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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위크] 원작 비틀기 찌통물

Lexk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2.12 21: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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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건데!"


여자의 외침이 방 안을 채우기가 무섭게 그녀의 손에서 던져진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의자를 바라보던 여왕은 미리 사용인들을 물러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분명 방 밖에서 대기하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결국엔 이상한 뒷 이야기를 퍼트렸을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지 아니면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여왕의 동생인 여자는 잔뜩 흥분한 채로 몸을 비틀거렸다. 좁아진 시야 탓인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했고, 비틀거리는 다리는 한쪽으로 기우는 몸을 쓰러지지 않도록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던 동생이 제 팔을 붙잡았을 때, 여왕은 순순히 그 힘에 끌려 움직여주었다. 하지만 이대로 둘 다 바닥으로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놓인 침대로 중심을 기울였고, 이내 여왕의 생각대로 둘은 침대로 쓰러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했다. 여왕은 하얗게 변해버린 동생의 왼쪽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에 존재한 얼음 결정이 옅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여왕은 스스로 동생의 눈에 박아버린 저주를 바라보았다.


"난 못 해."


마주한 눈동자에 차가운 분노가 차오름을 보았다. 마땅한 분노였다. 여왕은 동생의 분노를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여왕은 자신 또한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왕은 모든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여왕의 하나뿐인 동생이 이렇게 난폭하게 변해버릴 정도였다.



모든 일의 시작은 여왕, 엘사의 대관식 날이었다. 아니 어쩌면 여왕이 알지 못하는 오래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인지 따지기에는 너무 오래되어 바래었고, 대관식 날에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차기 여왕이 될 공주가 1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여왕은 제 동생의 눈에 얼음 결정을 새겨넣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왕이 마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왕의 시작부터 생애를 함께했던, 여왕을 문 안에 가두고 부모님의 장례식마저 참여하지 못하게 만든 마법이 여왕에게 존재했다.

여왕이 아직 어린 공주이던 시절, 그녀는 마법을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은 동생을 웃음짓게 했기 때문이다. 그 웃음을 보기 위해 손을 움직였고, 그녀의 마음을 담은 마법이 주위로 쌓여 눈과 얼음으로 바뀌었다. 마법은 행복했고, 어린 공주는 그 행복에 심취했다. 어린 손으로 엉성히 쌓은 행복은 점점 쌓여갔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마법이 동생을 공격한 것이다.
공주의 비명소리에 달려온 어른들은 해결을 위해 특별한 존재에게 달려갔다. 혼자 남겨진 어린 공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종들과 병사들의 시선을 느꼈다. 공주는 방으로 도망갔다. 침대로 뛰어들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이불 표면에 서리가 맺혔고, 공주는 놀라 손을 떼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 한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두려움에 몸을 웅크렸다. 공주는 조심스레 손을 쥐어보았다. 두 손이 얼어버릴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주는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으며 웅크렸다.

날이 밝자 부모님과 동생이 돌아왔다. 동생은 잠들어 시종의 품에 안겨 방으로 옮겨졌다. 엘사가 따라가려 했지만 누군가 공주를 붙잡았다. 공주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공주에게 동생의 기억을 바꾸었다고 했다. 마법을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하며, 이제 거리를 두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밤 자신을 바라본 시선들이 떠올랐다. 공주는 동생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공주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버지는 공주의 손에 장갑을 쥐어주었으며,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에게 들은 말을 전해주었다. 마법으로 인해 얼어버린 것은 진정한 사랑이 녹인다는 말이었다.
닫힌 방 안에 홀로남은 공주는 그 말을 곱씹었다. 진정한 사랑. 하지만 공주가 찾은 방법은 참는것이었다. 그녀는 참고 외면하며 마법을 통제했다.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에는 방 안이 얼어붙었다. 지나친 감정이 마법에 관여한 것이다. 결국 공주는 감정마저 억눌러야 했다.

시간이 흘러 공주가 여왕이 되어야만 하는 날, 엘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3년 전, 국왕 부부의 장례식과 함께 닫혔던 성문이 열리는 날이었다. 엘사는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지만 애써 참으며 대관식을 진행했다. 엘사의 불안과는 다르게 아무 일 없이 축하 연회가 시작되었다. 연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오랜 시간 모습을 감추었던 여왕에게 다가왔다. 엘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몇 년간 만나지 못했지만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갈색 머리와 푸른 눈동자. 자신의 동생, 안나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어느 남자가 함께였다.

멀리 떨어진 동생의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엘사에게 분노는 억눌러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익숙했다. 방 안에서 엘사가 느낀 감정에는 분노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엘사는 명치가 답답해짐을 느꼈다. 늘 이랬다. 특히 안나를 생각할 때면 가슴은 터질것같이 답답했다. 조심스레 내려다 본 중앙 정원에서 안나가 놀고있는 것을 볼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왜 나만 갇혀 있어야 하는거야? 그 날의 원인은 안나였어! 해결되지 못할 감정들이 끊임없이 엘사를 괴롭혔었다. 지금 또한 그러했다. 엘사는 안나의 웃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엘사는 그 이유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손에 낀 벨벳 장갑 표면으로 흰 서리가 끼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엘사는 치맛자락에 손을 문질렀다. 그리고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부모님의 초상화가 떠오르는 눈동자였다.
안나는 옆에 서 있던 남자와 함께 엘사에게 다가왔다. 엘사는 허리를 펴고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 언니... 아니, 폐하."

"그래... 안나...."


