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이야기하자면 지금껏 우리나라 재무장관은 주로 그렇게 금융을 다루던 관료들이 맡고 있다. 금융을 담당하는 부서는 재무부에서도 엘리트들이 거쳐가는 코스로 통한다. 조세를 담당하는 부서 관료는 성골이 아닌 진골 정도로 여긴다. 특히 세제 담당부서는 한직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평생동안 그렇게 조세 영역을 얕게 보면서 금융 관료 코스만 착착 밟아 온 사람들이 장관이 되다보니 조세를 다루는 것도 금융을 대하듯 한다. 조세를 금융처럼 '잘못되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되지'하는 식으로 다룬다. 지금껏 우리나라에 누더기 같은 세제가 만들어지고 세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신뢰도가 높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의 탓이 적지 않다.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는 과정에 웃기고 슬픈 일이 많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세법은 대부분 일본 것을 모방했다. 일본 법전을 가져다 베끼다시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부가가치세 입법을 준비하던 1970년대 초반 일본은 아직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관료들이 참조할만한 대상이 없었다. 재무부 간세과에 부가가치세를 담당하는 사무관이 한 명 임명되었는데, 그가 일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 영국의 부가가치세에 대한 책자만 열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뿐이고, 일본에는 부가세가 없으니, 실패한 영국의 부가가치세 법전을 가져와서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잘못된 기출문제 답안지를 빌려와 그것을 달달 외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영국은 실패한 부가가치세의 사례라고, 그에게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