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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2

김호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7.02 12:13:52
조회 224 추천 1 댓글 7

  와이는 내게 죽어버리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발등에 자꾸 걸려서 몇 번 그녀의 의중을 물어보려고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소득이라고는 듣기 거북한 말을 여러번 들은 게 전부다. 술 먹고 연락이 끊긴 건 와이인데, 거기다 대고 \'사귀는 걸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말한 것이 이 정도의 비화가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죽어버리라는 말은 해본 적이 없다.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은 많았지만, 차라리 죽여버린다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왜 와이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마땅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와이가 어려서라고 짐작을 한다. 와이의 나이면 모든 게 어려운 동시에 자긴 아무렇게나 처신을 하고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기 십상일 때다.

  무려 여섯 살이나 어린 열일곱 살 여자애와 희희락락 연애한 나도 도의적으로는 지탄 받아 마땅한 놈인 건 맞다. 아는 여자는 내게 "17살이 여자로 보이냐?"라고 날카롭게 물었었다. 나는 웃는 것으로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와이가 그 질문을 던진 여자애보다 두 배는 더 성숙한 몸을 갖고 있었다. 아니, 역대 최고였다. 처음 만난 것도 술집에서였고 가장 처음 와이가 말했던 대로, 나는 와이가 24살인 줄만 알고 있었으니까. 본래 감정이라는 게 시작과 끝만 어렵지 과정은 수월하다.

 

  지금 당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와이의 다정함과 행동 면면의 어여쁨, 그리고 그녀의 가슴이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채로 뒀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않았으며 모르는 것은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만 와이의 심정에 다가설 수가 있을 거였다. 아무것도 몰라야 했다. 왜냐하면 와이 본인 조차도 자신이 무슨 기분인지를 모르고 있는 때문이었다. 와이의 처신머리가 생각나서 답답하고 씁쓸하고 분이 찰 때 나는 \'17살\'이라는 단어를 되낸다. 그러면 모든 걸 수긍할 수가 있다.

  "걔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럼 그럴 수 있지."

  『몽정기2』에 나오는 강봉구(이지훈)이 된 기분이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채로 두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 것, 어쩌면 위 두 가지 방법이 납득과 이해의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남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이며, 인간은 다들 무력한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제이를 만났다. 제이는 스무 살이다.

 

  돌아보면 와이 이후 2주 동안 와이를 포함해서 세 명의 여자와 잤다. 육체관계의 횟수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고 나는 가급적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내가 게이도 아니고 남자와 깊은 관계를 가질 수는 없으므로.

  단기간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니까 뭔가 알 것 같다. 누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어떤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인지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이와는 조금 더 만나봐야겠다 싶다. 제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제이를 몰라서다. 그리고 누군가를 붙잡고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요즘 놀라고 있는 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으면 사람들은 마치 내가 사려심 깊은 인간인 줄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선배라는 작자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울퉁불퉁한 면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그 의중과 상관없이 사려심 깊어 보이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어딜 가도 착해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소설 속 선배라는 놈처럼 나 역시 그저 무심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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