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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대회 탈락작 - 망각 그리고 추억 (하)

ㅇㅇ(118.34) 2020.03.16 19:58:23
조회 445 추천 38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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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안나는 발코니에 서서 기지개를 크게 폈다.

두 눈을 감고,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쭉 들이쉬자 그녀의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나가 높게 들어 올렸던 두 팔을 내리며 뱉어낸 숨결이 촉촉한 공기를 조금 밀어냈다.

안나는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아직 젖어있는 발코니의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피오르드의 바람과 함께 작게 들려오는 아렌델의 활기가 안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리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살펴보던 안나는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늘 저 바다를 통해서 엘사가 나타날 것이었다.

엘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안나는 그녀가 수면 위를 달리는 모습을 좋아했다.

안나는 바다를 볼 때마다 처음 엘사가 바다 위를 달려와 자신과 마주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엘사가 여왕이던 시절에도 안나는 그녀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얀 날개를 흩날리며 드넓은 바다 위를 물의 정령과 함께 가로지르는 엘사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은 엘사가 가진 아름다움은 단순한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녀의 아우라에서 전해지는 아름다움이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찾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숭고한 아우라.

안 그래도 아름다운 외모에 그 아우라까지 더해진 엘사는 정령이나 천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안나는 언니에게 친근함을 느꼈다.

이전에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설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나는 오늘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각오를 다졌다.

똑똑.


"폐하, 카이입니다."

"들어오세요."


바다를 바라보던 안나는 집사를 맞이하기 위해 다시 집무실로 들어왔다.

여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카이는 소리하나 나지 않도록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카이."

"좋은 아침입니다, 폐하."


안나가 밝게 웃으며 인사하자 카이는 격식을 갖추어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모습에 안나는 더욱 크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카이는 왕궁의 예절과 원칙을 지키며 행동했다.

안나는 처음엔 그런 모습에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야말로 카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과 보고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고 카이는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가장 먼저 조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후 여덟 시부터 대신들의 업무 보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 지방관들의 정기 보고서가 올라오죠?"

"그렇습니다."

"직접 올라온 인원이 있나요?"

"없습니다. 전부 서면 보고만 올리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안나의 질문에 답한 카이는 계속에서 말을 이었다.


"오후 업무로는 마을 순방을 통해 백성들의 민원을 받는 것만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녁 강독도 없나요?"

"오늘은 선왕 폐하와의 대면이 있으시니, 그 시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카이의 말에 안나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정말요?"

"그렇습니다."

"일정 관리는 분명 카이가 담당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안나는 더욱 놀란 눈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녁 강독 시간을 뺀 게 카이란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세상에, 카이, 변하셨네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카이는 살짝 미소지으며 안나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 미소에서 카이가 자신을 배려해 줬다고 확신한 안나가 카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 고마워요. 사실, 저도 오랜만에 엘사와 만나는 거라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어요."


안나의 감사 인사에 카이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식당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발코니 문을 닫은 안나는 카이와 같이 식당으로 내려가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업무를 제시간에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를 즐겁게 마친 안나는 곧바로 회의실로 올라갔다.

이어서 크리스토프가 약혼자가 부탁한 서류들을 들고 들어왔고, 여왕은 대신들이 오기 전까지 어제 남은 문서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관료들이 여왕이 일하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해했지만, 종종 보여주던 모습이었기에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모든 인원이 모이자 안나는 신하들의 보고를 받으며 업무 지시를 내렸다.


"... 그리고, 가능하면 오늘 오후 중으로 업무 결제를 마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침 회의의 말미에 안나가 덧붙이자 대신들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나선 안나는 곧바로 집무실로 걸어갔다.

집무실로 향하는 안나의 발걸음이 가볍게 통통 튀었다.

'어쩌면, 엘사가 이미 와 있을지도 몰라.'

어젯밤 크리스토프의 말처럼 엘사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침부터 아렌델 성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성에 도착한 엘사는 항상 가장 먼저 안나를 보기 위해 집무실을 방문했다.

