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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백 등등의 거리 절댓값 관련 기록들 모음

ヒコ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6 17: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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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遼東太守祭肜威讋北方, 聲行海表. 於是濊·貊·倭·韓萬里朝獻, 故章·和已後, 使聘流通. - 後漢書 동이열전 서문

夫餘國, 在玄菟北千里. 南與高句驪,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 後漢書 동이열전 부여

高句驪,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 後漢書 동이열전 고구려

又有北沃沮, 一名置溝婁, 去南沃沮八百餘里. 其俗皆與南同. - 後漢書 동이열전 동옥저


夫餘, 在長城之北, 去玄菟千里, 南與高句麗,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 三國志 동이 부여

高句麗,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 三國志 동이 고구려

北沃沮一名置溝婁, 去南沃沮八百餘里, 其俗南北皆同, 與挹婁接. - 三國志 동이 동옥저

挹婁, 在夫餘東北千餘里, 濱大海, 南與北沃沮接, 未知其北所極 - 三國志 동이 읍루


至其孫莫來興兵, 遂幷夫餘. 至裔孫位宮, 以魏正始中入寇西安平 (고구려의 부여 병합) - 隋書 동이 고구려


夫餘國在玄菟北千餘里, 南接鮮卑, 北有弱水. - 晉書 사이 부여


征東將軍 高句驪王 樂浪公 (고구려가 낙랑공 : 각각 서기413년, 420~422년, 424년)

東夷高句驪國今治漢之遼東郡 - 宋書 고구려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 宋書 백제


고구려가 대방왕 - 梁書 [모용]보(재위: 396~398)

https://m.blog.naver.com/see4in4/60009798248 → 유주-평주 2주목이었던 모용회 날라가면서 개판된 배경.

한 예로 후연은 북위와의 일전(참합파-參合陂 전투)에서 패배하고

하북 지역의 대부분을 잃게 되자 유주의 군현들을 요서 인근 지역으로 전부 옮깁니다.

우국과 애국님이 제시한 기사로 볼 때 이때 당시의 평주는 용성과 고구려 사이, 즉 요하를 둘러싼 지역으로 생각됩니다.

https://m.cafe.daum.net/alhc/51q2/5308?listURI=%2Falhc%2F51q2


其國, 漢之玄菟郡也. 在遼東之東, 去遼東千里. 漢魏世, 南與朝鮮 穢貃,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 句驪地方可二千里. 中有遼山, 遼水所出. 其王都於丸都之下.

☆ 垂死, 子寶立. 以句驪王安爲平州牧, 封遼東·帶方二國王. 모용보(재위: 396~398) - 梁書 제이 고구려


新羅者其先本辰韓種也辰韓亦曰秦韓相去萬里 ...

其國在百濟東南五千餘里其地東濱大海南北與句驪百濟接 - 梁書 신라


百濟者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齊永明中, 除太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 天監元年, 進太號征東將軍.

尋爲高句驪所破, 衰弱者累年, 遷居南韓地. - 梁書 諸夷 백제


敖至其所居平壤城, 訪其方事云: (李敖 435년에 ? 북위 世祖時는 서기 423~452년)

☆ 遼東南一千餘里 東至柵城 南至小海 北至舊夫餘 民戶參倍於前魏時. 其地東西二千里 南北一千餘里 - 魏書 고구려

└> 거리 값이 다소 이상해 보이는 것은, 당시 기승을 부리던 말갈 및 백제 때문 ?


常輕豆莫婁等國, 諸國亦患之. 去洛五千里. - 魏書 물길


百濟國其先出自夫餘其國北去高句麗千餘里處小海之南 - 魏書 백제


其地東至新羅西渡遼水二千里南接百濟北鄰靺鞨千餘里 其外有國內城及漢城 亦別都也 - 周書 고려 (아마도 먹었을 것 ?)

└> 고구려의 영역이 동서로 2000리, 남북으로 1000여 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百濟者故其地界東極新羅北接高句麗西南俱限大海東西四百五十里南北九百餘里 治固麻城

其外更有五方 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西方曰刀先城 北方曰熊津城 - 周書 異域 백제


其國東西二千里, 南北千餘里. 都於平壤城,

亦曰, 長安城. 東西六里, 隨山屈曲, 南臨浿水. 復有國內城·漢城, 並其都會之所. 其國中呼爲三京. - 隋書 동이 고구려


新羅國在高麗東南居漢時樂浪之地或稱斯羅 - 隋書 신라


東明之後有仇台者篤於仁信始立其國于帶方故地 - 隋書 백제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其先所出, 事詳北史. 地方可二千里. (其王都於九都山下) - 南史 이맥 고구려


梁天監元年, 進大號征東將軍. 尋爲高句麗所破, 衰弱累年, 遷居南韓地.

