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픽] 카페인 - 36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4 21:27:10
조회 156 추천 19 댓글 8

링크모음집




  “후.”


  날은 어느새 지나 있었다. 나는 제복으로 갈아입고 내 방에서 나왔다. 


  “가자.”


  문 앞에서 상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다시 훈련장으로 향했다. 먼저 훈련장으로 온 사람들은 각자 방 앞에 서서 들어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 많이 줄었네요.”


  이 공간을 꽉 채우던 사람들은 어느새 손에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열 명뿐이었다. 


  “그야, 훈련이니까.”


  … 훈련, 진짜 훈련이구나. 


  그는 무덤덤하게 툭 내뱉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숨을 깊게 들이셨다. 내 마음을 꽉 부여잡고 있던 긴장이 조금 내려가는 듯 싶었다. 


  “정신 차려.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낙오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테니까.”


  그는 내 등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문을 응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나를 보며 씨익 웃더니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정신 차리자. 


  나는 손으로 내 뺨을 찰싹 때렸다. 정신이 다시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엘사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거야.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실수는 용납되어선 안 되었다.


  방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한결같이 불안해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저들도 각자 바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에 왔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냐, 안나. 네 앞길이 먼저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게 그들을 동정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실마리를 얻어서 엘사와 데이지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어이, 준비됐어?”


  어느새 돌아온 그가 내 등을 한번 찰싹 때리며 말을 걸었다. 


  “네.”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무슨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를 경계하게 되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란 없으니까. 


  그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가자.”


  그는 나를 데리고 밀실 앞으로 갔다. 언제 봐도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문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삐익-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거대한 문이 굉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갇혀 있던 찬 공기가 밖으로 마구 뿜어져 나왔다. 


  “들어가 봐. 부디 살아서 나오고.”


  그는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피식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혔다. 철컥-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번째로 만나는 이 어둠과 공허한 정적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이것도 많이 익숙해졌네. 


  꿈에서만 만나던 텅 빈 공간을 현실에서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두 번 있기는 싫은 곳이었다. 


  저벅, 저벅.


  바로 그때, 방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가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누, 누구야!?”


  그러자 그 발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 안나! 미안… 내가 놀라게 한 거야?”


  어두운 방구석에서 나타난 사람은 데이지였다. 휴- 그녀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아니! 그럴 리가!”


  당황하며 얼버무리는 나를 보며 데이지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미소를 얼굴에 드린 채 작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내겐 이럴 시간이 없었다. 하루빨리 단서를 찾아야만 했다. 결국 지금 내 앞에 있는 데이지는 내 환상일 뿐이었다. 


  “데이지, 시작하자.”


  엘사를, 그리고 진짜 데이지를 찾아낼 수 있는 단서를 찾아야만 했다. 


  “어, 응? 응… 안나.”


  무언가가 내게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었다. 내 안에 묻힌 기적 속에 엘사와 연관이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어서 해보라고. 


  나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온몸의 감각이, 특히 내 귀가 활짝 열렸다. 


  콩닥콩닥,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집중하니 심장소리는 사라지고야 말았다. 


  쌔액쌔액, 숨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집중하니 숨소리는 사라지고야 말았다. 


  모든 소리를 다 지워 버리고 나니 공허함이 방을 가득 채웠다. 조금 더 집중하니 어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리 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작게 들려오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헤, 네가 한 짓이잖아. 다 네 잘못이라고.”


  또 다른 목소리였다. 그리고, 익숙한 말이었다. 


  다 네 잘못이라고. 


  슬며시 눈을 떴다. 고아원에 있을 시절의 내 모습이 점점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떤 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아니란 말이야! 그건 네가…”


  짝, 손이 뺨에 맞닿았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여자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기억나.”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데이지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었어?”


  “글쎄, 난 분명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말이야. 무슨 일이든지 간에 생기기만 하면 다 내 잘못으로 되어 있더라고.”


  여자아이의 옆으로 새로운 환상이 생겨났다. 새로 생겨난 남자아이는 옆에 생겨난 어른 여성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여성은 나를 끌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어디로 가는 거지?”


  데이지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독방.”


  “독방…?”


  그 여성은 나를 아주 좁고 추운 방 안에 가두었다. 앉기는커녕 제대로 팔을 뻗고 서 있기조차 힘든 방이었다. 


  “응, 저렇게 하루 동안 갇혀 있었어.”


  “세상에…”


  환상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린 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마저도 작아져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참 힘든 삶을 살아왔구나.”


  “글쎄, 난 이게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걸.”


  “안 힘들었다고? 그게… 말이 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이것보다는 뭔가가 더 있었던 것 같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힘들었다. 매번 남의 눈치를 봐 가며 살아가는 것도, 내가 하지도 않은 짓에 욕을 먹어 가는 것도, 이 모든 것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나는 왜 살아갈까,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매번 이상한 위화감이 나를 잡아끌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면서, 아직 매듭짓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 아무튼 그래.”


  “...”


  데이지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와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손을 타고 내게 전해졌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돼.


