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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우승작] 얼어붙은 이방인 - 9

엘사v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1: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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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아렌델 성 - 1836715


닫힌 아렌델에서는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18살이 된 엘사는 여전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15살 안나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었다. 노크의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고,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방해하는 언니의 존재를 부정하는 날도 많아졌다. 뭔가 터질 것만 같았지만 다행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나마 크리스마스마다 전해주는 안나의 편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안나는 감정 기복이 심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엘사를 이해하는 것 같다가도 날짜가 지남에 따라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한 번은 문을 부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날도 있었지만, 다행히 시녀들이 말리면서 상황이 일단락되기도 했다.

이제 고립에 익숙해진 엘사는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엘사와 함께 책을 읽었다. 원래 책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이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나도 엘사와 함께 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읽는 속도도, 관심이 가는 문장도, 모두 같았다.

엘사가 잠이 들면 나는 오히려 편하게 성을 돌아다니면서 아렌델의 모든 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내 마법의 비밀을 찾아서 온갖 시도를 해 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안나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도 더 잘 알 수 있었다. 안나의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온종일 안나의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내가 일부러 이런 일을 계획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엘사의 마법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엘사의 방에 들어와 여왕으로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쳤고 엘사는 곧잘 이해했다. 우스운 말이긴 하지만 엘사는 정말 영리했다. 앞으로 여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엘사는 그렇게 차근차근 여왕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라프.”

엘사가 잠들고 나는 침대에 앉아서 올라프를 불렀다. 올라프가 침대로 올라와 내 곁에 앉았다.

오늘도 끝났네.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올라프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아렌델의 한쪽 면을 볼 때 올라프는 다른 면을 보고 그날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가 되었다.

안나는 좀 어때?”

최근엔 로맨스 소설에 빠진 것 같아.”

그래? 어떤 소설이야? 한 번 보러 가볼래?”

나는 일어서서 올라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엘사의 방을 빠져나와 안나의 방으로 향했다.

난 이 고립이 끝나고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지 않아. 10년 넘게 이렇게 지냈는데, 정말 안나와 친해질 수 있을까? 너도 알겠지만, 엘사는 로맨스 소설에는 흥미가 없거든. 그런 거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힘들 거야.”

나는 복도를 걸으며 올라프에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 뭘 했는지 서로 얘기할 수도 있지 않겠어?”

올라프의 대답에 나는 한 번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공통점은 이 긴 시간 동안 갇혀 지냈다는 거. 그거 하나였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에 주고받았던 편지들에 관해 얘기할 수도 있겠지. 닫힌 문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얘기할 수도 있을 거고.

엘사의 방과 안나의 방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일단 칼같이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있고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 깔끔한 방을 보고 있다면 그건 엘사의 방이다. 안나의 방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삐죽삐죽 흘러나온 물품들과 옷가지들이 안나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올라프. 이게 어떻게 로맨스 소설이야?”

나는 침대 한편에 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소설 하나를 가리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랑켄슈타인은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소설이었다.

로맨스 맞아. 아내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결국엔 이루지 못하고 죽는 괴물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안 읽어봤구나?”

올라프는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와우! 나는 소리 내어 감탄했다. 작가인 메리 셸리가 들었다면 상상도 못 한 감상평이라고 놀랐을 거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관점에 대해 꼭 한번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그나저나 안나가 설마 나를 생각하면서 이런 걸 읽는 건 아니겠지? 정말 그렇다면 나중에 대화하기가 상당히 껄끄러울 텐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머리는 멋대로 헝클어져서 사자의 갈기처럼 변해있었다. 비록 내 손길에 그 머리가 정리되진 않았지만, 그냥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안나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미 이 상황 자체에 익숙했는지 아주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냥 이대로 안나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이 시간만이 반복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안나의 곁에 슬며시 누웠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붙어있는 게 이런 걸까. 나는 그렇게 안나의 수호신처럼 꼭 붙어서 눈을 감았다.

안나의 곁에서 나도 깜빡 잠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굉음과 진동에 눈을 떴다.

올라프 무슨 소리야?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안나의 품에서 눈을 뜬 올라프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모르겠어.”

올라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올라프? 안나를 잠시 봐 줄래? 난 엘사한테 갔다 올게.”

올라프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엘사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봐준다고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나와 올라프는 여기서 방관자일 뿐이니까.

엘사의 방에서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안은 온통 노란빛의 얼음으로 가득해졌다. 엘사의 불안감이 심해지자 꼭 끼고 있던 흰 장갑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와중에도 소리와 진동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밖으로 향했다.

