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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 하앱에서 작성

태정태세문단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7.22 08:54:42
조회 573 추천 17 댓글 8

비가 오는 바람에 우리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못 한다. 나 혼자면 우비를 입어서라도 타겠지만, 한나가 뒷자리에 탈 수 없다. 옆집의 손님 픽업용 봉고차에 근처 애들끼리 모여 타서 학교 근처에서 내린다. 좁다란 좌석에 낑겨타다 못해 누구는 서너명의 무릎 위에 누워서 탔다. 언덕을 지나갈 때면 크게 덜컹 거려서 누워 있는 애가 높이 뛰어오른다. 시내에 자주 나가는 애들이 하는 말이, 디스코팡팡이라는 놀이기구와 비슷해서 재밌단다. 등교할 때야 옆집 아저씨 내외의 수고 덕에 편하게 간다지만, 하교할 땐 걸어서 가야했다. 한나의 말대로 3시간이나 걸리진 않았지만, 자전거를 탈 때보다 훨씬 오래 걸리긴 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지금과 비슷하다. 하늘에서 뭔가 내리는 날에는 맨날 이렇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면 이 짓도 졸업하게 되겠지. 옆에서 한나가 발로 웅덩이를 밟았다. 우리 동네가 숲이라 좋은 점은 비가 와도 나무가 많이 가려줘서 그렇게까지 빗발이 거세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대신 흙 길이 진창이 돼서 장화를 신어도 무릎께까지 흙이 튄다는 게 조금 단점이긴 하다. 한나가 물장난을 치자 내게 흙탕물이 조금 튀었다. 짜증은 나지 않았다. 원래 같았으면 나도 같이 장난을 쳤을테니까. 그냥 지금은 한나가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조용히 있는 중이다.


"아까 엄청 놀랐어."


반에 벌이 들어왔었다. 학교 건물에 벌집을 틀었으면 119를 불렀겠지만, 그냥 주변 산에서 온 것 같았다. 벌레 한 마리가 인간의 터전에 비집고 들어와서 소란이 일어났다. 지루함 속에서 피어난 한 순간의 소동은 즐거운 것이었지만, 그 즐거움이 내가 그리도 싫어하던 벌레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했다. 사실 처음 벌을 발견한 애가 주책을 떨지 않았다면 벌레가 들어온 줄도 몰랐을 거다. 다들 깜짝 놀라서 교실 구석으로 도망치고, 겁없는 애들 몇 명이 빗자루를 가져와 마구 휘두르다가, 결국 죽이진 못하고, 벌은 유유히 창문 밖으로 나갔다.


"뭐 좋은 거 있다고 벌들이 자꾸 건물에 들어오는 걸까."


혼잣말은 혼잣말로 끝났다. 한나는 왠지 요즘 말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나는 그냥 눈치만 살피고 있다. 한나도 공장 이야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런 거 신경 쓸 애가 아닌데. 한나는 성적이 좋아서 별 큰일만 없다면, 4년제 대학에 전액 장학금이 예정된 거나 다름 없었다. 공장 얘기에 신경을 쓴다면 내가 써야하는 게 맞다. 나는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면서 다닐 머리는 아니니까. 온 동네가 장사를 접게 된 상황이 됐을 때 부모님께 철없이 등록금 얘기를 꺼내는 건 어려울지도 몰랐다. 시내에 나가서 알바를 구해야하나. 뒷목이 간지러웠다.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가 보였다. 집에 거의 다 왔다. 한나가 힘들까봐 가방을 내가 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섰다는 게 조금 반가웠다. 한나의 가방은 조금 무겁다. 담요, 겉옷, 주전부리, 저번에 한 번 주의를 줬다고 이런 저런 책까지 여러 권. 주의를 준 나도 책을 몇 권 안 들고 다니는데. 일부러 가방 무겁게 한 건가, 싶었다.

