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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왜 하는가? / 고 김현 선생님 영전에 1"

박남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7.06 06:49:19
조회 699 추천 0 댓글 26


 시인 박남철: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1870) 앞에서 [2011. 7. 4.]



       문학은 왜 하는가

         ---고 김현 선생님 영전에 1


                                  박 남 철



 아파트 입구 경비실 앞의 우편함에 가보기가 두려운 요즈음. 돈 내라, 돈 내라, 돈 내라...... 읽어 봐라, 읽어 봐라, 읽어 봐라...... 내가 \'시집\'이란 것을 읽지 않기 시작한 지가 벌써 언제부터가 되었지? 내게 \'시집\'이란 것을, \'소설집\'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나는 참 불쌍하다.


 내게 돈 안 되는 원고 청탁서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나는 참 불쌍하다.


 그런데 또 내게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란 곳에서 우편물이 날아온 것이다. 어? 이건 \'회비\' 내란 소리일 텐데...... 저번에 『작가』지에 발표한 시편들의 고료로 70만원의 거금을 받은 적도 있으니 이젠 단돈 7만원이라도 보내줘야 할 텐데...... 그런데 막상 봉투를 뜯어보니 난데없는 \'원고 청탁서\'였다. 원고료는 단돈 6만원. 에라, 안 쓰고 말지...... 그까짓 전화료도 안 되는 6만원. 후유...... 그런데 청탁자들의 이름들을 보니 『해청』, \'해동청 보라매\'도 아닌 고 모 형렬 모 시인의 이름까지 끼어 있어서 심히 곤혹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에라, 그래도 어쩔 것인가. 그냥 원고 마감 기일인 12월 5일을 슬그머니 넘겨버리고 말았다. 히히, 별일이야 있을라구. 요즘처럼 눈코 뜰 새 없는 내 하루 일당이 얼마인데...... 200자 원고지 20장을 쓰려면 20일은 족히 걸릴 텐데...... 감히 하루 일당도 안 되는 원고료로 원고 청탁을 해오다니. 이 사람들. 혹시 고, 김, 박, 하, 김...... 혹시 간첩 아닌가?


 도대체 저 \'원고 청탁서\'의 "1) 원고 방향: 시인이 평론가에게---故 김현 선생에게"란 \'원고 방향\'도 아닐 \'원고 주제\'부터 좀 봐라. 후유...... 도대체 \'故 김현 선생\'이란 분이 누구시지? 글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존함 같기도 하긴 한데...... 도대체 이 사람들 혹시 요즘 소변에 피까지 섞여 나올 정도로 과로하고 있는 나를 쓰러트려버릴 셈은 아닌가? 아니면 혹시 모두 아예 작당들을 하고 나서서 나를 울려버릴 셈은 아닐 것인가? 거의 모든 제자면 제자, 시인들이면 시인, 친구 분들이면 친구 분들에다, 아부꾼들이면 아부꾼들까지 이미 다 우려먹어 버린 주제를 가지고 이제 와서 왜 하필이면 내게다...... 말이다.


 지난 9월---9월이 맞나?---에 타계하신 황순원 선생님의 신문에 난 제자 명단에도 나는 도무지 없더라는데---선생님이 살아계실 때도 나는 제자 명단에는 잘 끼어 나오지를 않았었다; 그러니까 올해 내가 저질렀다는 그 무슨 \'박남철 성추행 사건\'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이다---그러한 내 주제에 이게 무슨 비현실적인 머시기란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원고 마감일을 3일이나 넘겨버린 금요일날 \'해동청 보라매\'도 아니고 살벌하지도 않은 고 모 형렬 모 시인의 조용한 목소리가 고요히 다시 날아들었다. 박형, 1주일의 여유를 더 드리지요...... (으......)


 일단, 함성호 시인의 아내이기도 하고 내가 털끝 하나 건드린 일 없는 김소연 시인에게 우선 전화부터 한 통 넣어두었다. 후유...... (하필이면 왜 이 세상 그 모든 일들은 꼭 바쁠 때만 사람을 더 들볶아댄단 말인가!)


 그래, 일단, 포커페이스로 자문자답부터 다시 한번 해보자. 도대체 \'故 김현 선생\'이란 분이 누구시더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존함 같기는 한데...... 글쎄, 나로서는 도무지 금시 초문인 분 같기도 하고...... 김현? 김현? 「金現感虎」?


 아, 하하하하, 이제서야 생각났다! 알고보니 바로 그 분이시로구나! 하하하하...... 독자놈들아, 아차, 독자님들이시여, 제가내숭을너무심하게떨었었나요?


