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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 관계 어때? 3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8.25 00:10:58
조회 870 추천 29 댓글 6





엘사는 특이했다.

안나가 보기에 그만큼 특이한 사람은 못 봤다.

엘사라는 여자를 말하자면 나이는 28살.

별거 없던 디자인 회사를 몇 년 사이에 5배 넘게 성장해 브랜드화 시킨 사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두가 이해를 못한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 나면 아....하고 무릎을 탁! 친다.

엘사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일처리에 막힘이 없었고 선택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행운의 여신조차 그녀의 편이라서 직감으로 선택한 일도 반드시 성공한다.

거기다 영화배우나 모델 되는거 같은 늘씬한 몸과 외모.

그녀의 성공을 만드는데 절대 무시 못할 요인일 것이다.

확신과 신뢰를 주는데다 첫인상이 깊게 남아서 이미지도 좋다.

엘사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고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엘사는 일에 몰입하다 못해 광신적이었다.

기억력이 어마무시하게 좋아서 작은 틈도 주지 않는다.

또 온몸의 신경이 동물보다 짜릿해서 직원들을 숨 못쉬게 조이곤한다.

안나는 그 사이에서 이리 저리 휘둘리는 그저 그런 신입 사원이었다.

열심히 하지만 잘 안풀리는.

뜻대로 되는게 없어서 덤벼봤다가 계란으로 바위치고 나자빠지는.

그럴때마다 도움의 손길들이 닿지만 그 도움의 손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 있었다.

휴, 얘는 정말인지 마음껏 도와줘도 괜찮겠어.


안나는 그 실패로 치루는 값싼 동정심을 이겨내고 싶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짧은 경력을 딛고 엘사처럼 서고 싶었던 것이다.


안나가 한 일은 엘사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엘사는 캐쥬얼한 옷차림이 허락되지만 클래식을 지킨다.

간혹 마피아 조직원 같은 스트레이프 정장을 입기도 한다.

아무튼간에 그녀는 늘 번듯한 정장의 블랙톤으로 일관한다.

카리스마를 뽐내는 효과도 있지만 '정석'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 고지식한 의지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안나는 엘사의 깃에 있는 검은 뱃지는 늘 변치 않는걸 발견했다.

크로커스 꽃모양의 브로치.

근데 일반적이게 노란색이 아닌 검은 크로커스다


"저기 팀장님?"


"네."


엘사는 솔직하게 안나가 귀찮았다.

노골적인 호감 표시도 싫었다.

매번 길 잃은 길고양이처럼 다가와 먹이를 바라는거 같았으니까.


"또 사고가 있나요."


"그, 그런거 아니에요. 저라고 늘 사고만 칠까요."


"그게 아니면요. 상담?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다 드렸어요. 남은건 안나씨가 잘하는거지."


"사실 전부터 궁금한게 있어서요."


엘사는 속으로 긴 심호흡을 했다.

엘사에게 있어서 안나는 걸림돌도 안되는 존재였다.

귀찮게 할 뿐.


그렇다고 본인이 이끄는 팀원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대놓고 내치지는 못 했다.

엘사의 완강한 성격이라면 진작에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할까.

안나가 엘사를 눈여겨 생각했듯 엘사도 그랬다.

엘사가 궁금했던건 언제 저 열정이 사그라들지였다.

본인을 따라잡아 보려는 애탄 노력이 어떤 결말로 끝날지.

필사적이라는 말에 진심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엘사는 그게 궁금하고 흥미로웠던 것이다.


"뭔데요?"


"항상 정장 깃의 그 브로치가 눈에 보여서요."


엘사는 흘끗 자신의 정장 깃을 훔쳤다.


"이거요?"


"네, 혹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신기하기도 하잖아요. 장미는 검은색도 있는데 크로커스는 보통 노란색이니까."


엘사는 브로치를 매만지다가 음흉하게 웃었다.

갑자기 안나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달까.

엘사는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한 번에 다각적으로 수 많은 일처리가 돌아가는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 안에서 엘사는 안나가 헐벗은채 헐떡이는 그림을 그렸다.

약간 어리버리한 모습들도 그 헐떡임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소스였다.

늑대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새끼 양을 노리는건 본능이니까.


"혹시 의미를 알고 물어보는건가요."


