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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한국인 나파륜

ssss 2006.11.09 18:49:32
조회 544 추천 0 댓글 6




유럽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한국인 나파륜 1. CORSICA 코르시카라는 섬이 있다. 최초의 주민은 이베리아인이었으나 이후 페니키아인, 에트루리아인, 카르타코인, 로마인 등이 차례로 식민지로 삼았고 8~10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에 점령당하여 무르시카 (MOORSICA)로 불렸던 섬이다. 14세기 부터는 제노바가 지배하기 시작했고 1768년에는 제노바가 프랑스에 매각하여 지금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면적 8,681km2. 인구 약 25만(1991). 주도(州都)는 아작시오(이탈리아어로는 아야쵸). 북서부에는 친토산(2,710m) 등의 해발고도 2,000m를 넘는 산지가 이어지며, 1년의 반은 눈에 덮여 있으나 대부분의 산지와 구릉지대는 마키라고 하는 관목림으로 덮여있는 척박한 땅... 임진왜란 당시 유럽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로서 루벤스라는 당대 최고의 화가를 불러 '한복입은 남자' 라는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출세한, 한국에서는 안토니오 꼬레아라고 알려져 있는 남자를 아는가? 당시 수십만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끌려가 도공등 기술이 있는 자는 일본에 억류되어 조선인 부락을 이루어 살게 되고 상당수는 2두카트라는 정상 시세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헐값에 포르투칼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가 국제 노예 시장의 시세를 폭락시킨 바 있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최소 1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조선인들이 1차로 팔려간 곳은 일단 필리핀, 말라카 등 오지의 스페인, 포르투칼 상관. 그나마 나은 경우는 마카오나 인도... 더 멀리간 경우는 동아프리카의 포르투칼 영지... 이들을 제외하고도 머나먼 항해 끝에 유럽까지 닿은 조선인이 무려 수천명에 이르른다. 이들은 유럽 본토에서 노예 노릇을 했을까? 극히 일부는 그랬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아직 전근대적 봉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시 유럽에서 신이 부여한 자신의 백성이자 노예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진 백인 농노 사회에 황인종이 낄 자리는 없었다. 그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제노바가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확보한 땅 코르시카였다. 이 일군의 조선인들은 그때까지도 무어인의 땅 무르시카로 불리던 이 척박한 섬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했고, 타고난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섬을 일구고 결국 주류가 되었다. 무어인들의 섬이라는 의미의 무르시카가 코레앙들의 섬이라는 뜻의 코르시카로 바뀐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 불어, 이태리어 등에서는 한국을 COREA로 표기한다.) 물론 백인의 이주도 이어져 대부분이 혼혈화 되었으나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조상의 기일에 음식을 차리고 선조를 기리는 "체아사(제사)" 라는 풍습은 물론 조선인 고유의 연자방아, 그리고 서양화되긴 했으나 한 눈에 윷놀이와 비슷함을 알 수 있는 " 브라냐시오" 라는 놀이 등 조선 특유의 풍습이 자주 발견되는 섬이다. 인종적으로도 비록 얼굴의 특질은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히 서양화되었지만 평균 신장은 프랑스와 비슷하지만 하체 길이가 2.3cm 나 차이가 나고 곱슬머리 및 금발의 비율이 현저히 적은 등 부분적으로 인종적 특색을 보이고 있다. 이 사실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코르시카섬 자체가 워낙에 작고 인구도 적은 대중의 관심에 소외된 섬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아마도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보다도 더 소홀히 취급되었을 변방인 만큼.. 아직도 코르시카섬에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테지.. 결국 유럽인들에겐 관심 밖의 섬인만큼 코르시카섬 조선인의 역사는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 정부의 노력은 돌아버릴 만큼 희미하다.. 2.부오나파르테 (Buonaparte) 이탈리아 귀족가문으로 1100년 이전 피렌체에 정착, 13세기에 산 미니아토와 사르차나 집안으로 나뉘었다. 16세기 중엽 사르차나 집안 출신의 프란체스코가 코르시카섬으로 이주하였고, 그의 후손들은 그곳에서 법률과 행정업무에 종사하였다. 