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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Who's sorry now? 02

Lexk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4 17: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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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생물이든 사건이든,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같은 인과관계를 따질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은 명확히도 시발점이 존재한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어떤 것이라도 원인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내 사랑의 시작은 어떨까. 우울이 나를 감싼 어느 적막한 날, 복잡한 머릿속을 헤매며 생각에 잠긴 날이 있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그 원인을 찾아 되짚었다. 내 사랑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시작점이 있다면 언제일까. 그것을 알아야만 이 지긋한 번뇌가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했다.

 

나의 사랑. 사랑, 여동생인 안나를 향한 그것. 숨이 막혔다. 혓바닥이 굳으며 구토감이 느껴진다. 입 안으로 침을 모아 삼켰다. 침대 위에 누운 채로 토악질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의식적으로 숨을 골랐다. 진정을 느꼈다.

 

 

언제였더라, 내가 안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더라. 가족으로서가 아닌, 아니. 일반적인 사랑의 목표는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나의 마음이 사랑이 맞기는 한 걸까? 그것이 틀린 비유라고 느껴져 대체할 단어를 골랐다. 친애. 애정. 설렘. 기대. 어쩌면 성욕. 욕망. 성애. 뭐 그런,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추악함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코끝이 시릴 정도의 공기가 느껴지던 겨울, 내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한 꽃다발을 내밀던 안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뒤이어 다른 기억들이 치고 올라온다. 눈사람을 함께 만들었던 것. 안나가 케이크 위의 초콜릿을 집어 먹던 것. 중학교 입학식에서 안나가 새 교복을 입고 웃던 것.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았던 것. 안나의 눈을 마주 보고, 안나가 미소를 짓던 것.

 

모든 것이 내가 찾던 사랑의 시작이라는 듯 떠오르는 기억들이 순서 없이 스쳐 갔다. 그 간질거리는 기억들이 모두 정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오답이 되어버릴 것 같아, 어느 하나 고를 수 없었다.

 

 

이 숨이 막히도록 무거운 비밀을 안나에게 고백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의 친동생이었고, 나는 그녀의 친언니였으니까. 안나, 우리가 자매가 아니었다면 너는 내게 웃어주었을까. 애초에, 너를 마주할 수나 있었을까. 지독한 인과관계를 가진 내 사랑은 절대 빛을 봐서는 안 된다.

 

 

나는 익숙하게 체념하고, 숨기고, 눌러 담았다. 그렇게 눌러 담은 감정을 품고 살았다. 그렇게 무뎌지고, 어느 정도 사랑을 포기했을 무렵, 그것이 내 앞에 나타났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흐린 날이었다. 그것은 아직 중학생인 안나가 입을 리 없는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내 방 의자에 앉아있었다. 처음엔 안나가 내 교복을 입고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장난에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동생이 아니었다.

 

마주한 그것이 동생의 얼굴로, 절대 그녀가 짓지 않을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 뭐야.”

 

 

그것은 아무 말 없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잠에서 깨어났다. 두 눈을 뻐근하게 하는 안압에 현실임을 자각했다. 꿈을 꾼 것 같지만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진짜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잠을 설쳐서 꿈을 꿨다는 생각이 든 것 같기도 했다.

 

핸드폰을 찾아 팔을 뻗는데, 잡히지 않아 손을 휘적였다. 그제서야 이곳이 내 방이 아님을 알았다. 아침에 잠들기 전, 충동적으로 안나의 방에 들어와서 잠들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구를 펼쳐 정리하다가 다시 자연스럽게 흩트려놓았다. 잠들기 전 침구와 최대한 비슷하게 해놓으려 기억을 되짚었다. 벽 쪽에서 내 행동을 지켜보던 그것이 가까이 다가왔다. 내 옆에 선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의 얼굴을 보자, 언뜻 꿈을 꾼 내용이 떠올랐다. 안나와 키스하는 꿈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짜 안나인지 아니면 안나의 모습을 한 이것인지 헷갈렸다.

 

 

침구를 최대한 정리하고, 정리라기보다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으며, 안나의 방을 나갔다. 문을 닫아두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닫아두었다. 내 방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 떠 있다. 절반이 남지 않은 배터리 잔량 표시 아래로 메시지 알림이 있었다.

