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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용계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8.13 21: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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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야근하심?]


엘사의 카톡이 안나에게 날아온다. 저녁 7시. 지금은 퇴근을 하는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는 중이다.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야근을 시키는 미친 회사에 다니게 될 줄 20대 중반의 안나는 몰랐다. 그저 자신이 간지 나는 커리어우먼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면접 보고 들어온 것이다. 30이 가까워진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는 청춘을 느끼려면 아파야 된다는 말을 듣고,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를 읽고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 생각하고, "90년생이 온다"를 최근 읽고는 80년생과 70년생이 대신 아파줬으니 90년생이 그만큼 편하게 살 거라 생각했다. 근데 70년생과 80년생이 지들 힘들었던 걸 갚아주는 회사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때려칠걸. 안나는 생각한다.


[ㅇㅇ]


[뭐 사놓을까?]


[ㄱㅊ]


엘사는 자신이 초고속 승진해서 실장이 되었으니, 그만큼 부하들에게 편하게 해주겠지. 아니다. 정 반대일지 모른다. 그때 부장이 다가와서는 뭐라뭐라 말한다. 생긴 게 꼭 고1때 담임 같다. 마스크 속으로 욕하고 일을 한다.


--------


"실장님 다녀왔어요."


"그래."


엘사가 족발을 시켜놓고 반기고 있다. 안나는 마스크를 벗고 재난문자를 지운다.


"야 너 좀 이쁘다."


"떨어져 코로나 옮아."


"쯧."


엘사가 벌써 술에 취해서는 자신을 끌어안으려 한다.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무리 둘이서만 산다지만 이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적정선을 지켜야지. 아니다. 지 딴으론 이게 애정표현이고, 서로 얼굴 안 보는게 선일지 모른다. 요새 잠꼬대로 안나 이름 부르며 신음소리도 계속해서 낸다. 안나는 12년째 미쳐가는 중이다.


"또 뭔 일인데."


"아아 몰라몰라 인생 그만 살고 시퍼."


엘사가 울기 시작한다. 족발 데워 놓고 빨리 재워야겠다. 엘사를 대충 소파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주고 불을 끈다. 그래놓고 자신은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한다.


먼저 자신의 인스타에 들어가 본다. 엘사랑 찍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건 저번에 여행 가서 찍은 사진. 이건 같이 영화 보러 가서 찍은 사진. 코로나 때문에 최근에는 뜸해졌다. 중간 사이 고등학교 시절 사진도 있다. 안나는 하나 같이 입을 가리며 사진을 찍고 있고 엘사는 그 옆에서 치명적이게 바라본다. 싸이월드 부활이 머지 않았다는데, 열리면 다시 닫아놔야지 생각한다.


뉴스를 본다. 방탄소년단 빌보드 차트 1위. 나 때는 빅뱅이랑 동방신기랑 엄청 싸웠는데 추억이네. 코로나 확진자 늘어. 집콕 인기. 5인 이상 집합 금지. 말로만 지껄이지 말고 회사나 좀 어떻게 해보세요. 90년대생은 사람도 아닙니까. 잠깐. 그때도 그랬었는데. 신종플루였나 사스였나 모르겠는데 그것 땜에 체육대회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90년대생은 사람도 아니냐고 지랄해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사실 코로나도 신종플루처럼 짧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즈음 엘사의 이름을 처음 알았더랬다. 그때 생각이 나네. 안나는 생각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2시 30이었다. 나도 이제 슬슬 자야지. 안나가 씻고 잠자리에 든다.


---------



1

그때가 아마 2008년이었을 거다. 갓 중학교를 빠져나온 고1의 입학식은 어수선했다. 그나마 여고라서 이 정도다. 남고는 3월 한달 내내 싸운다는데. 입학식을 위해 모두 강당으로 모였었다. 여러분의 터전이 될 이 학교에 대해 여러분이... 늘 똑같은 패턴이다.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다리가 아팠다. 잠깐 앉고 싶었지만 의자가 없다. 할 수 없이 내리 30분을 서 있다.


입학 첫날부터 수업을 하고 싶은 여고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선생이 오면 자기소개를 하자고 마구 졸라 댔다. 올해 신입생은 왜 이리 시끄러워. 선생들이 말한다. 아아 쌔애앰. 아이들이 더 졸라 댄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선생이 허락한다. 그 뒤로 자기소개가 시작된다. 각자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잘 부탁해. 잘 지내자. 끝마친다.


"안녕. 나는 김안나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 보자."


안나는 자신을 형식적으로 소개한다. 중학교때 친했던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곧 형식적인 박수가 쳐진다. 근데 같은 검은 머리지만 눈에 끌리는 사람이 눈에 보인다.


다음이 그 아이의 차례였다.


"안녕. 김엘사라고 해. 삼일중학교 나왔어. 1년 동안 잘 지내 보자."


나도 삼일중 나왔는데. 안나는 쟤를 중학교 때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되살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낯이 익다. 이상한 일인데 얘한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예비소집일에 비슷한 얼굴을 보긴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같은 중학교였으니까 괜히 생각났나 보지.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한다.


+++

점심 시간. 배는 고팠지만 안나는 일부러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먹으러 가봤자 아는 애도 한 명도 없고, 그러려면 매점 가서 때우는 게 낫다. 매점으로 가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이거 먹을래?"


그 아이가 자신에게 크림빵과 주스를 내민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든다.


"으응."


다시 보니까 예쁜 것 같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찾아봤는데 여기 급식 진짜 맛없대. 걍 매점에서 때우자. 우리 친구할래?"


