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팬픽]Arens Of Sheffield 29~30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5.23 21:16:52
조회 389 추천 8 댓글 1





1~28






77.


"시트라 서머스 씨. 계십니까?"


시트라 서머스, 그것은 메가라의 이명이었다. 방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메가라는, 약 2시간 전, 필립스와의 통화를 마치고 경찰에 파울 세르난데즈를 신고했다. 그리고 2시간 후인 지금,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문 밖에 설치한 도어캠으로 확인이 되었다.


"암호는요?"


혹시 몰라 경찰에게 신고를 할 때 암호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전화를 받은 경관은 메가라의 지시 사항을 현장에 출동한 경관에게 이전시켰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들려오는 암호는 '독수리 두 마리'여야 했다.


"독수리 두 마리요."


메가라는 그제서야 문에 겨누고 있던 P226권총을 뒷바지춤에 끼운다음 두 경관을 맞이했다.


"아... 일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떤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좋은 소식부터 듣고 싶네요."


"예, 아가야. 밖에 누가 왔니?"


그녀의 뒤에서 올리비에가 걱정스러운 듯이 서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아뇨, 별 일 없어요. 어서 주무세요 엄마."


"어머니...되시는 분인가 봅니다."


"예, 그 편지와 케이크, 파울 세르난데즈를 직접 본 사람이 어머니셨으니까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몽타주를 그리시는걸 거부시켰고요. 맞습니까?"


메가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PS가 파울 세르난데즈, 즉 올리비에가 테러리스트를 마주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올리비에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대신 집 곳곳에 세워둔 캠의 녹화 영상을 통해 파울 세르난데즈의 몽타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가 메가라의 집에서 떠난 직후, 경찰은  CCTV를 통해 그의 동선을 추적했다. 그는 왓슨 스트리트 노스웨스트와 팔리사 레인 노스웨스트의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지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고, 브루스 레인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상가모어 로드의 인도를 거닐었다. 그러던 중,  캐피탈 크레스켄트 트레일로 뻗어진 외진 골목에서 모습이 끊긴 그는, 잠시 뒤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상가모어 로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의 마지막 자취는 섬너 하이랜드 아파트단지에서 끊기고 말았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지만, 올리비에에게 이사왔다고 말을 건네러 오기엔 누가 봐도 수상했다. 2미터도 아닌 2KM를 건너오고, 중간에 모습을 감춘 것조차, 모든 게 수상했다.


"...일단 섬너 하이랜드 1동 301호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같이 동행하시겠습니까?"


경관은 메가라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파울 세르난데즈와 같이 있었던 그녀의 어머니, 올리비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희 어머닌 노쇠하셔서 안 돼요. 차라리 제가 가면 안 될까요?"


메가라는 그것이 과연 합당한 의사인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파울 세르난데즈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올리비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경관은메가라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


"음, 그럼 같이 동행하시는 걸로 하고, 올리비에 씨께선 차에 남아 계시는 게 좋겠네요. 그러면 돼지 않겠습니까?"


"엄마, 괜찮겠어요?"


"음, 글쎄다. 그 총각이 무슨 일이 생겼다니, 그리고 나와 관련이 있다잖니. 일단 가보고 생각해 보자꾸나."


올리비에는 메가라보다 조금 더 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가라는 열려있는 경찰차의 뒷좌석에 올리비에를 태웠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현장에 지금 경찰들이 와 있습니다. 수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가지고 계신 무기가 있으십니까?"


메가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이 커질 것을 대비해 자신의 P226권총을 경관에게 내밀었다.


"현장 감식이 끝나면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총기 국가라서 각별하게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메가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을 시작하는 경관의 말에 동의했다.



현장 감식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CIA국장이 아닌, 수상한 사람을 마주한 민간인의 딸이었다.








78.




도착한 섬너 하이랜드 아파트는 경찰의 붉고 파란 경광등에 일부 시민들이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메가라는 뜻하지 않은 소란에 그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며, 뒷좌석에 있는 올리비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엄마, 잠시만 갔다올게요. 별 일 아닐 테니까 걱정하지 마셨으면 해요."


"얘, 원래 네가 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니. 조심해서 갔다오렴."


올리비에는 조금 졸린 듯 시큰둥한 목소리로 메가라에게 말했다. 메가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섬너 하이랜드 아파트는 엘레베이터가 없는 구식 아파트였다. 이곳까지 동선을 파악한 경찰들의 수준에 메가라는 내심 감탄하면서도, 그들의 안내에 따라 301호로 진입했다.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고, 문은 열려 있었다. 메가라는 그 안에서 풍기는 희미한 오물 냄새에 집중했다. 자살. 비록 현장에서 물러났을지라도, 한때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던 안나와 일시적으로나마 합을 맞춘 그녀였다. 중동의 내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 온 안나가 알려준 지식에는 시체의 냄새를 구분하는 법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이 지금 그녀에게 있어 근시안의 예언처럼 적용했다.