집 현관에 들어서서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으니 어머니가 놀라서 주의를 주셨다. 할머니가 전쟁날 적 기억에 놀라실 수도 있다고. 이제 와서 새삼 느낀거지만, 할머니는 진짜 꼬부랑 할머니다. 아버지도 대학다닐 적에 평화 시위에 참여하셨다고 하시니, 우리 집은 역사의 보고다. 그 역사의 보고들 중 한 분은 파리채로 파리를 잡고 계셨고, 한 분은 모기향을 피우고 계셨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는 진지한 목소리로 공장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에 대해 욕하셨다. 공장 들어서면 일자리 생기니 좋은 거 아니냐며 찬동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있다는 모양이다.


"뭘 만드는 공장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듣자하니 뭐 제조 공장이라던데, 그럼 당연히 폐수 문제가 생길텐데 어떻게 그리들 멍청한 말을 하는지, 원. 보트 사고, 이거저거 장비 사고, 그거 돈이 얼마가 들었는데! 지들이 산 거 아니라고 속 편한 소리만 해댄다니까."


폐수 문제 역시 소문에 불과한데, 아버지는 역정을 내셨다. 요즘은 폐수 정화해서 내보내지 않나?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지만, 나도 잘 아는 건 아니라서 그냥 고분고분 밥이나 먹었다. 비는 언제까지 내릴 건지 모르겠다. 빨리 방학을 했으면 좋겠다. 방학을 하려면 시험을 봐야하는 게 흠이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으니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 오셨다. 언제 나가셨대. 또 우산 안 들고 나가셨나 싶어 다가가니 우산은 제대로 들고 계셨다. 근데 우산에 물기가 없다.


"어? 할머니 밖에 비 안 와?"
"으응, 밖에 물난리 났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밖을 보니 비가 그쳐 있었다. 오. 잠깐 그쳤나보네.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하니 내일 오후까지 비 소식은 없었다. 한나를 불러 산책을 나가자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한나는 아까 나갔다고 하셨다.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좁다란 동네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겠지, 싶어서 천천히 걸었다.

우리 동네는 마을이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집집마다 거리가 멀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숙박업체의 건물인줄 아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뜨문 뜨문 지나치는 집마다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타설한 콘크리트 길은 울퉁불퉁해서 물웅덩이가 많았다. 장화를 신고 올 걸. 아니면 쓰레빠. 괜히 운동화를 신고 와서 물을 피해 조심조심 돌아다녀야 했다. 가로등에 비친 물웅덩이엔 소금쟁이가 돌아다녀서 조금씩 출렁거렸다. 그러고 보니 전학생은 그 벌 소동이 일어났을 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그게 뭔 큰일이냐는 듯이. 출렁이고 술렁이는 사람 속에서 홀로 고요한. 내게 입을 맞추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물을 마시던. 물 웅덩이를 찰박거렸다. 아, 목이 마르다.


"안나 어디 가냐? 산책 나왔어?"


마실 나오신 동네 어르신이었다. 급하게 인사하니, 그래그래, 하며 설렁설렁 손 인사를 한다. 어르신들은 어린 애들을 볼 때마다 꼭 이렇게 한 번 씩 말을 건다. 심심해서 그러시는 거다. 불필요하고 궁금하지 않은 말이 대부분이지만, 어릴 땐 그들의 옛적 이야기를 듣는 걸 재밌어했던 거 같은데. 그런 온화하신 분들이 아버지처럼 역정을 내시는 게 상상이 안됐다.


"아까 한나가 저기 어디야, 언덕 위쪽으로 혼자 가더만. 왜 둘이 따로 다녀, 쌍둥이가. 싸웠어?"
"한나가 저 몰래 나가서 찾으러 가요."
"그래, 조심혀."


