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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Who's sorry now? 01

Lexk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01 13:02:23
조회 827 추천 33 댓글 7




영화 크루엘라 트레일러 보다가 노래에 꽃혀서 썼다. 노래 제목은 Who's sorry now.

목표는 편당 7천자 이상, 할 수 있다! 아자아자














안나와 거리를 두는 것은 어떠니?”

 

 

어머니는 내 고백에 심란해하면서도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았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자신과 자신의 딸, 둘 뿐인 것을 알면서도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은 혹여 누군가가 들을까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주었지만 작게 떨리는 손은, 그것이 주는 따뜻한 온기만큼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였다. 어머니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기도하자꾸나, 신께 기도하다 보면 네 죄를 용서하여 주실 거야. 너를 바로잡아주실 거란다.”

 

 

신께 빌어 용서받아야 할 죄악, 바로잡아야 할 무언가. 그 말들이 심장을 헤집었다. 차라리 부정이 더 나았을까, 아니면 분노 혹은 원망 따위를 내게 비쳤다면 마음만은 편했을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더라도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 위로 남은 손을 올렸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기도문을 읊었다. 기도문에서조차 나의 죄명을 돌려 말하며 어딘가 있을 신에게 용서를 빈다. 그만큼 무거운 죄악을 가지고 있는 죄인은 바로 나, 엘사 아렌델이다.

 

 

 

 

 

 


 

[Who’s sorry now]

 

핸드폰과 연결된 헤드셋에서 음악이 재생된다. 나른한 재즈의 음색과 어울리는 가수의 목소리가 익숙한 가사를 읊는다.

 

[Who’s sorry now]

 

스펀지를 덧댄 인조가죽 재질의 나무 의자에 앉아 음악에 파묻히듯 몸을 기댔다. 레코드판에서 들을 수 있는 특유의 노이즈가 덧대여 흑백영화 같은 음색을 따라 오른손을 까딱거리자 손끝이 경질의 책상 표면과 닿으며 탁, 하는 소리를 낸다. 반복적으로 까딱거리는 손짓에 맞춰 반복적인 박자를 만들어낸다. 하얀 헤드셋 너머로 존재하던 적막이 박자에 맞춰 금이 간다.

 

[Whose heart is aching for breaking each vow]

 

 

흰 연기가 방 안으로 퍼진다. 왼손에 쥐고 있던 불을 붙인 담배에 아슬하게 매달려있던 담뱃재가 한계였는지 결국 바닥으로 떨어졌다.

 

[Who’s sad and blue, Who’s crying too]

 

시야 밖으로 추락한 잿가루를 무시하고, 그저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Just like I cried over you]

 

새어 나오던 흰 연기가 잠시 멈췄다가 내뱉는 숨과 함께 한꺼번에 밀려 나온다. 그것을 삼킬 때 느껴지던 자극이 이제는 익숙하다.

 

[Right to the end just like a friend]

“Right to the end just like a friend.”

 

[I tried to warn you somehow]

“I tried to warn you somehow.”

 

[You had your way]

“You had your way.”

 

[Now you must pay]

“Now you must pay.”

 

이미 외워버린 노랫말을 따라 혀를 굴렸다. 밖에 들리지 않게 목 언저리에서 삼키며 부르는 노래는 마치 뻐끔거리는 것처럼 입천장과 혓바닥, 그리고 침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질척한 소리만 내면서도, 소리 내 부르는 것처럼 가슴에서 올라오는 숨을 내뱉게 해주었다.

 

[I’m glad that you’re sorry now]

 

아련하던 음악이 격해지며 가수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같은 노랫말이 반복되었지만, 더욱 격해진 감정이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마음을 파고든다. 대가를 치러야 해. 가사를 중얼거렸다. 딱 맞는 말이잖아, 웃기네. 책상 위에 놓아둔 재떨이에 쥐고 있던 것을 눌러 지졌다. 새어 나오던 연기는 검댕을 남기고 사라졌다.

노래가 끝났다. 이내 헤드셋 너머와 같은 정적이었다. 재생목록의 마지막 노래였기에 이어지는 음악은 없었다. 새벽빛이 어두운 방을 비췄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방 안을 환기했다. 검은 티셔츠와 회색 면바지 위로 조금 시원하기도 하고 쌀쌀하기도 한 새벽 냉기가 스며들었다. 춥다고 느낄 법도 했지만, 추위를 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잠을 자지 못해 생기는 몽롱함 때문인지 덤덤했다.

