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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만 모르는 근친인 것도 좋지 않냐 下 (Epilogue)앱에서 작성

ㅇㅇ(175.125) 2021.07.09 23:08:55
조회 1107 추천 41 댓글 10

한쪽만 모르는 근친인 것도 좋지 않냐 上



한쪽만 모르는 근친인 것도 좋지 않냐 中









고롱고롱, 한낮의 연인들은 몇 달 새에 가장 편안한 얼굴로 깊은 낮잠에 빠져있었어. 노란 빛을 받고 누운 연인은 감은 눈으로도 서로를 찾아 품에 파고드는 게 꼭 꼬물거리는 강아지들 같았지. 엘사의 명을 어기고 안나를 들여보낸 겔다도 잠깐 들렀다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나왔다나?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 이곳은 폐허가 되기는 커녕 따스한 햇빛과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했지.

먼저 눈을 뜬 엘사가 개운해진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봤어. 벌써 해가 저물어서 창을 타고 안나의 머리색만큼 붉은 빛이 너울거리고 있는 게, 꽤 시간이 흘렀나봐. 더 이상 자면 취침 시간이 뒤로 밀려서 한동안 고생할 거야. 엘사가 안나의 볼에 뽀뽀하고 살짝 흔들면서 깨웠어. ​일어나, 안나. ​

​우웅?​ 웅얼거리며 대답하던 안나가 눈을 뜨고 엘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퉁퉁 부은 눈으로 한가득 웃음 지어. 안녕, 엘사. 그리곤 몸을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켜고, 발을 동동거리면서 신난 기분을 티 내. 그러다가 ​윽, ​한순간 머리를 부여잡곤 올망졸망한 눈으로 엘사를 올려다봐. ​엘사아... ​



"나 머리가 너무 아파."

"자고 일어났는데도 많이 아파? 아까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가봐. 물부터 마셔봐."



다정한 언니의 걱정스러운 손길로 전해받은 물을 끝까지 마신 안나가 그래도 아프다며 엄살을 부려. 사실 엘사의 말대로 자고 일어나서 그렇게까지 많이는 안 아팠는데, 그냥 어리광 부리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엘사는 알면서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안나를 바라보다가, 먼저 침대를 벗어났어. 어디 가냐는 물음에 금방 올테니 기다리라 말하고 방을 나서지.

평소와 달리 아무도 없는 복도에 다시 안나에게 물으니 아까 자기가 올라올 때 다 물리고 와서 그렇대. 하긴, 그 난리를 피워댔는데 사람이 있으면 그게 더 무서워. 엘사는 계단을 내려가서 계단 입구를 버티고 서 있는 하인에게 말을 걸었어.



"아까 안나 공주를 접근하게 한 사람이 누구죠?"

"폐하! 의원이 절대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니시면 큰일 납니다."

"이젠 괜찮아요. 그것보다, 안나 공주를 내 방에 접근하게 한 사람 말하라니까요."



정말로 투옥할까봐 그러는지 눈치를 보는 하인들이야. 찾아내면 일단 의중을 물어보고, 징계는 하되 투옥까지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사실 대충은 짐작이 가긴 했어. 여왕의 명령을 어길 만큼 배짱 있으면서, 하급 하인들이 눈치를 볼 만큼 권력 있는 사람이면 집사장 아니면 시녀장이겠지. 그들은 전전대 국왕 시절부터 아렌델 성에 고용돼서 엘사와 안나를 마치 조부모처럼 돌보았으니까. 명을 어긴 것도 신하보다는 어린 여자애 둘을 키워낸 노인의 마음으로 그런 거겠지.

그것과는 별개로, 여왕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 이 하급 하인들이 괘씸한 건 사실이야. 대답을 기다리던 엘사가 하인들의 이름과 직책을 물어 외워두었어. 진짜 상전이 누구인 줄 모르고 윗계급에 붙어 쩔쩔매는 게 반란에 가담하기 딱 좋은 인물군상이거든. 이름을 물어보자 사색이 되어 대답하는 게 그럴만큼 간이 크진 않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지만, 나중에라도 문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겠지.

