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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기도와 사회정의-레오 13세의 인식

오늘도 술(203.253) 2011.01.08 18:23:43
조회 347 추천 0 댓글 1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령으로 새 로마 미사 전례서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로마 미사 전례는 사제가 미사가 끝났다고 파견 인삿말 뒤에도 항상 자잘하게 붙는 기도문이 많았다. 내 아는 것만 해도 북쪽을 향해 요한 복음서 첫 장을 읽는 것, 성모찬송경(Salve regina) 낭송이 있었다.   1886년, 교황 레오 13세는 미카엘 대천사에게 청원하는 내용이 다수 담긴,  장문의 구마기도문을 발표했다.  "Exorcismus satanam et angelos apostaticos" (사탄과 배반한 천사들을 쫓아냄)이라는 제목이다.   레오 13세는 라틴어로 된 이 기도문을 손수 지었다. 레오 13세는 또한 \'Sancte michael archangele, defende nos in proelio"(성 미카엘 대천사여, 전투 중에 저희를 보호하소서)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훨씬 짧은 기도도 함께 지어, 로마 전례를 따르는 모든 미사에서 마지막에 덧붙여 하라고 명했다.  첫 번째 긴 기도문에서도 첫 구절이 똑같아서,  짧은 기도가 긴 기도의 축약판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기도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자들이 널리 사용하는 묵주기도서에서 이 기도문을 번역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레오 13세의 긴 구마기도문에 다른 기도문을 덧붙여서 좀 더 길게 번역한 듯하다. 

레오 13세가 이 기도를 짓기 전에 경당에서 개인적으로 미사를 드리다가 혼절했다고 하는데, 이때 무서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악마가 교회와 세상을 공격하는, 묵시록적인 환상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요한 바오로 2세도 이 이야기를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레오 13세는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를 1891년에 발표한다. 이 기념할 만한 회칙을 두고 \'노동헌장\'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아래 인용문에서도 회칙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지난 세기에 숙련공들의 오랜 협동 조합(길드)이 무너져버린 채 그러한 역할을 맡을 다른 보호 조직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또 그와 동시에 제도와 법률들이 그리스도교 정신을 온전히 망각하기 시작하여 노동자들은 점차 고립 무원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인정머리 없는 고용주들의 무절제한 경쟁의 탐욕에 무참히 희생되어 왔다..."

(상기 번역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번역문을 인용했음)

레오 13세는 발표 당시인 19세기 말 유럽 노동계에 대하여, 노동자들의 길드가 없어진 채 그 역할을 대신할 단체는 없다는 데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심지어 아나키스트인 크로프트킨이 쓴 글에서도 나타나는 바,  좌우를 가리지 않는 판단인 모양이다. (사실 크로프트킨은 유럽의 길드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노조보다 더 국제적인  성격마저 띄고 있다고 썼다.) 이 회칙은 당시 가톨릭 신자들에게 사회정의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거의 \'획기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태에서는 가난한 계층에 대해 어느 정도 특혜라 할 만한 원칙, 적어도 자본주의에서는 특혜라 할 만한 사항을 주문한다. 

" 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그 권리를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며 공권력은 권리의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 침해에 대해 처벌함으로써 각 사람에게 그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개인의 권리를 옹호함에 있어서, 국가는 특별히 약자들과 빈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부유한 이들은 자기 방어 능력이 있으므로, 공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덜하다. 이와는 반대로 빈곤한 대중은 든든한 재산이 없으므로, 국가의 재산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들이 빈곤한 대중에 속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들을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 "

레오 13세는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에 이미 사유재산권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이란 천부의 권리를 부정하므로 불의하다고 단죄한다.  부유한 자본가들에게는 회개하여, 일꾼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의 월급을 주라고 한다. 또한 과도한 노동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정의의 원리에 따르면 근로자와 노동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에 따라 체결된 업무를 온전하고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고, 사용자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그의 인격을 손상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경우에라도 폭력의 사용을 삼가야 하고 자신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폭동으로 변질시켜서는 안된다. 또한 허황된 것들을 약속하면서 교활하게 선동하는 자들과 야합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결과는 무익한 후회와 만사를 끝장내는 파멸일 뿐이다."

여기서 "허황된 것들을 약속하면서 교활하게 선동하는 자"이란 사회주의자를 가리킨다. 실제로 사회주의자라 번역한 언어판들도 있다.  레오 13세는 사회주의를 반종교적, 반국가적 사상의 극치로 여겨  타매했다.  \'새로운 사태\'에서 레오 13세는 이렇게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들과 연계하여 이른바 \'혁명\' 혹은 \'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몹시 경계했다. 

레오 13세는 우선적으로 국가의 안녕을 중요시하는 말을 많이 적었다.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노동자들에게 무력으로 투쟁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법과 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권리를 찾으라고 말했다.  레오 13세가 어디까지 상황을 상정하는지는, 적어도 \'새로운 사태\' 만으로는 알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레오 13세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악한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또한 \'또다른 악인 사회주의적 주탱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안녕이 침해되는\' 사태도 바라지 않았기에,  미적지근하게 줄타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사태\'는 가톨릭 노동단체들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나, 또한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단체들과의 연대는 하지 못하게 막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자본가, 국가, 노동자간 계급에서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이 사회정의를 이루는 중간 가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오 13세의 세상인식은 어떠했을까?  레오 13세가 발표한 구마기도문을 미사 떄 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보아, 어떤 묵시록적 암흑이 가톨릭 교회를 적대한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교회를 악마의 권세로부터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인식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11월 1일 전 일요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정한 데서도 나타난다. 비오 11세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정한 교서에서 스스로 밝히기를, \'무신론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언하는 교육적 목적에서...\'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영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가 연계되어 교회에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는 식의 인식.  레오 13세는 사회 문제를 해걸하고 계급간 갈등을 없애는 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새로운 사태\'에 서술했다.  하지만, 레오 13세는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결국 레오 13세가 구마기도를 미사에 덧붙이기나 비오 11세가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제정하기나,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사회관이 전제된 것 같다.   진실로 위대한 교황 요한 23세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기까지, 비슷한 시선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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