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때의 나는 공무원 시험으로 점쳐졌다.
서울의 한 전문대학에 합격해서 다녀본 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것 같다 & 나는 이것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자퇴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20대 중반에 다시 지방거점국립대학에 들어가 2년 다니다가
공무원인 아버지를 보고 공무원 시험을 결심했다. 그때 내 나이 27..
이때부터 길고 긴 암흑같은 공무원 시험준비가 시작되고 이미 눈은 공무원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헛된 망상으로 가득 차
한치앞도 모르는 어리석은 애송이의 헛된 발버둥이 오늘날까지 오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떨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듯하게 말하는 바로 그 핑계 "1점차이로 떨어졌다"
나역시 그 사람중 하나였고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다음시험에 대한 헛된 희망을 자꾸 주게 되어 장수생의 길로 빠지게 만들었다.
하다보니 31.. 슬슬 가족들도 지쳐가고 나도 지쳐가고 공부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꼴에 여자는 만나고싶고 게임도 하고싶어서 아르바이트나하며 여친 만날 돈 만들고 게임할 돈 만들고 그렇게 살았다.
게다가 아부지가 공뭔이시고 연금도 300씩 나오시고 어머니께서 지방에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셔서 부모님 수입이 월 700은 되어 나에게
용돈을 주셨다. 그것이 더 나를 세상과 도태되게 하는 것인줄 알면서도 나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부모님의 용돈을 받아먹고
그냥저냥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또 공무원 시험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던 중 친구 소개로 여자를 만났다.
이 친구가 백수인 나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준 이유는 바로.. 내가 백수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백수인게 창피해 백수라고 안하고다녔다. 알바를 정규직장처럼 부풀려서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꼴에 존심은 있어서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그만큼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여자를 위해서라도 여소를 받으면 안됐었는데 꼴에 백수따리가 여자는 만나고싶어서 여자를 소개받았다.
그리하여 내나이 32살에 지금의 여친을 만났다. 중소기업 그래픽디자이너였다. 여친은 박봉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이 일을 계속하고싶다고하고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작은돈을 벌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여친을 보면서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2023국가직 공뭔 시험 남은 기간을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미친듯이 공부했다.. 결과는 필합..
정말 너무 흥분돼서 잠이 안오더라.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면접을 기가막히게 보는게 아닌 이상 점수대로 짤라서 커트라인 간당간당하면
면탈하는게 너무 맘에 걸렸다. 결국 불안한 마음으로 면접장까지 다녀왔지만 결과는 면탈..
또 내년에 도전할까 그냥 포기할까 엄청난 매너리즘에 빠지다가
이젠 정말 사회생활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월급 200의 사무직으로 결국 입사를 했다.
면접을 보러 갔더니 여태 뭐하고 살았냐고 대표님이 물어보셔서 그냥 솔직하게 얘기했다.
여기서 더 부풀릴 것도 없고 오히려 깎아내릴 것도 없었다. 그냥 할 말이 없었다.
"욕심이 커져 공무원 시험이 길어졌습니다. 이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그만두었습니다."
대표님은 초반 3개월은 배워야할것이고 힘들것이라고 했다. 면접본 주 다음주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기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
출근날을 정한 후에 게임하고 여친을 만나도 출근날이 가까워질수록 잠은 안오고 걱정이 쌓여만 갔다.
대망의 첫출근날. 막상 출근해보니 전임자는 1달다니고 때려친 상태였고 사수는 몸이 아픔+가정내 문제 로 인해 출근을 열흘정도 안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무직은 그야말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서류작성 일처리 + 막내라서 여러가지 잡무를 해야하는데 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 상사 한 분이 첫 1주동안은 신입이니까 방관모드였지만 2주차부터는 진짜 많이 갈구셨다.. 정말 뛰쳐나가고싶더라. 이때만큼은 인생 다 포기하고
그냥 알바나 하면서 편하게 죽을때까지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고 늙어서는 고독사하는게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일 수도 있겠다 싶을정도로 나약해 빠진 생각이 들었다.
3주차가 되자 사수분이 오셨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50대 초반정도의 중년이 오시더라. 사수가 50대라서 걱정이 좀 됐지만 다행히 누구보다도 순하시고 착하시다.
3주차때부터는 일을 하면서 큰 실수를 벌써 몇번 해서 출근하는게 너무 무서웠고 출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라 아침에 눈뜨는게 지옥같았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내일 출근생각하면 벌써 눈물이 눈에 고인다.
하지만 남들 다 버티는거 나도 이젠 더이상 물러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버티고있다.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다. 이 업계가 전망이 앞으로도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도, 계속 하고싶은 생각도 아직은 들진 않는다.
그래도 사회생활이 전무한 30대 중반놈에겐 이런 경험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일단은 참고 다녀보려고 한다. 도저히 아닌거면 내 길이 아닌거겠지..
나는 지금 어쩌면.. 이 스펙으로 이 나이로도 남들보다 운이좋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걸지도 모르겠다. 어떤사람들은 이새끼 저새끼 욕도 듣고 원치않는 회식을 강요받으며
돌아이같은 상사를 인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난 그건 아니니까.
사회는 정글이라더니 정말 그런것같다. 그래도 여친 어머니께서 나 백수라고 되게 싫어하셨는데 일 한다고 이제 좀 맘이 놓이시는것 같더라.
다행히 나나 여친이나 부모님들이 어느정도 뒷받침이 가능한 능력있는 분들이셔서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시는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똥글을 여기서 싸질러놓고 또 내일되면 사직서 쓰고싶어 죽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치만 퇴근시간되면 그게 사라지고 목요일넘어 금요일만 되면 그런 마음이 잠시 사그러든다.
게다가 월급은 쥐꼬리지만 우리 회사는 주5일 9-6칼근무라서 워라벨적인 부분에서는 나쁘지 않기 때문..
하지만 전화받는 업무를 할 때마다 털끝이 바짝바짝 서고 무슨 업무를 볼때마다 옆자리 뒷자리 상사분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는것 같은 기분은
업무 내내 구리다. 하지만 이건 어느 회사나 마친가지겠지..?
그냥 인내하고 감수하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것같다.
그나마 참으려고 하는건.. 오빠가 뭘 하든 응원한다는 여친때문이다..
여친이 없었으면 진짜 온갖 욕 다 먹으면서도 진즉 퇴사했을것이다..
무슨 삶이 좋다고는 못하겠다. 알바하면서 살았던 시절의 내가 너무 그립기도 하고 명함 한장 돌리며 사원증 목에 걸고 그나마 체면치레라도 할 수 있는
지금이 더 나은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렇게 30대 미친놈의 늦깍이 첫 사회 1달차가 되었다.....
이 글을 읽은 대다수는 미친새끼 무슨 1년도 핫바지인데 1년 일한것도 아니고 한 달 쳐 일해놓고 온갖 유세에 개지랄을 다떠네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기 백수들은 알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겐 얼마나 큰 일인지.......
시작이 반이고 가장 어렵다고, 분명 나에게도 지금 그런 시기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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