나는 다시 꾸벅 인사하고 한나가 목격됐다는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쪽은 경치가 좋아서 조립식 집을 지어서 숙박업을 하는 곳이었다. 새삼스레 동네구경이라도 하려는 걸까. 기분 안 좋아 보이더니 센치해지기라도 했나보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나볼 걸 그랬다. 뒤늦게 후회됐다. 그래도 내가 나름 언니인데. 쌍둥이 사이에 언니 동생 따지는 건 장난칠 때 뿐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른들은 어른들 일로도 충분히 바쁘고, 학교 선생님이야 선생이 그네들 직업이고, 학교 친구들도 같은 동네에서 자라기만 했을뿐이다. 우리를 이해하는 건 우리 밖에 없는데. 어느새 달리고 있었다. 가파르진 않지만 완만하고 긴 언덕을 빠르게 올랐다. 멘션을 몇 채 지나치고, 가장 높은 곳의 공터에 도착했다. 한나가 있었다.


"어?"


전학생도 있었다. 나는 몸이 굳었다. 어두컴컴한 공터는 언덕 아래 도로 가로등 빛을 겨우 받고 있었는데, 전학생은 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얼굴이 안 보였다. 반대편에 선 한나의 얼굴은 보였다. 전학생의 품에서 나온 한나는 화가 난 것 처럼 보인다. 잘못 본 걸지도 몰랐다. 한나가 전학생의 손을 두손으로 소중히 쥐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난 것 같다. 한나가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한나를 본 게 얼마만인지. 한나가 내 손을 잡고 언덕 아래로 끌었다. 무심코 뒤돌아보니 전학생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헛것이 아니구나. 좀 더 밝았으면 무슨 표정인지도 보였을 텐데. 한나의 걸음이 빨랐다.

돌아가는 동안 한나는 계속 화를 냈다. 내게 소리를 지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없이 걷기만 했지만, 분명 화를 냈다. 그래서 나도 뭔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야 한나는 성난 걸음을 멈췄다. 대문은 열려 있었지만, 들어갈 생각은 없어보였다. 먼저 들어가야하나, 뭔가 말해야하나, 기다려야하나.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한나가 뒤돌았다.


"야."


날 선 목소리였다.


"짜증나게 하지 마."


내 무엇이 한나를 짜증나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말을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내 행동이 한나가 기분이 나빴다면 내 잘못이 맞았다. 그래도 억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함을 넘어서 궁금증이 뭉게거렸다. 너 전학생이랑 뭐하고 있었어? 한나를 향한 걱정이기도 했고, 단순한 궁금증이기도 했고, 전학생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탐구심이기도 했던 물음을 내뱉지 않은 건, 집 앞 가로등에 몰려있는 나방들이 징그러워서였다. 짜증난다. 목에 벌레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뒷목을 긁었다.


-


기말고사가 끝났다.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동네 사정과는 별개로 시험이 끝났다는 게 즐거운 것이다. 선생님들도 성적을 확인하고 입력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시간이 자유시간이나 다름 없었다. 이쯤 되면 고등학교가 아니라 다 큰 애들을 모아 놓은 보육원이 아닌가 싶었다.


"멍청아! 거미는 절지동물이라고, 벌레 아니야. 벌레는 다리가 여섯 개."
"그럼 지렁이도 벌레 아니야?"
"걔도 뭐시기동물이야."
"뭔 상관이야, 어차피 징그러운 건 매한가지인데. 아무튼, 진실의 종아 울려라! 집 좀 가게!"


비가 오니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는 바람에 심심한 애들은 이제 하다 못해 백과사전을 들고와서 '도전 골든벨'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한나는 없다. 한나는 부쩍 교실을 나간다. 땡땡이라면 땡땡이인데, 보통 양호실에 가 있거나 도서관 구석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선생님들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걱정했는데, 한나가 그저 시끄러운 게 싫어서 그런다는 걸 알고난 후부터는 위치 보고만 잘 해달라고 당부하며 자유롭게 풀어줬다.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그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한나가 어딨는지 모른다.