普通二年, 王餘隆始復遣使奉表. 稱累破高麗, 今始與通好. 百濟更爲强國.

其年, 梁武帝詔隆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百濟王. - 南史 이맥 백제 (☆ 백제의 쇠퇴 남쪽 이동)


新羅, 其先事詳北史, 在百濟東南五十餘里. 其地東濱大海, 南北與句麗·百濟接. - 南史 이맥 신라

└> 일부 南史 판본의 在百濟東南五十餘里의 五十餘里는 五千의 오기라고 보여진다.

동일한 南史의 摛藻堂四庫全書薈要本과 二十一史本에서는 在百濟東南『五千』餘里라고 나온다고 한다.

양서와 남사 모두에서 나오는 거리자료(5000여 리)라고 할 수 있다.


其國, 東至新羅, 西度遼, 二千里 南接百濟, 北隣靺鞨, 一千餘里. - 北史 열전 고구려

└> 고구려의 영역이 동서로 2000리, 남북으로 1000여 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其國東極新羅, 北接高句麗, 西南俱限大海, 處小海南,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西行三日, 至貊國千餘里云.

(魏廷興二年-472년)自馮氏數終, 餘燼奔竄, 醜類漸盛, 遂見陵逼, 構怨連禍, 三十餘載. - 北史 열전 백제


去洛陽五千里. - 北史 열전 물길


新羅國本弁韓之苗裔也其國在漢時樂浪之地東及南方俱限大海西接百濟北鄰高麗東西千里南北二千里

俘其王扶餘義慈, 獻于闕下. 自是新羅漸有高麗·百濟之地, 其界益大, 西至于海. - 舊唐書 신라


高麗者, 出自扶餘之別種也. 其國都於平壤城, 卽漢樂浪郡之故地, 在京師東五千一百里.

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于營州, 南渡海至于百濟, 北至靺鞨. 東西三千一百里, 南北二千里

蓋蘇文謂玄獎曰:

「高麗·新羅, 怨隙已久. 往者隋室相侵, 新羅乘釁奪高麗五百里之地城邑. 新羅皆據有之

高麗者東渡海至於新羅西北渡遼水至於營州南渡海至於百濟北至靺鞨 - 舊唐書 동이 고구려


百濟國, 本亦扶餘之別種. 嘗爲馬韓故地, 在京師東六千二百里, 處大海之北, 小海之南.

東北至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 - 舊唐書 백제


靺鞨, 蓋肅愼之地, 後魏謂之勿吉. 在京師東北六千餘里. 東至於海, 西接突厥, 南界高麗, 北鄰室韋.

或附於高麗, 或臣於突厥.

其白山部, 素附於高麗, 因收平壤之後, 部衆多入中國. - 舊唐書 말갈


初,百濟伐高麗,來請救,悉兵往破之,自是相攻不置。後獲百濟王殺之,滋結怨 ...

新羅弁韓苗裔也居漢樂浪地橫千里縱三千里東拒長人東南日本西百濟南瀕海北高麗 - 新唐書 신라


高麗本扶餘別種也地東跨海距新羅南亦跨海距百濟西北度遼水與營州接北靺鞨

其君居平壤城亦謂長安城漢樂浪郡也去京師五千里而贏

☆ 而平壤在鴨淥東南, 以巨艫濟人, 因恃以爲塹.

答曰: 「往隋見侵, 新羅乘舋奪我地五百里. 今非盡反地, 兵不止.」 - 新唐書 고려


百濟, 扶餘別種也. 直京師東六千里而贏, 濱海之陽, 西界越州南倭北高麗皆逾海乃至其東新羅也 - 新唐書 백제


黑水靺鞨居肅慎地, 亦曰挹婁, 元魏時曰勿吉. - 新唐書 북적 흑수말갈 (하지만 전반적인 말갈에 대한 설명임)


高麗, 本扶餘之別種. 其國都平壤城, 卽漢樂浪郡之故地, 在京師東四千餘里.

東渡海至于新羅, 西北渡遼水至于營州, 南渡海至于百濟, 北至靺鞨. 東西三千一百里, 南北二千里. - 舊五代史 고려


括地志曰: “朝鮮, 高驪, 穢貊, 束沃沮, 夫餘五國之地, 國東西千三百里, 南北二千里, 在京師東.