어떨 때는 안나가 먼저 집무실에서 국정을 보고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회의가 진행되는 사이 먼저 도착한 엘사가 집무실에서 안나를 기다렸다.

안나가 집무실 문을 열면, 엘사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을 바라보고, 동생은 그런 언니에게 밝게 인사를 한다.

이어서 안나가 곧바로 언니에게 안겨들고, 엘사가 동생을 안아주는 것까지가 그들의 일반적인 만남이었다.

오늘은 보름 만에 만나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엘사가 먼저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안나는 힘차게 집무실 문을 열었다.


"엘사! 나왔어!"


그러나 집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나는 혹시 언니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서 집무실을 둘러보았으나 엘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문 뒤, 책상 아래, 발코니 등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살펴보아도 엘사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제야 아직 엘사가 도착하지 않았음을 인정한 안나는 조금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곧바로 약간의 기합과 함께 몸을 풀면서 부정적인 기분을 떨쳐냈다.


"늦을 수도 있지! 엘사가 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자."


혼잣말까지 해가며 기운을 차린 안나는 즉시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여왕이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책상에 앉는 순간 문이 열렸다.

이에 안나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문을 바라보았으나 등장한 건 안나가 회의실에 두고 간 서류를 챙겨온 카이였다.

그는 책상에 앉아있는 여왕에게 목을 숙여 가볍게 인사하고 자신의 자리로 가서 여왕의 서명이 적힌 서류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카이의 인사를 받아준 안나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책상에 놓인 서류뭉치에 손을 뻗었다.

잠시 후, 분류를 마친 카이가 슬쩍 여왕을 살펴보았다.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집중하고 있는 여왕의 얼굴을 본 신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왕위 이양이 결정되었을 때, 아렌델의 많은 신하들은 걱정이 앞섰다.

삼대에 걸친 세습이 전부 비정상적이고 급작스럽다는 건 많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컸다.

이미 루나드 왕이 왕좌에 앉아있던 시절에 비하면 왕좌의 권위는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일부 신하들은 왕권이 약해질 것이라는 예측을 반겼지만, 카이를 포함한 대다수의 신하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카이는 새로운 여왕의 앞에서 더더욱 원칙을 강조하고 따랐다.

그러나 이런 카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는 선대 여왕보다도 더욱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궁의 많은 예식을 간소화하고 신하들의 말을 경청했으며 백성들에게 먼저 나아갔다.

특히, 업무 시간을 줄여서라도 직접 여러 곳을 순방 다녔다.

새로운 여왕의 행보에 신하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여왕은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여왕이 말했다.


"요 몇 주 동안 살펴본 결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여왕은 자신이 준비한 개혁안을 신하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하면서도 정교한 개혁안은 몇 주 만에 만들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는 곧 그녀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했음을 시사했다.

몇몇 관료들이 새로운 개혁안에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안나는 그들의 반론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폐하, 보육원에 투입되는 보조금을 늘리는 것은 조금 힘들듯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우선, 그들에게는 이미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충분한 지원의 기준이 뭔가요?"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안나가 미리 준비한 질문을 했다.


"그럼, 그 의식주는 무엇인가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할까요?"


대신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안나는 처음부터 그의 대답은 상관이 없다는 듯 다른 질문을 했다.


"나아가,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걸로 끝일까요?"


그녀의 질문에 다른 관료가 끼어들었다.


"보육원의 목표는 고아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고아들을 돌보는 건 어떤 거죠?"


안나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치며 묻자, 관료가 대답했다.


"안전한 집과 먹을 것, 그리고 생필품을 제공해주는 겁니다."

"언제까지요?"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입니다."

"그럼,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조금을 늘리려는 거예요."


대신의 답변을 들은 안나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고아들은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급작스럽게 보육원을 나와 자신의 삶을 시작하게 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사실상 내쫓기는 것이 현실이에요. 운이 좋거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제대로 정착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또 다른 빈민층이 될 뿐이죠. 때로는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이 흐름을 끊고자 하는 거예요."

