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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

ㅇㅇ(118.33) 2020.09.28 16:14:13
조회 163 추천 0 댓글 0

철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법학, 공학, 건축학, 뭐 하나 제대로 아는 바 없는 문외한의 글입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디지털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인터넷 민주주의라고도 합니다. 전자 민주주의, 웹 민주주의, 뭐 말을 만들어 내기로는 뭐 무성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체는 언제나 민주주의 제도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부터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에 이르기까지 하다 못해 개개인들의 단톡방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여론 형성은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매개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긍정론자들, 낙관론자들은 이와 같은 인터넷 민주주의가 쌍방향적인, 수평적인, '위에서 아래로', '탑 다운' 방식의 의사 결정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바탐 업' 방식의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해서, 더 좋은 민주주의라고도 합니다. 다수의 목소리가 더 잘 반영되어 더 민주적이고, 그래서 더 좋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민주주의(democracy)는 다수의 지배(rule of majority)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수는 자신의 전횡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다수의 지배를 같은 것 취급하기도 합니다. 하기야 내 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면 갑자기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이고 '다수에 따르지 않는 자가 반민주주의자'입니다. 반면 내 의견이 소수의견이 되면 '민주주의와 다수의 지배가 다르다'는 요점을 갑자기 강조하기 시작하고 싶어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수결 원칙(majority rule)이란 민주주의 즉 인민의 지배(people's rule)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고, 최후의 보충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사실 만장일치제에서 가장 완벽하게 달성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갈등 상황에서 대립하는 멤버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만장일치에 이르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결국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마무리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장일치제와 다수결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고, 그 사이에서 여러 가능한 의견 수렴 방식의 가능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능한 절충들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절충안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까닭은, 인터넷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를 극단화하는,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극단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인터넷에서의 빠른 속도의 피드백은 의견 수렴 경향을 필요한 것보다 빠르게 진행 되게끔 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떤 의제가 대두되고 몇 분 안에 '다수'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다수 의견이 힘이 실리고 소수 의견이 입을 다물게 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집니다. 소수 의견이 자신의 견해를 정돈하고 개진 하려다가, 어느새 무게 중심이 쏠려 있는, 대세가 기울어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닫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법학자 선스틴이 말한 정보의 cascade 현상, 정치학자 노엘레노만이 말한 침묵의 spiral 효과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고도 강한 것입니다.

2) 문제는 인터넷 공간에서 발견된 이 '다수 의견', 그 다수의견에 힘이 실려 만들어진 합의라는 것이 진정한 다수의견에 의한 것이 아닐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만은 이들이 이 점을 느낍니다. 그래서 여론 조작설을 제기하기도 하고 그에 공감하기도 합니다. 좌표 찍었네, 알바네, 드루킹이네, 테라포밍했네 하는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인위적 조작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터넷 상의 다수의견은 진정한 다수의견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인터넷에서의 의견 개진은,

(1) 말 많은 자들이 더 많은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을 막지 않으며,

(2) 시간이 많은 한가한 자들이 더 많이 떠들어대는 것을 역시 막지 않으며,

(3) 오프라인 공간에서라면 암묵적으로 이루어졌을 학력 학벌 경력 이력 전문성 등의 단서에 의해 비전문가가 전문가 앞에서 조용해지는 현상을 역시 막지 않으며,

(4) 자기 의견 개진에 신중한 이들에게 의견 피력을 강제하지 않고 반대로 신중하지 않은 이들이 정제되지 않은 의견을 쏟아내는 것을 막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인터넷 공간에서의 여론 형성의 특징을 종합하여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란한 빈 수레"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전문성은 없으나 말은 많고 말 할 시간은 넘쳐나며 신중하게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빈수레들이 요란스러운 것을 막을 아무런 기제가 없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전문가의 권위의 외양이 비전문가를 조용해지게 만듭니다(물론 이건 이거대로 큰 부작용이 있습니다.). 오프라인 대화에서는 말 많은 자가 혼자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면 그는 곧 무리에서 배척됩니다. 오프라인 대화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많은 자여도 상대가 없는 한 혼자 하염없이 떠들어 대진 못합니다. 오프라인 대화에서는 신중하지 못한 말하기가 제재를 받고 신중하게 침묵하는 이들에게도 대화의 매너라고 하는 암묵적 룰에 의해 발언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의견 형성이 이뤄질 때는 이런 기제들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형성된 다수 의견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논의가 전개되었더라면 형성되었을 다수 의견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비전문가의, 말 많은 자의, 시간만 넘쳐 나는 자의, 신중하지 못한 '소수'의 의견이 더 과다 대표 됩니다. 이것은 '다수'의 의견이 더 정확한 반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절대 다수는, 자기 견해만 내세우기보다 전문가의 견해도 비판적으로 경청하려 하고, 방 구석 여포들보다는 말이 적고, 대부분 공사,다망하여 24시간 바쁘고, 방 구석 여포들보다는 신중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니터링하는 관객으로 밀려납니다. 대신 온라인 공간을 빈 수레들의 요란스러움이 채웁니다.

이것을 다수의 지배 여론의 지배라고 말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란한 빈 수레의 지배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대중 매체의 등장 이전에는 엘리트 내지 엘리트 자연하는 소수에게 과도한 권위가 실렸고 그들의 발언에 지나치게 많음 무게가 부여되었었습니다. 대중 매체가 등장하면서 서서히 역전이 이루어졌고 이제 인터넷 시대가 열려 어느 정도 임계점이 지나자 힘의 균형은 뒤집혔습니다. 힘을 잡은 이들과 그들의 지지를 받는 이들은 이것을 권력이 다수에게, 여론에게, 상식적인 국민에게 돌아온 "다수의 지배"이고 그러므로 "민주화"가 이루어져 간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려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러한 변화는 단지 엘리트의 지배가 요란한 빈수레의 지배로, 소수의 지배의 한 형태가 또 다른 형태의 소수의 지배로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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