헤드셋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두고 핸드폰을 들었다. 헤드폰과 이어져 있던 연결 잭을 뽑자 핸드폰의 화면이 켜지며 대기화면이 빛난다. 05:21. 아직 안나가 잠에서 깨지 않았을 시간이다. 천천히 문을 열고 복도 너머에 있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밤과 낮.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바뀐 지 2년째다. 아니, 어쩌면 1년 반 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3개월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늘 피곤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 슬럼프도 함께 찾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포함한 주변까지도 이러한 생활패턴에 적응을 완료했다. 여섯 시에 잠이 들고 오후 한 시 이후에 일어났다. 예정된 외적인 만남이 없을 때면 방 안에 앉아 글을 썼다. 홀로 지내는 삶은 익숙했다.

 

양변기의 물을 내리고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짧은 사이에 따뜻해졌지만, 그것을 느끼기도 전에 꼭지를 닫았다. 등 뒤로 있는 벽 쪽에 수건이 걸려있지만, 티셔츠에 젖은 손을 문지르며 화장실의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 언니. 좋은 아침이야?”

 

 

방에서 나온 안나가 인사를 건네고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한다. 잔뜩 벌린 입만큼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는 이내 팔을 휙휙 돌리며 몸을 푼다. 이 시간에 안나를 마주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 조금 당황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짧게 고민하다가 흠, 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인사를 건넸다.

 

 

일찍 일어났네?”

 

, 메모 붙여놨었는데. 못 봤어? 떨어졌나?”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 생활시간이 달라 마주하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안나는 냉장고에 포스트잇을 붙여 내게 전할 말을 적어두었다. 대체로 약속이 있어 늦게 돌아온다는 내용이거나,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먹었다거나 아니면 먹으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나도 비슷한 내용을 적어 붙여두면 안나는 그 아래에 알았다는 짧은 단어와 함께 표정이나 동물을 그려놓곤 했다.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어디서 난 용기인지 그것을 따라 해보려 안나가 적어둔 포스트잇 아래로 그림을 그려본 적도 있었다.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다음날 술에 깨었을 때 전날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떠올라 안나가 발견하기 전에 치워버리려 찾았지만, 술에 취해 이미 구겨버린 것인지 찾지 못했다.

 

아무튼 우리는 온라인 메신저보다는 이런 구시대적 방식을 애용했고, 그것이 익숙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전송 실패인지 아니면 무언가에 집중하면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내 성격 탓인지 발견하지 못했다. 젠장, 신경 좀 쓸걸. 안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눈치껏 말을 이어나갔다.

 

 

종강 기념으로 친구들이랑 기차 타고 놀러 가기로 했지롱. 내일 올 거야.”

 

 

안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조와 행동에서 잔뜩 신이 난 것이 느껴졌다. 친구들, 그 안에 남자도 포함되어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만 위험한 건 아니잖아. 네가 남자야? , 속으로 웃었다.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잡았다. 입으로는 조심히, 재밌게 다녀오라는 말을 꺼냈다. 안나는 알았다며 펄쩍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등 뒤로 있는 화장실이었지만. 그것을 알고도 조금 긴장했다.

 

 

화장실 다 쓴 거지? 나 들어간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걸음 물러나자 안나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닫히는 문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겨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밑 서랍을 열어 그 안을 살폈다. 주로 쓰는 물건들이 들어있는데, 찾던 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닫고는 옷장 옆으로 걸린 가방들 사이에서 가장 최근에 들고 나갔던 가방을 찾아 꺼냈다. 지갑을 찾고 있었다. 갈색 가죽으로 된 직사각형의 지갑. 가방 안에 별도로 있던 수납공간에서 그것을 찾아 꺼내 들었다.

 

오래 사용하며 원래의 색보다 바래고 반들반들한 표면으로 변해버린 지갑을 열고 카드를 하나 꺼냈다. 문득 든 생각에 다시 넣고는 현금을 넣어둔 곳을 펼쳐 확인했다. 지폐 몇 장이 있었다. 안나는 카드로 주면 쓰지 못하고 그대로 돌려줄 것 같았다. 안에 있던 현금을 전부 꺼내 지갑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100불짜리 지폐를 빼고 다시 집어넣었다. 이 정도면 적당한 선이지 않을까. 이런 작은 일 하나에 수많은 생각이 따라붙는다.

 

지폐를 쥐고 방문을 열었지만, 화장실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다시 문을 닫았다. 문에 머리를 기댔다. 언제 건네주지? 바닥에 놓아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안나가 분실물인 줄 알고 내게 돌려주는 것이 상상되었다. .