"뜻은 좋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같은 방식으로 효과를 본 국가들이 있어요. 그 국가에선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체험을 통한 교육을 실시하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유도했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곧바로 숙련된 노동자로서 사회에 진출하고 있지요. 지금은 아예 그 범위를 넓혀 농민의 자녀들도 교육하고 있어요."


조용히 여왕의 말을 들으며 카이는 대체 그녀가 언제 이런 조사를 다 했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보육원과 관련된 예산 편성은, 추후 국민들의 교육으로 연결 지을 계획이에요. 지금은 교회와 각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하지만, 그걸 국가에서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국정도 편해질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아렌델에 대한 애국심을 기르고, 많은 기술자를 양성할 수 있으니까요."

"폐하의 뜻을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예산을 어디서 구하느냐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선, 모든 보육원의 생필품 구매를 왕궁에서 관리할 거예요. 지금은 각 보육원에서 알아서 구하게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비효율적인 측면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국가에서 구매한다면 더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을 구할 수 있게 되겠죠. 비리가 생길 가능성도 적어지고요."


여왕은 막힘 없이 대답했고 그녀의 계획에 의문을 표하던 관리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마침내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게 되자 안나가 쐐기를 박았다.


"그럼, 보육원 예산에 관한 건은 이것으로 마무리 지어도 될까요?"


이처럼 안나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해 나갔고 곧 모든 업무가 여왕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일의 시작과 끝이 여왕의 손에서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신하들은 여왕의 명령에 따르게 되었다.

한편, 백성들은 엘사가 왕위에 있던 때와 같이 안나에게 많은 걸 부탁했다.


"집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합니다."

"혹시 담벼락 수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축제에 쓸 깃발이 부족합니다."


안나는 그들의 민원을 직접 들어주는 대신 도로를 기준으로 집들을 묶었다.

그리고 그 묶음마다 관리들을 배정하여 가능하면 이웃끼리 돕도록 하였고 관의 힘이 필요할 때면 관료의 판단하에 보고를 올리도록 하였다.

보고서는 매일 아침 회의마다 왕궁으로 모였으며 여왕은 신하들과 함께 민원의 처리법을 고민하여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그리하여 안나는 엘사보다 더 많은 민원을 받으면서도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었고 백성들도 만족했다.

종종 선대 여왕은 직접 움직였는데 안나는 그렇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시민은 매일 순시를 나와 자신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안나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는 안나를 보며 카이는 왜 엘사가 그녀에게 왕권을 넘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카이는 이제 모두에게 신뢰를 받는 여왕에게 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안나의 마음은 점점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엘사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혹시라도 엘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점점 안나의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면서 업무에 몰두하는 것으로 잊어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 처리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똑똑.

그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고 곧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안나, 점심시간이에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크리스토프의 말에 카이가 자신의 단안경을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책상을 정리했다.

하지만 안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안나?"


크리스토프가 다시 한번 약혼자를 부르자 안나가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 오후 일정을 전부 취소시키세요."

"예?"


갑작스러운 여왕의 명령에 카이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노덜드라에 가봐야겠어요. 당장."

"무슨 일 있어요?"


카이만큼이나 당황한 크리스토프가 물어보았다.


"엘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왜요?"

"아직까지 안 왔잖아요."

"엘사에게도 바쁜 일이 있을지 모르죠. 지난 보름 동안 안나가 바빠서 엘사에게 오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요."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게일을 통해서 편지라도 보냈을 거예요. 하지만, 게일 역시 오늘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갑작스러운 명령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지만, 오늘 내로 노덜드라에 도착하기 위해선 지금 출발해야 해요."


안나의 의지가 확고함을 느낀 카이는 여왕의 뜻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당장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해요, 그리고 제가 도착할 때까지 국정은 카이에게 맡길게요."

"부족한 능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요, 크리스토프. 옷도 갈아입고, 스벤과 올라프도 불러야 하니까요."

"올라프는 식당에 있어요. 스벤은 제가 따로 데리고 갈게요."