"자살했나 보군요. 냄새로 보니까."


"시체 특유의 냄새가 나나 보군요. 감식반이 왔다 갔는데, 목을 매달아 죽었다 하더랍니다. 아, 그리고 현장에서 이런 편지가 또 나오는데, 그게... 시트라 서머스 씨. 당신에게 와 있는 거라서... 보시겠습니까?"


"먼저 시체부터 확인하고 보면 안 될까요?"


메가라는 확인하고 싶었다. 반 나절을 올리비에와 지냈다던 그 사내의 얼굴, 파울 세르난데즈라는 사내의 모습을. 경관은 흔쾌히 폴리스 라인을 들춰 주었고, 메가라는 고개를 살짝 숙여 라인을 지날 수 있었다. 이내 집안으로 몸을 들였을 때, 방 한가운데 로프에는 조금씩 움직이며 목을 매달아 죽어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기보다는 무표정과 기쁨 사이의 어딘가의 표정으로 창백한 낯빛으로 죽어있는 그였다. 메가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미 감식반이 조사해 눈에 띄는 물건은 편지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꽤 잘생기긴 했네.'


만약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했을 법한 시체를 뒤로 하면서, 메가라는 경관이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편지를 받아들였다. 포장을 뜯은 뒤, 메가라는 편지 속 내용을 확인했다.



그의 부모님은 2019년 10월 CIA의 비밀공작 중 부차적 피해로 목숨을 잃었다.
아이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너희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채, 우리의 목적에 따라 순교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네가 누군지도 알 것 같군.
찾지 말라고 했을 텐데도 말이야.
-PS
– ·  · ·  – · – ·  · –  · – ·  · –  – – ·  · · –  · –
109 97 110 97 103 117 97
49 4E 44 55 53 54 52 49 41 53 20 46 41 54 49 4D 41





메가라는 순간, 소름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19년도에 비밀 공작 중 민간인 피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민간인의 아들이 PS란 단체에 합류하면서, 올리비에와 반나절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녀의 다리를 풀리게 하는데도 충분했다. 하지만 간신히 아파트 난간을 딛고 선 그녀는 경관이 부축해드리겠다는 의사도 무시하면서 감사하다는 말만 내뱉고는 힘겹게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다시 조수석에 올라 탄 메가라는 유난히도 침묵을 유지하는 올리비에의 뒷좌석을 확인하기가 무서웠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잠깐 아파트를 둘러보고 온 사이에 올리비에가...


메가라는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잠을 자고 있는 올리비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집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CIA 국장의 어머니와 접촉했고, 이미 이전에 CIA 내부에 첩자가 있음을 암시하는 암호도 라울의 보고서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안전가옥에 올리비에를 PS를 종결시킬 때까진 머물게 해 둬야 했다. 잠들어있는 올리비에는 반대할 지라도, 메가라는 강행시켜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렌가의 사람들에게도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핫라인 전화번호로 안나 아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남긴 암호문을 분석팀에게 넘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78.




검사관 'A'의 유일한 낙이 있다면 유투브를 보는 것이었다. 무연고 시체와 국내에서 불법으로 공작을 자행하는 CIA의 숨진 요원들을 염습하고 화장을 하며, 지루한 문서들과 암호 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 유투브란 거의 유일하게 활기찬 활동 중 하나였고, 실제로 유투브 속 세상은 그에게 있어 세상 그 자체와도 다름이 없었다. 구독해 둔 채널만 수백 개가 넘어가는 그에게, 얼마 전 유투브 알고리즘이 특이한 채널을 하나를 띄워 주었다. 채널 이름은 오디세우스였다. 그리스 신화에 조예가 깊지 않은 그였지만, 트로이 전쟁과 목마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그는 오디세우스의정신병적인 행동은 기억하고 있었다. 채널은 이제 막 40만명의 구독자를 찍었지만, 다른 채널들이 으레 그렇듯 조회수는 구독자의 몇 배...


"아니, 몇 십 배잖아."


영상 하나 하나가 500, 600만을 넘어서 1억에 가까운 조회수를 찍어낸 영상도 존재했다. 막대한 조회수는 A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했다.


"지젤, 이 채널 봤어? 아주 미친 채널이던데."



"아, 그런 거 볼 시간에 염이나 좀 해요."


