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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 아폴론 안나와 아르테미스 엘사 2

엘산나픽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05 04: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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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글 https://gall.dcinside.com/snowpiercer2013/812533




※ 초반에 타캐주의







2.







"왜, 언니가 먼저 한 제안이잖아?"




다 잡은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맹수처럼 느릿한 발걸음으로 안나가 엘사의 지척에 다가왔다. 천천히 무릎이 굽혀지고 옷이 물에 젖는 것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안나의 하체가 물속에 잠겼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엘사의 시선 끝에서 안나는 방긋 웃는다. 천진하고 애교 어린 웃음을 지으며 안나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안그래?"




그 어떤 속셈도 없다는 듯이, 순수하게 언니를 아끼는 동생인 것처럼 행동하는 안나의 모습에 오히려 궁지에 몰린 건 엘사였다. 녹색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빛났다. 얼어붙은 엘사는 다가오는 안나를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했다. 안나도 그녀가 자신의 덫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안나는 손에 물을 가득 담고 엘사의 움츠러든 어깨에 조심스럽게 흘린다. 투명하고 차가운 물이 달빛에 반짝이는 둥근 어깨를 타고 내려가 수려한 가슴의 정점에 맺혀 뚝, 떨어졌다. 새하얀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쫓는 안나의 눈이 뜨거웠다. 천둥소리처럼 요란스럽게 번지는 제 심장 소리를 숨기려 안나는 낮게 흥얼거렸다.



맑고 투명한 연못, 회색의 단단한 암석,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흔들리는 푸른 나뭇잎들, 그 사이로 스며드는 몽롱한 달빛에 보다 아름답게 빛나는 엘사. 마치 밤중에 남몰래 그리던 은밀한 꿈만 같았다. 내가 모르피스의 왕국을 헤매는 중인가. 폐부를 파고드는 차갑고 습기 어린 공기가 아니었다면, 안나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꿈인 줄 알았을 터였다. 떨림을 감춘 손이 뻗어졌다. 하지만 그 손이 닿기 전에,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엘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목욕은 여기까지야. 이 이상은 사양할게."




엘사는 바위 위에 걸쳐둔 옷을 집어 들어 빠르게 걸쳤다. 물기를 닦아내지 않은 몸에 걸쳐진 옷이 순식간에 젖어들어가며 엘사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로 인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그녀의 몸의 곡선과 섬세한 근육이 오히려 나신보다 선정적이었다. 안나는 열이 오른 얼굴을 손으로 누르며 엘사를 뒤따라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첨벙첨벙,



물속에서 옷을 입은 채 발을 옮겨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엘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제대로 앞으로 향하지 못하는 안나와 달리 옷을 여미며 저 멀리 떠나가려는 엘사의 뒷모습에 욱하는 감정은 마저 여미지 못한 안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직 처녀신이긴 하니? 엘사"

"…"




그 외침에 엘사가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몸이 참을 수 없는 수치심으로 파르르 떨렸다. 엘사의 몸이 빙그르르 돌아 안나의 얼굴을 향해 화살을 겨눴다. 그리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는 안나의 머리를 향해 엘사는 금화살을 쏘았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는 화살이 안나의 뺨을 긁고 스쳐 지나갔다. 안나의 뺨에 생긴 상처에서 주륵, 피가 흘러내렸다. 화살이 떠나간 후에도 엘사는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팽팽히 긴장된 근육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하지 않겠어. 아폴론."




분노를 누른 차디찬 목소리가 안나의 귓가를 매섭게 베었다. 소란에 다가오는 님프들의 발소리에 엘사는 활을 내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냉랭한 얼굴로 떠나간 자신들의 신에 님프들 역시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홀로 남은 안나는 정막만이 남은 샘에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뺨을 타고 내려와 턱에 고인 피가 뚝뚝 물에 떨어진다. 핏방울이 맑은 물에 떨어져 순식간에 흐려지는 것을 바라보며 안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깟 거인이 뭐라고. 날 아폴론이라고 불러? 그깟 거인이 뭔데."




엘사. 네가 정말로 날 미치게 만드는구나.