이 프란체스코 부오나파르테의 아들이 비눈치오 부오나파르테( 1569~1624 ) 그의 직업은 코르시카섬의 제재소 감독관. 1601년 그의 일기에 20 두카트에 동양인 노예 30인을 사들였다는 기록이 지금도 남아있다. 1606년 일기에는 이 노예들이 모든 빚을 갚았고, 자유인이 된 이 동양인들의 노동능력과 명석함을 높이 평가해 자유인으로서 정식계약을 맺고 일꾼으로 고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말년까지 이 동양인들을 일본인으로 착각했던 듯 싶다.. 1619년 일기에는 마을 주민 중 지팡구인이 3분의 1에 이르르며 모두가 성실한 크리스챤으로 백인들보다 영리하고 근면하여 백인들과의 결혼이 늘어나고 있고 그 아이들 또한 영리하고 예의바르다고 칭찬하고 있다. ( 이때까지도 동양은 미개한 것이 아닌, 신비롭고 풍요로운 이미지였다..) 이 부오나파르테 가문은 널리 퍼져 코르시카에서 꽤나 흔한 성이 된다. 1654년 로렌초 부오나파르테라는 코르시카 항만의 사무관은 마르조 추 핀토 라는 다소 이상한 이름을 가진 여인과 결혼한다. 소녀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로베르토 추, 원래 이름은 추정식 추정식의 아들은 핀토라는 이탈리아 성을 쓰면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추라는 성을 미들네임으로 쓰고 그 이름을 딸에게 물려준다. 그를 끝으로 추라는 성은 더이상 기록에 없는 것으로 보아 혼혈이 진행되면서 완전히 이탈리아화 된 것으로 보이지만 공자를 열렬히 숭배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1729년 영국 망명에서 돌아와 읽은 책 목록 중엔 이 핀토 집안 출신의 학자 마리오 핀토(? ~ 1709) 가 쓴 이탈리아어판 논어 해제본이 끼어있다. 현재 그 후손 중 한명인 베르띠 핀토씨의 집에는 추정식 본인이 쓴 것을 필사한 듯한 논어가 소장되어 있는데 대략 1630년대에 쓴 것으로 추정되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논어의 대부분이 옮겨져 있다. 어쨌든 마르조 추 핀토와 결혼한 로렌초 부오나파르테는 당대에는 드물게 장수하여 증손자인 부오나파르테가 태어나던 해인 1711년, 부인인 조선여인 마르조 추 핀트가 죽은지 한달만에 아내를 따라간다. 증조부모의 생명을 받고 태어난 이 아이 파울로는 상술에 재능을 보여 적당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최소한 코르시카 섬에서는 꽤 명망있는 소지주 부오나파르테 가문의 대주가 되었다. 파울로 부오나파르테는 1746년, 증조모의 혈통을 이어받았는지 불궈진 광대뼈가 인상적인 고집세 보이는 얼굴의 아이를 낳는다. 훗날 공부에 재능을 보여 이탈리아에 유학가 법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코르시카 섬에서는 꽤나 유력인사가 될 이 아이의 이름은 카를로 부오나파르테였다. 3. 라몰리노 가문 라몰리노 가문은 유서깊은 이탈리아 대귀족인 롬바르디아의 콜랄토 가문의 후예로서 너그러운 영주이자 콜랄토 백작인 아브라함 라몰리노의 아들인 나폴리 왕국 샤를 5세의 근위 장교인 가브리엘 라몰리노가 제노바 원로원의 딸과 결혼하면서 코르시카의 이작시오에 영지를 불하 받게 된다. 그러나 라몰리노 가문이 불하받은 이 영지에 최초로 정작한 라몰리노 가 사람은 가브리엘의 아들인 니콜라 라몰리노 대령.. 이때가 1524년이었고 제노바 공화국의 이 용맹한 군인은 급속하게 코르시카인화 된다. 이탈리아 본토의 라몰리노 가문과 별개로 이 작은 섬에 정착한 니콜라 라몰리노의 후손들은 귀족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오직 단 한번 본토의 라몰리노 가문의 유력자인 노옹, 마르코 라몰리노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1623년의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기록이야 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기록이다. 니콜라 라몰리노의 손주 며느리인 미망인 타티아나 라몰리노가 남편이 남긴 유일한 혈육인 외동딸의 혼인 문제로 먼 친척인 늙은 귀족의 진노를 산 것. 이에 대해 당사자의 기록은 없고, 다만 제노바의 유력인사였던 늙은 마르코 라몰리노 노인에 대한 기록만이 남아 있다. " 섬에 처박혀 살더니 이제는 귀족의 본분도 잊고 무어인과 결혼을 시켜?   이교도놈과 결혼해서 낳은 검둥이 자식에게 라몰리노라는 이름까지 주겠다고?   미친것 같으니! 라몰리노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작정을 한 것이야! " 과연 코르시카 섬의 아가씨와 결혼한 남자는 무어인이었을까? 노인을 달래는 루시오 파군데스(코르시카를 자주 다녀오는 상인으로 라몰리노 가문과도 자주 거래했으며 코르시카 라몰리노 가문의 혼혈 결혼 소식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의 이야기다. " 무어인이 아니올씨다. 더 먼 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피부도 검지 않고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태어난 아이의 피부도 하얗고 까만눈과 아름다운 흑발이 아주 아름다운 아이입니다. " 유럽인이 아니면 전부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이슬람인을 연상하던 당시의 세계관에 입각해 이슬람 흑인인 무어인과 결혼한 것으로 생각하고 분노한 마르코 노인을 달래는 대목이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백인도, 이슬람인도 아닌 코르시카에 사는 이국인은? 단 하나, 일본에서 팔려온 조선인밖에 없다... 