한나가 없는 자리를 계속 흘끔거렸다. 전학생이 오늘치 공부를 다 끝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전학생은 학교에서 해야하는 공부량을 모두 소화해내고 나면, 지금처럼 먼저 복도로 나간다. 그리고 내가 따라간다. 언덕에서 한나가 전학생을 만나던 걸 발견한 날 이후부터 계속 그랬다. 처음엔 내가 할 얘기가 있으니 잠깐 나오라고 했다. 전학생한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건 금기시 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순간 다들 우리를 쳐다보던 시선이 조금 무서웠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 날 무슨 얘기를 했더라. 먼저 불러 놓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거리다가, 선수를 빼앗겨서 전학생이 또 입을 맞춰왔었지. 지금처럼. 옥상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서 이젠 아예 안경을 쓰고 오지도 않는 당당한 태도로 당연하다는 듯이, 내 목과 턱을 양손으로 감싸서 도망가지 못하게 잡고 입을 맞춘다. 그리곤 조금씩 벽으로 몰아붙인다. 습한 밖에서 숨이 가빠지고 열이 오르니 금방이라도 땀이 날 것 같다. 내가 싫다고 어깨를 밀려고 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꿈쩍도 안 하다가, 손을 내려서 여기저기를 만진다. 쓰다듬 듯이, 어루만지 듯이. 그 느낌이 싫어서 계속 팔을 밀어내다가, 종국에 옷 안으로 손이 들어올 즈음엔, 어깨랑 가슴팍 쪽을 조금 세게 때렸다. 겨우 떨어진 전학생을 노려보며 옷으로 입가를 닦았다.


"야, 아프잖아."


맞은 곳을 어루만지며 나를 노려보는 눈이 진짜 화난 것 같아 보였다. 아, 때리는 건 안 됐나. 하지 말라는 데도 계속 하는 건 저쪽인데, 눈치를 보는 건 맨날 나였다. 그래도 티를 내진 않았다.


"너 좀 웃긴다. 싫으면 따라나오지 마."


그러면서 비웃는 얼굴은 명백한 조롱의 의미였다. 나는 미간을 할 수 있는 한 세게 찌푸렸다. 맨날 책상에 앉아만 있어서 빼빼 마른 주제에 무슨 힘이 저렇게 쎄고, 세상만사 관심 없는 척은 다 하더니 왜 자꾸 나한테 이러는 걸까. 얼어죽을 학구열 타령은 더이상 들어주기도 싫었다. 손이며 팔이며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서 세게 문질렀다. 짜증이 나더라도 해야 할 건 해야 한다.


"할 얘기가 있어."
"핑계는. 레파토리가 너무 뻔해, 너."
"한나가 요즘, 그, 기운이 없는데. 이유 알아?"
"너 지금 좀 비참하지 않아?"


안경이 없는 맨 얼굴을 계속 보다보니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를 보는 눈빛이 또 무섭다. 표정은 없는데, 눈이 빛난다. 정열이 불타는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환시켜서 빛나는 그런 느낌이다. 그게 꺼림찍하고 무섭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서 그런 걸까. 마음의 창과는 거리가 먼, 학구열이 담긴 입이 뱉은 말은 가슴을 찔렀다.


"너네 쌍둥이잖아. 동갑에, 같은 반에, 가족인데.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면서 그런 걸 전학생인 나한테 물어보는 거,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네가 우리한테 호기심이 있다면서. 호기심이 있으면 어느 정도 관찰하고 알아낸 게 있을 거 아니야."
"관찰만 한 건 아닌데."


전학생은 그러면서 또 내 얼굴이며 귀를 만지작거렸다. 전학생은 이 더위에서 피부가 끈적거리지도 않고 보들보들했다. 뒤늦게 추행하는 손을 때려서 치웠다. 전학생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맞은 손을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 한나랑 쌍둥이인 게 싫잖아. 근데 왜 한나한테 집착해?"
"····."
"반대로, 네 동생은 너한테 소속감 느끼면서도 아무런 관심도 없어. 내 사견을 붙이자면, 너네 진짜 이상해."
"함부로 말하지 마."
"한나랑 너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나? 네 말이 맞았어. 겉모양은 지금은 모르겠고, 내용물은 완전 정반대야. 지금도, 너는 맨날 아닌 척 나를 밀어내는데, 반면에-"


전학생이 일부러 말을 마치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사실 전학생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것 같다. 옷이 덮지 않아 맨피부를 내놓은 팔다리에 지네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손을 들어서 전부 헤집어버리고 싶다. 머리에 열이 오른다. 땀이 주륵 흘렀다. 전학생이 아랑곳 안 하고 깊게 입맞췄다. 쪽, 쪽. 입술을 가볍게 두드리고 자연스럽게 혀를 밀어넣는다. 누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서 계단 쪽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전학생이 입술을 떼더니,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턱을 괬다.