서로 역할을 나눈 둘은 각자 찾는 가족을 데리고 앞마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신의 방에서 옷을 갈아 입은 안나는 식당으로 뛰어 내려가 의자에 앉아있는 올라프에게 말했다.


"올라프, 지금 당장 노덜드라로 가야 해."

"지금요?"

"가면서 설명해 줄게."


안나가 올라프와 함께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크리스토프는 스벤에게 마차와 연결된 줄을 채우고 있었다.


"준비됐어요?"

"네.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어요."

"폐하."


그때, 매티어스가 군사들을 이끌고 둘에게 다가왔다.


"매티어스 장군."

"보좌관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호위대를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아뇨, 지금은 한시가 급해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일정도 지체될 거예요."

"하지만..."

"노덜드라 사람들이 우릴 해치지 않을 거란 걸 아시잖아요. 그리고, 저에겐 크리스토프가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매티어스가 크리스토프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프는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눈빛을 본 매티어스가 안나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고마워요."


안나와 올라프가 마차에 타자 운전석에 올라탄 크리스토프가 고삐를 쥐었다.


"가자! 스벤!"

"무어어!"


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록이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엘사는 나투라 남매와 같이 댐이 있던 협곡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둠의 바다로 가려 했으나, 옐레나가 그것보다는 협곡을 따라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 제안했기 때문이다.


"허니마린, 라이더. 둘이 엘사를 도와주거라."

"옐레나는요?"

"부족민들이 겁에 질려있으니, 가서 진정시켜야지."


라이더는 계곡을 내려가며 댐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돌벽으로 막힌 호수가 있던 장소에는 벌써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지금은 작은 나무와 풀들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저 장소들도 울창한 숲이 될 것이었다.

그 모습에 무언가 마음이 먹먹해지는 걸 느낀 라이더였지만, 그와는 달리 엘사는 주변 경관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직 빨리 내려가서 아렌델로 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음이 급했던 탓인지 경사를 내려가던 엘사가 발을 헛디뎠다.


"엘사!"


허니마린이 놀라 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엘사는 재빨리 얼음 비탈길을 만들어 안전하게 강과 안개가 만나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녀가 만들어낸 비탈길을 따라 남매가 내려오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엘사가 물어보았다.


"잠수해서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엘사의 질문에 라이더가 자신 없게 대답했다.

허니마린이 동생의 말에 조금 설명을 덧붙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긴 그렇게 깊은 강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땅을 파서 나가보려 했을 땐 막혀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어요."

"그래도 물을 통해 나가보려던 사람은 없었죠?"

"네, 그렇긴 해요."


허니마린의 말에 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강을 향해 뛰었다.

엘사가 막 속도를 올리려던 순간, 강에서 말의 형상이 솟구쳐 올라왔다.


"히히힝!"


강을 향해 달리던 엘사는 녹크의 등장에 발걸음을 멈췄다.


"녹크, 날 태워줘."


엘사가 말했으나 녹크는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어, 땅이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엘사 일행이 고개를 돌리자 바위 거인들이 협곡을 따라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엘사의 앞에 멈춰 섰고, 이어서 게일과 브루니가 엘사의 앞에 나타났다.

정령들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들이 엘사를 막아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켜."


엘사는 예상대로 자신을 막아서는 정령들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정령들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남매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엘사의 뒷모습에서 그녀가 분노하고 있음을 보았다.


"저기..."

"허니마린, 라이더."


당장이라도 사달이 날 것 같은 불안감에 허니마린이 말을 걸려는 순간, 엘사가 먼저 두 남매를 불렀다.


"야영지로 돌아가요."


엘사의 차가운 말에 남매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지금 당장."

"하지만..."

"부탁할게요. 가요."


엘사는 내용과는 달리 부탁보다는 명령에 더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남매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투라 남매는 자리를 떠나면서도 계속해서 엘사를 뒤돌아보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남매가 거의 동시에 멈춰 섰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도 불안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쩌적!

갑자기, 얼어붙는 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


놀란 남매가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표면이 얼어붙은 바위 거인이 보였다.

