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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나를 설득해 주세요

이응(175.203) 2017.06.30 23:59:49
조회 2207 추천 41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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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은 조금 전 죽을 위기를 넘겼어.

차와 함께 떨어져 추락사로 생을 마감하려던 위기의 상황에 기적처럼 시진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지.


꼭 구해주겠다며 자신을 믿으라던 시진을 모연은 믿어줄 수가 없었어. 너무 무서웠거든.

하지만 시진은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정말로 모연을 구했어.

모연에게 제대로 된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전에 순식간에 상황은 끝났고, 덕분에 모연은 지금 그 때의 공포보다도 다니엘의 가게에서 들었던 총소리에 더 신경이 쏠려.

 

발렌타인의 가게를 나와 서서는 이상한 표정으로 모연의 어깨 너머를 건너다보던 시진.

그 시선을 따라 돌아보려는 모연을 급하게 잡아채던 그의 손길.

의아하게 그를 보는 모연에게 시진은 곧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였지만 그녀는 그 미소에서 위화감을 느꼈었어.

그래서 먼저 돌아가라는 시진에게 무슨 일 있냐,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냐, 모연은 연거푸 물었고 그는 결국 짤막한 대답을 주었지.

시진은 본진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는 그럴듯한 말을 했었어.

그 땐 모연도 그 말을 믿었지. 안 믿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모연은 시진의 권유대로 다니엘의 가게로 차를 빌리러 갔던 거야.

그녀를 보내고 시진이 또 얼마나 무섭고 냉막한 얼굴의 [빅보스]로 돌아가 일을 할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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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이 모연을 보내고 돌아서서 한 일은 민간인인 모연에게 알리도록 허락되지 않은 군의 일이었어.

대대장 박병수가 경고했던 현지 경찰과 무기밀매상의 커넥션이 생각보다 너무 추악했지.


놈은 자신을 적발했던 시진의 앞에서도 전혀 꺼리낌 없이 의기양양했어.

또 잡아 넣어봐라, 시위라도 하듯이.


하지만 시진은 혼자가 아니었어.

아무것도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되고,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 좋을 것도 하나 없는 모연이 함께 있었으니까.


게다가 시진에게 있어서 모연은 그에게 비호의적인 무리의 눈에 띄어선 절대 안 되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그는 모연에게 차를 빌려 '곧장' 부대로 가라고 말했던 거야.

저런 놈들이 판을 치는 이 다운타운을 그 없이 모연 혼자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모연이 뒤돌아봐서 저들에게 얼굴조차 보일 일이 없도록 시진은 내내 그녀의 뒤를 지켜보고 서있었어.

 

그렇게 모연이 믿을만한 가장 적당한 거짓말로 그녀를 보내고 돌아선 시진은 바로 표정을 고치고 [빅보스]로서 일을 했지.

그런 시진의 앞에 나타난 무리의 우두머리는 그가 익히 아는 사람이었어.

아니, 아는 사람 수준이 아니라 시진이 깊은 호의를 갖고 있던 그의 전우이자, 그가 존경해 마지 않던 군인이었던 남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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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 콜사인은 아직도 델타 포스의 전설입니다./"
"/전설은 돈이 안 돼서 말이야./"

 

돈...

생명을 구하겠다고 군인을 하던 아구스는 이젠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어.

예전의 그 명예따윈 다 내팽개친, 뒷골목 구린 돈냄새를 풀풀 풍기는 악당 말이야.

 

시진이 총알이 빗발치는 데를 뚫어가며 목숨을 걸고 구했던 전우는 그렇게 살아남아 악행을 일삼아 왔던 거야.

김진석 대위의 목숨값까지 지고 살던 남자는 그 값을 그런 더러운 곳에 쓰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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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은 끔찍한 후회와 분노를 느끼며 눈 앞의 남자를 노려보았어.

한때는 그의 우상이었으며 전우였던 남자를.

 

"내가 쓸데없이 신의 뜻을 거슬렀네. 죽어가던 놈은 죽어가던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텐데."
"/모국어 뒤로 숨는 거야?/"
"/나도 부탁인데, 꺼져. 앞으로 절대 내 눈에 띄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누군가의 목숨값을 받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시진이 충격과 분노에 떨던 그 시각, 모연 또한 다니엘이 해준 이야기로 받은 충격을 견뎌 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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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이 쏘았던 위협사격 소리에 모연은 놀라 돌아보긴 했었지만 그게 시진과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었어.

