 뚜렷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그녀 역시 자기 자신과 한 번 정한 약속은 끝까지 지키려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노력했죠. 그녀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안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어도 볼 수 없고, 만질 수 있어도 만질 수 없는 고통은 우리 같은 사람은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겠죠. 그녀에 대해 조금은 설명이 됐을까요?”


 그녀의 목소리엔 안타까움과 슬픔이 묻어있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엘사는 어떤 감정의 소유자였습니까? 분출하는 화산 같은 사람이었나요? 격정적인 파도와 같은 사람이었나요?”


 그녀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침묵의 미덕.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인물이었어요. 그녀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침묵, 두려움에 대한 침묵, 사랑에 대한 침묵, 감정에 대한 침묵. 절제를 아는 사람이었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는 굉장히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어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완벽에 대한 갈망에 그녀의 감성은 걸림돌이었죠. 그건 부조화였지만, 그녀는 침묵으로 두 가지 모두를 감쌌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굉장한 사람이었죠. 돌발 상황을 제외하고. 타인과 오랜 시간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남들보다 풍부한 감성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외로움이 만들어낸 감성의 소유자는 바로 그녀였어요.”


 페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동질감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궁금한 게 있으시거든 아래층 전시실로 와 주세요. 저는 거기에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말을 마치며 피아노가 놓인 방에서 나갔다. 페리가 그녀의 뒷모습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피아노 덮개를 덮고 그 위에 책을 놓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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