"아니요! 정말로 무슨 의미가 있는건가 싶어요. 행운의 부적 같은건가. 저도 그런 행운을 갖다주는 징크스들이 몇개 있거든요."


엘사는 안나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건 듣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토록 매력적이게 보일까?

엘사는 이제까지 한 톨도 없었던 성욕이 끓어올랐다.

뺨과 턱을 따라 어깨까지 이어질 저 주근깨 사이를 잘근거리는 충동감을 억누르기 힘들 정도였다.


"안나 씨 오늘 끝나고 한 잔 할까요?"


"네?"


"생각해보니까 내가 안나 씨랑 친해질 노력을 안했던거 같네. 제가 살게요. 단골 가게가 있거든요. 오늘 퇴근하고 바로."





"오늘 잘했어. 어떻게 그렇게 일사천리인지. 사실 시키는 것도 똑바로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답답해 죽을거 같거든. 내가 부하 직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야. 제발 시켰던건 똑바로 끝나 있기를. 특히, 크리스토프. 그 덩치한테는 요즘 말걸기도 싫다니까. 그런데 너는 시키는건 뭐든지 다 잘한단 말야."


안나는 엘사의 차를 타고 퇴근길에 있었다.

엘사는 입이 마르도록 안나를 칭찬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칭찬보다 오늘은 시내 한복판의 호텔로 가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평일이니까 당연한지도.

안나는 며칠 사이에 꽤나 수척해졌다.

엘사라는 흡혈귀에게 쥐어짜여서 매일을 과도한 성욕에 내던지고 있었으니까.


"표정이 왜 그렇게 우울해보여."


"아니요."


"원래 처음에 일머리가 생기고 주목 받으면 더 곤란스러워. 당연한거야. 갑자기 그러면 감당 안된다니까. 일을 잘하면 기존보다 잘했다고 박수쳐주고 끝낼것이지, 너는 잘하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시키려 들어. 그런데 어느 순간을 지나가면 또 괜찮아 질거야. 요령있게 거절하는 방법도 배우게 될거고."


안나는 엘사의 조언이 똑바로 들리지 않았다.

옛날이라면 하나도 빠짐 없이 기억하려 들었을건데.

두, 세달 사이에 안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엘사는 그런 안나의 눈치를 살폈다.


"꺄아악!"


엘사는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은채 다짜고짜 핸들을 틀었다.

뒤차가 정지하며 크락션이 시끄럽게 몇 초나 울렸다.

거의 인도 위로 치솟을 것처럼 길가로 꺽인 차는 다시 급정거했다.

안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이 이리저리 튕기다 멈췄다.


"뭐, 뭐하는거에요!"


"뭘?"


"죽을뻔했잖아요! 뒤차랑 부딪히면 어쩌려고....."


"내 차 부수면 내가 물지 너가 물어주는 것도 아니잖아? 사고나면 여기서 택시 잡고 가면 되는거고."


"에....엘사! 읍?"


엘사는 안전벨트를 풀고 바로 안나에게 달려들었다.

상체를 기울이면서 안나의 멱살을 잡아다가 입 맞췄다.

엘사의 키스는 마치 흡혈을 하는거 같다.

안나의 입안을 유린하면서 쪽쪽 빨아당겼다.

안나가 설령 도망칠까봐 무섭기나 한듯.

거의 안나 전체를 삼켜버릴 맹령한 기세의 거친 키스였다.


"뭐가 불만이야."


"아....."


"나에게 불만 있어?"


안나는 입술을 훔치며 시선을 뺐다.

불만은 아니었다.

안나가 가진 감정은 그보다 복잡하니까.

사실 자기 혐오에 더 가깝다.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게 엘사 때문에 더 부각되어 느껴질뿐.


"없어요."


"있는거 같은데."


"없어요 정말."


"내가 널 좋아하는건 진심이야."


엘사에게서 내뺀 시선이 휙 돌아갔다.

아차해서 금방 다시 돌렸지만.


"나는 하고 싶은건 다 해야해. 잘하는건 당연한거고. 그럴려면 감정을 뒤로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가장 힘들지. 너 앞에서만 진짜 모습을 보일 뿐이야. 조금 거칠고, 강압적이고, 시키는대로 착한 소녀가 아니라 원하는대로 마음껏."