바위 거인은 두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를 향해 엘사의 마법이 쏘아지고 있었다.


"당장 비켜!"


엘사는 두 손에 마법을 두른 채 정령들을 협박했다.

그러나 정령들은 묵묵히 엘사의 공격을 받으며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처음엔 위협할 용도로만 쏘아지던 엘사의 마법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브루니가 간신히 피해낸 마법이 땅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자라나 게일의 나뭇잎 하나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엘사의 마법을 맞은 녹크는 그대로 깨지며 강 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처음부터 그녀의 마법을 견뎌낸 바위 거인들은 몸의 반 이상이 얼음에 뒤덮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엘사를 막아섰고, 엘사의 주변에는 이제 약한 눈보라까지 치고 있었다.

마법을 난사하던 엘사는 정령들이 절대로 비키지 않을 생각이란 걸 읽어내고 잠시 숨을 골랐다.


"마지막 경고야. 비켜."


차분하게, 그러나 차갑게.

엘사는 정령들을 바라보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정령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의 머리 위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곧 매서운 바람이 엘사의 주위를 휘몰아치며 눈보라가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눈보라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으며, 몇몇 조각들은 근처의 나무와 돌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서 흩날렸다.

그때, 눈보라를 뚫고 나무 사이에서 라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사! 어이쿠!"


엘사를 부른 라이더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얼음 결정을 보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라이더!"


라이더가 서 있던 자리에 꽂힌 얼음 결정을 보고 놀란 허니마린이 동생의 이름을 외쳤다.

그 목소리에 놀란 엘사가 급히 마법을 거두어들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근처의 얼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안 다쳤어. 나도 나름 날렵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라이더는 먼지를 털어내며 두 사람을 향해 씩 웃었다.


"돌아가라 했잖아요."


남매를 향해 뒤돌아선 엘사가 강한 척을 했으나 그녀의 어조와 태도에서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그 감정을 읽은 허니마린이 자신의 친구에게 물었다.


"엘사, 말해줘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엘사는 더는 감출 수 없음을 깨닫고 솔직하게 말했다.


"...기억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투라 남매가 크게 놀라 물었다.


"엘사의 기억이 사라진다고요?"

"아뇨, 제 기억이 아니라 아토할란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어요."

"아토할란의 기억?"

"네. 아토할란이 저에게 보여주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것도 빠른 속도로요."

"그게 안나랑 무슨 상관이죠?"

"그 기억은, 제 부모님의 기억이에요. 그리고, 안나가 어렸을 때의 기억이고요. 안나는 저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었어요. 안나와 같이 지내는 시간 동안 어느 정도 바로잡아주긴 했지만, 미처 그러지 못한 기억들도 남아 있죠. 또 부모님과의 추억도 얼마 없어요. 그래서, 저는 안나에게 아토할란의 기억들을 보여주려고 했죠.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엘사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입술에 살짝 피가 맺힐 정도로 힘을 주었던 엘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렸어요. 내가 모르던 부모님의 모습, 내가 어렸을 적 추억의 모습, 내가 없는 곳에서의 안나의 모습... 안나에게 보여주기 전에,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아토할란이 보여주는 기억을 살펴보자고. 그러는 사이 안나의 일이 바빠져서 만나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아토할란의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분노로 엘사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결국... 제가 다 망친 거예요. 다시는 비밀을 만들지 말자고 했는데, 저는 또다시 안나를 속이고 말았어요."

"엘사..."


남매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어트리는 친구를 달래주고자 했지만, 마땅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조용하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안나! 안개가 보여요!"


크리스토프의 말에 안나가 당장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늦은 밤이긴 해도 오늘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나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나마 노덜드라로 향하는 길을 정비해둔 덕에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마법의 숲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전과 같이 숲을 둘러싼 거대한 안개의 벽을 본 일행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했다.


"가요."


안나가 먼저 안개를 향해 걸어가자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안개가 길을 열어 줄까요?"

"일단은 가 봐야죠."