이 아이의 이름은 비토 라몰리노. 조선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이작시오 마을의 행정관을 역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장 제롬 라몰리노라는 청년의 직계 조상이라는 기록이다. 존경받는 군인이자 코르시카 섬 토목국 총감독관이었던 장 제롬 라몰리노는 앙젤 마리아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1749년 8월 24일 예쁜 딸을 낳게 된다. 이 여자아이의 이름은 마리 레티치아 라몰리노였다. 4. 까를로 부오나파르테(1746-1785), 마리 레티치아 라몰리노 (1749-1836) 이탈리아에서 법률을 공부하던 18세의 청년 까를로는 어려서부터 이웃에 살던 15세의 꽃다운 처녀 마리에게 청혼하고 이들은 1764년 6월 2일 결혼한다. 이들 부부가 결혼한지 4년 째인 1768년. 제노바는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팔아먹게 되고 그동안 간헐적이나마 지속되었던 코르시카 독립운동의 대상도 제노바에서 프랑스로 바뀌게 된다. 한때 제노바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카를로는 제노바에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강한 프랑스의 힘에 밀려 프랑스 총독에 귀순하고 카를로 부오나파르테라는 이탈리아식 이름을 샤를 보나파르트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바꾼다. 프랑스 총독의 비호를 받은 샤를은 1771년에 아작시오 지방법원의 판사 보좌관으로 임명되고, 1778년에는 1779년 국왕의 급비(給費)를 받아 위로 두 아들을 콜레주 도툉으로 유학보낸다. 이 두 아들의 이름은 조제프, 그리고 나폴레옹이었다. 5.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세 (1769 - 1821) 아버지로부터 추씨 집안의 지성과 고집스러움을 어머니로부터 조선인다운 근면함과 근성을 그리고 양친 모두의 조선 핏줄로 부터 유럽인이라기엔 심하게 짧은 숏다리(^^;)를 격세유전하여 물려받은, 이 유럽대륙을 재패한 황제는 실제로 조선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1806년 일본에서 돌아온 네덜란드 상선의 선장 에드윈 바흘레와 접견할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이자가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조선은 해군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영국 해군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나폴레옹은 " 조선과 동맹을 맺고 그 해군력을 빌릴 방법은 없겠는가? " 라고 물었고 에드윈은 " 너무 먼 나라이기 때문에 동맹을 맺어도 실질적인 군사적 도움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808년 극동지역을 탐사하기 위해 함선과 박물학자들을 파견할 때에도 " 군사행동은 절대로 피할 것 " 을 명했고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 중 일부가 조선에서의 박해로 인한 선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았을 때는 그 전쟁좋아하는 성격에 " 신이 돌보실 것을 믿고 선의와 진정성으로 인내할 것 " 이라는 간단하지만 명료한 코멘트로 회답했다. 1817년, 그가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 그 곳을 방문한 버질 홀이라는 영국인이 자신이 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며 직접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주자 " 이 담뱃대도 맘에 들고 아주 보기 좋다. " 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조선의 역사는 중국만큼 길지만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한다는 이야기에 " 그런 나라가 있을 수 있는가? 믿겨지지 않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다. " 라며 강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코르시카 출신이면서도 프랑스의 황제가 되고 프랑스를 넘어선 세계인을 자처한 나폴레옹에게 조선이라는 먼 나라에 대해 특별한 집착이나 독점적 애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최소한 나폴레옹은 자신의 핏줄에 흐르고 있는 조선의 피를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조선에 대해 일관되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만약 그가 유럽을 재패한 후 육로 또는 해로로 조선과 직접적으로 조우했다면, 그리하여 자신의 조상들이 잔악한 왜적들에 의해 먼 곳 까지 끌려왔다는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됐다면 어땠을까? 조선의 이른 개항 및 진지한 동맹관계로 우리 민족의 발전은 급속하게 이뤄지고 일본은 나폴레옹 함대의 함포사격 후 프랑스 육군의 상륙으로 초토화 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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