"그냥 저를 갖고 노는거잖아요."


"아하. 그게 불만이었네. 그거였어."


"읏..."


엘사는 핸들에 팔을 기대고 조수석으로 완전히 몸을 돌렸다.

이미 잠겨 있지만 한 번 락을 풀었다 다시 철컥이게 문을 닫았다.

그 소리가 무언의 압박임을 느낀 안나는 초조하게 엘사를 바라보았다.


"왜? 싫어?"


"...네."


"서로 좋은거 아니었어? 너도 처음에는 좋아했던거 같은데."


"커피 심부름이나 받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 왔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어쩌려고 그런거에요?"


"침착하게 정리하고 대충 둘러대면 되지. 문도 닫아놨잖아."


안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엘사라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거니까 더.


"회사에서도 이러는건 싫어요."


"회사에서도라니. 회사에서 말고도 싫다는건가."


대화가 끊어지는 동시에 차의 잠금장치가 철걱거린다.

이번에는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껐다, 켰다. 껐다, 켰다.

안나는 신경이 너무 곤두서서 그 소리만으로 미쳐버릴 기분이었다.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엘사에게 멈추라며 애원했다.

탈출구를 찾는 절규에 비릿한 비웃음으로 엘사는 손을 멈췄다.


"저 여기서는 내려서 혼자 갈게요."


"정말? 아직 애매한데."


"택시타면 금방이에요."


"아니야 내 차로 가면 더 빠른걸."


"혼자 갈 수 있어요!!!"


히스테릭한 고함이 빽 질러졌다.

안나는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와서 놀랬다.


"신경 예민한데 괜히 그랬네. 갈려면 가."


엘사는 다시 몸을 운전대로 틀었다.

조수석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안나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운전대로 몸을 돌리는 엘사에게 힘들게 등 돌렸다.


"근데 안나."


안나는 뻘줌하고 어색한 묘한 상황에서 서두르느라 더 늦었다.

벨트를 푸르는 것도 어깨선에서 꼬이고 문을 열고 나가는 동작도 굼떴으니까.

그러다 간신히 한 발을 밖으로 뺄 때 들리는 목소리는 얼음장 같이 차갑게 들렸다.


"우리 사이는 여전한거 맞겠지?"


짧은 몇 초 사이.

안나는 수십 시간이나 걸리는거 같았다.

시간이 송두리째 얼어붙었다고 할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안나는 겁을 집어먹은 채였다.

엘사의 표독스러운 눈빛은 분명히 화가 잔뜩 나있었다.

치졸한 복수 같은거 하는 사람은 아닐거지만 안나를 괴롭히기는 충분하겠지.


"사람 사이 갈등 생기는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이번에는 우리 둘다 서툴렀어. 서로 잘 풀어갈 수 있을거야. 그렇지?"


엘사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고혹적이었다.

듣는 사람을 매료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또 알 수 없는 힘으로 잡아당겼다.

말 그대로 안나의 멱살을 잡아서 당긴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당당하게 내민 손은 이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면 안되겠다고 만든다.

안나는 입으로 시인하기 보다 말 없이 엘사가 내민 손을 어설프게 잡았다.

손가락 끝만 간신히 걸쳤지만.

엘사는 덥석 깍지를 끼워 힘을 주었다 풀어줬다.


"들어가. 내일 서로 얼굴 피고 만나자. 아참, 내일도 잘할거야. 너는 내 직원들 중에 가장 '유능'하니까."


안나가 내리자마자 차는 처음처럼 급발진해 차선을 끼어들었다.

멈춰 있다 격하게 움직인 차체에 지독한 매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안나는 그걸 손으로 쳐내면서 콜록거렸다.

내리고나서 안나는 손으로 이마를 찰싹 때렸다.

왜 또 다시 그 손을 잡았을까.

그 눈에 홀려서......

번번히 다짐하듯 사회생활이라 합리화할 뿐이다.


'싫은 일도 해야해. 좋은 일만 할 수는 없어.'


안나는 속으로 분을 삭혔다.


'솔직하게 나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하나도 손해볼거 없어. 팀장님 라인에 서는거야. 가장 차별 받는 최측근 라인에."


안나의 생에 지금처럼 머리랑 가슴이 따로 논적이 없었다.

둘중에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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