힘이 가득 들어가 떨리는 주먹을 든, 안나가 뺨의 피를 거칠게 닦아내었다. 상처는 금세 아물었지만, 안나의 뺨과 손등에 지저분하게 묻은 피는 선명하게 물속에 비쳤다. 안나는 뜨거운 숨을 토해내었다.



녹색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난다.



태양의 신과 달의 신, 이 하늘을 누비는 신성한 자매에게는 공통된 별명이 있다. 어머니 레토를 모욕한 자들에게 자비 없는 형벌을 내리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복수의 화신들. 그들은 소중한 이가 타인에게 침범을 받으면 절대 참지 않았다. 만일 침범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섬뜩한 그들의 화살의 사냥감이 되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마치 태양의 햇살과 달의 달빛이 닿지 않는 곳이 없듯이.



사냥을 좋아하는 것은 엘사뿐이 아니다. 사냥을 좋아하는 건 안나 역시 마찬가지.


다만 안나가 사냥하길 즐기는 대상이 짐승이 아닐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안나의 사냥감은 오리온이었다. 하지만 직접 활시위를 잡고 화살을 쏘지는 않을 것이다. 아르테미스는 숲을 뛰어다니며 직접 사냥을 하는 것을 즐기지만, 아폴론은 저 높이 앉아 손을 더럽히는 일 없이 덫을 놓아 사냥감을 잡는 것을 즐겨 했기에.
















+
















몸을 씻던 엘사에게 안나가 한바탕하고 간 후 경고가 먹혔던 건지 아니면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관심이었던지 엘사의 예상과 달리 안나는 잠잠했다. 태양도 제시간에 떠오르고 저물었고 어쩌다 엘사를 마주치면 평소처럼 으르렁거리며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말할 때까지 닦달할 것처럼 집착했던 오리온에 대한 것도 입 밖에 꺼내지조차 않았다. 너무 한 번에 원래대로 돌아온 안나가 엘사는 의심스러웠지만 그것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같이 떠오르는 그날, 샘에서 있었던 일에 엘사는 안나에대해 고민하는 것을 차단하기로 결심했다. 일이 있어봐야 무슨 일이 있겠냐며. 엘사는 걱정을 뒤로하고 오리온에게 애써 집중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오리온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요즘 따라 아버지인 포세이돈이 자신을 부른다며 오리온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바다로 향해서는 감감무소식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묻는 엘사에게 오리온은 답을 얼버무렸지만,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오리온이 받은 불길한 예언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물론 전해주었다기보다는 엘사의 협박에 마지못해 털어놓았다는 게 맞았지만.



예언이라, 엘사는 잠시 아폴론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불안감과 의심을 뒤로 밀어 넣었다. 예언을 해주는 건 아폴론의 신전뿐만이 아니었다. 반드시 이 일에 안나가 엮여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고 지금 안나를 생각하는 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엘사는 오리온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를 택했다.




"엘사, 걱정하지 말아요. 아버지는 포세이돈이고, 여자친구는 아르테미스인데 누가 감히 저를 헤치겠어요? 그리고 예언이 워낙 모호한 데다가 해석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어서, 꼭 나쁜 예언이라고는 볼 수 없다더라고요. 제가 별자리에 오를 만큼 대단한 영웅이 된다는 예언일지 누가 알아요? 아버지께서 아폴론 님에게 예언을 부탁해보신다고 하셨어요. 그럼 좀 더 명확해지겠죠. 그분이 조금 바쁘시다고 해서 좀 늦어졌을 뿐이에요."




사랑스럽게 웃으면서 오리온이 말했다. 엘사는 오리온의 무릎에 앉아 입술에 입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봐. 오리온의 잎에서 안나와 무관한 일이라는 말이 나오자 안나가 이 일에 관여되어있다는 불안감이 사라지고 안도감이 엘사를 쓸고 내려갔다.