"키스할 땐 눈 감으라니까."


그리곤 고개를 돌려 층계참 벽에 난 창문 밖을 보며 한숨을 쉰다. 엘사가 말했다.


"이 동네는 진짜 재미가 없어."


-


공장이 지어진다. 땅을 고르고, 철근을 세우기 시작했다. 비가 그쳤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내릴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비는 그쳤다. 학교도 방학을 했다. 한나는 어딨는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을 먹을 즈음엔 돌아오는데, 금방 또 나간다. 어딜 다니냐고 묻진 못 했다. 내 자전거가 같이 사라져 있는 걸 보면 한나가 끌고 나가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현수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그런 시위를 진짜 하려나보다. 아버지가 젊을 적에 했다던 데모 이야기를 들으면 경찰들도 많이 오고,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던데. 그런 격렬한 시위를 하게 되는 걸까. 아버지는 이제 젊지 않은데. 괜시리 겁을 집어 먹었다. 방학도 했으니 젊은 애들은 어른들 도와서 현수막을 걸러 돌아다니라는 심부름이 있었다.


"어? 전학생이다."


현수막을 묶으려고 나무 위에 올라간 애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홀린듯 말했다. 다들 그 쪽을 봤다. 쟤는 진짜 집이 어디일까. 이 동네 근처에서 목격된 건 거의 처음 아닌가. 그 때 언덕에서 한나를 만나던 걸 아는 건 나뿐이니, 처음이라고 쳐야하겠지.


"말이라도 걸어봐?"
"아서라, 뭐 예쁘다고."
"쟤 지금 이 쪽 보고 인사하는 거 맞냐?"


진짜였다. 이쪽을 보고 손을 살살 흔들고 있다. 자기 아버지네 공장 건설 반대 현수막을 걸고 있는 사람들한테 인사할 생각을 다 하고, 속도 좋다. 아니면 철면피인지도 몰랐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전화를 받았다. 저 멀리 전학생도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다.


-안녕.
"뭐야."
-안 놀라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정말 궁금한 게 그거야? 아니잖아. 그나저나 뭐 해? 위험해 보이는데.
"알 게 뭐야. 나는 안 올라갈 건데."
-사실 안 궁금해. 같이 학교 도서관 갈까?
"싫어."
-아쉽네.


전화가 끊어졌다. 핸드폰을 집어넣고 전학생을 봤다. 전학생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글라스까지 끼고 긴바지에 셔츠를 입고, 긴 금발머리를 한 번 쓸어내린다. 다가온 차에 타면서 핸드폰을 귀에 대는 게 보였다. 차가 멀리 사라진다. 돌아보니 주변 사람들이 날 보고 있었다. 조금 섬찟했다.

현수막을 걸며 동네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뙤약볕 아래에서 수평을 확인하고, 나무에 올라가서 끈을 묶었다. 전학생한테는 일부러 틱틱거리느라 안 올라간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있나. 살이 탈 수 있으니 긴옷을 입고 나오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늘을 찾아 서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무시했다. 반팔을 입고 나무 그늘에 서 있는데도 습도 때문에 더울 뿐더러, 바람까지 뜨거웠다. 하늘에 구름이 몰리는 걸 보고 어른들이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다들 일찍 집에 들어가자며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서 어른들이 또 싸우고 있었다. 요즘은 하루 건너 싸운다. 근데 오늘은 달랐다. 마을 주민끼리 싸우는 게 아니었다. 목에 공무원 사원증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라에 신고하고 정해진 위치에 설치하는 게 아니면 다 불법 현수막이라니까요. 법이 그래요."
"마을 사람들이 다 괜찮다는데 왜 그러냐고! 어어, 그거 건들지 말어!"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 저희도 그냥 신고 받고 일하러 온 겁니다."


