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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괴롭히는 선도부 01

ㅇㅇ(125.134) 2021.12.12 18:27:39
조회 644 추천 17 댓글 5

3월. 새 학기의 시작과 동시에 제일 어수선한 시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앞으로의 1년을 결정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안나는 오늘도 일탈하지 않고 등교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문앞에서 기다리는 선도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박안나 벌점 1점."


씨발. 좆 됐다. 하필이면 하고 온 화장이 일을 벌인 것이다. 화장 좀 했다고 벌점 먹이는 학교는 세상천지에 우리 학교밖에 없을 것이다. 화장 잡을 거면 검은색 스타킹도 좀 잡아보던가. 무슨 놈의 학교가 형평성이라는 게 없어. 고등학교 2학년에게는 이 모든 게 불합리하기만 하다. 20207 박안나라고 쓰여진 명찰이 원망스럽다. 안나에게는 특히 학생부가 기분이 더러웠는데, 1학년 때는 본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2학년 때부터 나만 존나게 쳐잡는 주도에 있는 30103 김엘사이다. 저건 선배가 아니라 거의 짐승 수준이다. 저거 졸업까지 1년이 남았다는 게 슬플 뿐이다.


안나는 패딩을 의자에 걸고 라푼젤에게로 가서 등짝스매싱을 했다. 라푼젤이 욕설을 내뱉지만 이내 웃어준다.


"표정하니 또 선도부한테 뜯겼구만. 설마 또 노란 머리 걔?"


"응. 걔."


걔도 참 정성이다. 라푼젤이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는 엠피쓰리 들으면서 학생들을 잡으면서, 노란 머리면서(자신은 자연색이라 우기고 있다) 머리가 조금만 갈색이면 잡기부터 해댄다. 마음만 같아서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이름 쓰고 싶다. 근데 이상하게 그 선배가 여자한테 인기가 정말 많다. 싸이에 들어가보면 후배와 동급생들이 쓴 방명록이 허다하다.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와야 할 수준이다.


"푼젤아. 너 선도부 모집하는 데 꼭 가서 조져줘라."


"내가 왜 그딴 걸 해."


그러면서 어느새 휴대폰 폴더를 열고 게임하고 있다. 세상에 시발 아무도 내 편이 없어요. 솔까 그 선배 예쁘긴 하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금발 여성 같다.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엘사가 그 미녀들보다 더 예뻐 보인다.


-----


3학년 복도는 정숙하다. 엘사는 자습시간이라 전자사전에 이어폰을 꽃고 공부하고 있다. 새벽같이 선도를 서서 비몽사몽하다. 내가 미쳤지. 이걸 왜 하겠다고 한 건지 과거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다. 급식 시간에 급식먹는 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그 외 등등... 게다가 뺏은 화장품으로 아이라인을 그려주거나 뺏은 닌텐도로 1시간 동안 내리 게임만 하거나 뺏은 엠피쓰리를 자기 멋대로 꾸미거나 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친구들을 보면(엠피쓰리 듣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다 신고 넣고 싶은 마음뿐이다. 뺏긴 사람이 항의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뺏긴 자신의 잘못이라는 이야기뿐이다. 


그나마 지금은 괜찮다. 2학년 중 20207이 마음에 들어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선배. 물어볼 게 있는데요."


20207 박안나가 선도부 김엘사에게 말을 건다. 2학년 복도를 순찰 돌던 엘사에게 접근한 것이다.


"왜 씨발 자꾸 저만 잡는 건데요? 다른 애들은 붓펜으로 눈에 그려도 걍 넘어가면서 왜 그래요? 그렇게 따지면 언니부터 나가야죠."


"내가 왜 자꾸 너만 잡을까."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 결판내러 간 건데 목소리를 깔고 있다.


"잘 생각해 봐."


어디 가요. 어디 가요. 야! 씨발 너 어디 가! 안나가 분노에 차 소리지른다. 라푼젤이 진정시켜 반으로 데리고 간다.



진짜 그 미친 썅년. 선배는 무슨. 온갖 욕짓거리를 하면서 집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켠다. 곧이어 싸이에 접속하는데 알림창이 떠 있다.


김엘사 님이 박안나 님에게 일촌을 신청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아주 해보자 이건가? 봄꽃처럼 꽃피는 나의 욕설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 바로 방명록을 남긴다.


선도부님아 저 괴롭힐려면 그냥 저랑 사귀세요 은근히 지1랄 하지 말고 좆같으니까


방명록에 이렇게 남겼으니 다신 날 괴롭히지 않겠지. 이렇게 생각했었다.



---


"너 생각보다 세더라?"


엘사가 아침에 안나를 도서관에 끌고 가서는 그렇게 물었다. 4월인데도 식은땀이 줄줄 났다. 이제 나는 인생이 종이 쳤구나.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뭔데요."


"나 네톤 친구추가 좀 해주라."


이건 할 만하다. 안나는 수업을 마치고 바로 집에 가 친구추가를 했다.


선도여신(Whysoserious)님의 말: ㅎㅇ


추가하자마자 바로 문자가 날아온다. 