일행이 안개로 다가가자 크리스토프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기다렸다는 듯 안개가 벌어졌다.

안나는 빠른 걸음으로 안개 사이로 들어갔고, 다른 이들도 안나의 뒤를 따랐다.


"스벤, 피곤하지 않아? 조금 쉬어야 하지 않겠어?"


올라프를 마지막으로 다시 안개가 닫히는 걸 보며 크리스토프가 스벤에게 물었다.


"그엉!"

"괜찮다는 거지?"

"그럼요, 저보단 안나를 더 살펴봐 주세요."

"저도 멀쩡해요!"


크리스토프가 스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하자 올라프가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두꺼운 안개 속을 걸어가며 그들은 이전에 그리했듯 등을 떠밀리지 않을까 했지만 이번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개에서 빠져나온 안나는 주변을 둘러본 뒤, 게일을 부르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안나가 들이마신 공기를 크게 내보내려는 순간,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위 거인이에요!"


올라프가 숲의 그림자 위로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정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행에게 다가온 땅의 정령은 천천히 손바닥을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올라타라는 건가?"


크리스토프가 설마 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바위 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안나가 돌로 된 손 위로 올라갔고, 올라프가 그 뒤를 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잠시 주저했으나, 뒤에서 스벤이 밀자 어쩔 수 없이 바위 거인의 위로 올라갔다.

일행을 손 위에 올린 바위 거인은 그들을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엘사가 있는 곳."


올라프가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물어보자 안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바위 거인은 엘사가 있는 장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밤이 드리운 계곡과 노덜드라 사람들의 야영지를 지나자 아토할란을 향한 해변이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바위 거인의 손바닥 위에서 안나는 자갈밭 위에 모여 있는 정령들과 나투라 남매, 그리고 아토할란에서부터 녹크를 타고 달려오는 엘사를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 도착한 엘사는 소매로 자신의 두 눈가를 훔치며 물의 정령에서 내렸다.


"엘사!"


바위 거인의 손바닥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뛰어내린 안나는 곧바로 언니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엘사와 깊은 포옹을 나눈 뒤, 안나는 곧바로 언니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상하고 더러워진 옷을 입은 엘사의 고운 피부에는 잔 상처가 나 있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살짝 충혈된 엘사의 두 눈과 조금 부은 눈두덩이었다.


"무슨 일이야?"

"미안해, 안나."


안나가 엘사의 두 손을 잡고 물어보자 엘사가 대뜸 우울한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내가 또 전부 망쳐버렸어."

"다시 고치면 되지."

"고치려고 해 봤지만, 할 수 없었어."

"그럼, 다시 시작하면 돼."


엘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안나가 밝게 말했다.

그러나 엘사는 안나를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토할란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어."

"무슨 소리야?"

"아토할란이 더이상 기억을 보여주지 않아. 모든 것을 처음과 같이 되돌려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토할란은 침묵하고 있어. 너에게 그 기억들을 보여줬어야만 했는데..."


거기까지 말한 엘사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안나가 다시 한번 언니를 안아주었다.

엘사는 동생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언니의 등을 토닥여주던 안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마워, 엘사."

"...뭐가?"


여전히 동생의 어깨에 기댄 채로 엘사가 물었다.


"날 위해서 노력해준 거잖아."

"하지만..."

"그것보다, 언니는 괜찮아?"


동생의 말에 엘사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안나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난 괜찮아. 그냥 조금 피곤할 뿐이야."

"내 말은, 아토할란의 기억을 보지 못해도 괜찮냐는 거였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며 안나와 조금 거리를 벌린 엘사는 따스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에게 대답했다.


"난 이미 충분히 봤어."

"정말 앞으로 기억을 못 봐도 괜찮은 거 맞지?"

"응."

"그거면 됐어."


엘사의 답을 들은 안나가 밝게 미소지었다.

언제나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녀의 미소였지만, 지금 엘사에게는 더욱 미안한 감정을 솟아나게 했다.