그 다음날도 오리온은 낮부터 포세이돈에게 불려갔다. 혼자 남은 엘사는 안나를 찾아갔다. 예언의 신이기도 한 안나라면 답을 알 터였다. 바쁘다던 안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태양 마차의 위에서 고삐마저 쥐지 않은 채 안나는 다리를 까딱이며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포세이돈의 부탁도 거절할 만큼 바쁘다던 신으로는 안 보이는 모습에 엘사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바쁘다더니, 그게 바쁜 거니?"

"내가 바쁘다는 소리는 어디서 들었대? 어쩌겠어, 갑자기 일이 너~~무 좋아져서 말이지.”




안나가 책을 덮지 않은 채로 어깨를 으쓱였다. 드물게 안나의 말에 반박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무는 엘사를 보면서 안나는 눈썹이 재미있다는 듯이 추켜올렸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야? 나 바쁜데."

"부탁이… 있어."




엘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안나는 그런 엘사를 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세상에, 그 고귀하신 아르테미스님이 미천한 나한테 부우탁이라니? 빈정대는 안나의 목소리에 엘사는 당장에 뒤돌아 자리를 박차고 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엘사는 애써 성질을 죽였다.




"중요한 부탁이야."

"뭔데? 들어나 보지 뭐."

"오리온의 앞날을 예언해줘."




아하, 안나의 흥미 없는 듯한 목소리에 엘사는 시선을 떨구었다. 지금 상황이 너무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탓이었다. 엘사의 얼굴이 홧홧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안나를 오래 보고 있을수록 샘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낮은 흥얼거림,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감각을 곤두서게 몸을 훑고 흘러가는 차디찬 물- 그리고 녹색의 눈동자.



엘사의 허리가 저절로 곧추섰다. 다시 그때 그 연못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낯선 감각이 등을 타고 흘렀다. 애써 그 감각을 무시하며 초조하게 머리카락을 꼬는 엘사를 보며 안나가 피식- 웃는다.




"좋아. 단, 조건이 있어. 전에 나한테 활 겨눈 거 기억해?"

"그건- 사과할게. 안나."




이제야 안나라고 부르네. 엘사가 듣지 못하게 안나는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완벽하게 계획된 미소를 짓는다. 어디 보자, 안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다 위를 가리켰다. 오늘따라 눈이 시리도록 부신 태양에 무언가 동그란 것이 바다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그냥은 해줄 수 없고, 재미를 위해 내기를 하자. 저기 저 물체를 화살로 쏘아 맞힌다면 예언을 내려줄게."

"좋아."




엘사는 망설임 없이 금빛 화살을 꺼내에 은색의 활을 겨누었다. 샘에서 안나를 겨누었듯, 엘사의 아름다운 근육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축한다.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는 은색의 활이 칼날처럼 반짝였다. 곧게 뻗은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화살이 공간을 갈랐다. 엘사가 쏜 화살은 황금색 빛의 선을 그리며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작은 점같은 목표물을 꿰뚫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깔끔한 사냥 실력이었다.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엘사는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




자, 이제 예언을 들려줘.




안나가 잔악하게 웃는다. 그래, 예언을 들려줄게. 엘사.




"포세이돈의 자식, 오리온이여 달의 아름다움을 더 이상 탐하지 말라. 그녀는 찬란한 태양의 빛에 눈멀어 사랑하는 이의 심장에 제 손으로 화살을 꽂을지니. 오리온이여, 네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더는 욕심을 부리지 말지어다. 끝내 그 욕심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이의 손에 네 목숨을 잃기 전에."




뭐?



아폴른의 예언을 들은 엘사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를 내려보았다.


저 멀리서도 반짝이는 금화살이 박힌 형체가 바다의 물결을 따라 힘없이 흔들거린다. 그 주위로 붉은색의 피가 번져갔다. 두려움과 절망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엘사는 얼굴을 붙잡았다. 아냐, 그럴 리 없어. 푸른 눈동자가 그 물체를 따라 흔들거린다. 엘사가 다급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엘사는 끝내 금화살이 심장에 박힌 채 죽어있는 오리온을 발견했다.



아아, 아아아아!