본진에 일이 있다던 사람이니 금세 여길 빠져나갔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치안이 안 좋은 나라가 맞긴 하구나, 다친 사람은 없을까 걱정은 했었지.


의사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하는 다니엘의 말에 모연은 일단 그 문제를 신경쓰지 않았어.

총에 맞아 사람이 다친 게 아니라면 의사인 모연과는 무관한 일이었으니까.

모연에게 그 땐 그 문제보다 눈 앞의 사람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중요했어.

 

"추도식의 멤버라고 해야 하나요?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여기 우르크에서도, 저흰 주로 추도식에서 봅니다."

 

다니엘의 말에 모연은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어.

시진에게서는 더이상 들을 수도, 물을 수도 없게 된 문제 말이야.

 

"이런 질문이 좀 조심스럽긴 한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겠다 싶어서요. 혹시 유시진 대위님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아세요?"

 

그래. 모연은 지금이 아니면 답을 들을 수가 없어.

지금 시진이 없는 때에 모연과 대면 중인, '시진의 추도식 멤버' 다니엘이 아니면 그녀는 물어볼 데가 없는 거야.


고인이 된 시진의 전우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했던 일,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시진이 한다는 그 [일]이 두루뭉술하게 말고 정확하게는 무슨 일인지를 모연은 다니엘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어.


시진은 이미 답하기를 거부했고, 그렇기에 그의 가장 가까운 부사관들에게도 물을 수가 없지.

모연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대답인데 시진에게도 그의 측근에게도 물을 수 없으니, 누구에게라도 모연은 답을 얻어야만 해.


그 답 없이는 모연이 내릴 수 있는 결정도 낼 수 있는 용기도 없으니까.

모연은 사실 다니엘의 대화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랐을 거야.

하지만 다니엘이 해준 대답은 모연에게도, 시진에게도 전혀 반가운 대답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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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의 일은 총알이 빗발치는 데를 뚫고 전우를 구하러 가는 정도가 아니었던 거야.

총을 쏘고, 총을 맞는게 다가 아니라 일을 하다 피랍을 당하고, 그곳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가 최후를 맞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을 시진은 하고 있었어.


그런 일이어서 시진은 답을 주고 싶지 않아 했던 거야.

정말 그에게 너무도 많이 불리해질 테니까.


시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더 궁금한 거 있어요?"
"아뇨... 충분합니다."
"뭐에 충분하죠? 이해하는데? 아님 멀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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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의 마음에 떠오른 답은 뭐였을까?

적어도 이때 모연이 했던 충분하다는 말의 의미는 분명 [멀리하는데]였을 거야.

그 뒤에는 다시금 복잡해졌겠지만, 적어도 이 때까지 만큼은 모연은 분명 시진과 거리를 둘 생각이었을 거야.

다니엘의 말은 시진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또 반쯤 잠든 모연의 현실감각을 거세게 흔들어 깨웠으니까.

 

죽음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사는 사람을 정말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럴 만한 용기가 있나.
내가 지금 미친 짓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내 무덤을 파는 짓이 아닐까.
이 어리석은 짓은 그만해야 옳을 것 같은데.

 

하지만 시진은 모연이 멀어지게 두지 않았어.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운전을 하다 그대로 절벽을 향해 돌진해버린 모연에게 시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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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요 거기. 지금 뭐 보여요. 보이는 거 아무 거나 말해 봐요."
"차가, 차가 절벽에 걸려 있어요..!"
"내 목소리 들려요?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갈게요. 내가 찾을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유시진씨... 끊지 마요...!"

 

시진은 아구스와의 불쾌한 재회를 끝내고 모연을 찾으러 다니엘의 가게로 왔었어.

하지만 모연은 이미 떠나고 없었지.

그래서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의 심장을 말라 붙게 하는 모연의 우는 소리를 듣게 된 거야.

통화권 이탈로 그대로 끊겨 버린 전화에 시진은 무작정 막사 방향으로 도로를 되짚어 갔어.


그 시간동안 얼마나 시진은 피가 바짝바짝 말랐을까.

모연을 구할 시도도 해보기 전에 그녀가 탄 차가 버티지 못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봐 얼마나 불안했겠어.

또 많이 후회했겠지. 모연을 혼자 보낸 자신의 결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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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지프는 시진이 도착할 때까지 여전히 절벽에 매달려 있었어.

시진은 그나마의 사실에 안도했을 거야.