엄청난 양의 물이 계곡 저 멀리서 성난 말처럼 밀어닥쳤다. 아렌델은 해일이 목표로 삼은 것처럼 아주 정확한 곳에 있었다. 나는 엘사의 방으로 돌아갔다. 위험하다고 소리쳤지만, 엘사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이건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나는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금 내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엘사가 방문 앞에 섰다. 벌벌 떨면서 방문을 잡았다. 문고리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오한이 들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이 문 밑의 틈을 통해서 아렌델의 복도로 퍼져나갔다. 엘사는 손잡이를 꼭 잡은 채 열지 못했다. 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제 누가 들어도 해일이 이곳으로 온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맑은 하늘이었지만 폭풍우가 치는 것처럼, 수많은 천둥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것처럼 그렇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엘사는 마침내 눈을 한 번 꼭 감고 그 거대한 한계를 열었다. 얼음에 잠식당한 문은 그대로 깨져서 복도 바닥에 나뒹굴었다. 엘사는 잠시 그것을 보더니 이내 무시하고 복도를 달렸다.

안나!”

엘사는 그렇게 소리치며 안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엘사가 지나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노란빛의 뾰족한 고드름이 자라났다. 나도 재빨리 안나의 방으로 달렸다. 안나의 방문 앞에서 엘사는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문손잡이를 잡는 즉시 얼음이 문으로 뒤덮였다. 엘사는 거칠게 방문을 뜯어냈고 문은 조각조각으로 갈라져 방 안으로 흩어졌다.

언니? 그거 뭐야?”

안나는 당연하게도 손을 벌벌 떨면서 엘사의 주변에 서린 차가운 얼음을 가리켰다. 10년간 떨어져 지냈던 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위협적인 소리, 언니의 주변에 서린 얼음들, 그런 것들이 모두 겹쳐져 갈 곳을 잃은 목소리였다.

지금 뭐

해일은 안나의 말을 끊고 창문으로 덮쳐왔다. 엘사는 몸을 날렸고, 안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엘사 주변의 물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안나는 엘사의 품에 안겨서 와들와들 떨어댔다. 해일은 두 자매를 부수려는 듯이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노란빛을 띠고 있던 얼음은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점차 커다랗게 변해갔다. 꼭 감겨 있던 안나의 눈이 슬며시 떠졌다. 그리고 엘사의 감긴 눈으로 시선을 보냈다. 연보라색의 큰 눈두덩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안나는 멍하니 내팽개친 팔을 들어 엘사의 차가운 몸을 안았다. 순간 엘사는 움찔하고 놀랐지만 이내 다시 안나를 꼭 껴안았다.

나는 거칠게 얼어붙은 파도 옆에서 두 자매를 바라보았다. 해일은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안나의 방은 온통 송곳 같은 얼음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잡은 올라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올라프. 이런 일이 정말로 있었어?”

이건 이상해. 분명히 넌 나한테 13년이라고 했어. 잘못 말한 걸까?”

나는 멍하니 내 과거의 환영을 바라보았다. 급기야 아렌델 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의 맨 윗부분이 부러지고 하류 쪽으로 맹렬히 휩쓸렸다. 그 신호에 맞춰 아렌델 성은 뼈대마저 휩쓸리며 모두 사라졌다. 마치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아렌델 성을 없애고도 해일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두 자매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구에 실려 바다 쪽으로 세차게 밀려났다. 이리저리 튕기는 와중에도 안나는 엘사를 꼭 붙잡고 있었다. 팔다리가 푸른 반점이 부풀어 오르고 피가 새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일은 잦아들었고 엘사와 안나는 아렌델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어느 숲속에 처박혔다. 안나가 먼저 구에서 기어 나왔다. 추위인지 공포인지 모를 이유로 인해 덜덜 떨던 안나는 얼마 못 가서 쓰러졌다. 엘사가 안나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주변이 점차 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나!”

엘사가 안나를 불렀지만, 안나는 대답이 없었다. 엘사는 점차 안나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얼어가는 땅은 점점 안나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눈이 떨어졌다. 엘사의 외침은 고요한 눈의 속삭임 속에 사라져갔다. 안나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눈발이 거세지며 점점 쌓이고 있었다. 엘사의 눈물만큼 두껍게.

나는 더 볼 수 없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멀쩡한 아렌델에서 있었던 안나의 장례식을 기억한다. 안나가 내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40년 전의 내가 나에게 남겼던 메시지를 기억한다. 안나가 지금 죽는 일도, 아렌델이 이렇게 사라진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토할란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비욘이 마지막에 소리쳤었지. 그리고 나는 내 몸을 감싸는 차가운 기운에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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