그 미안한 마음을 그대로 표정과 목소리로 드러내며 엘사가 말했다.


"하지만... 너는 한 번도 아토할란의 기억을 보지 못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사실, 난 아토할란이 왜 언니에게만 기억을 보여줬는지 알 것 같아."


동생의 말에 엘사의 두 눈이 커졌다.

놀란 표정을 짓는 언니를 향해 안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난 이미 엄마 아빠와 많은 추억을 나누었어.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웃을 정도로. 하지만, 언니는 나와 가족들을 지켜주기 위해 희생하느라 그런 추억이 얼마 없잖아. 그래서 아토할란이 언니에게 보답과 위로를 해 준 거야."

"그럼 안나 너에게도 보여줘야지. 너도 나 때문에 13년을 성에 갇혀 지냈잖아."

"난 언니보다 먼저 그 보상을 받았는걸."


계속해서 생각치도 못했던 말을 하는 안나에게 엘사가 물었다.


"네가? 언제? 그럼 왜 그동안 그 얘길 안 해준 거야?"

"나도 인제야 깨달았거든. 그리고, 언니도 이미 알고 있을걸? 언니가 다시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그 날 이후, 언니와 함께 모험하는 동안 나는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았고, 새로운 추억도 쌓았어. 또, 무엇보다 나에겐 아렌델이 남아있고,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지. 그 모든 게 나에게 주어진 보상이었던 거야."


안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크리스토프와 스벤, 올라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로운 가족...?"


안나의 말을 들은 엘사가 고개를 돌려 정령들과 나투라 남매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엘사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정령들은 그녀를 막고 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힘든 상황과 불안한 마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신을 지켜주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허니마린과 라이더도 엘사가 밀어냈음에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와 주었다.

그제야 엘사는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이 단순한 친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엘사, 그거 알아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엘사를 향해 허니마린이 말했다.


"우리 노덜드라 사람들은 서로를 한 가족이라고 여겨요."

"그리고 엘사도 예외는 아니죠."


라이더가 누나의 말에 덧붙였다.


"꾸륵!"


남매의 말이 끝나자 불의 정령이 엘사를 향해 폴짝 뛰어올랐다.

엘사는 반사적으로 그를 손으로 받쳐 잡았고, 게일이 엘사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바람의 흐름을 따라 얼굴을 돌린 엘사와 시선이 마주친 녹크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바위 거인들을 본 엘사는 고개 숙인 바위 거인의 코를 자신과 동생이 다섯 번째 정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날처럼 어루만졌다.

엘사는 정령들이 말을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멋대로 그들의 의도를 짐작하고 상처를 준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켜준 정령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고마워요."


바위 거인과 인사를 마친 엘사가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비로소 마음의 짐을 모두 덜어낸 엘사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다만, 이번에 흐르는 눈물에는 기쁨과 안도, 따스함이 담겨있었다.


"오늘따라 눈의 여왕님이 많이 우네."


안나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엘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울면서 웃으면 큰일 나는데?"


언니의 웃음을 본 동생의 놀림에 엘사는 그녀의 몸을 잡아당겨 껴안았다.

안나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랐지만, 곧 언니를 마주 안아주었다.


"엘사, 너무 세게 조이진 마. 숨 막혀."


안나의 말에 엘사가 동생에게 보이지 않도록 미소지으며 그녀의 몸을 더 세게 조였다.


"켁! 진짜 숨 막혀!"


그제야 엘사가 비로소 힘을 풀었고, 안나는 엘사도 은근히 장난기가 많다면서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매의 가족들이 사랑이 담긴 따뜻한 시선과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어느새 하얀 이불을 벗고 깨어난 하늘이 아름답게 밤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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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나오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네.


원래 내려고 했던 작품을 못내서 급하게 대신 만든 작품이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쓰긴 했어 ㅋㅋ...


문학대회 통해서 이것보다 훨씬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태니, 다들 문학 많이 봐주라고!




원래 내려고 했던 작품은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127407)인데


이것도 봐주면 좋겠어.


진짜 이걸 못낸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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