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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우승작] 얼어붙은 이방인 - 13

엘사v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1: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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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렌델 성 - 1839727/ 현재 1938/ 남은 시간 516개월


대관식의 아침 날이 밝아왔다. 이리저리 꼬이긴 했지만 내 두 번째 여행에는 대략 4개월이 걸렸다. 4개월 동안 아렌델에서의 작은 소동과 엘사와 안나를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오늘, 대관식은 내게도 안나에게 있어서도 커다란 사건이다. 아토할란의 기억이 이날 어떤 사건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렌델의 문이 열렸다. 아렌델의 항구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렸고 오랜만에 이 작은 나라에 활기가 돌았다. 안나는 당연히 들떠 있었고, 엘사는 불안에 떨었다. 작은 도자기와 촛대를 들고 아버지의 초상화 앞에서 연습해보았지만, 번번이 얼어버리는 그 모습에 한숨짓는 엘사의 모습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인간미가 흘러나왔다. 조금만 실수해도 완벽한 여왕을 연기했던 지난날이 수포가 되어 버린다. 아무래도 오늘, 마법을 들킬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알 수 없었다.

안나는 동네 강아지마냥 아렌델 전역을 뛰어다녔다. 그동안 억눌린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그를 보는 안나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대관식 때도 그놈을 보면서 손을 흔드는 안나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것 말고는 대관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성당의 위층에서는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주교는 엘사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고 있었다.

주교는 보주와 셉터를 내밀었고 엘사는 장갑을 낀 채 손을 가져갔다.

폐하. 장갑을

주교는 머리를 앞으로 숙여 엘사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엘사가 장갑을 벗고 한쪽 손엔 보주를, 다른 손엔 셉터를 잡았다.

엘사가 돌아섰다

주교가 입을 열었다.

이분이 성물을 들었으며 이 성스러운 곳에서 왕관을 받았으니, 이제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퀸 엘사 오브 아렌델.”

엘사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조차도 긴장감에 침을 삼킬 정도였으니. 엘사에겐 아마 영원과도 같이 길게 느껴지는 말이었겠지. 살짝 위험한 정도의 위기는 있었지만, 무사히 대관식은 끝이 났다. 셉터의 중간 부분과 보주의 밑 부분에 서리가 생겨났을 때의 엘사의 표정은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엘사는 주교의 말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그것들을 돌려주고는 장갑을 꼈다.

대관식이 끝난 뒤, 두 자매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나란히 섰다. 그렇게 강한 모습을 보이던 안나는 카이가 강제로 엘사 옆에 세워 놓을 정도로 긴장한 듯했다. 그마저도 살짝 떨어지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몇 개월 전에 항소문을 써내던 안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괜히 한 번 머리를 만지고 눈치를 보는 그 모습은 정말로 안나답지 않았다. 역시나 아무리 자신감이 있어도 막상 그 사람이 앞에 있으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나 보다. 그게 설령 안나라고 해도.

안녕?”

엘사가 먼저 이렇게 인사했다. 장난인지 아닌지. 안나가 느끼는 불편함을 눈치챈 건지는 몰랐다. 안나는 당황하고는 자신한테 인사한 거냐고 되물었다. 그 이후로도 쭉 어색한 대화가 몇 번 이어지다가 다행히도 초콜릿 냄새에 두 자매간의 장벽이 살짝 허물어졌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자매가 일시적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안나는 아렌델의 모습이 항상 이랬으면 좋겠다고 했고, 엘사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직후, 둘은 떨어졌고 나는 안나와 엘사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가봐야 할지 머리를 굴려야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안나를 택했다. 엘사는 계속해서 연회장에 있었기 때문에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올라프. 넌 엘사를 봐줘. 난 안나를 볼 테니까. 오늘 틀림없이 무슨 일이 벌어질 거야. 그걸 잘 봐둬야 해. 사소한 것까지 모두.”

올라프는 알았다고 손을 흔들고는 엘사 옆으로 바짝 붙었다.

