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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sorry now? 4.

Lexk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5.09 15: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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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기분 나쁜 꿈을 꿨다. 안나는 내게 매달려 울고 있었다. 눈을 뜨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꿈에서만 울었던 것인지 건조한 눈곱만 만져졌다. 지난밤을 생각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난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힘이 빠져 휘청이는 다리를 끌고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시원한 생수를 하나 들고 단숨에 들이마셨다. 차가운 것을 들이켜서인지, 아니면 숙취 때문인지 관자놀이가 아팠다.

 

빈 생수병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찾았다. 이 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없었다. 어제 강아지 같다는 말에, 무례하다며 화를 내고 사라진 그것 말이다. 가끔 사라지는 일이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쯤이면 당연하게 그것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핸드폰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새벽이었다. 56. 원래대로라면 잠이 들 시간인데, 완전히 수면 패턴이 엉켜버렸다. 당분간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 아래로 떠 있는 알림창에는 크리스토프의 메시지가 3건 있었다. 메시지를 눌러 확인해보니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내용과 함께 내 노트북 가방이 스벤의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런 젠장. 지난밤에는 노트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챙겨주어 다행이었다. 그 안에는 지금 쓰고 있는 글과 이번 촬영과 관련된 자료들이 들어있었다. 나중에 찾으러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깨끗하게 씻고 난 뒤, 벗어두었던 옷을 다시 입는 것은 찜찜한 일이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눅눅한 옷을 다시 입고 방으로 나와 머리를 말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6시가 되기 전이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체크아웃하면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로비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며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63. 일곱 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어가서 다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잠에 들 수 있을까. 어찌 되든 안나를 마주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치더라도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될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도착한 집 안은 조용했다. 현관에 놓인 신발을 보니 안나는 방 안에 있는 듯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조용히 신발을 벗고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고리를 밀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침대에 있었다. 침대 위에 안나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진짜 안나인가? 한나절 보이지 않던 그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덮고 있는 탓에 무엇을 입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뒤돌아 누운 탓에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갈색의 머리카락이 베개 주변으로 흩어져 있었다.

 

일어나. 장난치지 마. 속으로 외쳐보았다. 침대 위의 사람이 안나가 아닌 그것이라면 들릴 것이다. 질 나쁜 장난이었다. 불쾌한 놀림이다. 이러기 위해 모습을 감춘 것이었나? 내 상황을 다 알면서도 이런 장난을 치다니. 최악이다. 지나치게 선을 넘은 행동이다. 화가 치밀었다. 일어나!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침대 위의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들추었다. 잠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나였다. 손에 든 이불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한기에 몸을 웅크리던 안나가 잠에서 깬 것인지 눈을 떴다. 침대 앞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진짜 안나였다. 그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나가 내 방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대체 왜? 생각을 하는 사이 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가 왜 여기에 있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당황스러워 말을 고르는 사이, 안나는 스스로 상황 파악을 마쳤는지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 미안, 언니 방이네? 어제 방을 헷갈렸나 봐. , 그러니까미안. 놀랐지?”

 

 

당황스러움을 최대한 숨기려 팔짱을 꼈다. 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순간 안나의 팔이 내 팔뚝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반사적으로 팔을 비틀어 안나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안나의 표정이 바뀌었다. 움츠러든 얼굴이었다. 나는 순간 안나의 손을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충동을 억눌렀다. 어색해지기 전에 말을 돌리려 했다.

 

 

여행은, 잘 다녀왔어?”

 

, . 재밌었어. 기차도 타고. 바다도 보고. , 언니한테 줄 선물도 사 왔어. 볼래?”

 

.”

 

 

내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안나가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안나가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가기 전, 말을 했다.

 

 

언니, 혹시 나한테 할 말 없어?”

 

 

안나가 뒤돌아 있는 탓에 부스스한 뒤통수만 보였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주먹을 쥐고 없다고 대답했다. 안나는 알았다며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뒤돌아 휴지통으로 가서 그 안에 침을 뱉었다.

푸흡. 웃음소리가 들렸다. 구역질을 그렇게 참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 확인하니 교복을 입고 있는 그것이 침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꼬아 앉은 다리 위로 짙은 웃음이 나를 향했다. 하루 만에 본 그것이 오랜만이라고 느껴졌다. 그렇지만 반가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 탓 하지 마. 엘사. 그게 내 잘못은 아닌 거 잘 알잖아? 그것의 말이 맞았다.

 

 

안나가 자신의 방에서 들고나온 것은 해변에서 파는 과자였다. 그곳에 가면 꼭 사 온다는 쿠키 샌드였다. 초콜릿이 들어간 것과 과일 필링이 들어간 것으로 상자 안에 여러 가지 맛이 있었다.

안나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차와 함께 그것을 나눠 먹었다. 달콤한 것이 들어가니 지끈대던 머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여행 이야기를 하는 안나의 말을 들으며 간간이 대답해주었다. 간혹 안나가 쿠키를 우물거리며 말을 멈출 때에는 정적이 생겼다. 안나의 뒤로 그것이 팔짱을 끼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의 시선을 무시하며 차를 마셨다.

 

 

그래서 말인데.”