그 아이, 아니 엘사가 안나에게 말한다. 왠지 날티가 나긴 하지만 속성은 착한 아이. 엘사는 그런 부류 같이 느껴졌었다. 여름이 아닌 봄이었다.


"근데 너도 백신중 나왔다던데. 사실 나 중딩 때 너랑 친구하고 싶었는데 말 못 했어."


헐. 이건 무슨 상황이니. 어쨌든 친구가 생겨서 좋다.


"괜찮아. 짐부터 하면 되지 뭐. 잘 부탁한다."


학교 밖 나무에는 꽃이 피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집에 들어온 안나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일기장을 꺼낸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을 뒤로하고 일기장에 적는다.


2008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식을 했다. 마음에 끌리는 애가 생겼다.


++++


2

얼마의 계절이 지났을까. 아마도 안나가 백일장에서 사랑에 관한 시를 써 상을 받기 직전, 여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개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안나가 구석 자리에 앉아 과자를 까먹고 있었고, 엘사는 퍼질러져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안나에게 틴트나 쌍테를 빌려달라는 말 말고는 하지 않는다. 안나는 다른 반 아이들이랑 엘사랑 가끔씩 얘기할 뿐이다. 다음 시간은 체육 시간이었고, 반 전체가 체육복을 갈아입은 후였다. 종이 치자, 안나는 엠피쓰리 이어폰을 빼고 엘사를 흔들어 깨웠다. 야 김엘사 일어나! 안나는 엘사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8월 말이었지만 운동장은 찜통이었다. 독사(체육선생 별명)가 이번 시간은 짝끼리 배구 토스 연습이란다. 엘사가 자신만 믿으라고, 자기가 왕년에 피구왕 엘사였다고 한다. 안나가 피구가 아니라 배구야 멍청아. 쏘아붙인다.


안나가 먼저 토스한다. 엘사가 첫판부터 받지를 못한다. 야 배구왕이라며 뭐야 이게. 안나가 말한다.


"원래 진가는 마지막에 발휘하는 법."


엘사가 영문 모를 자뻑을 한다. 그러고는 안나에게로 공을 토스한다. 안나는 피구든 배구든 꽤 하는 아이라 잘 받아낸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러다가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둘은 스탠드에서 물을 마시며 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만큼의 포상이 없다.


"안나야."


"왜."


"내가 이따 잼난 거 보여줄게."


쟤가 또 뭔 지랄을 하려고 저러냐. 안 재미있으면 오늘 캔모아 돈 다 내야 되. 안나가 말한다.


곧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배구연습이다. 주거니 받거니 계속한다. 안나가 야 언제까지 이럴거냐? 잼난 거 있다매. 뻥이었삼? 중얼거린다. 아 좀만 기다려봐 언니 못 믿냐? 언제부터 니가 우리 언니였냐? 그리고 니 생일은 12월이고 난 6월이거덩. 알아 이녀나. 욕설도 주거니 받거니한다.


그때.


엘사가 잘못 토스한 공이 쉬고 있던 독사의 얼굴에 부딪혔다. 아이들이 저마다 웃으며 말한다. 야 독사 표정 봤냐? 존나 웃겨. 쟤 화난 것 같은데 쟤 어떡함. 그러면서 독사를 비웃고 있었다.


"조용히 못 해!"


그러고는 독사는 누가 했냐며 윽박지른다. 엘사가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모르고 그랬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아부를 쏟아낸다. 안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한 번은 넘어가 준다. 하지만 오늘은 김엘사랑 김안나 둘이서 공 들고 창고 가야 된다."


그리고 웃은 년들은 이따 보자 가만 안 둔다. 독사가 일갈한다.


-----


"뭔 생각으로 그런 거냐?"


"그냥 심심해서. 내가 잼난거 보여준댔잖아."


그럼 캔모아는 둘이서 반반 내는 거다? 엘사가 자판기 속의 포카리를 꺼내며 말한다. 아니 느닷없이 왜 그런 거냐고. 안나가 말한다.


"요새 너 웃음이 좀 줄은거 같아서. 방학 땐 잘 웃더만 왜 안 웃어. 너 안 웃으면 나도 슬프단 말이얌."


엘사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안나야 알고 있뉘?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노래에 맞춰 노래도 부른다.


"작작해 애들 보잖아. 들키고 나서 하든가."


아 미안해 내 여자. 엘사는 그러면서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뺭야 하며 안나에게 겨눈다. 미치겠다.


"우리 언제 또 한번 덮쳐야지."


"지난달에 덮쳤잖아."


"아아 그래도."


곧 종이 치고 둘은 반으로 들어간다.


------


캔모아에서 빙수가 나오자 걸신 들린 듯 퍼먹는 둘은 폰카로 사진을 찍는다. 안나는 언제나처럼 입가에 손을 가리고 있다. 생크림 주세요 사랑이 가득 담긴 두개만 주세요. 아니 마니마니 주세요. 안나가 엘사에게 김태희를 따라하며 생크림을 가지고 오라 시킨다. 자기도 하긴 해야 될 것 같다.


곧 생크림이 주어진다. 안나가 엘사에게 기다려 봐 한다. 그러고는 생크림을 엘사의 얼굴에 바른다. 웬만한 화장보다 낫지? 안나가 말한다. 엘사는 요고요고 확. 주먹을 쥐고 칵 한다.


그러고는 낙서가 가득한 벽에 낙서를 덧붙인다. 엘사 하트 안나. 더워 디지겠음. 먼 훗날 보면 웃길 것 같다.


그들의 고1 여름은 이랬다. 여름이었다.


------


2020


다시 찾아가보니 캔모아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설빙이 생겼다. 세상이 원망스럽다.

------


안나의 일기장 픽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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