 

 

책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짧게 진동한다. 연이어 울리는 진동에 확인했다. 메시지 알림이 표시되어있다. 크리스토프였다. 잠금을 해제하고 확인해보니 누가 봐도 스벤이 쓴 내용이었다. 이런 걸 돈 주고 산 건지 궁금한 이모티콘도 보낸다. 내가 확인한 것을 알았는지 [엥 아직 안 자?] 하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 혀를 차고 화면을 껐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창문으로 걸어갔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을 다시 닫았다. 재떨이를 비우기 전까진 냄새가 계속될 것을 알지만, 눈 위를 누르는 졸음 때문에 그냥 눕고 싶어 내버려 두었다. 손에 쥔 지폐가 아니었으면 이미 누웠을 것이다. 그냥 현관문 앞에 붙여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충동을 참았다.

 

 

다시 문 앞으로 돌아가 안나가 나오길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가사를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한 곡 정도 따라 부르자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드디어. 문을 열고 안나의 이름을 불렀다. 안나를 붙잡고 용돈으로 쓰라며 건네주려고 하는데, 이런. 젖은 수건으로 벗은 나신을 가리고 있던 안나가 눈에 들어왔다.

젖은 머리카락이 닿은 목덜미와 그 아래로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은 그것을 전부 훑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못 본 척을 하려 했지만, 그 의지보다 반 박자 늦게 눈을 돌렸다.

 

안나 또한 당황했는지 잠시 멈췄다가 방 안으로 달려갔다. 수건으로 앞만 가린 탓에 방으로 들어가는 살 색의 나신이 시야 바깥으로 들어왔다. 쾅 하며 빠르게 문이 닫히는 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내려왔다. 어릴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거였지? 다시 방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렇지만 손에 쥔 지폐가 제 존재를 상기시킨다.

 

벽에 머리를 기댔다. 두 손으로 양팔을 감싸 팔짱을 꼈다. 순식간에 지나간 장면이 떠오른다.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 뇌에서 자꾸 그것을 꺼내 본다. 수건 너머로 보이는 어깨선, 젖은 갈색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목덜미. 젠장. 벽에 머리를 쿵 박으며 속으로 욕지거릴 뱉는다.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정말로 현관에 붙여놓고 건네주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못 본 척 넘어가면 되잖아. 하지만 내가 잘 숨길 수 있을까. 그동안 잘 해왔으면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안정을 되찾았다. 등 뒤로 안나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다급히 자세를 고쳐 섰다.

 

뒤돌아보니 옷을 입고 나온 안나의 모습이 보였다. 보라색 셔츠에 짧은 청바지를 입은 안나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데, 아까의 상황이 무안했는지 어색한 웃음이다. 나 또한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쥔 미션을 끝내기 위해 말을 걸었다.

 

 

아까,”

아까는,”

 

 

말을 꺼냈을 때, 안나의 말에 그것을 급하게 멈추었다. 안나 또한 그랬는지 잠깐의 정적이 생겼지만 먼저 말하라는 내 손짓에 안나가 머쓱하게 머릴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냈다.

 

 

아까는 옷을 두고 와서, 헤헤. 언니는 무슨 말 하려고 했어?”

 

, 아까 주려고 한 건데. 이거, 용돈이야. 놀러 가서 써.”

 

? 진짜? 고마워. 언니. 아껴 쓸게.”

 

그러지 마, , . 필요하면 더 줄게. 카드로 줄 수도 있고. 원하는 대로.”

 

아냐, 아냐. 충분해. 고마워. 엘사.”

 

.”

 

 

안나는 지폐를 내민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성급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움직이지 않았다. 카드 얘기는 꺼내지 말걸. 시선을 내리자 안나가 급하게 손을 뗀다. 아쉬워 고개를 들어 안나를 바라보았다.

 

 

, 오늘은 늦게 자네? 지금 잠들 시간 아니야?”

 

그게, . 배웅해 주려고.”

 

진짜? 진짜로? 잠깐만, 나 머리만 말리면 돼. 잠깐만, 금방 끝나.”

 

천천히 해, 기다릴게.”

 

 

안나가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잔뜩 신난 얼굴이다. 이내 방 안에서 드라이기의 모터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대화를 나눈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다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조금 밀려난 졸음이 그나마 정신을 유지하게 했다.

방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다시 문이 열린다. 안나가 셔츠 위에 카디건을 입고 짐이 든 가방을 손에 들고나왔다. 마른 머리가 부스스한 게 엉망이다. 안나에게 다가가 손으로 머리를 정리해주는데, 손만으로는 안될 것 같았다.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방 안에서 빗을 챙겨 나왔다.

 

 

앉아볼래?”

 

 

안나는 빠르게 복도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귀여워. 안나의 뒤로 돌아가 손으로 살살 풀어준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어 내려갔다. 그 손길에 샴푸의 향기가 올라왔다. 옆머리를 조금 잡아 땋아주려다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풀어버렸다. 안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출발해야지. 안 늦겠어?”

