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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s Desire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15 21:30:14
조회 420 추천 22 댓글 4



왕이라는건 외로운 일이었다. 함께할 가족이 없으며, 사랑조차 없는 여왕이라면 더 그렇다. 호사스러운 왕궁과 궁중 생활. 언제나 식탁보를 화려하게 수 놓은 만찬들과 샹들리에의 연회장. 춤을 추며 그녀의 위덕을 칭송하는 노래하는 사람들과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만백성들. 분에 넘치는 속 편한 소리라고 한들 여왕에게는 그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리라.


한 없이 자유롭게 불어와 머리결을 적시고 가는 바람과 저 멀리 옅은 바다 내음. 손을 들어 흔드는 뱃사람들과 저 높은 돛대 위를 뛰어 올라가 내려다본 수평선 끝. 마음껏 달릴 수 있어서 세상 끝까지 뛰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렌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외로운 나무를 달래주려 그 밑둥에 기대 초원에 뺨을 대고 있으면 따스한 햇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재미없어."


안나는 낙심했다. 눈을 잠깐만 감아보아도 아직도 생생한데. 그 수평선들과, 바람과 ,햇살과, 오감이 모두 떠오르는데. 시끄러운 인사에 눈을 뜨면 사방이 콱 막혀버린다. 궁전은 말할 필요 없이 넓고 높았지만 온 세상이 죄여 와 금방 숨이 막혔다.


"안나, 왜 그래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안 좋아 뵈여요. 이런식으로 말해줘. 말투도 더 차분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되요. 이러면 기분이 달래질까요? 하면서 꽃다발이라도 한아름 안겨줄 수는 없는거야?"


속으로만 삭힌다. 안나는 이제 자신의 왼편의 나란히 있는 옥좌에 고개도 돌리기 싫었다. 그러다가도 금방 웃어야 한다. 연회의 주인인 여왕은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런 그녀의 한숨 한 번, 찡그린 눈빛 한 번이 입소문을 태워가니까. 격조 높고 고매한 여왕이란 그런 자리여야만 한다. 갈망이 차오른다. 이 갈망이란 것이 어느새 점점 커져가서 이제는 속을 쿡쿡 찔러댔다. 처음에는 살짝 꼬집었고, 바늘로 찔렀고, 이제는 불에 지진 쏘시개가 되어서 인두처럼 지지고 있었다. 안나는 소화가 안되어서 역하게 흘릴 것만 같아 입을 틀어 막았다. 억지로 쓴물을 삼킨다. 다시 속에 들어간 그 물이 아주 잠시라도 갈망의 쏘시개를 식혀둘 수 있었다.


"안나?"


왼손바닥을 들어보였다. 신경쓰지 말라는 뜻으로.


그 순간에 연회에 아름답게 연주되던 앙상블들이 음악을 멈췄다. 삽시간에 음악이 멈추고 연회에 참여한 수 십의 사람들이 일제히 안나를 바라본다.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단 몇 초안에 몰리는 수 백개의 눈동자들을.


'윽?!'


쓴물로 꺼둔 쏘시개가 다시 속을 푸욱 찔렀다. 이제는 단순히 불쏘시개가 아니야...! 대장장이가 방금 막 용광로에서 꺼낸 날붙이이라도 되는거 같았다. 표현 할 수 없이 뜨겁고 날카로워서 살가죽이 뭉개져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안나는 재빨리 그 갈망과 싸워야 했다. 그깟 정도로는 날 어쩌지 못한다고. 지금, 바로, 이 자리의 여왕의 고귀한 지체와 행동에 감히 어떤 망신도 주지 못할거라고.


안나는 왕좌 손잡이에 있는 샴페인을 집었다.


손님들은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안나를 따라 잔을 채워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으윽!'


쑥 뽑혔던 갈망이 다시 다른곳을 찌르고 들어온다. 토하고 싶을 만큼 어지러워져.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연회장이 거꾸로 뒤집혀 보였다. 지금 이 샴페인 잔을 들면 바닥에 다 쏟아질거 같이...


'다 허상이야!'