수박안나(18roma)님의 말:됐죠


그 후 대화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선배 너 좋아하는 거 같다."


"지랄."


라푼젤이 과학수사보다 더 정확하다며 이름점궁합과 그 외 많은 것들을 데리고 왔다. 얘 수준 하고는 참 병신 같다.


"특정 대상에게 그리 집착한다는 게 예삿일은 아니거든. 백퍼야."


"아 뭐래."


안나도 내심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은 의심하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몇주 뒤 주말에 책을 빌리러 근처 도서관에 갔다. 트와일라잇 해리포터 시리즈 몇 권을 빌려 가지고 가려는데 공부하는 엘사가 보였다. 아직 알아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미처 나가지 못하고 열람실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여기서 다 보네. 책 빌리러 왔어?"


"네? 아...네."


엘사가 슬쩍 보고는 나도 그거 엄청 좋아하는데. 너랑 나랑 맞는 것도 다 있네, 라고 운을 띄운다. 안나는 아 또 머래. 라며 중얼거린다. 


"선도부 들어올래?"


"됐거든요."


"나도 고3이라서 힘드러 죽겠어. 요새 내가 그래도 안 잡잖아. 니가 야자 시간에 디엠비로 야구 보는 거 다 알아도 넘어가잖아."


"계속 그렇게 넘어가 주세요."


"너 하는 거 봐서 난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어."


지가 무슨 수련회 교관도 아니고. 뭐 내가 여기서 춤이라도 춰야 되나? 웃기네.


"됐고 저 다신 안 와요."


"미안한데.. 나 매점 가서 박카스 하나만 사 주라."



박카스를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자 어느새 어둑어둑해진다. 아 빨리 집 가서 무도 봐야 되는데. 빨리 전해주고 가야지. 하며 열람실에서 엘사의 자리를 찾는데 엘사가 무언가를 하는 걸 안나는 목격하고 말한다.


공책에 박안나 사랑해 박안나 없인 못살아 박안나 알러뷰라고 써 있다. 그러면서 엎드려 침 흘리며 자고 있는 것이다. 안나는 엘사의 귀에 꽃여 있는 이어폰을 뺴고는 사진을 찍어 집으로 돌아간다. 막 웃음이 난다. 확 뿌려버릴라. 하지만 그러다간 또 존나게 쳐잡을 것이다.



체육대회에서 기적적으로 안나의 반이 우승을 하고, 두 학생이 몇 번의 모의고사를 거친 뒤 여름이 찾아왔다. 춘추복은 하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 요새 살 만 하냐?"


라푼젤이 물었다.


"엉 존나 살 만 해. 걔가 안 잡으니까. 근데 시발 걔가 자기 힘드니까 음료수 사다 바치래."


"사다 바치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안 겪어봤으니 모르지."


엘사는 왜 대놓고 2학년 금발인 얘는 왜 그냥 넘어가는지 하늘이 곡할 노릇이다. 합리적 의심이 사실로 변하는 순간이다.



야자 시간. 3학년 조용한 교실에 가서 비타오백을 사다 바치니 엘사가 안나에게 찡긋하며 웃어주곤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돈을 건넨다. 쪽지도 같이. 디엠비로 티비 맘껏 보고 추천도 해주셈. 참고로 나 수능 백몇일 남음, 이라고 써져 있다. 수능 100일 전 이후에는 또 얼마나 부려먹을지 알 수 없다.



7월. 기말고사도 끝나고 학교에서는 자습만 주거나 영화를 본다. 영화에는 거의 모두가 집중하지만 자습 시간에는 자습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피엠피로 동영상 보거나 잡담하거나 닌텐도로 게임이나 한다.


물론 안나와 엘사 사이 주종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이젠 아예 쉬는 시간에 교실에 찾아오기도 한다. 어떨 때는 수업시간 복도에서도 마주친다. 그러다 선생한테 들키면 구석에서 뽀뽀하는 호그와트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2 3학년들은 성격 차이가 극과 극인 그들이 어떻게 표면상으로 친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화장은 잡는데 노란머리는 안잡는 이곳은 한국 고등학교가 아니라 호그와트 마법학교이다. 물론 엘사는 슬리데린이며 자신은 그리핀도르라고 박박 마음속으로 우기고 있다.


"잘 자고 가. 그럼 간다."


마무리는 늘 항상 이런 식이다.



여름방학식. 교장선생님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모두들 전광석화처럼 강당을 빠져나간다. 선도부는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게 지키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안나가 나가려는데 엘사가


"방학 잘 보내고 2학기 때 기대해. 실컷 부려먹어 드릴게요."


고3의 무서움을 볼 때가 곧 오나 보다. 완전 좆되게 생겼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여름 햇살을 맞는다. 제발 2학기 때부터 수능 전까지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맞다! 엘사가 말한다. 번호 교환 좀 하자. 이제서야? 마지못해 번호를 찍고는 이번이 마지막이고 방학동안 연락이 오지 않길 기도한다.


----


또 청레물을 가지고 왔네


선도부 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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