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까지는 이런 생각 안 했다.

좆소긴 해도 아무튼 혼자먹고사는데 지장은 없고
좀 못났어도 대학생활 찬스 놓치지 않고 연애도 몇번 해봤고
혼자살더라도 취미도 있고 살림도 잘하고있고
투자도 꾸준히 하고있고 수익률이 높진 않아도 안정적이고
나름대로 즐겁게도 살며, 나이먹는것도 대비하며
균형있게 잘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시팔 단 하루의 경험이 나를 바꿔놨다.
옛 직장 상사의 장례식이었다.
정확히는, 한 독신 남성의 장례식이었다.

주말이 아니었다면 굳이 찾지 않았을법한 사이였다.
현 직장도 아닌 이전 직장의 지인이었고, 직속 상사도 아니었으므로, 적당히 알기만 하던 사이였다.
허나 타 부서라는 이유로 그보다 한참 어린 나에게 정중하다 못해 공손한 말투를 사용하던 것이 기억에 남아 굳이 빈소를 찾았다.

암으로 죽었다는데, 세상에.
가정이 없는 자의 죽음이 그토록 가냘픈 것일 줄은 몰랐다.

그에게는 아내도, 자녀도 없었으므로 그의 형제가(형인지 동생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주를 맡았다. 그의 여동생(부의를 받으며 본인이 소개하였다)은 자리를 안내했는데, 형제와 여동생 모두 오륙십대-장년의 모습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한 차례 곡을 하셨는지, 기운이 다 빠진 채, 자리에 앉아 계셨다.

그랬다. 그의 생은 그 형제들의 나이먹음과 함께 스러지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의 딸은 자기 어머니(오빠를 잃은)의 심정을 고려하여 종종 손님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으나, 그와는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였는지 영정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형제의 두 자식은 어머니에게 밀명이라도 들었는지 상주인 제 아버지에게 조금 쉬시라, 말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이 영정을 스칠 때의 낯선 눈빛이란.

그의 생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세대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임을 그 풍경 속에서 알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저 유독 정중하던 한 사내의 마지막에 조의를 표하고, 잠시 슬퍼하고, 그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하나의 머릿수로 표해주기 위하여 찾아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아찔한 나의 마지막이었다.
손아랫형제조차 없는 나는 높은 확률로 죽음과 함께 증발해버릴 것이다.

나와 닮은 누군가를 세상에 남기고, 그 마음에 내가 살던 방식을 남기고, 그 일부를 다시 전달하며 조금 더 긴 생을 누리던 선조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고, 덧없고, 가냘픈 생.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죽음이 두려워졌고
이제는 혼자 사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고 있다.

좆같은 삶이란 무엇인지
나이가 들수록 두려운 것만 늘어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