東至大海四百里, 北至營州界九百二十里, 南至新羅國六百里, 北至靺鞨國千四百里.” - 括地志 逸文 (고구려?)

└> 신라, 말갈과의 거리는, 영주와 마찬가지로, 경계지역까지의 거리라고 보여진다.

넷을 합산해 보면 1300과 2000리에 근접한다. (아래 正義 括地志云과 비교하기)


括地志曰: “百濟王城, 方一里半. 北面, 累石爲之. 城下可萬餘家, 卽五部之所[□]也. 一部有兵五百人.

國南二百六十里, 有古沙城, 城方百五十步, 此其中方也. 方繞兵千二百人.

國東南百里, 有得安城, 城方一里, 此其東方也.

國南三百六十里, 有卞城, 城方一百三十步, 此其南方也.

國西三百五十里, 有力光城, 城方二百步, 此其西[方]也.

國東北六十里, 有熊津城, 一名固麻城. 城方一里半, 此其北方也. - 括地志 逸文 백제


新羅國魏時新盧國焉其先本辰韓種也辰韓始有六國稍分為十二新羅則其一也(初曰新盧宋時曰新羅或曰斯羅)

其國在百濟東南五百餘里(亦在高麗東南兼有漢時樂浪郡之地)東濱大海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奔沃沮

其後復歸故國留者遂為新羅焉故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兼有沃沮不耐韓濊之地

其王本百濟人自海逃入新羅遂王其國其國小不能自通使聘 - 通典 邊防 신라


其地後漢時方二千里至魏南北漸狹纔千餘里至隋漸大東西六千里 - 通典 邊防 고구려


其國在長城之北去玄菟千里南與高句麗東與挹婁西與鮮卑接北有弱水地可方二千里 - 通典 邊防 부여


其國東西四百里南北九百里南接新羅北拒高麗千餘里西限大海處小海之南 - 通典 邊防 백제


其王理邪馬臺國 (或云邪摩堆) 去遼東萬二千里 在百濟 新羅東南 - 通典 邊防 왜

(cf. 女王國東渡海千餘里, 復有國, 皆倭種. 又有侏儒國在其南, 人長三四尺, 去女王四千餘里 - 삼국지 왜 ; 그리고 후한서의 12000리와도 비교하기)


馬訾水(則移反) 一名鴨綠水

水源出東北靺鞨白山 水色似鴨頭 故俗名之

去遼東 【五百里】 經國內城 南 又西與一水合 卽鹽難水也

二水合流 西南 至安平城 入海

高麗之中 此水最大 波瀾淸澈 所經津濟 皆貯大船 其國恃此以 爲天塹 水闊三百步

在平壤城 西北 【四百五十里】 遼水 東南 【四百八十里】 - 通典 卷一百八十六 邊防 二 東夷 下 고구려

馬訾水、高驪一名淹水, 今名鴨淥水, 其國相傳云, 水源出東北靺鞨國白山,色似鴨頭, 故俗名鴨淥水,

去遼東【五百里】, 經國內城南, 又西與一水合, 即鹽難也,二水合流西南 至安平城入海.

高驪之中, 此水最大, 波瀾清潔澈, 所經津濟皆貯大船, 其國恃此以爲天塹. 今案, 其水闊三百步,

在平壤城 西北 【四百五十里】也. 刀小船也. - 資治通鑑 卷181 (1084년)


高麗記曰, 不耐城, 今名國內城, 在國東北六百七十里, 奔[本]漢不而縣也.

高驪記云, 烏骨山在國西北, 夷言屋山. 在平壤西北七百里,

去遼東五百里, 經國內城南, 又西與一水合, 卽監[鹽]難也. 二水合, 流西南至安平城入海. 高驪之中,

此水最大, 波瀾淸(潔)澈, 所經津灣, 皆貯大船, 其國恃此以爲天塹. 今案, 其水闊三百步,

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也. - 翰苑 蕃夷部 고려


齊書云, 加羅國三韓種也. 今訊新羅耆老云,

加羅·任那昔爲新羅所滅. 其故地今並在國南七八百里,

此新羅有辰韓·卞辰卄四國, 及任那·加羅·慕韓之地也. - 翰苑 蕃夷部 신라


倭人在帶方東南, 炙[參]問倭地, 絶在海中, 洲島之山, 或絶或連,

周旋可五千餘里, 四面俱抵海. 自營州東南, 經新羅, 至其國也. - 翰苑 蕃夷部 왜



東甯路本高句驪平壤城 亦曰長安城

漢滅朝鮮 置 樂浪 玄菟郡 此樂浪地也 晉義熙後 其王高璉始居平壤城

唐征高麗 拔平壤 其國東徙 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 非平壤之舊 至王建 以平壤為西京 - 元史 卷五十九

원사지리지 - 동녕로(東寧路). 본래 고구려(高句驪) 평양성(平壤城)으로 또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하였다.

