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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장편/일상]1.5: 아렌델 생활기(13-3). 산

프소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9 11: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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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집들이: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422099


제주목(濟州牧) 대정현(大靜縣/현 서귀포) 산방산


간단히 점심을 때운 그들은 힘차게 산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웃고 있던 그들의 얼굴도 거리에 비례해 굳어져 갔다.

생각보다 힘들다 보니 둘 다 복장도 자신들의 여행복장으로 바꾼 채 올랐다. 아무래도 다들 게일의 힘을 너무 자주 빌린 탓이 큰 것 같았다.

엘사는 머리와 눈 색깔도 원래대로 바꿀까 했지만, 혹시나 보일 사람들이 있을까봐 우선은 유지하고 있었다.


"아렌델에 가면 꼭 다시 운동한다!" "진심으로! 통감하는 바! 이오!"


그들이 산 정상 가까이에 오른 건 서너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하늘도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엘사는 드러누운 채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진우도 숨을 들이 마시다가 엘사를 부르며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돌아 본 엘사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정상에 보이는 풍경은 온통 노란색 꽃들이었다.

꽃무리는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산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귀를 채우고 있었다.

진우는 어느새 옆에 앉아 있었고, 엘사 역시 그 자리에서 앉아 일어났다.

엘사는 머리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그녀의 금빛 머리색이 바람에 날리며 저물어가는 햇빛에 반짝였다.

진우는 멍하니 그녀를 보다 다시 산 밑을 내려다 봤다.


"유채요." "저 꽃들이?" "그렇소. 제주에 이런 꽃이 많은데 여기만큼 넓게 퍼져있는 곳은 없던 것 같구려."


편안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옆을 돌아봤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경치를 즐기는 듯 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점점 바뀌어가는 그의 행동이 걸렸다. 말을 넌지시 던졌다.


"무슨 생각 해?"

"여기서 말이오? 그냥 생각을 정리하면서 계획을 짜거나 그냥 멍하니 저 흩날리는 꽃들을 보게 되는 것 같소."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냐고."


당황한 기색이 눈에 띄었다. 잠시 다시 경치를 보며 고민을 하다 별 수 없다는 듯 웃게 되었다.


"티가 났나 보오." "응."


그는 자신의 무릎을 모으며 앉는 자세를 바꿨다.


"이제 여기가 소인의 집이 아닌데, 어제 승수를 만나며 왠지 모를 정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됐소. 그런데 이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구려.

아니, 사실 올 때마다 느끼고는 있었소. 다만 지금처럼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신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있지 않겠소?

그래서 여기에 오게되면 결심을 하게 되오. 아렌델만 바라보자. 만약에 그게 안되면 사람들만이라도 바라보자."


다음 하는 말에서 그 목소리는 낮아졌다.


"그런데 가끔씩 가슴 한구석이 텅 빈것만 같소. 그리고 그걸 어찌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말을 하기 싫은 듯 입을 무릎에 모은 팔에 묻었다. 바람소리에 그의 한숨도 묻혀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엘사는 당연히 그를 받아들였다 생각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안나나 크리스토프도 느끼고 있을테지.

그리고 이 감정이 그와 우리 사이에 심리적인 거리를 만들어 놨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간격에도 웃었다. 그리고 우리를 돕고 우리를 위해 옆에 있어줬다.

그는 우리를 받아들였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를 떨어트려 놓고 있었다.

하나하나씩 미뤄왔던 관계의 짐들을 풀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안나와도, 크리스토프와도, 다른 사람들과도. 그러니 이 사람과도 풀어야겠지.


"안나에게도 말 안한게 있는데, 처음에 사실 크리스토프가 미심쩍었어."

"아, 바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소?"

"받아들이기는 했지. 안나가 그렇게 용을 쓰기도 했고 애초에 데려다준게 크리스토프였는데. 그런데...이러면 안돼지만 그런거 있잖아.

애초에 크리스토프가 얼음장수 라는 것 밖에 모르는데, 행동거지를 보면 뭔가 어벙해 보이고, 또...신분 차가 상당하다 보니 더더욱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있더라고. 그의 마음이 진심이고, 안나도 마찬가지라는 걸."


진우가 바라보는 가운데 엘사는 자신의 말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머리를 넘겼다.


"물론 이것도 주관적이기는 한데, 그냥 행동 하나하나에 보이는 배려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은 크리스토프도 우리 가족이기도 하고.

그런데 진우 너도 마찬가지야. 따지고 보면 첫만남이 크리스토프보다 더하지. 아예 다른 문화권,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

애초에 너도 아렌델에 영원히 있겠다고 생각을 해온 적도 없었을테니까. 그래서 네가 그런 생각이 들어도 이해하고 나도 마음이 걸려서 미안해져.

그리고 이 마음은 나머지 둘도 가지고 있을거야. 그런데 이 미안함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너를 떨어트려 놓은 것 같아."


옆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미안해지지 않으려 할게, 그리고 너를 더 바라볼게.