다음을 기약하며, 엘사는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우리 안나 맘고생 했으니까 맛있는 것 좀 먹여야지. 아까 계단에 있던 하인들처럼 걱정하는 말을 해서 똑같이 이젠 괜찮아졌단 답을 했어. 아마 오늘 마주치는 사람들에겐 죄다 같은 말을 듣고, 같은 말을 해야 하는 처지인가봐. 안나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빨리 만들어서 방으로 보내달란 주문을 하고 방으로 돌아가겠지.

근데 열린 방문으로 얼핏 보니까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안나가 안 보여. 방 안으로 들어가서 고개를 돌리니 그제서야 책상에 앉아 편지를 읽는 안나가 보이지. ​편지?​ 엘사가 순간 튀어나가 손으로 안나의 눈을 가렸어.



"엘사? 왜 이래?"

"편지를 왜 읽어봐!"

"어차피 내가 쓴 거잖아... 아니야?"



사실 엘사는 이제는 안나로 밝혀진 익명의 사랑편지를 곱씹어 읽는 것으로 모자라 줄을 치고 코멘트를 달아뒀거든. 혼자 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안나에게 보여줄 수 없는 말도 적었지. 그걸 안나가 알면 엄청 놀려댈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자기가 부끄러워. 근데 뭘 어쩌겠어, 평생동안 안나 눈을 가리고 있을 것도 아니고, 보지 말라고 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할텐데. 결국 눈을 가린 손을 내렸어.

안나가 문장을 중얼중얼 읽으면서 이건 내가 읽어도 잘 썼니, 저건 말맛이 잘 안 사는 것 같니, 리액션을 하다가 엘사가 써놓은 코멘트를 발견해. 그 즉시 안나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흥미로 반짝였어. 이거 그냥 코멘트 수준이 아니거든.



"엘사, 이게 뭐야? '​당신의 '검'은 나를 향할 수 있어요. 난 '지는(lose)' 걸 원하니까요.​' 이거 내가 생각한 그 뜻 맞아? 오, 응큼하긴! 이거 심지어 처음 답장 주고 받았을 때 아냐?"

"저, 적은 건 나중에 적은 거야!"

"어쩐지 익명의 그 사람과 처음 대면한 엘사가 심상치 않다 했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응?"

"이 얘기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절대 안 되지. 숙맥인 줄 알았더니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어? 온 아렌델이 놀랄 거야. 우리의 순결한 처녀 여왕께서 속으로는 그걸 '잃기를(lose)'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니!"



엘사가 평소에 놀리는 맛이 있긴 해도 이 정도까지 반응하는 건 처음이라서 안나는 싱글벙글. 편지를 손에 들고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쪽으로 걸어가며 놀렸더니, 엘사는 얼굴이 붉어져선 다급한 변명을 덧붙이느라 안나를 뒤쫓아가. ​간절까진 아니거든!​ 엘사가 안나를 앞질러 마주 봤어. ​너 자꾸 내 순정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려고 들면-​ 안나가 눈을 가리던 편지를 휙 제치곤 엘사를 보면서 말했어.



"원하고는 있었다?"

"적어놓은 거 읽었으면서 왜 물어봐?"



안나가 눈썹을 씰룩이더니 편지 든 손으로 엘사의 어깨부근을 가볍게 밀어. 엘사는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가 했더니, 푹신한 침대에 폭 안착하지. 편지도 팔랑팔랑, 침대 저편에 떨어졌어. 놀랐다고 항의하는 말에도 안나는 아무 말 없이 엘사의 위로 올라타서 상체를 내려. 엘사는 눈을 감고 입술에 느껴질 감촉을 기대하는데, 생각치도 않았던 귀끝에서 감각이 느껴지는 거야.

이로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물었다가, 그대로 쪽, 가볍게 키스하곤 입술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목소리 낮추어서 조곤조곤 말하는 연인의 밀어 때문에 소름이 돋았지.