푸른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지젤이 지나가며 A의 어깨를 툭 쳤다. A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채널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모자이크를 한 사람 한명이 붉은 A가 거칠게 칠해진, 마치 할렘가의 그래피티를 연상케 하는 벽 앞에서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는, 그저 단순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A는 그의 영상에 가 져진 지식은 해구와도 같이 깊다고 느껴졌지만, 그의 얕은 배경 지식으로도 모자이크 속 남성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1%를 위한 99%,
부유함은 죄악이며,  그들은 대가를 치른다.
지나친 부유함은 이기심을 조장하며, 도덕을 방관한다.
정치인은 나라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나라를 움직이는 건 당신들이다.
애국을 하기 위해, 수단은 중요하지 않는다.
자본과 공산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며 당신의 가족이다.
CORDIES DIE, RISE...



아주 간단한 어휘였지만, 그 말에는 힘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직전, 제 3신분의 대표 의원인 미라보 백작의 연설에 감명을 받은 같은 의원인 로비스피에르의 심정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A는 오디세우스의 연설에 감복했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구독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TV와 뉴미디어에서 드러나지 않는 빈부격차는 더는 가릴 수 없게 되었고, 중동에선 여전히 내전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격화되고, UN은 그저 우려한다는 성명, 그리고 규탄만 이을 뿐 꼭두각시가 된 지 오래였다. 세계 제일의 대국의 시민으로써도,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의구심을 안 느낀 적이 없었다. 그것이 곳 오디세우스에 대한 믿음의 씨앗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오디세우스에 대한 맹신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맹신의 새싹이 자라 광신의 나무를 이루게 될 거라는 사실을.







79.



치료제를 알아낸 이후부터 안나는 한껏 느긋하게 병실 침대 위에 누워있을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이 잘 끝나더라도 어떤 경우엔 마취액이 척수를 타고 흘러가 뇌에 편두통을 일으킨다는 사례가 있었다. 고개를 들으면 두통과 구토를 동반해 상황파악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고주망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안나로썬 수술이 무서웠고, 그것이 안나에게 있어 남아있는 어린애스러움의 잔재였다. 다행이도, 벨이 치료제와 화학식을 찾았다고 하니 수술이 끝나고 곧바로 이두나와 함께 치료제를 맞고, 벨라에게까지 투여시키면 자연스럽게 무산되었던 가습 테스트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뜻밖의 일이 잘 풀려서 안나는 허공에 대고 실실 웃기까지 했다.


'이제 곧 다시 만날 수 있어.'


오두막이 아니라, 안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짧게 덧붙였다.  안나는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면 무얼 해줄지 곰곰히 생각할 여유까지 가지고 있었다. 돌아가면 조를 짜서 요리대회를 해볼까도 생각 중이었다. 물론, 각자의 요리 실력이 안나를 제외하면 전무했기에, 에피타이저, 두 개의 메인디쉬, 그리고 간식. 이렇게 네 개 분야로 나누어 조를 짤 생각이었다. 안나는 당연히 메인디쉬 하나를 맡을 생각이었다. 그럼 누구랑 조를 짜면 좋을까?


'한나는 조금 요릴 할 줄 아는데... 그럼 반칙이고... 한나 조에게 메인디쉬를 맡겨야겠다.'


그 때, 안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안나는 아이들이겠거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머니에 꽂아 둔 전화기를 들었지만, 발신인은 메가라였다.


'얘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안나는 의문을 자아내면서도 수신 버튼을 눌렀다.


[나야.]


"알고 있어. 갑자기 전화를 한 걸 보니까, 안 좋은 일인 것 같은데...꼬리라도 밟힌 거야?"


그 꼬리는 바로 존재가 부정된 안나와 아렌의 개체들에 대한 정보였다. 혹시 모를 도청을 방지해 꼬리라고 이전부터 메가라와 통칭했더니만큼 정보 유출은 중대한 사항이었다.


[내 생각엔...그런 것 같아.]


"근거는?"


[너,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에 참여한 기록이 있었잖아. 그곳이 어디었지?]


"그곳에서 고문받았던 기억밖에 안 나는데, 장소가 어디었더라."


[니카라과였잖아. 이 멍청아!]


갑작스럽게 화를 낸 메가라의 말에, 안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이해하기로 했다. 조직의 톱에 오른 요원의 삶이 결코 안나처럼 느긋하다고 볼 수 없었으니까.


"왜 그러는데, 니카라과 일은 PTSD 감이라서 잊고 있었던 것 뿐이야."


안나에게 얼음물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도 니카라과의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이었다. 작전명 데드킹. 안나에게 있어서 실수에 가까웠지만, 성공에 가까운 임무였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문 도중 투여 받은 마약 때문에 치료 센터를 전전해야 했고, 급히 구조되었을 땐 혈관을 수축시켜 마약의 활성화를 늦추기 위해 수도 없이 얼음물에 담가져야 했다.


"지금 우리 모두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몰라."


메가라의 말은 뜻밖이었지만, 무언가 앞뒤를 자른 감이 크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이미 종결된 작전인데, 무엇 때문에 그래?"