 

“10, 5분 정도는 시간 있는데.”

 

알았어. 해줄게,”

 

아싸, 예쁘게 부탁드려요. 원장님.”

 

 

안나의 머리를 다시 만졌다. 지금 상황과 비슷한, 아직 본가에서 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안나가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할 때 옆에서 같이 보았으며, 그것을 따라 안나의 머리로 몇 번 연습했었다.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손은 기억하는지 조금 헤매다 능숙하게 머릴 땋아간다. 예전엔 안나의 머리를 땋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매일 땋아주었을 때도 있었다. 그땐 어떻게 양 갈래로 땋고 다녔는지. 그래도 지금은 과하지 않게 땋아서 풀어진 뒷머리와 어울리게 잘 성공했다. 안나의 뒷머리를 살짝씩 쳐올리며 볼륨을 주며 끝냈다.

 

안나는 신난 듯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며 그것을 확인했다. 안나의 손에 있던 핸드폰을 건네받고 뒤에서 찍어주었다. 찰칵, 한 장을 찍자 안나가 뒤돌아서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한다. 그 모습을 찍었다. 내 핸드폰이면 더 좋았을 텐데. 보내달라고 하기도 뭣해 그냥 다시 돌려주었다.

 

 

짐은? 다 준비했고?”

 

. 어제 다 싸놓고 자기 전에 확인까지 다 했지롱. 어차피 하루라서 옷밖에 없어.”

 

 

바닥에 앉아있던 안나에게 손을 내밀자 안나가 붙잡고 일어섰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가방을 챙겨 드는 안나에게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안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다녀오겠다며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안나가 눈에 띄게 좋아하던 모습이 오히려 죄책감이 되어 양심을 찔렀다. 내가 집을 떠나 이곳으로 와서 독립한 이후, 나는 안나와의 관계를 끊어내다시피 멀리했다. 일방적으로 변해버린 관계에 안나가 소심해진 것을 느꼈었지만 나는 여전히 선을 그어 그것을 지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은 예외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뒤돌아 방으로 돌아가려다가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위에는 안나가 남긴 메모가 붙어있었다. 오늘과 내일 날짜가 적혀있었고, 옆으로는 푼제리랑 서리랑 베리랑 여행 다녀옴. 선물 사 올게!’라고 쓰여있다. 그 아래로 톰과 제리의 제리가 울퉁불퉁하게 그려져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한 것이 느껴져 작게 웃음이 나왔다.

 

다시 메모를 붙여놓고 방으로 돌아가다가 안나의 방을 바라보았다. 열려있던 문에 막힐 것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드라이기를 사용해서인지 아니면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 때문인지 온기가 느껴졌다. 이 집에서 제일 햇빛이 잘 드는 방을 비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을 처음 봤을 때, 안나가 생각이 났었다. 이 집으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따뜻한 온기에 노곤한 졸음이 몰려든다. 방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것이 옳은 선택일 테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안나의 침대에 엎드렸다. 몸을 감싸는 푹신한 침구에서 안나의 냄새가 났다. 들이마시는 숨에 냄새가 가득 채워진다.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반쯤 감긴 눈에 이 방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 체크무늬 치마와 하얀 셔츠를 입은 안나의 모습이었다. 벽에 기댄 채 낀 팔짱 위로 부모님이 있는 지역의 고등학교 로고 패치가 붙어있다. 엘사의 모교이며 안나의 모교이기도 한 학교였다.

안나의 모습을 한 그것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안나와 똑같이 생긴 그것은, 안나가 절대 보여주지 않을 눈빛과 입매로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났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갑자기 들어오면 어쩌려고?

 

 

이미 나간 걸 확인했기에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졸렸다.

 

 

물건을 두고 갔다든지.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너무 졸렸다. 안나의 향기가 더욱 나른하게 만들었다. 귀찮아, 조용히 해. 안나의 모습을 한 그것이 내려다보는 시선은 이미 익숙했기에, 그것을 무시하고 붙잡고 있던 의식을 놓고 까무룩 잠에 빠졌다.

 

그것은 이미 의식이 없는 엘사에게 말을 걸었다.

 

 

비밀이란 건, 원래 사소한 것에서부터 무너지는 거야.

작은 실수, 찰나의 순간에 말이야.

완벽하지 않으면 소용없어. 알지 못했다고 뒤늦게 소리쳐도.

 

 

그것은 엘사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닫히지 않은 문 너머로 작은 발소리가 멀어지며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잠에 빠진 엘사만이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이미 알려줬어. 참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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