"​밤의 시간을 타고 온 내가 '아침 이슬' 맺힌 '문'을 '두드릴' 때, '들어갈' 수 있도록 당신의 '문틈'을 활짝 '벌려' 주길.​"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쿵쾅쿵쾅, 들릴까 걱정될 정도로 제 위치를 알려대. 그리고 안나의 입술이 턱선과 목덜미를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키고 손으로 옷자락을 꼭 쥐겠지. 그땐 정말 마지막인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던 거였는데, 지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어서 머리속이 번민으로 가득 차.

​지금 당장? 원하긴 하는데, 이렇게 빨리? 아니, 늦은 거긴 한데... 근데 이렇게 가볍게 농담하다가 해도 되는 건가? 순서가 보통 이게 아니지 않나? 아니, 얘도 처음 아닌가? 설마 그 두 명 중 하나랑 이미...! ​

엘사가 안나를 확 붙잡고 다급하게 불렀어. ​안나!​ 그에 반해 안나는 태연하게 ​응?​ 대답할 뿐이지. ​얘 진짜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



"너... 너도, 처음이야?"

"당연한 말을... 내가 엘사 말고 누가 있겠어."

"너 남자친구 두 명 있었잖아."

"내가 설마 걔네랑...! 아니야. 나도 엘사처럼 처음이야."

"근데 왜 이렇게 능숙해?"

"그렇게 느껴졌어? 다행이네. 아마 책에서 읽었나? 민가에 놀러 가서 듣기도 했고..."

"너 어디 가서 이상한 사람들이랑 노는 거 아니지?"

"생각해보니까 친동생에게 처녀를 잃고 싶어 하는 이상한 여자랑 놀긴 하는데-"



​안나!​ 다시 한 번 엘사가 안나를 부르며 말렸어. 따져보면 사실이긴 해도, 어떻게 저런 망측한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물론 자신의 그런 격하디 격한 반응이 안나로 하여금 짓궂음과 용기를 끌어낸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어.

그렇게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데, 복도에서 돌돌돌, 카트를 끌고 오는 소리가 들려. 안나는 음식이 오고 있다는, 그러니까 하인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서 저러다 가겠지 싶고, 엘사만 퍼뜩 정신을 차렸지. 엘사는 여전히 제 위에 올라탄 안나를 제법 세게 퍽 밀어내고 일어나 앉았어.

​아야!​ 안나는 여왕이 폭력 쓴다면서 툴툴거리다가 심상찮은 분위기의 엘사를 보곤 눈치를 봤어. ​음, 엘사? 내가 너무 심했지? 기분이 들떠서 좀 지나쳤나봐...​ 그러고 있는데 카트에 실린 식기가 흔들리며 나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 안나는 소리가 들리는 문 쪽을 보면서 상황 파악 중이고, 엘사는 머리와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똑똑똑-.​



"여왕 폐하, 공주 전하, 저녁 식사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들어오도록 해요."



짐짓 고상한 말투로 엘사가 출입을 허가하자, 머리를 꾸벅이며 인사한 시녀 둘이 방 한쪽에 간이 식탁을 세워. 그동안 카트를 지키고 있던 시녀가 식탁보를 꺼내 깔고, 그 위에 식기를 배치해. 아까 식탁을 세웠던 시녀 둘이 가담해 일사분란하게 음식을 가져다 놓고는 마지막으로 식기를 정돈하고, 촛불에 불까지 붙였어. 완전히 준비가 끝나면 시녀 두 명이 각자 여왕과 공주의 의자를 빼서 앉기 쉽도록 하지. 오랜 기간 왕가를 모신 아렌델 성의 직원들답게 깔끔한 움직임이었어.

상전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앉으니 와인을 따라준 시녀가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밖에 대기하고 있겠노라 말하면, 엘사가 고개를 저으며 따로 부를 테니 물러가 쉬어도 좋다고 말해. 그럼 관대한 여왕에게 감사를 표하곤 카트를 끌고 없던 것처럼 방을 나가 사라지겠지.