"널 마지막으로 니카라과에서 공작 활동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수도 마나과에서 작전을 진행했고, 거기서 탈출한 게 너잖아."


"그것도 맞긴 하지. 헤롱헤롱하면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민간인이 있는 듯 해. 어쩌면 그 유지를 잇는 카르텔일지도 모르고."


안나는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복수, 그 단어만이 안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힌트는 존재하니까, 내가 알려줄게, 작전은 우리가 진행할 거고, 너희들에 대한 경비가 보다 더 강화될 거야. 사복 요원들의 수가 더 많아질 거란 얘기지."


"애들이 눈치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긴 하다마는.... 그래서, 힌트가 뭐야."


안나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애덤 스미스가 말한 야경국가의 축소판이 안나의 집안에 스며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PS, 그리고 파울 세르난데즈. 뭐 짐작가는 거 없어?]


"없는데."


[진짜로?]


"없어, 내가 무슨 걸어다니는 CIA 전문가...였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내 가족 챙기기도 바쁜데 파울인지 폴인지 어떻게 자세히 알겠어? 내가 죽인 암살 타겟과 부차적 피해, 샐리맨더에서 죽인 사람만 해도 족히 수천은 되겠는데. 그건 그쪽 분석팀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그래, 알았어. 아무튼 PS나 파울 페르난데즈같은 키워드가 네 주변에 발견된다면 바로 전화해야 해. 수술 후 퇴원하면 집안에 주로 있는 걸 추천할게.]


"답답해지겠는데... 뭐 어쩌겠어. 일단 네 말대로 해야지. 그래."


통화를 마치고, 안나는 천천히 문 밖으로 나와 옆 병실을 확인했다. 조용한 노크 두 번의 소리에, "들어오세요."라고 친근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저예요."


"아직 안 자고... 못 자고 있구나."


이두나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변형 부위가 워낙 적어 90%를 제거할 수 있었고, 제거할 수 없는 10%의 변형 부위는 벨의 치료제로 지워낼 수 있어보였다. 대신, 그녀의 한쪽 손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다른 손도 깁스가 필요했지만, 너스콜을 눌러야 하고, 이두나 스스로가 거절해서였다. 진통제를 맞아 정신이 몽롱할 터인데도, 이두나는 옆 서랍 위에 놓인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책 이름은, 안나가 썼던 '기도하는 먹잇감'이었다.


"엄마보다 더 큰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봐요."


치료제가 존재하는 수술이더라도, 피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안나가 침대에 걸터 앉자, 이두나는 조금 옆으로 피해 안나가 누울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형식상 입원한지라 간호사와 경비들은 그녀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메가라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얘기해 줄 수 있겠니?"


안나는 메가라와의 통화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어느새 자신의 얼음물 트라우마까지 꺼내고 있었다.


"...암튼 그래서 찬물로는 못 씻죠. 엄마도 아시다시피..."


"저번에 들었지만, 여전히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구나. PS라, 내일 아침 정보 부서에게 연락을 넣어야 겠구나. 그리고 ASIC과 에리얼 양의 인포 카르텔에도..."


이두나가 부자연스럽게 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뱅쇼 다섯 잔을 마시고 난 것처럼 어눌했다. 진통제와 함께 취침약이 섞인 링겔을 투여받고 있어서였다.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석적인 방침이었다.


"안 아파요?"


안나가 이두나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며 물었다. 이두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딸의 손을 잡는 게 아프다면, 그건 부모가 아니지."


그 말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10여년 전, 이두나와 아그나르는 안나와 엘사의 손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벌어진 비극은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서로를 망각의 바다에 빠뜨렸고, 직접 만날 때까지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같은 상처와 공백을 공유하기에, 더욱이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부모의 힘이 이런 거구나, 하고 안나는 생각했다.


"난 언제나 너랑 함께할 거란다."


이두나가 졸음에 빠진 목소리로 안나에게 말했다.


"저도요, 아마 우린 죽으면... 오두막에서 원없이 살 지도 모르겠어요."


"같은 능력을 투여받았고... 아이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참 우린 죽음에 대해 너무 가벼워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안나는 철학적인 말을 던졌다. 사실이었다. 들판 위의 오두막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죽게 되면 체내에 축적된 능력으로 치료되어 부활한다. 그 때까지 오두막에서 원없는 샌드박스 라이프를 즐기면 되는 것이었기에, 죽음이란 단어는 이제 아렌가에 있어 사전적인 의미에 불과했다.


