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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대회 우승작] 얼어붙은 이방인 - 25

엘사v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0 0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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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북쪽 산 얼음성 - 18621222/ 현재 1973


북쪽 산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21일에서 22일로 막 넘어가는 새벽. 푸른빛으로 빛나는 얼음성 내부에 누군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와 올라프는 계단을 올랐다. 23년 전, 안나와 엘사가 함께 만든 그 계단이었다. 아렌델 성 광장과도 같은 분수대가 양옆에 서 있었다. 뿜어져 나온 물은 그 상태로 얼어있었고 안나는 그 중심에 앉아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두 개의 굽이친 계단에는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걸려있었고 일정 간격으로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안나는 가만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까닥이며 숫자를 세던 안나가 갑자기 빙글 몸을 돌려 성 입구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내가 있었다. 안나의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어 왔어?”

안나는 자연스레 말했다.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처럼. 1862, 42살의 안나는 천연덕스럽게 홀로 연극을 하고 있었다.

아 아직 준비가 다 된 건 아닌데 들켜 버렸잖아?”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1862년이면 안나가 크리스토프와 내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눴던 해다. 안나는 내가 기억을 찾아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다. 나는 안나와의 약속을 자주 어기는 지지리도 못난 언니였으니까. 안나와의 마지막 약속조차 어기고 나는 이곳에 있다.

뭐야. 말 좀 해. 왜 이렇게 빨리 온 거냐니깐?”

그리고 안나는 내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해야 했다.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어우 오글거려. 언니 지금 몇 살인지 알아? 뭐야? 몇 년 만에 온 것처럼 왜 그래?”

한 마디 툭 던지자 곧바로 반응이 나왔다. 나는 안나에게로 걸어갔다. 눈물이 나왔지만 닦을 필요는 없었다. 안나는 내 반응을 예측하고 저런 대사를 만들었을 거다. 그리고 연습했겠지.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정말로 대화하는 것처럼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을지 모른다. 내가 약속을 어기고 이곳에 올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말을 할지 알아야 했다. 나를 지독히도 연구하고 파악해야 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대사를 연구하는 안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대관식 4개월 전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안나의 방에 소복이 쌓인 항소문을 상상하면 얼추 비슷했다. 이번에도 그 얼음 마녀가 쉽게 깨질 것 같지는 않다면서 언니를 굴복시키려고 했을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대사 속에 내가 온전히 연기하길 바랐을까. 나는 안나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그건 쉬웠지만, 한편으론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왜 울어? 울지 마. 이건 그냥 평범한 깜짝 파티라고.”

나는 안나의 곁에 앉았다. 안나는 자연스레 나를 감쌌다. 안나의 눈에서도 액체가 떨어졌다. 이건 리허설이 불가능했고, 틀렸다고 다시 할 수도 없는 연극이었다. 눈물을 흘렸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즉흥연기가 시작되면 아무리 이상해도 그대로 진행해야 했다.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그렇게 아토할란에 영원히 새겨질 기억들로써.

아니야. 너무 좋아서 그래.”

내가 말했다. 안나가 눈물을 닦고 입을 열었다.

그렇지? 언니도 알다시피 그때 이후로 여길 파티장으로 써본 적은 없으니까.”

그러네. 어떻게 여길 다시 올 생각을 한 거야?”

맞아. 언니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역시 우리 언니라니까.”

안나의 대사가 틀렸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쳐왔다. 결국, 이건 기억일 뿐이다. 안나가 아무리 날 연구했다고 해도 완벽한 대화는 역시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맞춰야 했다. 이건 내가 틀린 거니까. 안나의 연극을 망칠 순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음 대사를 생각했다. 안나라면 여기서 무슨 말을 했을까? 날 생각하면서 대사를 짠 안나라면.

안나의 외로운 독백이 계속되고 있었다.

맞아. 지금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 잠시만 있다가 올래? 10분쯤? 올 때 노크하는 거 잊지 마?”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성문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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