안나는 샴페인 잔을 들었다. 거꾸로 들린 샴페인 잔이 쏟아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아무 말이나 쥐어 짜낸다. 참석해줘서 감사하다, 영광을 함께 누리길 바란다, 아렌델의 번영과 모두의 안녕을 위하여 축배를.


'부디 나에게도......그 시절과 같은 축복을.'





"안나, 정말 괜찮은거 맞아요?"


연회가 끝나고 옥좌를 내려와 장막 뒤를 거닐고서야 표정을 풀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안나는 이 복도에 많은 촛대를 두지 않게 명했다. 한 기둥마다 있던 것들을 두 기둥 마다로, 세 기둥 간격으로. 이제는 다섯 간격으로 놓았다. 그런데도 경계를 풀지 못해 촛대 놓인 기둥 앞에서는 희미한 미소를 걸쳐두고. 어두운 기둥을 지날 때만 찡그린다.


"안나! 대답 좀 해줘요. 내가 또 무슨 실수라도 했던가요?"


다섯 간격 뒤의 크리스토프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또? 아니, 늘 실수였어. 당신을 만난거 자체가! 내 인생의 최대 오점이었다고!!!"


어둠은 위험했다. 샹들리에와 촛불, 노래와 춤과 인파들 사이에서는 안나의 속을 찌르는 쏘시개 정도지만 이런 곳에서는 형상이 되어 따라왔다. 안나의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안나는 피눈물을 흘리는 창백한 귀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체가 없이 자유롭게 안나의 몸을 통과하며 어깨에 올랐다가 바로 앞에 마주보며 뒤로 걷기도 한다.


'웃기지마, 우린 사랑해. 그랬었어!'


'지금은?'


'잠시 권태기일뿐이야. 모든게 무료하니까.'


'오, 안나. 안나 아렌델. 쯧쯧쯧."


갈망은 한심하다는듯 혀를 차며 안나의 뺨 바로 옆에 붙었다.


'난 너를 누구보다 잘 알아. 내가 너니까.'


군침이 넘어간다. 갈망이 속삭일 말은 듣고 싶은 말이니까. 그 듣고 싶은 말만으로도 해감되니까. 갈망은 안나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쳐 반대쪽으로 빠져 나왔다.


'선악과 앞에 왜 이브가 먼저 꼬였는지 알아? 그녀가 더 인간이니까. 아담 따위는 아무짝에 쓸모 없었지. 그는 그녀가 하자는대로 그녀가 원하는대로 했을 거야. 이브가 더 나약했고 더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지. 그런데 저 인간을 봐. 저 노란머리의 얼빵한 자식을 보라고.'


"안나, 내가 실수한게 있다면 알려줘요. 솔직히 요즘들어 한 마디도 없어서 더 불안해서 차라리 당신에게 타박이라도 받던 시절이 그리워져요."


'얕은 말에 속지마. 그는 대관식에도 네가 준비한 정복을 1시간만에 벗어버렸어. 너의 고귀한 혈통과 사명감에 대해서 그가 어떤 이해를 하고 있지? 그는 너의 아담조차도 못 되는 남자야.'


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두운 기둥을 더 늘리면 안되겠어. 빨리 다섯 간격을 지나서 다시 촛불이 있는 기둥으로 가야해. 그런 다급함에 안나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제 이깟 불빛으로는 날 못 막아. 네가 빨리 걸으면 나도 빨리 걷지.'


입술에서 피가 날 때까지 깨물면 안돼. 누군가 물어볼거야.


까득!


그런 생각 따위는 변명일뿐이다. 안나의 입술이 씹혀 한 줄기의 핏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그 피를 마시면 무슨 생각을 해?'


'아프다는 생각.'


'피를 속이지마.'


'안 속여.'


'거짓말. 다시 말하지만 너는 더 인간이야. 더 솔직하고 욕망에 차있는 똑바로 된 인간."


숨이 가빠온다. 빠른 잰걸음이라서? 아니야, 다시 쓴물이 돌아 속이 뒤집혀 쓰라린다. 그 다음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안나는 차라리 울고 싶었졌다. 피눈물을 흘리는 갈망이 두 손을 뻗어 안나를 품에 안는다. 섬짓한 미소로 웃으면서 그 말을 입에 담으려 한다. 멈추라고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이......



