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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용계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8.14 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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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절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엔 안나가 백일장에서 상을 타고, 수련회로 인해 동성애가 뽀록나버린 후... 11월 모의고사 후였던 것 같다.


모의고사 전날, 엘사와 안나는 모처럼 독서실-1일권이었지만-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시험 분위기나 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 한달이 됐는데도 여전히 반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기말이 12월 초니까 대략 3주 남았네.


"공부 존나 하기 싫다."


엘사가 안나에게 귀속말로 속삭이며 말한다. 안나는 누군 하고 싶어서 하냐? 라고 한다. 모의고사 내신에도 안 들어가는 거 망치면 안 됨? 엘사가 말한다.


"대학 안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셈."


아잉 자기야 왜 그래. 엘사가 애교 부린다. 그만해 니 때매 나도 쫓겨나. 안나가 일갈한다. 누구 쪽이든 강도를 높였다간 그날로 박살날 분위기다.


"근데 니 마빡이한테 깨진 건 괜찮냐?"


안나가 말한다. 마빡이란 수학 선생 얘기다. 이마가 꼭 어디에 나오는 마빡이같이 생겨서 아이들이 붙힌 별명이다. 엘사는 일주일 전에 수학 시간에 잠꼬대로 섹스를 중얼거리다 걸리고 말았다. 마빡이는 신성한 여고에서 누가 섹스를 중얼거리느냐며 엄청 혼냈다.


"이젠 괜찮음. 근데 니가 혼나는 건 안 괜찮아."


"지랄한다."


어디 인소 같은 데 보면 여주가 혼났을 때 남주가 교장실인가 교감실인가 교무실인가로 쳐들어가서 혼내도 내 여자 내가 혼냅니다. 이러던데 엘사가 그럴 까봐 안나는 두렵다. 그럼 둘다 퇴학당하는데.


"근데 들키면 교회는?"


"괜찮아 나 할머니 때문에 억지로 다니는 거야. 예수 믿지도 않는데 뭐, 걍 기도하는 척만 하는 거지."


다행이다. 사실 나도  교회 다니기 싫다.


------


11월에 옥상 올라가서 보고 있자니 얼어 죽을 것 같다. 이게 겨울이지 가을이냐. 안나가 생각한다.


엘사가 어느새 담배를 가져와서 불을 붙이고 있다. 안나도 피워본 적은 있지만 (억지로) 딱히 중독성은 없다.


"너랑 나랑 맞담할까?"


맞담이라니. 안나로서는 부모님 없을 때 덮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봐주고 있는 셈이다. 


"나 요새 금연 중."


그래. 엘사가 말한다.


--------


학교 도서관에도 인소책이 있기는 있지만 별로 인기는 없다. 안나로서는 일반적 책이 자신으로서는 어려운 것 같아서 그나마 쉬운 인소책을 읽는 것이다. 안나는 엘사가 어느새 전자사전으로 s,e,x를 쳐 섹스를 따라하는 엘사를 보고는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여친이라지만.


--------


모의고사 날이다. 학교 벽면의 낙서로 가득한 동방신기 포스터는 마분지로 가려져 있다. 1교시 국어 시간부터 안나는 기본 지식에 공부 지식까지 덧붙여 문제를 푼다. 그럭저럭 쉬운 문제다. 문제는 2교시 수학 시간이다. 1번부터 문제를 푸는데 텔미 텔미 테테테 텔미. 노바디 노바디 벗 츄. 암요맨 다라다다.  비투더 아투더 뱅뱅. 베비 원 몰 타임. 후크송과 수능금지곡이 머릿속에 맴돈다. 망한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손은 문제를 풀고 있다. 발라드를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 노래들은 귀에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엘사를 보니 5번까지 풀고 엎드려 자고 있다. 감독관이 탁탁 지휘봉을 두드린다. 아 망했다.


-------


점심시간. 엘사가 안나의 옆으로 온다. 자기야 잘 돼써? 이게 누구 약 올리나. 니 때매 다 망했어 썅년아아악. 안나가 엘사에게 괜히 화풀이한다. 내가 니 몫까지 다 잤거등.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내 운 다 쓰셈. 엘사가 이러고는 청포도 사탕을 안나의 자리에 올려 놓는다. 매점 다녀와서 맛스타도 올려놓는다. 너 밥 먹을 시간 없다며. 엘사가 말한다. 난중에 끝나고 나서 노래방이나 가자. 엘사가 덧붙힌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나중에 뭐 해 먹고 살려나. 안나는 생각했지만 엘사는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살 길 찾을지도 모른다. 영어 시간에는 엘사가 전자사전으로 만날 음성을 내보내던 문제의 'sex'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탐구시간도 똑같았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가채점 시간이 다가왔다. 엘사는 정답지를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안나는 채점을 해본다. 국어 68. 수학 60. 영어 76. 탐구 76. 그럭저럭 준수한 성적이다. 수학을 그 노래들이 맴돌았는데도 망치지 않은 게 -지 딴에는- 다행이다.


"잘 쳤어?"


엘사가 다가와 묻는다. 점수를 슬적 보고서는 잘 봤네. 말한다.


