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깜깜하던 하늘이 어스름한 물 빛 으로 조금씩 붉어지던 시점, 사람에 따라선 새벽이라고도 혹은 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어디쯤엔가, 두 사람은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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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릅공... 더는 안되겠소... 추격군은 없어보이니 잠시만 쉬었다 갑시다..."

정수리는 모나고 키는 작으며 이미 대부분의 머리숱을 잃어버린 사내는 아무래도 체력이 부치는 모양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턱이 굵으며 이마가 벗겨지기 시작한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공대. 아직 저 간악하고 비열한 신안노들의 영향력을 따돌리지 못하였소. 우리 비록 지금은 패잔병이나 후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소? 조금만 더 갑시다."

그 대답에 정수리가 뾰족한 사내의 표정은 묘했다.

'저 사내는 그리도 꼴불견인 전투를 지휘하고도 어찌 저런 말을 하는 것인가?'

사실이 그랬다.

저 사내는 꼴사납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총대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자가 저 모양이니 애초에 이길 수가 없던 전투였다.


"릅맹덕.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선 적어도 오늘은 살아야하지 않겠소? 이 몸은 이미 늙어 더 갔다간 퇴각 이전에 탈진으로 쓰러질게요."

기골이 장대한 사내는 생각했다.

'이 사내와 함께라면 천하를 제패 할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하지만 그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이 모난 두상의 사내가 아직 효용성이 있다고 조언해주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공대의 고초가 그리 크실거라 생각지 못했구려. 어디 쉴 곳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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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간 여유를 얻게 된 사내는 피곤에 지친 몸을 드디어 기댈 수 있게 되었다.

성은 모, 이름은 윌, 자는 공대 라고 쓰는 그는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맹덕. 우리는 지난 1년간 82번의 전투에서 66번이나 승리했고, 같은 기간 우리보다 더 나은 실적을 낸 호걸들이 없었소.
어찌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리 비참한 패잔병 신세가 된 것이오이까?"

'그거야 네놈들이 아무도 사람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지!' 라는 말이 목젖까지 떠올랐으나, 릅맹덕은 참았다.
그는 이 시점에서 이미 계획이 다 세워져있었으나, 그걸 발설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었다.

"오늘의 굴욕은 반드시 갚아주면 되지 않겠소?"

릅맹덕은 짐짓 웃음지으며 말했지만 그는 아나볼릭 왕성한 소추소심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혐오감을 띈 표정까진 숨기지 못했다.
웃고있는 눈과 입꼬리에 대비된 그의 혐오어린 내면을 본 모윌은 모공이 송연했다.

'이 사내는... 천하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무슨 짓이건 할 위인이다... 이 사내에게 오늘의 패배는 우리의 패배가 아니다... 결국 이기는 편에 서기만 한다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승냥이 같은 무리로구나...'

모윌은 모공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릅맹덕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장수가 없었소. 다음에는 다를 것이외다. 반드시 꼭 그렇게 하겠소"

모윌은 다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사내는 66번의 승전을 함께 한 전우들에 대해 '제대로 되어먹지도 못한 수준들이다' 라는 속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없었다고? 애초에 평소부터 본인 집단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 입에서나 나올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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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의 바람으로 인해 금방 사라져버린 공대의 희미한 말발굽 자국을 바라보던 릅맹덕은 생각했다.


'아아 그래.... 정나미가 떨어진 것인가? 더는 찾지도 마라?'

겨우 하루하루 팔아가던 그는 주린 배를 움켜잡은 채 광기 어린 목소리로 나즈막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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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바를 버릴지언정 느바가 나를 버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