"그래서 1호, 2호 개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두막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말이니? 하지만  멜리사의 경우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멜리사는 안나와 직접 만나기 전에 이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들 모두 멜리사의 능력에 죽었지만, 오두막에서 그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확실치 않네요. 우리가 되살아 난 게 엘리사 쪽이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멜리사에게는 거짓말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멜리사는 처음 만날 때보다 얌전해졌다. 아니, 얌전해지기 보다는 짖궂은 본연의 성격을 되찾았다고 보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안나와 이두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얌전함의 기반에는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나는 자신의 기억들이 거짓임을 알고 스스로 극복해 냈지만, 멜리사는 명백한 과거가 존재했기에, 그 과거를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게 중요했다.


"어쩌면 능력의 변이가 감정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음... 이런 말 하기엔 낯부끄러운데..."


안나가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아꼈다. 이두나는 궁금한 듯 둘째 딸의 볼을 성치 않은 손가락으로 쿡쿡 간질였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던가, 유대감...진정한 사랑....아오오..."


안나의 얼굴이 화끈해졌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어도, 부끄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단다. 플라시보 효과를 기억하렴. 아이들의 능력은 그 효과가 사실로 변성된 것일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벨 씨에게 말해 줘봐야겠어요. 다른 개체들에게도 좋은 효과를 미칠 지도 모르니까..."


안나는 은연중에 아이들과 한나를 제외한 미지수의 개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런던 내에서도 그들의 사회화를 위한 교육원이 비밀리에 지어져 운영되고 있다는 첩보를 메가라가 전해 주었으니, 언제 한 번 아이들과 함께 들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나의 수술이 시작되기 하루 전의 새벽은, 별 다른 일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80.




노크는 세번 빠르게, 세번 느리게, 그리고 다시 세번 빠르게 문에 두드려졌다. 잠에 깊게 빠져 있던 랩터는 별안간 들려온 불협화음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서랍에 놔 둔 P250 권총을 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겨눴다.


[랩터, 오큰 건 일이야.]


"암호는?"


[네가 추천한 주식이 떡락했어.]


"게르다가 맞나 보네. 들어와."


랩터가 뒷바지춤에 권총을 끼운 채로 문을 열었다. 졸린 눈을 한 게르다는 현금수송용 가방을 들고 있었다.


"자, 밖에 나가면 밴이 하나 놓여 있을 거야. 오큰의 소재를 찾았어. 이번엔 팀으로 진행되는 작전이라 사전 훈련이 필요해."


"이것들은 다 뭔데?"


랩터가 가방의 지퍼를 조금 열며 말했다. 묵직한 감각이 서려 있는 걸로 보아, 자신이 장비해야할 무기와 장비들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네 목숨줄이지. 아무튼 네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어. 네 코드명은 바이퍼 1이고. 팀장은 바이퍼 6야."


"사전 훈련은 오랜만인데, 내가 팀웤을 맞출 수 있을까?"


"외로운 늑대형인 네가 맞추기엔 힘들겠지. 하지만 이번 작전은 너 홀로 나서기엔 너무 위험한 작업이야. 팀은 내가 꾸렸어."


"옛 소련식으로? 모두 소련 출신인가?"


랩터의 말에 게르다는 고개를 저었다.


"전원 알바니아계에, 영국인 한 명이야. 이 작전을 참관할 MI6요원이거든."


랩터는 가방의 지퍼를 완전히 푼 채로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RAL2000도료와 온갖 부착물이 장착된 MP7A2기관단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참관원이 좋은 꼴을 당한 적은 거의 못 봤는데."


"서방 쪽 VIP를 감시하는 역인데다, MI6쪽은 오큰과 VIP쪽의 커넥션에 대해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참관하는 거야. 아마 그는 SSE 때 따로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고."


랩터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적어도 사상자 한 명은 줄겠거니 싶은 그였다. 그리고 랩터는 가방의 지퍼를 잠구면서, 가장 궁금한 질문 하나를 게르다에게 던졌다.



"그래서, 오큰은 사살인가? 아니면 납치 후 심문이야?"



"현장에서 심문. 그것만 알아둬. 심문은 MI6쪽 요원과 네가 맡을 거고."










77.5



"어째 불운과 악운이 한꺼번에 온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카산드라는 메가라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카산드라는 태블릿으로 전송된 프레데터 드론들의 사진과 지도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메가라가 보낸 것이었다. 카산드라가 시선을 힐끔 올려다 보았을 때, 메가라는 피곤에 지쳐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그녀로써 알 턱이 없었다. 분명 간만의 퇴근으로 즐거워하던 그녀가, 퇴근한지 몇 시간만에 핏발이 잔뜩 서 있은 채로 랭글리로 돌아왔고, 그녀 전담 태블릿에서 새로운 파일들이 들어왔다.


"그런...것 같습니다."


카산드라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나 싶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잭의 협상 과정에서 배운 것은 분명히 있었다. 언제나 침착함을 잃지 말고, 그것을 연극에 나서는 배우처럼 가면으로 만들으라는, 가볍게 와인을 걸치고 돌아온 잭의 조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그 침착함을 쓸 여유는 없어보였다.