 [~] 그 호기심의 심리적 자리를 끝까지 파헤쳐 본 정신 분석학은 그 자리가 욕망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편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득적(生得的)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살게 된 후에, 그 욕망을 최소한으로 규제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게 된다. 정신 분석학에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쾌락 원칙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규제하는 법규들을 현실 원칙이라고 부른다.


 쾌락 원칙이 현실 원칙에 의해 적절하게 규제되지 않으면 사회는 성립될 수 없다. 그 현실 원칙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 윤리에 위배되는 일을 금하는 갖가지 금기(禁忌)들이다. 그 금기 때문에 욕망은 억압되고, 억압된 욕망은 원래의 욕망을 변형시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바로 그 욕망을 변형시켜 드러낸 것이어서 사람들의 한없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자기 욕망의 원초적 모습을 감지할 수 있다.


 쾌락 원칙이 지배하려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 즉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소유 욕망인데, 그 소유 욕망은 모든 재화(財貨)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재화는 적고 욕망은 크기 때문에 거기에도 현실 원칙이 작용하며, 그 현실 원칙 때문에 금기가 생겨난다. 그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바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호기심이며, 그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바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그 욕망의 뿌리가 같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욕망이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호기심이나 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이야기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건강한 사람들도 술에 취해 의식이 어느 정도 마비되면, 다시 말해 의식이 죽음과 가까워지면, 한없이 이야기하려 하고, 한없이 들으려 한다. 술 좌석에서 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이야기하고, 이미 들은 이야기를 또다시 들으려는 욕심이 생겨나는 것은 술이 억압된 욕망의 뿌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의식이 완전히 죽지 않는 한, 속에 있는 말---이야기---이 모두 밖으로 나오는 법은 거의 없다. 아니, 절대로 없다.


 이야기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다음의 옛 이야기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천하루 동안, 한국식으로 말하면 \'영원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밤마다 이야기를 하게 운명지어진 한 여인이 나온다. 셰에라자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자기 아내의 부정에 크게 노하여 여자의 정절을 믿지 않게 된, 그래서 하루 저녁을 같이 보낸 여자를 죽이는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된 왕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유예(猶豫)시켜 나가다가, 결국 왕의 나쁜 버릇을 고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죽이고 싶어하는 왕의 욕망과 살고 싶어하는 그녀의 욕망 사이에 있다. 아니, 차라리 그녀의 이야기는 그 두 욕망 사이의 가교(架橋)이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 두 욕망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그 어느 쪽 긴장이 풀어져도 그 결말은 죽음이다.


 죽음과 싸우는 셰에라자드 이야기 못지 않게, 레비스트로스라는 프랑스의 한 인류학자가 대번에 그리스의 미다스왕 이야기와의 유사성을 발견해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 역시 이야기가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임금님은 자기 비밀이 퍼지면 조롱거리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누설을 끝까지 막으려 한다. 이야기를 하면 혹은 이야기를 잘못 하면 죽는다. 그런데도 복두장이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실제로 복두장이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 죽을 병에 걸린다. 그는 대나무 숲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서야 살아난다.* [~]


 이상은,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 『국어(하)』의 제1 단원 「독서와 인생」에 실려 있는 김현 선생님의 「소설은 왜 읽는가」에 대한 긴, 부분 인용이다. 내가 이토록 \'원고 청탁서\'상의 "20매[장: 필자 주]는 절대 넘지 말아 주십시요"라는 제2항의 \'청탁 조건\'까지 어겨가며 긴 인용을 한 것은 절대 쓰기 싫은 원고의 장수를 채우기 위한 방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문장이 결코 김 모 현 모 선생님이 쓰신 김 모 정환 모 시인에 대한 어떤 \'젊은 시인론\'의 한 문장을 오마쥬hommage했다고 아니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급히 중국집에서 배달해온 \'짬뽕\' 한 그릇을 해치우고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한 서른두 살짜리 동료 여자 국어 강사의 눈총과 타박을 뒤로 하며 한 동네 보습학원의 강의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오늘 강의할 「소설은 왜 읽는가」라는 소단원을 펼쳐 든다. 그리고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겨우 수업을 시작한다.


 "얘들아, 이 글을 쓰신 김현 선생은 선생님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의 선생님이셨다고 해서가 아니라, 이 글은 선생님이 볼 때는 『국어(상), (하)』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글이다."


 ---계간 『시평』[햇살 공부](2001년 겨울호: 2001. 1. 20.), 제171면에서 175면 사이에서.




 *
추신: 『三國遺事』, 「四十八 景文大王」 조를 살펴보면, 복두장이가 다시 \'살아난다\'는 기록은, 실제로는, 없다. 그리고 \'미다스 왕 이야기\'에서는, 우리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후반부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얻어낼 수도 있게 된다. [2005. 1. 24. / 인용자, 시인 박남철]




 송골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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