당연히 안나만큼은 아니더라도 크리스토프를 본 것처럼 너를 우리랑 다른 외지인으로서가 아닌 진우 너로서 바라볼게.

그래서 여기에 대한 그리움이 추억으로서 음미할 정도가 되도록 네가 괜찮을 때까지 우리가 함께 있어줄게.

이제는 너도 우리 가족이니까."


엘사는 드디어 미소를 지었고, 진우는 입을 벌리는듯 안벌리는 듯 조금 움직이다가 결국 못버티고 앞을 봤다.


"정말 낭자나 안나나 어디서 말하는 걸 배우기라도 하는거요? 뭔놈의 말을 할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이렇게...."


그는 얼굴을 밑으로 내렸다.


* * *


얼마 뒤 진우는 옷을 털며 일어났다. 옷도 여행복이 아닌 진청색 양반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소리도 아까와는 달리 고양되게 밝았다.


"내 마지막으로 가는 식당이 있는데 그로 갑시다! 물론 이번에는 게일을 타고 말이오. 내 산 밑을 내려가는 짓은 도저히 못하겠구려!"

"그건 그래."


둘은 게일을 타고 산을 내려온 뒤 잠시 유채꽃밭에서 다시 그 풍경을 즐겼다. 진우는 꽃을 두묶음 나누더니 둘 다 줬다.


"하나는 안나에게 주는게 어떻겠소?" "좋은 생각이네."


둘은 거기서 나와 조금 더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식당은 어디야?" "여기 근처인데 정말로 소박한 주막이었소. 고기국수 맛도 일품이고 말이오."


하지만 식당의 자리에는 초가주막은 없어지고 왠 으리으리한 한옥만 있었다.

거기에다가 사람은 북적북적거려 이런 시골 한가운데에 이 정도 크기의 식당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여기도 돈 줬어?" "그렇소만...이 정도로 주지는 않았는데?" "?"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녀 한명이 인사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모 한 명이 뛰어나오며 그들을 버선발로 맞이했다.

전에 봤던 그 주모인 것 같은데, 화장과 옷차림새가 지난번과는 전혀 달라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이고!! 나으리께서 또 오셨습니까? 내 오늘을 벼르고 있었지요!!!" "예?"

"빨리 빨리 오시죠! 이번에는 제가 그냥 드리는 겁니다!!" "어...어? 아니, 잠깐만요?"


그러거나 말거나 주모는 상석에 둘을 앉히고 국수와 돼지구이를 갖다주었다. 거기에 나온 반찬은 덤이었는데, 그 덤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엘사와 진우는 입만 벌린 채 서로를 봤다.


"이게 조선의 정이구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항상 이렇게 많이 주지는 않소!"


아무래도 주모 역시 옆에서 대화를 하고 싶은 듯 했지만, 인파가 인파인지라 음식대접으로 그 간극을 채우려는 것 같았다.

어쨋든 둘은 먹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역시 엘사는 기분이 좋은 듯 "음~음~" 소리와 함께 먹었다.

이번에는 진우도 소리를 냈는데, 전에 먹었던 그 맛에서 더 발전된 탓이 컸다.


* * *


배가 너무 부른 둘은 거기서 바로 나오지 못한 채 거의 바닥에 들어누워 목만 벽에 기대고 있었다.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왠지 힘찬 여행은 아니지 않았소?"

"막 활기찼다고는 못하지.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없기는 했잖아. 그냥 여기에 와 보고 삼삼하게 털어 놓은 걸로 만족할게.

무엇보다 밥들이 맛있었고. 너는?"

"덕분에 좋았소. 고맙소."


마지막 말을 진우는 벽에 있는 자세 그대로 했고, 엘사는 어이가 없어 크게 웃었다.

자기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웃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사레가 걸려 벽에서 떨어져 물을 들이켰다.


"다음 번에는 한양 가봐도 돼?" "좋지요! 그 때는 둘도 데려오는 것이 어떻겠소?" "좋지!"


둘은 간단하게 주모에게 인사를 한 뒤 게일을 불렀다.


* * *


아침, 아렌델 성


둘이 도착했을 때,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듯 서있다가 그들이 내려오자 안아줬다.

안나는 엘사가 거의 몇 달은 없었던 것 마냥 꽉 잡고 놓아주지를 않고 있었다.


"언니! 어땠어?"


엘사는 옆를 돌아봤다. 진우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행은 먹으러 가는게 최고야!" "정말? 아!! 나도 따라갈걸!!"

"내 방에서 얘기해줄게. 우선은 이것들부터 받아."


엘사는 안나와 크리스토프에게 선물을 주며 성안으로 들어갔고, 진우는 조금 뒤에서 그들을 보다 따라 들어갔다.


==============================

1

그냥 '갔다 왔어요!' 정도로 쓰고 싶었던게 커져버렸네요ㅋㅋㅋㅋㅋㅠ

앞으로 두편!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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