'그를 죽여버리고 싶잖아.'



그 한마디가 귀를 관통해서 쭉 타고 내려간다. 뇌를 거쳐서 목구멍을 따라 불쏘시개가 타오르는 어딘가로. 도화선에 불이 붙어 펑하고 터지려던 그 순간이었다.


"아니야!!!"


안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나?"


복도가 끝나 여왕의 방 앞에 있었다. 안나는 서둘러 그 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격앙된 감정과 편협된 사고회로 속에 몸이 뜻대로 안됐다. 그 쉬운 문 여는 일조차 버벅이며 낑낑댈 정도로.


"안나, 카이나 게르다를 불러올게요. 심각해보여요."


"손대지마!!!"


문고리를 잡고 틱틱대는 손등에 크리스토프가 닿자 안나는 혐오하며 휘둘렀다. 크리스토프는 처음 보는 눈빛에 겁에 질려 있었다. 겁을 먹은건지 아니면 이 조차 이해를 못해 무지한건지 모르겠지만.


복도 저 멀리에서 회중등을 든 시종들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안나의 고함에 놀란 그들은 침소 앞에 대치하는 여왕과 그 국서를 보고서야 멈췄다.


"폐하? 무슨 소리였던가요. 방금 그 고성은 대체?"


안나는 이제 마음씨 좋게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풀에 지쳐버렸다. 거짓과 위선과 가면으로 둘러 싸는 모든 것에 환멸이 난다. 애써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안나는 표악스럽게 크리스토프를 문간에서 더 떼어놓았다.


"다 물러가세요."


찰칵.


문고리를 돌려서 당기기만 하면 되는 것을. 왜 밀고 있었는지. 안나는 굳이 추스를 필요도 못 느껴 쾅하고 쎄게 문을 닫아버렸다.




밤이 새고 나서 동이 터오면 지난밤이 잊혀진다. 안나는 어제 있었던 품위 떨어지는 패악질은 새벽 공기와 새로 떠오른 일출에 담아 태워버렸다. 갈망도 없어진 채였다. 없어진건지 아직 갈망도 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넓은 침대가 외로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 사이에서 신비한 북쪽 어딘가 정령들이 사는 마법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일들,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가 떠오른다.


나중에 커서 여왕이 된다면 그곳에 갈 수 있을줄 알았다. 어머니의 가삿말처럼 북풍과 바다가 만나는 머나먼 어딘가로. 그 강은 모든걸 기억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곳의 강물을 퍼낸다면 기억을 없앨 수 있을까? 안나는 갈망에 사로잡힌 이후로 줄곧 그런 상상을 해왔다.


가신이 되는 게르다와 카이는 굳이 지난밤의 일을 캐묻지 않았다. 왜 그랬냐면서, 어떤 상태냐며, 그런 구질구질한 말보다 아침부터 욕탕에 목욕물을 데워놓고 어린시절에 몰래 먹던 초콜릿 퐁듀 한 조각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런 사려 깊음에 감사한다. 그들은 필요한 만큼만 말했고, 정해진 선만을 밟았다. 그 이상으로 안나에게 넘어오는 일이 없었기에 안나도 그 선 건너에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할 수 있었다. 눈빛만으로, 행동만으로, 그저 숨소리 하나로도.




오후 만찬이 지난 시간.


미리 언지를 받았는지 크리스토프의 주둥아리가 가만히 있었기에 편한 시간으로 끝낼 수 있었다. 안나는 오후 만찬을 마치고 '여인들의 살롱'으로 향했다. 궁전 내뜰의 정원을 지나가 나오는 후궁의 비밀스러운 사교다. 명성 높은 귀족들의 영애와 영부인들, 아렌델과 우호적인 국가의 공주나 황후들도 있었다. 내실을 다지는건 언제나 여인들이었다. 선악과를 따서 아담에게 가져갔듯 인간사에 정해진 일이 여인들의 살롱이었다.


손님들이 먼저 모이고 아렌델의 여왕이 가장 마지막에 들어간다. 그때까지 안나는 그 앞에 수 놓인 정원을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것은 분수대로 이어지는 장미 덩굴의 아치길이다. 안나는 그 아래로 내려오는 햇빛에 인사했고 정원을 찾는 나비에게도 인사했다.


