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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무덤(115.22) 2011.07.20 03:13:05
조회 122 추천 1 댓글 1

우울.1 / 보들레르

장맛달은 온 도시에 화난 듯
항아리가 넘쳐 흐르게 뿌린다
이웃 묘지 창백한 주민에겐 음산한 냉기를
안개 낀 변두리 지역엔 죽을 운명을

내 고양이는 땅바닥에서 짚더미 찾으며
옴 오른 야윈 몸을 쉴 새 없이 흔든다
늙은 시인의 넋은 추위에 떠는
귀신의 슬픈 목소리 내며 빗물받이 속을 해맨다

큰 종은 한탄하듯 울리고, 연기나는 장작은
감기 든 추시계 소리에 최고 음역으로 반주하고
수종병 걸려 죽은 노파의 유품인

역한 냄새 가득한 트럼프에서
멋쟁이 하트 잭과 스페이드 퀸은
그들의 사라진 옛사랑을 침울하게 속삭인다.

우울.2

난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타래,
계산서, 시 원고, 연애 편지, 소송 서류, 연애시로
가득 찬 서랍 달린 장롱도
내 슬픈 두뇌만큼 비밀을 감추지 못하리.
그건 피라미드, 거대한 지하 묘지,
공동묘혈보다 더 많은 시체를 담고 있는 곳.
나는 달빛마저 몹시 미워하는 묘지,
기다란 구더기 기어다니며 회한처럼
내 소중한 시체를 향해 언제나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나는 또한 시든 장미꽃 가득한 낡은 침실,
거기 한물 간 온갖 것 흩어져 있고,
구슬픈 파스텔 그림과 빛 바랜 부셰의 그림만
마개 빠진 향수병 냄새를 맡고 있다.

눈이 많은 지난 세월의 무거운 눈송이 아래
우울한 무관심에서 나온 권태가
불멸의 크기로 커질 때,
절"뚝이며 가는 날에 비길 지루한 것이 세상에 있으랴.
이제부터 살아있는 물질이여! 너는,
안개 낀 사하라 복판에 졸며
막연한 공포에 싸인 화강암에 지나지 않으리,
무심한 세상 사람에게 잊혀지고 지도에서도 버림받아,
그 거친 기분으로 석양빛에서만
노래하는 늙은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으리.

우울.3

나는 비 많이 내리는나라의 왕 같아
부자이지만 무력하고 젊지만 아주 늙었네,
스승이 굽신거려도 무시하고
강아지도 싫증나고 다른짐승도 지겹기만 해.
사냥감도, 매도, 아무 것도 그는 재미가 없네,
발코니 앞에서 죽어가는 자기 백성도
총애받던 광대의 우스꽝스런 노랫가락에도
이 잔인한 병자는 이맛살을 펴지 못하네.
그의 백합꽃 장식의 침상은 무덤으로 바뀌고,
왕이라면 아무나 반해버리는 치장 담당 시녀들이
제아무리 음란한 화장술을 써도
이 젊은 해골같은 왕을 웃게 할 수는 없네.
그에게 금을 만들어주는 학자도
그 몸에 썩은 독소를 결코 뽑아내지 못하네,
권세가들이 말년에 갈망하는
로마인이 전해준 피의 목욕도
그 속에 피 대신 레테의 푸른 강물 흐르는
이 마비된 송장을 따뜻하게 하지는 못했네.

우울. 4

낮고 무거운 하늘이 덮개처럼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정신을 짓누르고
지평선 사방을 감싸며
밤보다 더 우울한 검은 빛을 퍼붓는다.

땅이 축축한 지하 독방으로 바뀌자,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소심한 날개를 벽에 부딪히다가,
썩은 천장에 제 머리 박으며 가버린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발은
거대한 감옥의 쇠창살을 닮고
소리 없는 더러운 거미 떼가 와서
우리 뇌 속 싶은 곳에 그물을 친다.

갑자기 종들 성나 펄쩍 뒤며
하늘을 향해 무섭게 울부 짖는다.
악착같이 불평하기 시작하는
정처없이 떠도는 망령처럼.

북소리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 행렬이
내 넋 속에 서서히 줄지어 서고,
희망은 패하여 눈물 짓고, 잔인하고 포악한 고뇌가
기울인 내 머리통에 검은 깃발을 꽂는다.


------


먼 나라의 시인이라 해도 모든 현대시의 지류는
보들레르가 터놓은 물길을 통해 흐른다. 그러므로
읽어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 이하는 읽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무겁게 짓눌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중반을 지나가는 시간 동안에는 걸핏하면 울었다.
길을 걷다가도 가슴 한 복판이 조여와, 마음껏 울음이 터져 나오도록
아무도 없는 밀실을 찾아 나섰다.

그 당시에 마주쳤던 어떤 중년은 언젠가는 울어낼 기력조차 없어서
눈물조차 만들지 못할 날이 올거라고 했다. 지금 자신은 그렇다고 했다.
나는 코웃음쳤다. 아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물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게도 그런 날이 왔다. 이제는 눈물을 찾으려 해도 그것은 오지 않으며,
단지 눈물을 만들던 감정만이 찾아올 뿐이다. 그 감정은 사실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내부에 잠자코 있다가, 오늘 같은 심란한 밤에 그저 고개를 내밀 뿐이다.

그 당시 내가 썻던 시들은 모두 실종됐다. 나는 그 말들이 너무 나를 닮아서
간직하기가 싫었다.

시를 이해한다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 왔지만 그들중 어느 누구도
타인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무서웠고, 지금도 무섭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내 모든 말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말들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에게 비추어지는
것이다. 그럼 왜 남들에게 보여주느냐에 대해선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보여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당신이 이해하던 말던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죽음은 나의 내부에서 팽창하고 있지만, 그것이 한계를 넘어 전존재를 
덮치기 전에, 그저 그전까지 나의 내부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죽음이 찾기 전에 광증이 내 의식을 점령할 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그전까지 나를 치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해둘 뿐이다.

타인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표면적 생활은 비정상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즉  다른 말로 한다면 비노동적, 비생산적 정신 활동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관대하지 않으니까.

난 누군가의 관찰 기록을 탐독하면서 내 정신과의 유사점을 찾았고, 나 또한 그런 작업에 
참여함으로 누군가에게 유사점을 남겨놓고자 할 뿐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한국 문학을 잘 찾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활동이 너무나 표층적이고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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