다급한 손길로 엘사가 오리온을 바닷물에서 건져내었다. 축 늘어진 오리온을 끌어안아 백사장을 오리온을 데리고 가 눕혔다. 오리온은 고통의 흔적 하나 없이 평온했다. 그만큼 빠르고 날카로운 죽음이었다. 엘사의 움직임에 따라, 사냥을 즐겨 하던 건강한 오리온의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이미 생명이 모두 빠져나간 그 몸에는 오리온이 없었다. 엘사만을 바라봐 주었던. 엘사만을 사랑해주었던. 그 오리온은 이미 이곳을 떠났고 텅 빈 육신만이 엘사의 품 안에 있을 뿐이었다. 엘사는 오리온의 가슴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손으로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가지 마, 가지 마 오리온.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내 사랑.



엘사의 손이 꾹꾹 오리온의 가슴을 눌렀다. 하지만 오리온의 몸은 엘사의 힘에 들썩일 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나의 머리를 스친 첫 생각은 어? 남자가 아닌 여자네. 였다.



옷이 풀어헤쳐지고 묶고 있던 붕대를 풀어헤치자, 숨겨져 있던 가슴이 드러났다. 엘사도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구나. 안나는 멍하니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이 일이 끝나면 안나는 만족감과 함께 자신이 웃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엘사의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듯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쿵 내려앉고 안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한참을 압박해도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오리온에 엘사는 심장을 쥐어뜯었다. 얼굴을 손톱을 긁으며 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른 숨막히는 울음을 토해낸다. 붉은 피가 엘사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뚜둑, 뚝 흘러내렸다. 깜짝 놀란 안나가 엘사에게 뛰어가 자신을 해하는 엘사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안나는 엘사의 눈을 보고 말았다.



끝없는 증오로 가득한 엘사의 푸른 눈동자를. 안나를 진심으로 증오해 마지않는 엘사의 질척이는 분노를.



안나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엘사는 그런 안나의 눈을 한참 동안 저주하듯이 응시했다. 그리고 오리온의 몸을 끌어안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런 엘사의 뒷모습을 안나는 멍청이처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안나에게는 할 말이 있었다.



사랑은 그저 열병과 같은 거라고. 잠시 눈멀었다가 금세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릴 거라고.

감정을 사로잡은 연인은 한때에 불과하지만,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자매라고.

지나갈 인연에 영원을 걸지 말라고.



감히 안나는 그 말로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나의 손끝과 발끝이 차가워졌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증오로 가득했던 푸른 눈이 안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잠깐의 충동에 영원을 걸어버린 것은 엘사가 아닌 안나였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달은 안나는 휘청이며 배회하다가 다시 마차에 올랐다. 태양을 제시간에 띄우고 지게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그건 엘사가 좋아하는 거니까. 안나는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떠오르는 엘사가 좋아할 한가지 일을. 안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정해진 시각에 태양이 지고, 대체하듯이 떠오르는 시린 달을 보았을 때 안나는 자신의 신전에 무너지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난 이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저…


엘사를 되찾고 싶었던 것뿐이었는 데



또 바보같이 실수했어. 또다시 선을 넘고 말았어. 그리고 이번엔, 엘사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야.



엘사의 그 차갑고 어두컴컴했던 눈동자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았다. 끝없는 두려움이 안나를 잠식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안나는 바닥을 기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태양의 옆에 가서 몸을 웅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드리운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심장에서부터 퍼져나가는 한기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안나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헤르메스로부터 엘사가 제우스에게 부탁해 오리온이 밤하늘에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어서도 너는, 엘사의 옆에 존재하는구나. 안나는 태양 마차를 끌면서 이를 악물었다. 밤하늘을 볼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달과 함께 밤하늘에서 빛나는 오리온자리를 보면, 안나는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릴 것 같았다.



































오리온은 안나를 닮은 여자였어


등장과 동시에 빠르게 죽어버린 오리온에게 묵념을;;;;;; 어차피 신화에서도 어떻게 죽든 죽으니까 큰 죄책감은 가지지 않아도…(먼 산)



안나는 이렇게까지 엘사가 분노할 줄 몰랐어.

그저 유희 상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 자신이 잠자리 상대들과 그러했듯이.


하지만 저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안나의 선택이 달랐을 까는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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