"마지막 니카라과 작전을 알고 있는 세력들이 있어요."


"죽은 울프독이 참여했다던 그..."


순간, 카산드라는 메가라의 눈에서 일말의 동요를 찾아볼 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는 것일까?


"존재인지, 단체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해요. 그들은 PS라는 코드명을 쓰고, 파울 세르난데즈라는 청년을 미끼삼아 죽게 만들었어요.


카산드라는 그 파울 세르난데즈라는 자에게 왜이리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혹시 그녀가 종종 말하던 필립스의 본명이 파울 세르난데즈이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는 헤라클레스라고도 불릴 만큼 다부진 몸과 군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민간군사기업 중역 간부였다. 그가 죽을 일은 전쟁이 발발해야 비로소 이루어질 거라고 공공연히 생각하던 카산드라였다.


"그걸 저에게 말해주시는 이유가..."


카산드라는 알고 싶었다. 어째서 그 많은 요원들 중에서, 한직에 안주하며 살고 있는 그녀를 불러 메가라는 중요한 정보를 발설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CIA 내에 첩자가 있고, 그게 누군지 특정되지 않았어요. 당신을 이렇게 부른 건, 제가 당신을 믿어서  그런 거예요."


신뢰, 하지만 카산드라는 깊이가 얕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잭에게서 배운 습관 탓일까. 카산드라는 혼자 자신을 부른 메가라의 의중을 더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임무를 맡길까 해요, 태스크포스를 꾸려줄 테니, 최근 10년간 실종되거나 사망했던 요원들의 마지막 거취들을 조사해 줘요. 부탁할게요."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카산드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태블릿에는 프레데터 드론, 그리고 마커로 지워진 듯한 지명이 나와있는 황무지의 이미지가 띄워져 있었다. 드론 네 기가 궤도를 무단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햇고, 즉시 수습팀과 씰 팀이 야간을 틈타 네 기 중 세 기를 회수 및 파괴하는 데 성공햇다. 그리고 드론에서 조사된 블랙박스 저장장치에는 영상이 아닌, 2급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들이 대량으로 들어 있었다. 나머지 한 기에는 무슨 기밀이 들어있을지 몰라도, 맨 처음 메가라가 말했던 것처럼, 악운이 페이스트리처럼 차곡차곡 겹치는 느낌이 강렬히 들었다.



"추락한 드론의 블랙박스에서 2급 기밀이 들어 있었고, 그곳엔 블랙 요원들의 신상이 들어있는 파일이 나왔어요."


순간, 카산드라의 턱끝에 식은땀 한 방울이 매달려 그녀의 손등 위로 톡 하고 떨어졌다. 그녀 또한 흑백논리로 따지면 블랙 요원이었고, 그것은 즉 자신의 신상 또한 털렸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드론들의 이탈 원인이 키로거 바이러스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고, 코드를 분석한 결과..."


메가라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공기는 서늘했지만, 땀이 날 정도로 허공 속에 긴장의 칼날이 잔뜩 벼려져 있는 것 같았다.



"PS, 라는 코드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흔적이 보였어요. 사실, 이건 당신에게만 말하는 건데..."



메가라는 제정신으로 얘기하기 힘든지, 차가운 맥주 두 캔을 냉장고에서 가져와 카산드라에게 하나 내밀었다. 아사히 사 맥주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산드라는 금주가였다. 하지만 조직의 톱이 개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어보였기에, 푸쉬-하고 메가라보다 먼저 따개를 비틀어 연 카산드라였다. 메가라가 말한 일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카산드라는 마음 속으로 PS란 자가 단순히 메가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PS는 블루라운드라는 민간군사기업 소속 EML이란 단체의 활동 구역에서도 언급된 바가 있었다. 그것이 처음의 이야기였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파울 세르난데즈, PS가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가장 최악인 경우는 메가라의 사례였다. 정보기관의 수장의 집까지 직접 찾아와 메세지를 남겼다는 것은, 곧 테러의 위험으로 직결되는 말도 되었다. 와인에 잔뜩 취해 후송용 밴에서 잠이 들기 전, 잭은 카산드라에게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남겼다.



[조신이 맹신이, 맹신이 광신이 되는 법이지.]


파울 세르난데즈란 청년은 광신도였다. 그것을 만든 사람, 아니 기관은 다름 아닌 CIA였다.


"음...19년도 10월 흑색작전 목록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맥주를 홀짝이며 카산드라는 메가라에게 정식으로 문서를 요청했다. 물론, 그녀의 등급으로 문서 열람은 아직 불가능했다. 화이트 요원으로 이직해도 몇 년은 더 짬을 채워야 할 그녀의 호봉이었기에, 직접 최고위 상관에게 부탁해서라도 태스크포스를 만들어야 했다.