동네 어른들이 전부 몰려 나왔다. 공무원들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매미가 울었다. 계속 이러면 경찰을 부를 수 있다며 공무원도 기어이 큰 소리를 냈다. 날이 너무 덥다. 매미소리를 무시하며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다급한 얼굴로 집 밖으로 나오고 계셨다. 저 싸움에 개입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나한테 다가오셨다. 덥다, 땀이 주륵 흐른다.


"안나야, 오는 길에 할머니 봤어?"
"아뇨."
"식혜를 만들고 계셨는데, 갑자기 없어지셨어. 신발도 한짝만 없고."


머리를 짚었다. 어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 급히 나가려다가 하늘이 우중충한 걸 보고 우산을 들고 나왔다. 아, 나쁜 생각이 든다. 마을 입구 쪽에 어른들이 모여있던 곳은 사람들이 아까보다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말리는 사람이 몇 명, 흥분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들 사이를 가르고 서서, 뛰느라 가빠진 숨을 골랐다.


"할머니, 할머니가, 없어졌어요."


웅성거린다. 낭패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할머니가 없어졌다고요."


화를 내던 어른들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흥분이 가라앉는지 뭔지. 난 할만큼 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동네 길을 따라 다시 뛰었다. 뒤에서 다시 큰소리가 났다. 몸에서 열이 오른다. 자전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 맞다. 한나. 핸드폰을 들어 한나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조금 망설여졌다. 뛰느라 머리에 산소가 부족하다. 망설일 틈이 있으면 안 되는데.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왜.
"어디, 어디야."
-···윽, 아, 왜.
"···너, 지금 어디야."
-아, 으, 짜증나게, 하지 말랬지.


다리가 멈췄다. 뇌가 멈췄다. 처음에는 우는 건가 했다. 아니었다. 묘한 기시감. 한나랑 나는 쌍둥이다. 생긴 것도, 머리색도, 눈도, 코도, 손도, 전부, 심지어 목소리도 똑같았다. 수화기로 들려오는 한나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와 같았다. 층계참에서 전학생과 살을 섞을 때,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위와 아래가 뒤바뀌는 기분이었다.


-안녕.
"너···."
-내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언제부터."
-거기서 여기까지 뛰어오면 얼마나 걸리더라. 모르겠네, 뛰어본 적이 없어서. 아무튼 그 때까지 난 한나랑 차에서 시원하게 있을 건데. 넌 좀 덥겠다.
"왜, 왜. 왜 그러는 거야."
-근데, 있잖아, 너네 동네 지금 좀 시끄럽지 않아? 내가 위험해 보인다고 했잖아. 싸우느라 바쁘고, 그래서 널 도와주는 어른은 없고. 누구한테 대신 학교로 가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할머니를 찾아달라고 해도 말을 안 듣고.


발이 천천히 움직였다. 다시, 다시 뛰어야 해. 아, 할머니. 어떻게 하지. 아, 쟤가 할머니 일은 어떻게 알고 있지. 왜 내 말을 안 들어주지. 아니야, 다들 미친 것도 아니고, 분명 할머니를 찾아줄 거야. 전학생의 말이 맞다. 한나에게 대신 가달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못한다. 뛰어야 한다. 아. 비가 온다. 더워서 열이 오르는 몸에 비가 닿는다. 우산, 들고 왔는데, 어딨더라. 중간에 떨어트렸나.


-나도 변태는 아니라서, 그냥, 좀 놀려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아까도 분명 놀랄 줄 알았는데, 아쉬웠거든.
"왜 그러는 거야, 진짜 씨발, 나한테 왜 그래?"
-딱히 괴롭히는 거 아니야. 근데 너 진짜 힘들어 보인다.
"뭐?"
"탈래?"