"머리 아프다길래, 맛있는 것 좀 먹으면 괜찮을까 싶어서 식사를 방으로 준비해달라고 했어. 이제 보니 꾀병이었던 것 같지만."

"아니야, 그땐 진짜 머리가 아팠어!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진 거지."

"흐음, 몇 달 동안 날 속인 거짓말쟁이 말을 내가 어떻게 믿을까?"



엘사의 뼈 있는 말에 안나가 말을 잃고 방황하다 겨우 되찾아 사과했어.



"그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앞으로 절대 속이는 일 없을 거야."



엘사도 안나의 속을 모르는 건 아니야. 친언니를 사랑한다니, 저도 무서웠겠지. 그치만 그동안 가슴앓이한 시간을 생각하면 얄밉잖아. 아무래도 이미 용서했단 말은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말 꼭 지키라고 으름장을 놓으니 재깍 맹세가 튀어나왔지. 말은 참 잘한다니까.

안나한테 맛있는 거 먹이려고 음식을 가져오라 한건데, 허락 없인 계속 눈치만 보고 있을 기세야. 어쩔 수 없이 엘사가 먼저 연어 구이를 한 점 가져오며 어서 먹으라고 말했지. 아렌델의 전통적인 상차림은 코스 요리가 아니라 여러 음식들을 한꺼번에 차려놓고 조금씩 가져와 먹는 방식이었거든.

엘사를 따라 안나도 사슴고기 미트볼과 으깬 감자를 덜어서 접시 위로 가져와 한 입. 배가 고프긴 했는지 맛있다고 감탄하는 안나를 보고 엘사가 웃음을 흘리니 저도 좋다고 따라 웃어. 다 풀렸다는 걸 아는 것만 같이 말이야. 식사가 이어지고 분위기가 다시 말랑해지면, 엘사가 와인잔을 들고 눈길을 보내. 그에 안나도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어올리지.

건배사를 떠올리던 엘사가 머뭇거렸어. ​뭘 위해 들면 좋을까?​ 안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어.



"우리를 위해."



엘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 말했어. ​우리를 위해.​

붉은 포도주의 향이 코를 간질이다 입안을 감싸고, 식도를 타고 넘어가서 연인의 이미 공유된 붉은 물에 섞여. 하얀 식탁보를 타고 넘어간 손이 다른 쪽에서 넘어온 손을 붙잡고 사이사이 손가락을 얽었지. 풀 수 없는 매듭처럼 단단한 손을 느끼며 이 순간을 즐겼어.

서로에게 빠져 있던 것도 잠시, 이러다 음식 다 식겠다며 다시 식기를 부딪히기 시작했어. 적당한 포만감이 들 때까지 느린 식사를 이은 둘은 곧 상을 물리고,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어 음식 냄새를 없애느라 방을 옮기면서까지 얘기를 멈출 줄 몰랐을 거야.

각자 목욕하느라 떨어져 있으면서도 같이 있는 것처럼 머릿속으론 서로의 생각만 가득하겠지. 그리고 파자마 차림으로 다시 만나 문이 닫히고 불 꺼진 방 안에서 달빛을 받으며 누운 밤의 연인이 될 거야.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이고 입맞춤을 나누겠지.

길게 이어진 지난한 일로 몸이 지쳤기 때문에 당장 초야를 치루진 못할 것 같아. 할 수는 있겠지만,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전부를 느끼고 싶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겠지. 대신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으면 하는지 진솔하게 얘기하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자연스럽게 잠에 들지 않을까? 앞으로도 밤은 끊임없이 돌아올 테니 말이야.










-----


일방적 근친썰 끝. 난 해피엔딩이 좋더라.

댓글에 알아차린 사람이 있어서 좀 놀랍고 반가웠는데, 이 얘기는 셰익스피어 작품 구조를 약간 참고했어. 자세히 말하면 재미없겠지만! (사실 별 것도 없고 ㅋㅋ)

혹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궁금한 점 있으면 댓글로 달아줘.

그리고 댓글들 정말 고마워 하루에도 몇 번씩 읽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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