"당신의 등급은 진즉에 올려 뒀어요. 이제 문서 열람이 가능해요. 태스크포스 팀은 정해 두었나요?"



메가라의 말에, 카산드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산드라에게 있어 정신적 스승인 잭은 무조건 태스크포스에 영입해야 할 1순위였다.




그리고 2순위는, 한때는 요원이었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론 '장의사'로 활동중인 'A'라는 사내였다.










78.


밤이 되었고, 엘산나도 코로릉....거리며 코를 골며 자는 사이, 엘사와 한나는 엘산나 옆 소파에 앉아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능력을 다루는 그들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으...졸려..."


그것은 엘리사와 멜리사가 했던 눈사람과 얼음사람을 표방해보기 위해 오기가 돈 한나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음이 가는대로 했더니 만들어졌다는 엘리사와 멜리사의 말에, 한나는 일부러 스스로에게 피로를 축적시키려 하루 종일 운동을 했다. 다부진 근육이 어우러진 몸매를 가진 한나였지만, 엘사는 너무 과도하게 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늘 한나의 운동 강도는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샤워를 끝마친 한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머리를 말리지도 못한 채 엘사에게 헤어드라이기를 맡겼고, 엘리사와 멜리사는 한살짜리 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 결과, 한나는 잠을 자기에 최적의 상태가 되어 엘사의 무릎에 머리를 뉘인 상태였다.


"어떻게 하는지 기억하고 있지?"


"된다...된다...된다...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되나?"


"그래, 잠시만..."


엘사가 손을 한 번 휘젓자, 그녀의 주위로 찰박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물방울들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물방울들은 그녀들의 옷에 젖지 않았다. 한나의 바람이 느껴지면, 물방울들이 바람에 달라붙어 형체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안 해도 돼?"


"난 나중에 해볼 거야. 지금은 너가 우선이지, 안 그래?"


엘사가 한나의 두 땋은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한나의 바람으로썬 형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물, 눈, 얼음 중 하나의 조력이 필수였다. 굳이 아이들을 깨워서 할 필요도 없이, 이런 것은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엘사였기에, 손가락을 한나의 콧등으로 가져가 두어 번 톡 톡, 쓸어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활기가 남아있던 한나의 눈이 갑자기 풀리며 잠에 들었다. 므에에... 무언가 말을 하려던 한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엘사는 다시 한 번 이두나의 '코 톡톡'의 효과를 실감하며, 주위에 떠있는 물방울들에 신경을 집중했다. 바람의 흐름을 읽어야 했다. 5분이 지났을까, 한나는 기억하던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입을 벌리며 쿠아-쿠아-하며 자기 시작했다.


"요 망충이가."


엘사가 살풋이 웃으며 한나의 이마에 딱밤을 놓으려던 찰나, 바람의 흐름이 바뀌었다. 허공을 떠다니던 물방울들이 조금씩 바람의 흐름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한 곳에 모이던 물방울은 소파 앞 작은 협탁으로 모였고, 이내 피규어만한 물사람 하나가 만들어졌다.


[오, 오...]


"한나니?"


[그, 그런 것 같아.]


쉭쉭거리며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도 한나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렸다. 엘사가 스탠드를 가져와 비추자, 물사람이 된 한나의 모습이 더욱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느낌이 어때?"


[음...시원하면서도...물렁물렁해. 물이어서 그런가봐.]


"아마 한동안은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내 물도 아이들만큼은 아니어도, 꽤 긴 시간동안 유지할 수 있거든."


[거즘 유체이탈 같은 거네. 언니, 내 이마에 딱밤 한 번만 놔줄 수 있겠어?]


물사람이 폴짝폴짝 뛰면서 엘사에게 작은 부탁을 요청했다. 엘사는 가볍게 한나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지만, 물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음, 좀 더 세게 때려 주...]


빠악, 이번엔 잠들어 있던 엘산나가 깨어나 한나의 배에 꼬리를 문지를 정도로 세게 딱밤을 먹인 엘사였다. 하지만 물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큰일인 것 같은데. 애들은 어떻게 했더라."


[깨워서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있다간...]


문득, 물사람과 엘산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엘산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사람에게 코를 들이밀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지만, 무색무취인 물사람에게 냄새가 날리는 만무했다.


[으, 저, 저리가아...무섭잖아...]


재빠르게 엘사의 손 위로 올라 탄 물사람 한나는 엘산나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엘사에게 손을 치켜 들으라고 손바닥을 팡팡 두드렸다. 엘사는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하게 되었다.


캥, 에응응응엥엥엥... 엘산나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여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먹고 싶은데에....'라고 해석하는 게 가장 맞는 표현일 거라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엘사는 생각했다.


[핫! 거대한 엘사 언니다!]