이 정도면 3등급은 나오겠지 싶었다. 이번 시험이 워낙 어려웠으니까. 이따가 등급컷 보고 알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엘사가 매점에서 사다온 이후로 70점을 넘겼다. 고맙다고 해야 되나.



+++


초저녁 공기가 쌀쌀하다. 길거리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가 보인다.


"떡볶이 콜?" 엘사가 떡볶이코트, 일명 떡코라 불리는 옷을 입고 떡볶이를 먹자 한다.


한 컵에 500원인 떡볶이는 학교에서 제일 주적인 길거리 음식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아 매따. 안나가 입에 떡볶이를 가득 머금고 말한다. 피카츄도 하나 사 먹자. 우리가 초딩이냐? 하지만 돈은 이미 안나가 내 버렸다. 돈까스에 닭 내장인가 머리인가 들어 있다고 tv에서 연신 떠들어대지만, 구라이길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다.


"맛있다."


엘사가 말한다.


"그란데 느그들은 언제부터 그리 친했노?"


떡볶이 아줌마가 묻는다.


"암. 저히는요. 기냥 친한 사이가 아니라 사랑, 사랑 아시죠. 사랑하는 사입니다."


"보통 가시나들은 남자들이랑 사랑하지 않나?"


"그건 하수고요. 이렇게 여자들과의 사랑이 진짭니다. 그렇지?"


"아 웅 그렇지."


영화 친구 톤으로 엘사가 말한다. 쪽팔려 죽겠다. 안나는 엘사를 보낸 후 죄송합니다. 시험 끝나서 정신을 못 차리네요. 라고 둘러댄다.


------


노래방. 엘사가 먼저 노래를 부른다. 브라운 아이즈 백지영 sg워너비 에픽하이 같은 요즘 남고생뿐 아니라 여고생한테도 유행하는 많은 곡들을 불러댄다. 엘사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안나는 따라하고 손을 흔들거나 탬버린을 쳐 댄다.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를 따라 하니 숨이 벌써부터 찬다. 그래 봐야 마지막에는 둘이서 수능금지곡이나 댄스곡 부를 것이다. 일기장 자리 없어서 다시 사야 되는데. 쓸거리가 넘쳐날 것 같다. 새해 쯤 되야 바꿀 것 같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둘은 빅뱅의 마지막 인사를 둘이서 파트 나눠 열창한다. 실력이 처참하긴 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열심히 부른다. 아마 팬들이 보면 신성모독이라고 할 법한 실력이니 말 다한 거다. 그래도 여고생은 지치지 않는다.


------


오늘 학원 빠진거 들킬까 걱정되는데 폰을 켜 보니 오늘 휴강이랜다. 부모님이 알아도 별말 안할 것 같다. 안나의 휴대폰은 지난번에 상으로 탄 옴니아 터치폰이고 엘사의 휴대폰은 앞면에 show가 쓰여 있는 하얀색 폰이다. 그러고 보니 12월에 엘사의 생일이 있었다.


"생일 때 뭐 받고 싶냐?"


"너의 마음이지 뭐."


"장난 까지 말고."


"요새 옷이 좀 필요한데."


사실 뭘 줄진 모르겠다. 6월 21일날에 엘사가 안나에게 엠피쓰리를 바꿔 주었다. 사귄지 몇달 치곤 꽤 좋은 보상이었다.


"피씨방 갈까?"


------


안나는 메이플을 잘 하진 못한다. 그렇기에 항상 엘사가 도와주었다. 그러나 안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잘한다. 인강 틀어놓고 몰래 아케이드 영상 본 게 도움이 되었다. 중딩 때부터 쭉 그래 왔으니 기술도 점차 늘어났다.


"야 야 저거 먹어 저거 먹어야 안 죽어."


엘사가 뭐 그리 잘 안다고 게임할 때마다 떠들었다. 안나는 닥쳐 좀 게임하게. 라며 모니터에 눈을 집중했다.


"나는 파란색보단 빨강이가 좋더라, 꼭 너 닮아서."


"뭐야 그게."


엘사는 하찮은 이론을 들이대며 싸이월드에 접속해 노래를 튼다. 아까 불러놓고 또 노래다. 뭐, 노래가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건 이해해 줄 만도 하다.


엘사의 싸이월드 브금은 늘 다양했다. 안나처럼 항상 무언가로 고정되어있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자."


시계를 보니 오후 8시였다. 둘은 나름 알찬 하루를 보냈다.


-----


확인해 보니 3에서 4등급이다. 이 정보면 대학은,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니더라도 갈 수는 있겠다. 근데 엘사는 어쩌나. 걔 말로는 고3때부터 해도 안 늦는다던데 걔가 고3되면 할지도 미지수다. 모르겠다.


-----


2020


나도 공부 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노력해서 초고속으로 실장까지 올라간 걸 보면 나도 분명 하늘이 내려준 또 다른 신인게 분명하다. 나는 왜 고3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을까. 그 전부터 하면 사장도 문제없을 것 같았는데. 가끔은 내 머리가 검정색이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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