 

다음 작품을 계약한 출판사의 담당자였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지난번 보내두었던 소설과 관련한 메시지였다. 오늘 오전 중에 초안에 관련한 회의를 진행했고,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 메시지에 적당히 답장을 남기고 충전기에 핸드폰을 꽂아두었다.

 

 

이제 새로운 거 쓰는 거야?

 

 

핸드폰 내용을 확인했는지 그것이 물었다. 아니, 이제 수정해야지. 나는 익숙하게 속으로 대답하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내 속마음을 얼추 알 수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것과 관련된 생각만큼은 알아들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것의 턱과 볼을 붙잡았다. 손에 그것의 촉감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허깨비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그것과 나는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그것을 만질 수 있었다. 비록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촉감이었지만, 사람을 만지는 감촉이나 느낌은 실재했다. 반대로, 그것이 나를 만지는 느낌도 진짜였다.

 

 

내 무의식이라기엔 자율적이고,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엔 복제품에 불과한 그것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결론은, 모르겠다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천사나 악마 같은 어느 초월적인 존재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힘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그것은 나에게만 존재할 뿐이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닿으며, 귓가에 그것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 하나에게만 가능할 뿐이었다.

 

내가 본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을 안 그것 또한 자기도 모른다는 말로 일축했다. 그저 그것은 이유도 없이 내게 나타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내가 사랑에 절망했을 때 말이다. 그 때문에 천사나 악마에 관한 생각도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것에게 초월적인 힘은 없었다.

 

 

내 손에 볼을 잡힌 채 나를 바라보던 그것이 움직여 내게 입을 맞췄다. 가벼운 접촉에 나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었다. 정신을 차렸다. 그것의 얼굴이 눈앞에 가까웠다.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바라보는 그것은 혓바닥으로 내 입술을 핥으며 재촉했다.

 

긴 시간 공복이었던 탓에 얼마 남지 않은 기운에, 힘 빼기 싫어 손으로 그것의 턱을 잡고 밀어냈다. 그것 또한 순순히 밀려났다. 생각을 알 수 있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의외로 편했다. 이것마저 알아챘는지 그것이 눈썹을 샐쭉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방 밖으로 나갔다.

 

 

 

냉장고에 먹을만한 것이 있나 확인하러 걸음을 옮기다가 안나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도착해서 한창 즐겁게 놀고 있을 테지.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이면 카페나 숙소에 도착해서 앉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이미 개봉되어 먹은 흔적이 보이는, 종류가 다른 잼 두 병과 조미료, 우유와 계란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찬장에 남아있을 핫케이크 가루를 생각하며 우유를 꺼냈다.

 

적당한 그릇에 가루를 덜어 우유를 부었다. 숟가락으로 그릇을 휘저으며 가루가 뭉치지 않도록 저었다. 그러고 보니 안나가 돈을 썼을까 하는 잡생각이 들었다. 전화라도 하지 그래? 그것이 참견했지만 대꾸하지 않고 반죽을 확인했다.

 

 

팬을 꺼내고 뒤집개로 버터를 조금 잘라내어 팬에 올렸다. 열기에 녹은 버터가 뒤집개에서 떨어져나와 팬 위로 녹았다. 그 위로 접시에 있던 반죽을 부었다. 반죽과 버터가 동그랗게 퍼지며 기분 좋은 단내를 풍긴다.

 

반죽에 넣은 우유를 냉장고로 넣지 않고 컵에 따르고 완성된 핫케이크와 함께 먹으며 식사를 끝냈다. 아무리 간단히 요리를 마쳐도 설거지는 요리의 배로 생겨버린다. 그래도 느껴지는 포만감에 만족스러웠다. 집어들은 스펀지에 세제를 적당히 짜고 설거지를 하며 마무리했다.

 

 

셔츠 위로 젖은 손을 문지르며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했다.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었지만, 내일은 나가야 했다. 오늘은 아까 담당자로부터 연락받았던 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일 안나가 돌아왔을 때 엇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냉장고 위에 짧게 쓴 메모를 붙여두었다.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권유에 의해서였다. 그것의 권유였다.

