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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41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1 2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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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엘사 앞에서 산산조각 나 버리고, 그 산산조각 난 파편마저도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리는 꿈이었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분명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데, 엘사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 내 모든 이성이 마비되어 버려서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나는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머리를 부여잡았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 엘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엘사를 떠올리게 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 하아.”


  한숨만이 가득 나왔다. 앞길이 막막했다. 도저히 아무런 해답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엘사를 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엘사를 보게 되더라도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거란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정신 차려, 안나.”


  주먹으로 머리를 쳐 가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떼 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마치 끈끈한 액체처럼 내 머릿속에 진득하게 달라붙기만 하고 있었다. 


  똑똑- 시간이 되자 오늘도 어김없이 상관이 문을 두드렸다.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에 설 때마다 작은 기대가, 그리고 이유 없는 두려움이 매번 나를 반겼다. 왜일까, 대체 왜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저게 그저 꿈일 수도, 그저 환상일 수도 있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도 아무런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 왔어?”


  “응, 데이지.”


  방 안에서 데이지의 환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맞아 주고 있었다. 그녀도 눈에 띄게 마른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녀를 보자마자 은근한 걱정이 들었다. 


  “좋아, 그러면…”


  데이지는 그 말과 함께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나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다. 


  … 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리던 나는 문득 데이지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데이지의 모습이 조금 희미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환상이어서… 인가?


  아마도 그럴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어라?”


  바로 그때,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빛 하나조차 없던, 아무것도 없던 이 공간에 벽이 솟아오르고, 책상이 생기고, 침대가 생겼다. 그리고 그 침대의 근처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생겨났다. 


  “... 그런데도 말을 한 번도 안 해 주셨단 말이에요?”


  어린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지금 해 줄 수도 있는데.”


  아이들의 아버지가 굵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침대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렸다. 


  “좋아, 당장 말해 줘요!”


  어린 엘사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말해줘도 괜찮겠어요?”


  아이들의 어머니가 불안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들의 아버지는 그녀를 안심시키듯 대답했다. 


  “슬슬 말해줘도 될 나이잖아요.”


  “큰 눈사람은 이따 만들자!”


  그의 목소리 사이로 어린 내가 엘사에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멀리, 아주 멀리 가게 되면 아주 오래된 마법의 숲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숲은 강력한 정령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숲이라고. 바람, 불, 물, 땅의 정령들이 그 숲을 보호하고 있고, 또한 노덜드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숲이라고 설명했다. 


  마법의 숲? 정령? 노덜드라?


  그 단어들을 듣자마자 잠시 잦아들었다고 생각한 두통이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이상한 목소리가 떠오르고 있었다. 




  “옐레나? 엘사는 어디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요?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죄송합니다. 아무런 답도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 목소리와 어느 나이 든 여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와 동시에 단풍이 물씬 든 어느 숲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급히 사라졌다. 


  “마법의… 숲.”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이끌고 있었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나와는 반대로 환상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마법의 숲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노덜드라 사람들과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이 정령들의 분노를 깨웠다고. 그리고 그에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가 자신을 마법의 숲 밖으로 데려다줬으며, 마법의 숲은 거대한 안개로 둘러싸여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가두어 버렸다고. 


  “...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돌아와서 아렌델의 왕이 되었단다.”


  “아렌델.”


  나는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무언가가 떠오를 듯 싶으면서도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머리가 다시 한번 지끈거렸다. 


  “아렌… 델.”


  나는 다시 한번 나지막이 읊었다.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다. 


  “잠깐, 아렌? 수도 행성 아렌?”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 그리고 이 제국의 중심이 되는 행성의 이름이 바로 아렌이었다.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 왜 노덜드라 사람들이 우릴 공격했죠?”


  “마법의 숲이 다시 깨어날 거라 생각하세요?”


  어린 나와 어린 엘사가 동시에 물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어느 사이에 방을 나가 있었고, 남은 사람은 그들의 어머니뿐이었다. 


  “아토할란만이 그 답을 알겠지.”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한 단어가 나오는 순간, 누군가가 내 머리를 때린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아토할란…?”


  이유 없이 갑자기 온몸이 추위에 떨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얼어붙을 것만 같아서 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어느 장면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안돼…”


  얼음이 가득한 동굴이었다. 그 안에 넓게 펼쳐진 어둠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거울과, 그 앞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백금발이 산발해 있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엘사의 몸이 힘이 풀린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엘사, 일어나.” 


  두 손으로 잡고 있던 엘사의 몸을 조금 흔들며 말했다. 


  “무사히 돌아온다고 했잖아. 장난치지 말고, 어서.” 


  엘사의 몸이 힘없이 돌아갔다. 핏기가 사라진 파르무레한 얼굴이 보였다. 


  “제발, 제발…”




  “허억, 허억…”


  한순간에 숨이 가득 차올랐다. 나는 거센 숨을 몰아쉬며 충격을 잠재우려 했다. 엘사가 쓰러진 채로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 아니야.”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그 기억을 떨쳐 내려고 노력했다. 


  “아토할란, 아토할란…”


  이유 없이 마음에 걸리는 단어를 계속 읊었다. 엘사가 쓰러져 있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아토할란… 잠깐만.”


  그러다 다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엘사의 카페 이름도 아토할란이잖아. 카페 아토할란.”


  “응? 그건 갑자기 왜?”


  옆에서 데이지가 내게 물었다. 


  “아니, 저 환상에서 아토할란을 말하길래…”


  “아.”


  “가까이 오렴. 바싹 붙으려무나.”


  내가 생각을 마칠 즈음이 되자 환상에 보이는 아이들도 잘 준비를 마치고 어머니의 곁에 몸을 기댔다. 그들의 어머니는 목을 가다듬고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북풍이 바다를 만나는 곳,

  그곳에 기억이 가득한 강이 있단다.

  편히 잘 자렴, 아가야.

  강에서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란다.


  “... 방금, 뭐라고…?”


  익숙한 자장가였다. 꿈에도 나왔었고, 한때 엘사가 내게 불러주었던 그 자장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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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는 (곧) 자유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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