[거대한 여우 괴물이다아....그리고 어... 엘사 언니 손에 누가 있어.]



그때였다. 한나를 물사람에서 꺼내 줄 두 눈사람과 얼음사람이 총총거리며 복도로 나와 거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추천 비추천

8

고정닉 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55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1 286
1123621 잠이깬 거시애오 ㅇㅇ(223.38) 05:44 7 0
1123620 격하게 밤샌 다음날 [1] ㅇㅇ(222.233) 00:07 20 0
1123619 일요일이야 ㅇㅇ(110.47) 06.01 10 0
1123618 이거 몬가 떠난 설쥬미와 설갤 같음 [4] ㅇㅇ(110.47) 06.01 40 0
1123617 눈이 퀭~ [1] ㅇㅇ(110.47) 06.01 11 0
1123616 안줌 술버릇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25 0
1123615 엘사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19 0
1123614 오타쿠짓하다 발견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48 1
1123613 구케엘 이제 디아블로4 하냐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23 0
1123612 안나는 평생 공주하고 엘사는 여왕하자 [1] ㅇㅇ(223.38) 06.01 28 0
1123611 맨날 카멜레온 같이 아이피 바뀌더니 ㅇㅇ(223.38) 06.01 15 0
1123610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17 0
1123609 설...하... [1] ㅇㅇ(211.234) 06.01 15 0
1123608 왜 6월임 ㅇㅇ(221.143) 06.01 12 0
1123607 엘산나 언제까지 애틋할거야 ㅇㅇ(223.38) 06.01 18 0
1123606 아 미친 6월 첫글을 잊다니 ㅇㅇ(110.47) 06.01 17 0
1123605 6월첫글 차지해 ㅇㅇ(223.38) 06.01 15 0
1123604 이러다 뽀뽀할거같음 [5] ㅇㅇ(110.47) 05.31 62 11
1123603 정신 차리니까 벌써 금요일 ㅇㅇ(223.38) 05.31 15 0
1123602 엘산나갤입니다 ㅇㅇ(223.38) 05.31 16 0
1123601 맛점해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1 25 0
1123600 내 5월 어디감 [1] ㅇㅇ(106.101) 05.31 19 0
1123599 하 혐퀘 [1] ㅇㅇ(211.234) 05.31 19 0
1123598 5월도 안녕 ㅇㅇ(223.38) 05.31 18 0
1123597 5월 마지막의 첫글이노라 ㅇㅇ(110.47) 05.31 18 0
1123596 능력 혐오하는데 능력 없는건 싫은 엘사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68 5
1123595 아 맞다 쥬미들아 인스타펌글 올릴 때 조심해 [1] ㅇㅇ(110.47) 05.30 67 3
1123594 누가 이거 1이 안나고 2가 엘사랬는데 [2] ㅇㅇ(110.47) 05.30 57 0
1123593 설갤만큼 엘산나에 진심인 커뮤가 있냐 [1] ㅇㅇ(223.38) 05.30 39 0
1123592 모든 삶이 엘산나야 ㅇㅇ(223.38) 05.30 29 0
1123591 우중충한 날엔 빠와가 있는 노래를 들어야 해 [3]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40 0
1123590 설갤 덕분에 글도 써보고 [1] ㅇㅇ(223.38) 05.30 31 0
1123589 크으 이틀만 견뎌 ㅇㅇ(223.38) 05.30 19 0
1123588 그래서 대체 왜 목요일에는 다들 없는거임??? [2] ㅇㅇ(112.157) 05.30 38 0
1123587 핵정전의 목요일 ㅇㅇ(112.157) 05.30 19 0
1123586 설하 [1] ㅇㅇ(106.101) 05.30 20 0
1123585 소설이란걸 써본게 설갤이 처음인디 [3] 설갤러(221.145) 05.30 50 0
1123584 크윽 늦었다 [1] ㅇㅇ(223.38) 05.30 24 0
1123583 첫글접수 ㅇㅇ(110.47) 05.30 19 0
1123582 고요한밤 설갤러(118.43) 05.29 19 0
1123581 막글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9 19 0
1123580 코피 철철철 ㅇㅇ(110.47) 05.29 21 0
1123579 저 밑에 새의상 [1] ㅇㅇ(223.38) 05.29 34 0
1123578 후 빡센 오늘이었따 [1] ㅇㅇ(223.38) 05.29 27 0
1123577 엘사가 사라지는 꿈꾸는 안나 [2] ㅇㅇ(223.38) 05.29 45 0
1123576 설하 [1] ㅇㅇ(115.138) 05.29 18 0
1123575 오늘 유익한 악몽을 꿈 [2] ㅇㅇ(211.234) 05.29 32 0
1123574 설하 [1] ㅇㅇ(112.157) 05.29 2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