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스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했다. 오분의 일 정도는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대입 예비고사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교사가 입을 열었다.

제군,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열심히들 공부헤주었다. 그런데 내가 담당한 이글스 성적이 예년보다 떨어져 제군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성적이 나빠진 책임이 교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제도를 만든 당국자, 그 제도를 받아들인 교육자와 학부모, 네 개의 답안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도록 사지선다형의 문제를 만든 출제자, 문제지 인쇄업자, 불량 수성 사인펜 제조업자, 수험 감독관, 키펀처 관리자슈퍼바이저 프로그래머, 컴퓨터가 있는 방의 습도 조절 책임자, 판정자 역을 맡은 컴퓨터, 물론 나의 수업을 받은 제군 자신, 그리고 제군 앞에 서서 가르쳐야 될 나에게 늘 엉뚱한 주문을 한 진학지도 주임과 그 위의 교감‧교장, 또 가르침을 주고받아야 할 제군과 나의 기분에 영향을 준 학교 밖 구성원들의 계획‧실천‧음모‧실패 등 책임 소재를 정확히 밝히자면 들어야 할 것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나 혼자 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누구입니까? / 한 학생이 물었다. / 누가 선생님께 지웁니까?

손혁이다. / 교사가 말했다.

다른 학생이 일어섰다. / 정확히 말씀해주십시오.

손혁이다. 누가 이 이상 정확히 말할 수 있겠는가? 손혁 자신에게는 죽을 때까지 져야 할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게 특징이다. 그는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다.

교사는 두 손을 교탁 위에 얹었다. 그는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을 글로 써서 제군들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 줄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실망했다. 나에게는 너무 큰 슬픔이어서 한 문장도 바로 끝낼 수 없었다. 한 주전자의 커피와 한 말의 술을 마시면서 좋은 글을 못 쓰고 울기만 한 나를 이해하라. 그러나 나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제군이 아직 모르는 작은 혹성으로 우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우주인을 만나셨습니까? / 한 학생이 물었다.

그렇다. / 교사가 말했다.

그곳에는 보라색 물푸레 나무가 있고, 사시사철 노란 사철나무가 있다. 주황색 비가 내린다고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계획적인 그들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간 다른 사람의 전언에 의하면 노골적인 의도에 침해받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고 한다. 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달라. 긴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 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모두들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 다른 인사말은 생략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