 

 

독립하여 이 도시에 오게 된 후로는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보이는 대로 일을 구했기 때문에 조건을 따져가며 고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추어 생활했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시간에는 주로 집안일을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요리를 했고, 옷을 세탁하고 방을 청소했다. 간혹 남는 여유시간에는 생각에 잠겨있거나 책을 읽었다. 가끔은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쓴 지는 꽤 오래되었다. 열네 살 때부터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일 리 없는 곳에 내 생각을 적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일기라고 생각했다. 규칙적이지도, 기록적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저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어 내리다 보면 종이 위를 움직이는 질감에 안정되곤 했다. 간혹 대범하게 좋아해. 따위의 주어 없는 감정을 남겨두었다.

 

생각해보면 결국 누군가에 들키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결국 어머니에게 먼저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가슴이 아린 기분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외면하고 싶은 것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의 무의식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를 그 앞으로 끌어다 놓는다. 원인을 찾아 과거를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일까.

 

도망치더라도, 이미 일어난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의 무의식이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심장이 두근댔다. 나는 다시 어머니에게 내 죄악을 고백하는 죄인이 되었다. 나는 다시 우리 집이었던 그때의 식탁 앞으로 끌려갔다. 갓 스물이 된 어린 성인이던 그때로.

 

 

어머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나의 친자매입니다. 이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 감정을 어찌해야 할까요. 어머니.

 

그날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모두 지워버린다. 지워진 문장 위로 그것이 끼어들었다. 연극을 하듯 읊조리던 그것이 웃으며 내게 매달린다. 덕분에 진창 같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것은 내 셔츠 안을 파고들며 손으로 훑는다. 아까처럼 빠져나갈 변명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바지 안으로 파고드는 손길을 느꼈다. 나를 놓칠 리 없는 잡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내 고백에 어머니는 침묵했지만, 그것은 암묵적 동의가 아닌 큰 소란을 막기 위한 침묵이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이유가 붙었고, 나는 그것에 동의했다. 안나를 피하고 결국엔 떠났다. 안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다.

 

그날 이후로 연락조차 끊었었다. 다시 만난 것은 안나가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그렇다 보니 나는 안나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 그것이 평소 입고 입는 그 옷의 진짜 주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모순적이었고, 조금 웃기지? 그래, 그랬다.

 

 

그것이 입고 있던 교복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대로 그것을 밀쳐 식탁 위로 눕혔다. 그것과 몸을 섞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익숙했다.

 

그것의 아래를 지분대며 입을 맞추었다. 타액이 섞이며 숨이 느껴진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는 것을 잊은 듯이 숨을 멈췄다.

 

 

 

 

 

네가 원하는 것을 써 보는 건 어때?

 

 

그것이 내게 글을 쓸 것을 권할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일기를 쓰는 나를 바라보던 그것이 이야기했다. 일기를 쓰는 중에 글을 쓰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 이상했다.

 

 

일기는 그저 기록일 뿐이야. 내가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그것은 책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아 앉았다.

 

 

네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정확하게는 나의 중심, 심장 부근을 향해있었다.

 

 

환경도, 관계도 상관없이 솔직하게. 네 감정을 글로 남겨봐. 네 욕망을 보이고, 직접 마주해 보라고.

 

 

그것의 검지가 점점 가까워지며 내 가슴팍을 꾹 눌렀다. 그 아래에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목구멍 아래로 구토감이 느껴졌다. 숨을 멈추는 내 모습에 나를 바라보던 그것이 , 하며 혀를 찼다.

 

 

 

침을 삼키고 그것의 드러난 가슴을 물었다. 정사를 나누는 중임에도 다른 생각에 빠졌음을 그것도 눈치챘겠지만, 그것은 별다른 대꾸 없이 신음을 흘린다.

 

과연 이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보이지 않을 시선에선 과연 나는 어떤 추한 모습으로 헐떡이고 있을까.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이지만,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해결을 위해선 누군가에게 이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고, 나는 이것을 누가 본다면 스스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왔을 때, 나는 혼자였지만, 그것은 항상 내 옆에 존재했다. 그래, 어쩌면 내 사랑은 시작점을 찾을 것이 아니라 결말을 확인해야만 했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그 끝을 알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망상에 휘둘릴 일은 없었을 텐데.

 

그것이 입을 맞춰온다. 질척한 촉감이 느껴진다. 마치 헛것이 아니라는 듯 숨을 막고 안을 훑던 그것이 입이 떨어지기 전, 아프게 아랫입술을 깨문다. 상대적으로 여린 살결에 입 안쪽이 찢어져 피가 나왔다. 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행위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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