그는 당장이라도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차에 올라타는 걸 망설이지 않았어.

구조의 가능, 불가능을 따지기 보다 먼저 그 상황 속으로 뛰어 들었지.


시진은 아마 그 차에 탄 사람이 모연이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야.

다만 그 사람이 모연이었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긴 했겠지.


다행히도 시진은 모연을 구해냈고, 두사람은 한 차를 타고 막사로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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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의 신속한 대처에 모연도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지 않았어.

오히려 모연의 뇌리에 깊게 남은 건 사고 전에 다니엘의 가게에서 들었던 총소리였지.


헤어질 때 어딘가 석연치 않던 시진의 표정, 모연이 있던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 총소리, 본진에서 왔다기엔 절벽에 너무 빨리 나타났던 시진.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건 명확했어.

 

"본진에 갑자기 볼 일이 생겨서요."
"혼나러 가는 건 맞는데 보고서 때문에 갑니다."

 

그 땐 시진의 그 대답을 그냥 믿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


그는 모연에게 또 한 번의 거짓말을 한 거야.

탓할 수도, 탓해서도 안 되는 그런 기묘한 거짓말을...


그 때 모연의 상념을 뚫고 시진이 나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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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커피 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시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그저 평화롭게 커피 두 잔을 든 채로 모연에게 다가왔어.

그 총소리의 주인이라기에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라기에도 너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신경안정제 같은 거 필요하면 얘기해요. 처방해 줄게요."
"?"
"유대위님도 놀랐을 거 아니에요. 나야 정신없이 당했지만."

 

모연의 일반적인 사고 내에선 이 일은 충격적인 일이야.

물론 시진의 빠른 대처 덕에 둘 다 아무데도 안 다쳤고, 생각보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후유증이 남지 않으리란 법이 없는 큰 사건이지.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보통 사람에겐 흔한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시진은 그저 모연의 걱정만 흐뭇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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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신경 써주는 겁니까?"
"써야죠. 생명의 은인인데."
"목숨 정돈 구해줘야 신경쓰네 이 여잔."

 

시진에게 추락 사건이 준 충격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서 위험했던 목숨이 모연이었다는 거야.

자신의 목숨 또한 걸었지만, 그보다 모연을 살릴 수 없게 될까봐 그에 대한 공포가 시진에겐 더 컸지.

그래서 시진은 이후 모연에게 무전기를 들려 주었던 거야. 그의 마음이 너무 불안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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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까, 아까 나 구하려고 본인 목숨을 건 건 알아요?"
"...살려달라면서요."

 

유시진은 그런 사람이야.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걸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그래서 그냥 살려달라기에 살려줬다고 말하고 넘기고 싶어하는 사람.

생명을 구하기 위해 했던 일을 농담인 척 말하는 사람.

 

"나 처음 만났을 때 그랬죠. 총알이 빗발치는 데를 뚫고 동료를 구하러 갔다고. 그 라이언 일병 구하러 갔었단 얘기, 농담 아니었죠."
"..."
"그래서 라이언 일병은... 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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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은 순간 오래 전 과거 속의 그 때와 오늘 낮의 일을 회상해.

그가 구했던 명예로운 군인과, 오늘 그 때의 일을 후회하게 만든 그 악인이 동일인물이라는 게 시진에게는 고통이야.


누구보다 잘 살아주길 바랐던 사람인데 그 사람은 가장 추악해져선 시진을 슬프게 만들었어.

 

"구했는데, 안 구했으면 어땠을까... 오늘 처음 후회했죠."

 

모연은 그의 말에 순간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

시진의 표정에 묻은 후회와 허탈, 슬픔을 본 걸지도.

 

"아까 나 먼저 보냈을 때... 나한테 거짓말 했죠."
"..."
"생각해보니까 본진에 갔다던 사람이 날 구하러 너무 빨리 나타난 거죠. 본진에 일 있다는 거 거짓말이었죠. 철물점에서 내가 들었던 총소리, 그거 유시진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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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복잡해졌겠네요. 마음이."
"..."
"그냥 나한테 맡겨 볼 생각은 없어요?"
"미치겠네 정말. 유시진씨가 이러니까... 난 자꾸 더 복잡해지죠."

 

자신의 거짓말을 간파해낸 모연에게 시진은 할 말이 없어.

변명할 만한 거짓말도 아니었고 모연도 탓하고자 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두사람은 그냥 서로 간에 거짓말을 해야만 하고 그걸 들어야만 한다는 처지가 슬프고 답답할 뿐인 거야.

