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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결혼 계약서(45)

ㅇㅇ(222.110) 2021.02.21 23:08:50
조회 399 추천 37 댓글 6


검찰에서 본격적으로 블랙우드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을 땐 대부분의 혐의가 확정된 뒤였고 수사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은 검찰이 블랙우드에 부당한 수사를 하고 있으며 해밀턴의 비리를 덮기 위한 연극에 불과하다고 떠들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언론사들은 블랙우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처음엔 루나드의 뜻대로 블랙우드에 유리한 기사를 써댔다. 그렇지만 검찰에 자료는 넘긴 이가 엘사라는 소문이 돌자 그들은 집안싸움이 시작되었다며 흥미위주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았어도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쫓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엘사와 파비가 넘긴 자료는 워낙 확실한 증거였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했다. 루나드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블랙우드를 안전하게 지킬 방법이 필요했다.


“..회장님, 일단 이렇게 하시는 게 가장 안전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일단 검찰 쪽에서 물고 늘어지는 건 아렌델 프로젝트에 관한 것들이니...일단 조사에 응하면서 시간을..”


법무팀과 비서진들의 말에 루나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손을 들었다. 이미 엘사가 다녀간 뒤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짜 둔 상태였다. 검찰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시간이 지나면 여론이 어떤 식으로 바뀔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검찰에서 곧 자신을 소환할 것이고 긴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몇 번의 경험도 있었고 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변호사들도 있었다. 단지 자신에게 애원하던 엘사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탓에 뒷맛이 씁쓸했다.


“그보다 저번에 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나? 이사회에선 뭐라고 했지?”


“회장님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루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사들까지 동의했으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단 하나였다.


“회장님, 외람되지만..다시 한번 생각...”


“이게 최선이이네. 블랙우드에는..”


“..하지만..”


“..그리고 나에게도.”


루나드의 마지막 중얼거림에 더 이상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가 계획한 일이 성공한다면 블랙우드는 이미지 쇄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루나드는 이제 충분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엘사 블랙우드를 회장 대행으로 삼는다. 시기를 봐서 언론에도 발표하고 그 놈에게도 전해.”


단호한 목소리에 비서는 짧은 대답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루나드는 창 밖 어딘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쌀쌀해진 날씨는 이제 완전한 겨울에 접어든 것 같았다.













“이런 망할!!!”


위즐튼은 씩씩거리며 안경을 벗은 채 분노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검찰이 블랙우드를 곧 압수수색 할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미 언론에서 다룰 정도면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이 상황에서 위즐튼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가 엘사를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엘사 자신도 같이 절벽으로 뛰어드는 꼴이었으니까.


“부회장님!”


그때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오는 비서의 모습이 보이자 위즐튼은 앞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내가 아무도 들이지 말랬지!”


“검찰에서..!”


“위즐튼 부회장님?”


비서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위즐튼의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중에 변호사를 부르는 일뿐이었다. 그는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여기서 도망칠 수 없구나.


“부회장님에 대한 수색영장입니다. 이 시간부로 사무실, 자택 전부 압수 수색..”


검사가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위즐튼의 귀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았다. 엘사가 꽂은 칼은 정확히 그의 심장에 박힌 것 같았고 위즐튼은 절대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위즐튼의 팔을 잡고 사무실 밖으로 끌고 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검찰에서는 이미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처럼 루나드와 위즐튼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엘사가 정보제공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렌델 프로젝트의 책임자였고 위즐튼과의 거래 계약서도 서명을 한 터라 처벌은 불가피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엘사는 구속수사까진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주 우려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엘사는 그저 소환조사를 받으며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엘사는 설령 감옥에 간다 해도 그건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죗값이라 생각했고 더 이상 안나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고생 많았구나.”


검찰조사를 받고 나오던 엘사 앞에 파비의 모습이 보였다.

엘사는 변호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파비가 엘사를 찾아올 일은 없었기에 예상치 못했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잠시 시간 괜찮니?”


“..무슨 일 있으세요?”


“그건 가면서 설명하마.”


파비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엘사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엘사는 굳어있는 파비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며 엘사에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뭐에요?”


