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아버지는 배재학당 설립, 아들은 배재대 학장, 딸은 이화여대 학장
1858년 2월 6일 ~ 1902년 6월 11일)는 1885년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한 미국 감리교(북감리회) 선교사이다. 그는 선교사가 설립한 최초의 근대사학인 배재학당을 세운 설립자이며, 구한말 한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1882년 펜실베이니아 주 프랭클린앤드마샬대학을 거쳐 그해 뉴저지 주 드류 신학교를 졸업했다. 1884년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한국선교 결정에 따라 1885년 4월 2일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선교회 및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1887년 한국선교부 감리사로 있으면서 학교와 병원 등에 복음전도의 여러 사업을 맡았다. 같은 해 10월 29일 서울에 벧엘 예배당(지금의 정동제일교회)을 설립했으며 1888년에는 H. G. 언더우드, G. H. 존스 등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활동을 벌였다. 1890년 한국성교서회(韓國聖敎書會)를 창설하여 1892년 회장직을 맡는 등 성서번역사업에 큰 기여를 했다.
1895년에 월간지 〈한국휘보 The Korean Repository〉의 편집일을 맡았으며, 1897년에는 한국말로 된 최초의 종교신문인 〈죠션 크리스토인회〉를 창간하여 선교사업 외에 민족계몽운동에도 조력했다. 1902년(광무 6)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와 일본 상선이 충돌하여 익사했다. 큰아들은 배재학교 교장을, 큰딸은 이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아버지 H. G.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설립, 아들은 배재대 학장, 딸은 이화여대 학장. 딸 Alice R. 아펜젤러는 1939년 김활란 부교장에게 교장직을 넘겨주고 1940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아펜젤러 기념관
대전 서구 배재로 155-40 (우)35345
전통적으로 학교 건물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네모 반듯한 획일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설계 패턴을 완전히 바꾼 획기적 건축물들도 속속 등장하면서 대학의 자랑이 되고있다. 대표적인 곳이 배재대학교 교정이다.
2002년 배재대는 ‘G-배재 2015’라는 마스터플랜으로 ‘미래 캠퍼스, 열린 캠퍼스, 공원 캠퍼스’를 추진한다. 이 때부터 세워진 건물이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본상과 특선을 수상한 배재대 예술관과 국제교류관 올해 대상을 수상한 국제언어생활관이다. 한 대학 캠퍼스의 건축물이 모두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가히 배재대 캠퍼스는 현대 건축물의 향연장이라고 할 만 하다.
개교 125 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0년 지은 '아펜젤러 기념관'입니다. 이 건물은 아예 형태가 없습니다. 학교측은 비정형 건축물이라고 말합니다.들쭉날쭉 여러 개의 지붕을 통해 비상하는 물체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으나 딱 잡아 이 건물과 모양이 비슷한 물체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펜젤러 기념관은 1천200여개의 철빔으로 연결시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보통 건물을 지을 때 외관을 짓고 내부를 채우잖아요. 저 건물은 내부를 먼저 짓고 외관을 씌운 공법이 이용되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대학 건물들이 추구해왔던 4각형의 건물 구조와는 달리 배재대학 건물은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룬 예술성과 건축미를 겸비한 건물구조라는 점에서 아주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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