 

시진이 쏘아낸 총소리나 그가 하는 거짓말에 모연의 마음이 복잡해진 게 아니야.

이런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는 걸 모연 자신도 아는데도 멀어지려 할 때마다 시진의 말과 행동이 자꾸 그녀를 끌어당겨서 복잡한 거지.


오늘도 모연은 다니엘의 이야기를 듣고서 시진을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좀 더 가까워졌었어.

그런데 시진은 목숨을 걸고 모연을 구하러 왔지.

이렇게 시진이 자꾸 그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모연의 마음이 자꾸 더 복잡해지는 거야.


잡을 수 없어서 슬픈 남자와 차마 더 가까워질 수가 없어서 미안한 여자가 맞추는 시선 사이로 어둠이 내렸어.

 

"정전이에요. 전기 공급이 안 좋아서. 30초 정도 있으면 다시 들어와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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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이라는 핑계로 두사람은 방금 전까지 나누던 어느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던 대화를 멈춰.


하늘에 계신다는 신은 참 심술궂은 분이 맞는지, 두사람 사이를 질투해 잠시 떨어뜨려 놓기를 반복하더니, 정말 두사람 사이가 심각해지려고 하면 이렇게 잠시 그 시간을 유예하듯 멈추게 해줘.

두사람에게도 내심 반가운 일이야.

끝까지 갈 뻔한 대화를 멈추게 해주었으니까.


그리고 이윽고 어둠 속에서 마주치는 눈빛에 두사람 모두 서로를 피하지 않아.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바라만 보는데도 좋은 사람인데 평소에는 두사람 다 그럴 수가 없지.

아직은 시진이 하는 일이 두사람 사이에 불리하기만 하니까.

그래서 이 30초의 시간이 두사람에겐 어떤 시간보다도 마음 가장 깊고 솔직한 곳에서 필요로 하는 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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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인다고 이상한 짓 하면 소리 지를 거예요."

 

시진의 말은 아마 모연에게 그렇게 하라고 당부한 걸 거야.

내가 이 어둠을 틈타서 당신한테 이상한 짓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소리 지르라고.

내가 또 저번처럼 용기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시진의 농담에 섞인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연은 그저 웃기만 해.

 

"오늘 나 구해줘서... 고마워요."

 

모연도 어둠을 틈타 어떤 말보다 먼저 시진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

고마운 일은 그냥 고마운 거니까.

 

"그래도 이상한 짓은 안 돼요."
"알겠어요. 단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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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이 된 어둑어둑한 내부, 불이라곤 타닥타닥 타는 붉은 모닥불 뿐인 곳에서 두사람은 그저 서로만 보고 있어.


불 꺼진 어둠 속에서 잠깐 현실은 잊고 서로만 바라볼 기회를 얻은 것처럼 그렇게 두사람은 내도록 눈을 맞추고 있었어.

방금 전까지 오가던 슬픈 눈빛이 아니라 다른 감정 다 버리고 어둠을 틈타 저 사람을 눈에 박아 가려는 것처럼 애타게 바라봐.

밝은 불 아래에선 이렇게 오래도록 바라보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아직 허락받지도 허락하지도 않은 사이라서 밝은 곳에선 서로를 이렇게 오래도록 볼 수가 없으니까 어둡다는 핑계로 보고 싶은 만큼 보는 거야.

서로가 상대방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저 보고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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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라는 시간은 어찌나 짧은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두사람에겐 너무나 야속하게도 결국 전등불빛이 들어왔어.

그 사이로 너무도 솔직하게 마주보고 있던 눈빛이 드러났지.

시진을 행복하게 하고, 모연도 딱히 숨기고 싶어 하지 않는 눈빛이 말이야.

 

"계속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어요?"
"그런 눈이 어떤 눈인데요?"
"눈을 못 떼겠는 눈?"

 

정전이 되기 전 나누던 그 대화는 둘 다 이어가지 않아.

이어가고 싶은 대화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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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두사람에겐 시간이 필요해.

시진이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당연하지만 모연도 그를 거절하고 싶지가 않거든.

다니엘의 이야기는 모연의 생각보다 더 무섭고 끔찍했지만 모연은 아직 시진에게서 떠나고 싶지가 않아.

시진이 꼭 자신을 설득해주기를, 그래서 그에게 그냥 맡겨볼 수 있게 되기를 모연의 솔직한 마음은 아주 많이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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