한(漢)이 조선(朝鮮)을 멸하고 낙랑(樂浪),·현토군(玄菟郡)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낙랑지역이었다.

진(晉) 의희(義熙) 연간 후반에 그 왕 고련(高璉)이 처음으로 평양성(平壤城)에 머물렀다[居].

당(唐)이 고려(高麗)를 정벌할 때 평양(平壤)을 공략하여 그 나라가 동쪽으로 옮겨

압록수(鴨綠水)의 동남쪽 1,000여리 되는 데에 있었는데, 평양의 옛터가 아니었다.(철원 궁예) ..

왕건(王建)에 이르러 평양이 서경(西京)이 되었다.

원(元) 지원(至元) 6년(1269)에 이연령(李延齡)·최탄(崔坦)·현원열(玄元烈) 등이

부주현진(府州縣鎭) 60개 성(城)을 가지고 와서 귀부하였다.


營州

東 【百八十里】 至燕郡城

又經 汝羅守捉 渡遼水 至安東都護府 【五百里】 府 故漢襄平城也

☆ 東南 至平壤城 【八百里】

西南 至都里海口 【六百里】

西 至建安城 【三百里】 故中郭縣也

☆ 南 至鴨淥江北 泊汋城 【七百里】 故安平縣也 - 新唐書 志第三十三下 地理七下

(압록강 말고 박작성까지가 700리라는 뜻)


正義 括地志云:

朝鮮、高驪、貊、東沃沮五國之地,國東西千三百里,南北二千里,在京師東,

東至大海四百里,北至營州界九百二十里,南至新羅國六百里,北至靺鞨國千四百里。」

정의 괄지지에서 “조선, 고려, 맥, 동옥저 다섯 나라의 땅이다.

그 나라는 동서로 1,300리, 남북으로 2천리에 달했고, 경사의 동쪽에 있었다.

동쪽으로 대해에 이르는데 400리, 북쪽으로 영주 경계에 이르는데 920리,

남쪽으로 신라국에 이르는데 6백리, 북쪽으로 말갈국에 이르는데 1,200리였다.

└> 신라, 말갈과의 거리는, 영주와 마찬가지로, 경계지역까지의 거리라고 보여진다.

넷을 합산해 보면 1300과 2000리에 근접한다. (위에 있는 括地志 逸文과 비교하기)


營州 東 百八十里 至燕郡城 又經汝羅守捉 渡 遼水 至安東都護府 五百里

府 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

西至建安城三百里 故中郭縣也 ...

南至鴨淥江北泊汋城七百里 故安平縣也 自都護府東北經古蓋牟 新城

又經渤海長嶺府 千五百里至渤海王城 城臨忽汗海

其西南三十里有古肅慎城 其北經德理鎮 至南黑水靺鞨千里 - 신당서 지리 가탐 도리기


안동도호부로부터 평양성까지 800리

압록강 북쪽에 있는 박작성까지 700리

명나라의 요동지에서 요동도사(요동성)에서 압록강까지 530리이고,

평양은 여기서부터 400-500리가량 남쪽


柳城郡

東至遼河四百八十里。南至海二百六十里。西至北平郡七百里。北至契丹界五十里。

東南到安東府二百七十里。西南到北平郡七百里。西北到契丹界七十里。東北到契丹界九十里,契丹衙帳四百里。

안동부는 영주(營州)에서 270리

통전에서 압록강까지의 거리를 요동 남쪽 500리라고 하고 있는데,

요동지에서는 이를 530리로 표현. 즉 30리의 오차는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

안동 변천사 → https://blog.naver.com/stxrmxn_/221586238152

https://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696


千里至鴨淥江 唐恩浦口. 乃東南陸行, 七百里至新羅王城.

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 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 得渤海之境.

又泝流五百里, 至丸都縣城, 故高麗王都. - 신당서 지리 하북도 등주

└> 5000리에서 500리로 줄어들었다는 보조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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