안나의 곁에는 그놈이 있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둘은 아렌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세상에. 결혼을 약속했다. 나는 잠시 둘이 만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오늘 아침에 만났으니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사랑이 고프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다니. 그런데 안나는 그렇다 치고 저놈은 대체 뭐야. 저놈도 누가 13년간 가둬 놨나?

저놈은 틀림없이 안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다. 기억에는 없지만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간섭도 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꽁꽁 얼려버리고는 그대로 조각조각 부수고 싶었다. 이곳에서 지낸 104개월간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저놈만큼 처음부터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저놈과 엮일 안나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그걸 고스란히 봐야 하는 나도.

날은 저물었고 안나는 놈과 함께 엘사의 축복을 받기 위해 연회장으로 향했다. 엘사가 제정신이라면 절대 허락하지 않겠지.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회장에 엘사는 없었다. 나는 올라프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길 바랐다. 안나는 카이에게 엘사의 행방을 물었고 엘사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며 급히 연회장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워낙 급하게 빠져나갔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물을 새도 없다고 했다. 안나는 화를 내면서 수색조를 편성해서 빨리 엘사를 찾으라고 명했다. 대관식 날에 여왕이 사라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안나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안나는 수색조 하나에 끼여서 아렌델의 뒷문을 내려 갔다.

그 순간. 아렌델 전역에 마름모꼴 모양의 얼음 결정들이 나타났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괴상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안나의 눈이 떨렸다. 하지만 안나는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안나는 머리를 보호하라고 말하며 지붕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동시에 우박이 쏟아져 내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듯했다. 아렌델의 분수대에서 치솟던 물은 갑자기 수위가 낮아지더니 급기야 사라졌다. 바람은 끊겼고 아렌델을 밝히던 불을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아렌델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처럼 높은 지대로 끌고 갔다.

나는 올라프가 정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믿어야 했다. 이건 나와 안나뿐만 아니라 아렌델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대형 사건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이 시간대에 정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잘못된 시간대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안나는 고지대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음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수색조는 계속해서 엘사를 찾고 다른 사람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라고 명했다. 아렌델이 현재 안전한 상태인지 알아보는 정찰조를 편성하는 한편, 손님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보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다.

말 그대로 안나는 여왕처럼 행동했다. 조금 전에 놈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철부지의 모습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안나는 지금 여왕의 부재로 인해 아렌델의 공주로써 명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시간대에서의 여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내가 느끼는 허무함에 익숙해져야 했다. 조금 전만 해도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웃고 떠들고 얘기하던 사람들은 결국엔 환상에 불과했다. 아토할란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일 뿐이었다. 나와 올라프는 이 연극의 유일한 관객일 뿐이고.

나는 안나의 곁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까지 떨어진 우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많은 우박이 있었지만 단 4개의 문양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렌델에서 사라진 것들, , , 바람, . 볼 것도 없었다. 이건 네 정령을 의미했고 이 시간대의 사건이 맞는다면 엘사는 1839년에 아토할란을 찾으러 떠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법을 들키게 되는 사건, 정령을 깨우게 되는 사건, 대관식. 세 개의 굵직한 사건들.

이건 이 시간대의 사건들이 맞다. 나는 이렇게 확신했다. 그렇다면 엘사는 아토할란으로 향했을 거다. 그리고 그동안 안나는 아렌델의 여왕 대리로써 여길 수습하다가 엘사가 각성한 후에 정말로 대관식을 치르고 정식 여왕이 된다? 그럴듯했다. 더군다나 나에게 메시지를 남긴 40년 전의 나도 심연에서 얼어붙은 나를 안나가 구했다고 했다. 만약 엘사와 안나가 함께 아토할란으로 들어갔다면 둘 다 얼어붙어 버렸을 거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다. 이 시간대의 안나를 이제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아토할란으로 가야만 했다. 올라프도 당연히 엘사를 따라갔을 테니 그곳에서 만날 거고.

생각해보니 나는 내 기억을 찾아야 했다. 안나의 것이 아니라. 안나와 함께한 추억도 추억이지만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야만 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 안나를 뒤로한 채 아토할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욘의 선물을 받고 한 첫 여행치고는 꽤 많은 수확을 올린 셈이었다. 이 정도에 4개월이면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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