  내 결심은 확고해졌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는 엘사에게, 그리고 데이지에게 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내 유년 시절은 희미해지고, 이내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혹시 뭔가 또 나오지 않을까? 작은 기대가 나를 붙잡았다. 


  “어?”


  내 기대에 걸맞게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달이 홀로 빛나는 까만 밤하늘에선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데이지와 나는 수북하게 쌓인 눈밭 위에 서 있었다.




65/81


떡밥 회수하기가 무섭게 또 떡밥 투척!

추천 비추천

19

고정닉 7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55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1 286
1123621 잠이깬 거시애오 ㅇㅇ(223.38) 05:44 7 0
1123620 격하게 밤샌 다음날 [1] ㅇㅇ(222.233) 00:07 21 0
1123619 일요일이야 ㅇㅇ(110.47) 06.01 10 0
1123618 이거 몬가 떠난 설쥬미와 설갤 같음 [4] ㅇㅇ(110.47) 06.01 40 0
1123617 눈이 퀭~ [1] ㅇㅇ(110.47) 06.01 11 0
1123616 안줌 술버릇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25 0
1123615 엘사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20 0
1123614 오타쿠짓하다 발견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48 1
1123613 구케엘 이제 디아블로4 하냐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23 0
1123612 안나는 평생 공주하고 엘사는 여왕하자 [1] ㅇㅇ(223.38) 06.01 28 0
1123611 맨날 카멜레온 같이 아이피 바뀌더니 ㅇㅇ(223.38) 06.01 15 0
1123610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17 0
1123609 설...하... [1] ㅇㅇ(211.234) 06.01 15 0
1123608 왜 6월임 ㅇㅇ(221.143) 06.01 12 0
1123607 엘산나 언제까지 애틋할거야 ㅇㅇ(223.38) 06.01 18 0
1123606 아 미친 6월 첫글을 잊다니 ㅇㅇ(110.47) 06.01 17 0
1123605 6월첫글 차지해 ㅇㅇ(223.38) 06.01 16 0
1123604 이러다 뽀뽀할거같음 [5] ㅇㅇ(110.47) 05.31 62 11
1123603 정신 차리니까 벌써 금요일 ㅇㅇ(223.38) 05.31 15 0
1123602 엘산나갤입니다 ㅇㅇ(223.38) 05.31 16 0
1123601 맛점해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1 25 0
1123600 내 5월 어디감 [1] ㅇㅇ(106.101) 05.31 20 0
1123599 하 혐퀘 [1] ㅇㅇ(211.234) 05.31 19 0
1123598 5월도 안녕 ㅇㅇ(223.38) 05.31 18 0
1123597 5월 마지막의 첫글이노라 ㅇㅇ(110.47) 05.31 18 0
1123596 능력 혐오하는데 능력 없는건 싫은 엘사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68 5
1123595 아 맞다 쥬미들아 인스타펌글 올릴 때 조심해 [1] ㅇㅇ(110.47) 05.30 67 3
1123594 누가 이거 1이 안나고 2가 엘사랬는데 [2] ㅇㅇ(110.47) 05.30 57 0
1123593 설갤만큼 엘산나에 진심인 커뮤가 있냐 [1] ㅇㅇ(223.38) 05.30 39 0
1123592 모든 삶이 엘산나야 ㅇㅇ(223.38) 05.30 29 0
1123591 우중충한 날엔 빠와가 있는 노래를 들어야 해 [3]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40 0
1123590 설갤 덕분에 글도 써보고 [1] ㅇㅇ(223.38) 05.30 31 0
1123589 크으 이틀만 견뎌 ㅇㅇ(223.38) 05.30 19 0
1123588 그래서 대체 왜 목요일에는 다들 없는거임??? [2] ㅇㅇ(112.157) 05.30 38 0
1123587 핵정전의 목요일 ㅇㅇ(112.157) 05.30 19 0
1123586 설하 [1] ㅇㅇ(106.101) 05.30 20 0
1123585 소설이란걸 써본게 설갤이 처음인디 [3] 설갤러(221.145) 05.30 50 0
1123584 크윽 늦었다 [1] ㅇㅇ(223.38) 05.30 24 0
1123583 첫글접수 ㅇㅇ(110.47) 05.30 19 0
1123582 고요한밤 설갤러(118.43) 05.29 19 0
1123581 막글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9 19 0
1123580 코피 철철철 ㅇㅇ(110.47) 05.29 21 0
1123579 저 밑에 새의상 [1] ㅇㅇ(223.38) 05.29 34 0
1123578 후 빡센 오늘이었따 [1] ㅇㅇ(223.38) 05.29 27 0
1123577 엘사가 사라지는 꿈꾸는 안나 [2] ㅇㅇ(223.38) 05.29 45 0
1123576 설하 [1] ㅇㅇ(115.138) 05.29 18 0
1123575 오늘 유익한 악몽을 꿈 [2] ㅇㅇ(211.234) 05.29 32 0
1123574 설하 [1] ㅇㅇ(112.157) 05.29 2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