“..네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일. 그리고 나 역시 네가 꼭 이 일을 맡았으면 좋겠다.”


봉투를 열던 엘사의 손이 잠시 멈췄다. 루나드가 언급된 것으로 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꼭 맡았으면 좋겠다는 파비의 마지막 말에 엘사는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서류는 블랙우드가 현재 가진 계열사들과 임원진 목록, 그리고 회장 대행 권한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거기까진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딱 하나, 회장 대행으로 임명된 사람은 엘사였다.


“지금..이게 무슨 말이에요? 회장 대행이요?”


“그래. 회장님이 직접 지시하셨다.”


“아저씨! 말도 안 되는...”


“블랙우드를 살리려는 마지막 발버둥이겠지. 그리고 나는 회장님 의견에 동의하고.”


“…….”


“어쨌든 블랙우드는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지금 블랙우드가 무너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지 생각해 봤니?”


“차라리 전문 경영인을..”


“네가 적임자야.”


“아저씨!”


“..그래야 해밀턴과 뒷수습을 하기에도 더 수월할테고.”


파비의 말에 엘사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평소에는 엘사를 응원하는 자상한 아저씨였지만 그 역시 변호사였다. 그는 엘사의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안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으니 뒷수습도 안나를 위해 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면 엘사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파비는 이런 식의 대화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참고로 펜은 앞에 있단다.”


“...해밀턴을 언급하면 제가 동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 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동의하겠지.”


마치 서명할 것을 확신한다는 듯한 목소리에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에 손에 쥐어진 서류를 내려다봤다.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이렇게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더 안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루나드의 손바닥을 벗어나진 못했다는 생각에 엘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파비 역시 서류를 받았을 때 엘사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녀를 내쫓은 할아버지였고 현재 블랙우드의 회장이었기에 회장 대행을 세우더라도 엘사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엘사가 폭탄을 터뜨린 장본인이었으니까.

블랙우드를 생각한다면 루나드의 선택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손녀를 내세워 회사를 지키고 그 손녀가 루나드를 찌른 장본인이었기에 이미지 쇄신도 가능했다. 엘사라면 여론도 나쁘지 않을테니까. 거기다 아직 안나와 엘사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이상, 엘사보다 적임자는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엘사의 손이 움직였다.

조금은 거친 글씨로 자신의 서명을 넣은 엘사는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이제 됐나요?”


“잘 결정한거야.”


“...저는 끝까지 못 벗어나겠죠.”


“앞으로 너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


“제 역할이 끝나면 그만 둘겁니다.”


“그건 네 선택이니 뭐라 하지 않으마.”


“..이만 내려주세요. 볼일 끝나셨을텐데.”


“한 가지 더 있단다.”


“..?..”


“아무래도 조만간 너에 대한 처벌이 결정될 것 같다. 많아도 몇 개월이겠지만..”


“…….”


“그래서 그 전에 너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구나.”


“..네? 누가요?”


파비는 대답대신 속도를 줄이며 차를 세웠다. 엘사가 의아한 듯 다시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대답할 것이 아니라며 그 사람에게 직접 대답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엘사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화가 났지만 차마 파비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만 가보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엘사는 굳게 닫힌 파비의 입을 보고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엘사는 졌다는 듯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무와 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 공원인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앙상한 가지들과 바보처럼 서 있는 자신이 전부였다.

엘사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아저씨, 대체 누가 저를 기다린다는..”


“엘사!”


그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손을 흔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붉은 머리가 보였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


“한스?”


“엘사, 잘 지냈어요?”


예상치 못한 한스의 등장에 엘사는 어리둥절하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한스는 그 동안 엘사를 많이 걱정했다면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엘사는 갑자기 밀려드는 질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자..잠깐만요, 한스. 당신이 나를 보자고 했어요?”


“아, 그건 아니에요.”


“네? 그럼 왜..”


“저는 부탁 받아서 온 거에요.”


“부탁? 누가요?”


한스는 잠시 까먹고 있었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그 순간 엘사의 푸른 눈동자에 태양이 가득 담긴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안녕, 엘사.”


안나가 눈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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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현퀘가 너무 바빠서 오질 못했다

그치만 연중은 없으니 걱정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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