"폐하, 기분이 좋아지셨네요."


"게르다. 어제 일은 실망시켜드렸어요."


"폐하께서 낮추실 일이 아니랍니다. 도리어 더 세심하지 못하여서 사과드려요."


"저는 언제나 낮았는데요."


"흠, 이 장미 아치의 딱 이만큼이었죠."


게르다와 눈 인사를 나눴다. 살롱을 정비하는 다른 시종이 와서 안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안나는 얼른 가서 손님들을 맞으라고 게르다와 시종을 돌려보낸다. 안나는 아치를 빠져나와 분수대 앞에 섰다. 어릴 때부터 이곳에 정원 미로를 만들고 싶었다. 너무 거창하게는 아니어도 곡선과 기하학의 빼어난 미적 감각을 더한 길을 내놓았다. 그 틈바구니 마다 다른 색의 꽃이 놓여져 있었고 인공 조형물들이 있었다. 오늘은 어떤 꽃이 있을까. 어떤 바람이 불어올까. 그런 기대감에 정원의 모퉁이를 도는게 설레었다.


분수대의 우편을 빠져나가 몇 걸음을 채 안 떼었을 때였다. 정원의 벽 건너에서 얕은 콧노래가 들려왔다. 운율이 익숙해서 안나는 숨을 죽인채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 여왕이 된 뒤로는 소리 없이 걷는 것에 익숙했다. 뭘까 이 설레임은? 안나는 오랜만에 흥이 돋았다. 세 걸음 정도를 옮겨 모퉁이 근처에 다다르니 노래의 운율이 선명했다. 어릴 때 듣던 자장가. 간간히 내뱉은 가사들마저도 똑같다. 안나는 노래만 들어도 사무치는 그리움과 그만큼이나 마음이 동하는 반가움에 더 참지 못하고 모퉁이를 빠져나왔다.


한 여자가 쪼그려 앉은채 정원의 화단 사이사이에 있는 꽃들을 꺾고 있었다.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을 보니 이 정원을 돌며 예쁘고 가장 생기가 좋은 것들을 모아 한아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빛깔. 금발도 은발도 아닌 오묘한 빛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짙은 속눈썹이 바깥으로 삐져 나와 올곧게 이마 위로 향해 있었고 프리뮬라 만큼 짙은 푸른눈과 장미보다 붉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피부는 백합의 흰색보다도 맑고 선명했다.


노래에 심취해 꽃을 골라낸 그 여인의 어깻단에 안나가 인사했던 나비가 앉았다. 여인은 이내 자기가 방금 꺾은 꽃 한송이를 슬며시 어깨 위에 올렸다. 나비는 아주 잠깐 그 꽃을 음미하고는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경탄스러운 광경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사람의 동작에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나비가 내려앉다니? 안나는 그 마법 같은 광경에 빠져 버려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머."


"아..."


"여, 여왕 폐하."


꽃다발을 든 여인은 쪼그려 앉은 몸을 일으키고 돌리다가 안나와 마주쳤다. 여인은 바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폐하...용서해주세요. 정원의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여인은 품에 안은 꽃다발 때문에 문책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떨고 있는 그녀에게 안나는 경계 없이 다가갔다.


"그럴 필요 없어요 영애. 이 정원의 꽃이 그만큼이나 빼어나다는 뜻이니까."


"실은 폐하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살롱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위해서?"


"저, 저는 영애 따위가 아닌걸요. 폐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직접 수 놓은 꽃다발이라도 만들고 싶었어요. 이까짓 것에 기뻐하실지 모르지만 제 미천한 신분에 가장 큰 것은 정성하는 마음뿐이니까요."


"영애가 아니라면...?"


"새로 이 정원을 가꾸라 명 받은 마마의 시종입니다. 이름은 엘사라고 합니다."


Elsa.


안나는 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종이 내민 꽃다발을 기꺼히 받아들었다. 엘사는 아직 한 군데 빈 자리에 나비에게 건넸던 꽃을 꼿아 다발을 완성시켰다. 안나는 그 향기를 코에 대고 만끽했다. 눈을 지긋히 감은채로 한참이나 취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꽃내음이었다.


