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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6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05 18:54:55
조회 924 추천 39 댓글 10



다음 새로운 월요일.

엘사는 일찍부터 출근해 있었다.

주말 동안 엘사는 처음으로 잠도 설쳤다.

눈을 감으면 그 순간 바로 그 장면이 떠올라서.


엘사는 안나보다도 그 오묘한 여자의 태도가 거슬렸다.

이미 다 잡은 물고기를 둔 그 여유.

그 여자에게 엘사는 길건너 어딘가에 시야에도 없었겠지.

하지만 엘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깊은 곳에서 그 여자가 자신을 비웃었다고 생각한다.


"시발."


날카롭게 선 눈매로 업무부터 점검한다.

출근시간이 되어 하나, 둘 직원들이 나온다.

엘사는 자기를 향한 인사들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날은 극도로 위험한 적생 경보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유달리 빠른 출근, 평소보다 더 심드렁한 태도.

눈길 한 번 까닥안하지만 얕게 들리는 한숨.

다들 재빨리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낮추고 소근거린다.

오늘 엘사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까 조심하자고.


그 기류를 바로 포착한건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안나는 괜히 엘사를 마주보기 껄끄러웠다.

술김이라고 하지만 다 기억난다고.

검은 크로커스 바에서 만난 인연과 하룻밤.

이후에 안나를 덮쳐온건 괜한 양심의 가책이었다.

도둑질한듯 괜히 제 발 저린다고 해야 할까.


"안녕."


하지만 엘사는 안나를 보고는 오늘 처음으로 미소지었다.

안나는 엘사의 반응에 얼떨떨했다.

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안나와 눈이 맞자 고개를 샐쭉였다.

안나는 늘 그렇듯이 엘사 바로 앞에 앉는다.

뭔가 찜찜한 느낌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엘사가 일어선다.

안나는 바로 옆에 스치는 공기에도 깜작 놀래 어깨를 움츠렸다.

왼쪽에서부터 그늘져오는 그림자와 인기척.

안나의 책상 위로 서류철 하나가 철썩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거 전부 재검토해. 특별한거 아니고 이중 계약 의심이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도 지점에 전화 넣어서 확인하라고 전하고. 그리고 이거는 신상품 매입이랑 디피 견본. 또 오후중에 오디터 싹 다 돌려서 공간 낭비하는거, 배치 잘못된거, 위생 상태, 창고 관리, 온라인 판매 포장 상태...전부 오늘중으로 건수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잡으라고 해. 아주 보자보자하니까 전부 개판이야."


"네..."


"그리고 이건 이번에 계약한 모델들. 얘내는 전부 갈아. 교묘하게 업종 피해가면서 바람 핀 녀석들이니까. 언쟁 좀 있을거니까 계약서에 적힌대로만 대답해."


안나는 파티션 위에서 내리깔아보는 엘사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책상 위로 툭툭 떨어지는 서류철들을 정리할뿐.


"내가 제일 역겨워 하는 일이야. 얄팍한 속임수질들. 어차피 손바닥 안에 있는데. 그렇지?"


"맞아...요."


"근데 안나, 고개 좀 들면 안될까? 내가 얘기하잖아."


안나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늘진 엘사의 얼굴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파란 눈동자가 시꺼멓게 보일 정도로.

엘사는 말 없이 몇 초간 안나를 내려다보다 몸을 돌렸다.


"잘 처리해. 내가 제일 '믿는' 사람답게."


안나는 엘사의 뒤꽁무니에 대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러운 입에서 의무적으로 나오는 말.


"알겠습니다..."


"잘할 수 있겠지?"


"네, 실수없게..."


"실수하면 안되지. 혹시나라도."


엘사는 마지막 말에 유달리 힘을 주었다.

물론 안나도 새겨듣는다.

엘사에게는 만분의 일의 실수라도 변명이 통하지 않으니까.




안나는 평소보다도 더 열심이었다.

이런 날에는 눈에 안차더라도 일이라도 잘해야한다.

끼니 때까지 반납하고 안나는 계속 일에 몰입했다.

확인 전화를 두 번, 세 번씩 돌리고.

에이전시랑 실랑이도 벌이고.

각 지점에서 쏟아지는 보고들도 정리하고.


안나는 출근할 떄는 핸드폰 벨소리를 늘 켜놓았다.

말단으로 지낼 때는 탈 없었다.

다만 엘사의 옆을 차지하게 되면서 불이 나는 중이다.

잠시라도 놓치면 식은땀 날 사고로 이어질 일도 있다.

안나는 전화만 받고 키보드만 두드리면서도 땀이 흘렀다.


모니터 옆면에 붙인 포스트잇들이 팔랑거리다 떨어진다.

중요한 메모가 적혀 있었기에 허리를 굽히는 순간.

엘사의 구둣발이 그 앞에 탁! 하고 막아섰다.


"열심히 하네."


엘사는 직접 메모 포스트잇을 주워서 안나의 자리에 올려놨다.

그리고 다정하게 안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일만 하는 모습 보기 좋아."


"별 말씀을요..."


안나는 오늘은 도저히 엘사를 상대하기 힘들었다.

죄인의 기분으로 최후 변론하듯 말꼬리가 계속 늘어진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 일만 하느라."


"팀장님이 시키신 일이니까요. 오늘은 기분도 언짢아 보이시고."


"내가? 그렇게 보였어?"


안나는 어깨에 올려진 손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왜 그렇게 보였을까...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엘사의 손이 어깨에서 팔로 움직인다.

뱀처럼 휘어감아가며 안나의 등 뒤를 완전히 차지했다.

이제는 두 손으로 안나의 두 어깨를 만지작거린다.

안나는 마치 족쇄가 양 갈래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얼핏 보기에 엘사는 안나를 독려하며 안마라도 해주는거 같이 다정하다.

하지만 안나는 엘사가 그런 정도로 따뜻한 인정머리는 없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늘 내가 시키는것만 하면 되는거야. 잘하고 있어. 특별한거 있을까?"


"특, 특별히요...전부 잘 해결되고 있어요."


"바람 핀 건은?"


안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 흐르는 땀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분명히 안나가 흘린 것중 가장 식어있다.


"바, 바람핀거요?"


"이중 계약 의심처리가 있잖아. 계약 위반 모델건이랑."


"아...아...그, 그게....에이전시측은 계약상 문제 없다고요...이번 일은 팀장님에게 다시 연락한다....했어요."


엘사는 더 얘기해보라는듯 안나의 어깨를 주물거렸다.

그럴수록 안나는 눈이 쾡하게 들어가며 두통이 올 지경이다.

엘사의 말에 담긴 의중과 행동들에서 드는 위화감.

그 위화감이 안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중 계약도....잘....마무리...아무 문제 없을거에요..."


"없을거에요?"


"없어요!"


"어머나, 다행이네. 아무 문제 없다니까. 괜한 의심이었나봐."


"그, 그러게요."


엘사는 싱글거리며 안나에게서 손을 뗐다.

대신 한발 옆으로 와서 고개를 책상 위에 다른 메모지를 올려놓는다.


"난 잠깐 사장님 만나고 올거니까 일들 하고 있어. 네가 총괄해서 업무 분담하고."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대답할 힘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엘사가 멀어지는 동안 안나는 급히 새로 올려진 메모지를 돌려봤다.


"오늘 퇴근하고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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