 

 

안나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여행 이야기를 하는 중이지 않았나? 흐름을 놓쳤나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안나의 말을 기다렸다.

 

 

있잖아 언니,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말이야.”

 

뭔데 그래?”

 

,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꼭 대답해줬으면 싶어. 있잖아, , 엄마랑 왜 싸운 거야?”

 

안 싸웠어.”

 

거짓말, 아니. 싸우지 않았다고 치고. 왜 사이가 이상해진 거야? ? 나 오늘은 진짜로 알고 싶어, 언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안나. 어머니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

 

제발,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럼, 마지막으로 어머니랑 연락한 적은 언제인데? 둘이 어떤지는 알고 있어? 엄마가 집에서 어떤지, ?”

 

아무 일도 없었어. 안나. ”

 

언니. 진짜로 말 해줘.”

 

나 씻고 나가봐야 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안나의 손이 더 빨랐다. 안나의 손에 팔이 붙잡혀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언니. 나는 이유를 알 자격이 있어! 지난 6년간 내가 둘 사이에서 얼마나 눈치를 봐야 했는지 알아?”

 

안나.”

 

오늘은 들어야겠어. 엄마도 말을 안 해주고, 이유 없이 둘 사이에서 눈치만 봤다고! 아직도 엄마는 언니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런데 아무 일이 없다고?”

 

안나. 그만.”

 

2년 전, 언니랑 만났을 때, 그리고 이 집에 같이 살게 되었을 때 부모님께 비밀로 하라고 한 거야? ? 그래놓고 아무 일이 없다는 말을 믿으라는 거야?”

 

 

한껏 쏘아붙인 안나가 숨을 골랐다. 오르내리는 어깨를 보고, 내 손목을 붙잡은 손을 보았다. 나는 차분해지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니, 안나.”

 

아니, 갑자기가 아니야. 늘 궁금했어. 나는. 언니가 떠난 6년 전부터.”

 

시간을 줘, 안나.”

 

시간? 어떤 시간을 말하는 거야? 거짓말을 할 시간? 아니면 도망칠 시간?”

 

안나.”

 

. 아니야? 언니는 늘 그랬잖아. 틀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나의 말이 맞았다. 팔을 움직여 안나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안나와 그렇지 않은 나. 우리 사이의 육체적인 힘의 상하관계는 분명했다. 지금 우위에 있는 안나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화가 나 있었다. 아주 많이.

 

 

언니. 진짜 나한테 할 말 없어?”

 

없어. 안나, 손 좀.”

 

그래, 그럼 말하지 마. 내가 마음대로 생각할 테니까.”

 

아파, 안나.”

 

그냥 내가 하는 말이나 들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

 

언니. 레즈비언이지? 엄마는 그걸 알고 있는 거고. 맞지?”

 

 

안나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안나 또한 그것을 발견했는지 하, 하는 웃음을 내뱉는다. 안나의 등 뒤로 서 있던 그것이 조용히 웃음 짓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나는. 안나.”

 

 

구역질이 올라와 입을 닫았다.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안나가 쥔 손이 약해졌다. 그 틈에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도망쳤다. 등 뒤로 나를 부르는 안나의 외침이 들렸다.

문을 닫아 잠그고 등을 기대어 숨을 골랐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앞에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 문밖에서 안나의 외침이 들렸다.

 

 

언니!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러니까 나와, 언니! 우린 대화를 더 해야 해!”

 

 

문을 두드리며 안나가 외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여행용으로 쓰는 더플백을 옷장 위에서 꺼냈다. 먼지를 털어낼 시간은 없었다. 그 안에 옷을 챙겨 넣었다. 지갑도 잊지 않고 챙겼다. 문을 두드리는 쿵쿵거림은 멈췄지만, 안나의 말은 계속되었다.

 

 

언니! 제발! 나는 그저 언니랑 있고 싶은 것뿐이라고!”

 

 

저렇게 말하는데도 안 열어줄거야?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온 그것이 말을 걸었다.

 

 

조용히 해.”

 

 

혹시 방 밖으로 들릴까, 나는 작게 말했다.

 

 

그 가방은 또 뭐야? 또 도망치려고?

 

조용히 하라니까.”

 

 

속옷까지 어느 정도 챙긴 나는 가방의 지퍼를 잠갔다.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비상시 아파트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안나를 마주치지 않고 나갈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도둑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붙잡히더라도 안나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대화 좀 하자는데, 받아주지 그래? 도망치는 것보다는 나을 텐데.

 

어떤 말을 하라고?”

 

글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아 보던가. 어떤 말이든 도망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아니. 안나한테 들키는 게 제일 최악이야.”

 

 

그것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안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창문 밖으로 넘어가 철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려 천천히 걸어갔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오늘인 걸까. 어째서 안나는 오늘 내게 6년 전 일을 묻는 걸까. 그동안 네가 기회를 주지 않았잖아. 엘사. 엊그제 내가 안나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래서 그런 거야?

 

계단은 2층에서 끊겨있었다. 가방을 먼저 떨어트린 후에 바닥으로 착지했다.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바로 가방을 챙겨 들고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든 가야 했다. 안나가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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