뒤에서 승용차가 클락션을 울렸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선글라스를 쥐고 있는 손이 나왔다. 천천히 다가가 뒷좌석에 탔다. 조수석에 한나가 타고 있었다. 자고 있다. 방금까지 통화하고 있었는데, 왜 자고 있는 거지. 운전석에서 엘사가 시트를 눕히고 뒷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면허 있었나. 진짜 부자인가. 물이 흐르는 몸이 에어컨 때문에 추웠다. 물이 흐르는 느낌이 이상하다. 진짜 개미가 몸을 지나가는 거 같아. 긁어버리고 싶다. 전학생이 뒷좌석 시트 뒤에서 수건을 하나 꺼내 얼굴을 닦아준다.


"한나, 왜 자고 있어?"
"그럼 뭐, 계속 섹스할까?"


아, 진짜 했구나. 머리가 아파서, 몸이 간지럽고 소름이 돋아서, 온 몸이 수축해서 찌부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찡그린 얼굴을 수건에 묻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내가 며칠동안 계속 피곤하게 했거든. 맨날 내 연락 기다리느라 잠 못잤나봐.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했거든."
"한나 아프게 하지 마."
"너랑 키스하는 거 보고 거의 분리불안 느끼던데, 원인의 장본인이 그런 말 하는 거야? 네가 맨날 싫다고 해서 다행이지, 섹스하기라도 했어봐, 어떻게 됐을지 상상이 돼?"
"한나 가지고 놀지 말라고."
"미안한데, 나 한나한테 아무 짓도 안했어. 그냥 우연히 나 좋아하는 거야. 너랑은 다르게 나한테 엄청 매달린다? 애정결핍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나한테는 일부러, 그, 그랬잖아."
"야, 내가 말했지? 싫으면 따라나오지 말라고. 좋다고 따라와 놓고 뭔 소리야. 책임전가 하지 마. 네가 괴로운 건 원래 네 문제 때문이지, 나 때문이 아니야."


너네 집안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할 수도 있다고, 너 때문에 한나가 나랑 대화도 안 하게 됐고, 할머니를 찾으러 가야하는데, 네가 방해하니까. 아, 파리가 귓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신경질적인 손이 귀를 마구 긁었다. 아 싫어. 전학생이 내 손을 잡고 하지 말라고 말린다. 전학생을 노려봤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전학생이 평소 같이 별 감흥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전학생이 내 머리를 정리해줬다. 그리고 평소처럼 입을 맞춘다.


"젖은 옷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


헛소리를 하면서 차가운 손으로 차가운 옷을 헤집고 뜨거운 몸을 만진다. 짜증나.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 때문에 매미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 자꾸 귓가에 벌레 소리가 들린다. 아직 때가 안됐는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가 싶으면, 매미소리가 들리고, 파리소리가 들리고, 모기소리가 들리고. 따뜻한 혀가 귀를 핥아준다. 소리가 사라진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흉근과 늑골까지 전부 쿵쾅거린다.


"우리한테 왜 그래."


차가운 손으로 가슴을 만지고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꼬리뼈 근처를 빙글빙글 돈다. 키스하던 입이 가슴을 베어무는 동시에 손이 바지를 벗긴다.


"이 동네 너무 재미없잖아. 지루해서."
"죽여버릴 거야, 씨발년."
"무섭네."


엘사가 다시 쪽, 입을 맞추고, 손가락을, 거기로, 안으로, 막. 그런데 고개짓을 한다. 어딜 보라고? 조수석에서 한나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 아아, 씨발. 다시 매미 소리가 멤-멤- 울린다.


"쌍둥이라 그런가. 둘은 어때?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기분은?"


멤-멤- 에어컨 공기가 차가웠다.




-
원래는 좀 더 길게 스릴러로 쓰려고 했는데 역량이 안돼서 걍 짧게 씀.
분량 때문에 글이 짤릴 줄은 몰랐다....
하어으아 더위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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