"엘사."


"네, 여왕 폐하."


"아까 부른 노래는 어떻게 알고 있었나요."


"북쪽 땅에서 흐르는 전설을 따라 만든 노래인걸요. 어딘가에 있는 기억을 모두 아는 강과 아토할란. 마법의 숲을 건너가야 하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안나는 그제야 그녀의 이목구비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어머니와 닮은거 같은 그 형상은 그녀가 어머니와 같은 북쪽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안나는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리고 초월하는 느낌을 받았다.


"북녘부터 이곳으로 온거군요. 바다를 건너보고 언덕을 넘는 길이 험하셨겠어요."


엘사는 그 말에 웃었다. 아, 그것은 근래에 안나가 본 미소들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매혹적이었다.


"전혀요."


"어째서요?"


"수평선부터 이 아렌델까지 너무나 잔잔했어요.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어서 아렌델로 가서 마마를 뵈라며 간지럽혔죠. 언덕의 초원도 부드러웠어요. 아렌델이 보이는 동산 언덕에 난 외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으며 쉬는걸 좋아한답니다. 또 사람들은 언제나 밝고 친절하고요. 성에는 축복이 가득하죠."


"지금도 궁 밖을 거니나요?"


"네, 정원에 새로 들일 꽃과 새로운 씨앗을 찾으러요. 항상 이 정원으로 무엇을 가져올지 고심한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워요. 마마에게 바깥에서 느낀 바람과 햇빛들. 비와 눈을 맞으며 더 굳세게 자라 만개한 꽃들을 그대로 보여드리지 못해서요. 이 정원은 아름답지만 이곳에서는 그 생생한 싱그러움까지 옮기지 못해 늘 연구하고 있어요."


엘사. 그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안나는 몇마디 대화에 이미 넋이 나가버렸다. 엘사라는 이 참하고 아리따운 여종에게서는 알 수 없는 고급스러운 우아함까지 서려 있었다. 모든게 신비한 마법처럼 이루어진 사람. 특별하다는 느낌.


"폐하, 이제 살롱에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정원을 찾던 게르다가 안나를 찾아 돌아왔다. 하지만 안나는 어느때처럼 가볍게 왼손을 들어 게르다를 멈춰세웠다.


"살롱을 취소하세요."


"예?"


"엘사, 나랑 같이 왕궁 밖을 나가요. 그 생생한 싱그러움을 나한테도 소개시켜 줄래요?"


"폐하!"


"게르다, 한 번만요. 딱 이번만큼만 아치보다 낮았던 저로 이해해주세요."


"폐하....안될 말씀..."


"게르다. 안나 아렌델로서의 부탁이 아닌 여왕의 권위로 명령을 한다면 듣겠어요?"


안나는 살짝 내리 깐 목소리로 위협했다. 여왕이 되면서. 어른이 되면서 어릴적 싱그러움과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가는 대신 위엄과 진중한 무게를 얻은 그녀였다.


"후우우......네, 폐하. 명하신대로 하겠습니다."


게르다는 난처함에 어쩔줄 몰라 하다가 포기했다. 아치보다 낮았던 안나와 지금의 안나는 똑같지 않다. 여왕의 권위를 내세운다고 할 때는 선왕 아그나르 때를 훌쩍 지나 루나드 때보다 훨씬 단호하고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이따금 아렌델의 선조들에 홀린듯하면서 그들보다 훨씬 더한 모습은 게르다에게도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나는 엘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상 모든걸 지워놓고서 오직 엘사라는 이 한 사람만 눈에 담아 놓았다. 고결한 나비의 잔날개짓까지 감싸주던 그 손길이 안나를 붙잡았다. 어쩜 이렇게 따스할까?


"기꺼히 그럴게요."


엘사는 안나의 손을 붙잡아 단단히 쥐었다. 고작 손 한 번 잡은걸로 몸에 차오르는 전율! 갈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그딴게 있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엘사라는 이 여종이 훨씬 더 강렬했다! 무엇보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여자는 크리스토프를 택한 실수와는 결이 다른 것이라고. 지금 그녀를 잡아야 하는게 정해진 정답이라는 확신의 직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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