잠깐의 적막이 생겼다. 여왕의 시선이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로 향하자 남자가 예의를 차리며 인사했다.


"서던 제도의 한스 왕자입니다. 처음 뵙습니다. 여왕 폐하. 제도를 대표하여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환영합니다. 먼 서던 제도에서도 제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와주어 기쁩니다."

"그동안 교류가 없었지만, 우리 서던 제도에서는 언제나 아란델과의 교류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폐하."


엘사는 서던 제도의 지리적 위치와 경제 규모, 파악하고 있는 병력을 생각했다. 엘사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제도의 차기 왕이 될 왕자는 이미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남자였다. 하지만 앞에 있는 남자는 갓 성인이 된 어린 남자였다. 아렌델을 낮잡아보고 중요치 않은 인물을 보낸 것이 분명했다. 엘사는 서던과의 교역 또한 노력에 비해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계산하고 그와의 대화를 끝낼 생각을 하였다. 엘사의 시선이 왕자의 팔을 잡고 있는 안나의 손으로 향했다.


"...왕자께서도 이 파티를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

"폐하,"

"안나. 잠시 나를 따라오렴."


엘사는 대답을 듣지 않고 뒤돌아 문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뒤따라온 공주가 여왕을 따라 걸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정원으로 가는 복도에서 엘사는 달을 올려다 보았지만 금세 시선을 옮겼다.
엘사는 정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안에 들어간 이가 있는지 물었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대답을 듣고는 안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여왕의 명령에 병사는 입구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겨 정원을 등지고 섰다.
엘사는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건물에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적당한 관목을 찾아 그 뒤에 멈추었다. 엘사를 뒤따르던 안나 또한 걸음을 멈추고 엘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엘사의 다문 입을 보고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말을 꺼내었다.


"무슨 일이신지... 폐하."

"편하게 말 해도 된단다. 안나."

"아뇨. 폐하께 감히...."

"..."


엘사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사고 이후로 처음 보는 동생이었다. 안나의 갈색 머리카락 사이에 흰 브릿지가 있었다. 엘사는 본능적으로 그날의 사고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엘사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한순간의 잘못으로 자기가 치뤄야 했던 시간들이 생각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둘 사이엔 어색한 정적이 있었다. 안나는 엘사를 바라보며 자신을 부른 이유를 재촉하고 있었고, 엘사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폐하라는 존칭을 쓰자 느껴지는 거리감이 엘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벽이 느껴졌다. 


"오늘, 어땠어?"

"아주 멋졌어. 완벽하게. 언니니까 당연히...."

"네 기분은?"

"어?"


안나는 당황한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떳다. 엘사는 안나의 예상 외의 반응에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졌다. 그러다 정원 한쪽에 자리한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 안나. 저것좀 보렴."

"어, 네?"

"눈사람이야. 안나."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눈사람이었다. 눈사람은 모자와 목도리까지 하며 눈이 없음에도 눈사람임을 뽐내고 있었다. 엘사는 반가운 감정이 들어 나무에 다가갔다. 안나 또한 엘사를 따라 그것을 바라보았다. 안나는 이미 나무 눈사람을 알고 있었다. 성 안에 갇힌 안나가 정원사를 재촉하며 만든 눈사람이기 때문이다. 안나는 그 사실을 말할까 입을 움찔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 발짝 옆에서 여왕을 바라보았다. 오늘 처음으로 여왕이 진짜 언니로 느껴졌다.


"응. 눈사람이야... 언니."


엘사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멋지다...."


엘사는 어릴적 기억이 떠올랐다. 두 손을 허리 뒤로 숨기며 허리를 폈다. 안나와 너무 가까운 것이 아닌지 걱정되었다. 안나는 아까보다 풀어진 목소리로 엘사에게 말했다.


"우리 어릴때 기억나? 겨울이 되면 늘 눈사람을 만들었잖아. 매일매일 말이야."

"...그래. 그랬었어."


사실 눈사람은 겨울이 아니어도 함께 만들었었다. 하지만 엘사는 안나의 기억이 지워졌음을 생각했다. 엘사는 안나와의 추억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남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안나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좋은 기억만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사는 고통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원인이 안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원망도 했었지만 어찌되었건 원인은 엘사의 마법이었다. 엘사는 종종 자신이 없었다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사고가 있던 날의 꿈을 꾼 날은 더욱 그러했다.

엘사는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음을 느끼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장갑 주위로 생겨난 서리가 사브작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엘사는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안나는 그런 언니의 노력을 모르는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엘사는 마법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다행이었다. 엘사는 안나에게 집중했다.


"재밌었는데... 그렇지, 언니?"

"응. 안나."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안나였다.


"있잖아, 언니."

"응. 얘기해."

"오늘 정말 좋았어. 성 문이 열리고, 언니도 만나고..."


엘사는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 밖의 세상을 생각했다. 엘사로서는 문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 큰 사건이었는데, 안나는 벌써 성 밖을 보았구나. 많이 달라졌을까? 안나에게 성 밖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어, 차분히 안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정말 행복한 날이야. 그래서 말인데, 언니...."


부끄러운 소녀가 된 동생을 바라보며 엘사는 아까 그 남자를 생각헀다. 한스 왕자라는 자. 엘사는 안나에게 하려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의 말이 이어졌다.


"나 그 사람과 결혼하는데, 언니가... 여왕께서 축복해주셨으면 좋겠어."


엘사의 두 눈썹이 일그러졌다. 엘사는 빠르게 뒤돌아 안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표정을 숨겼다. 결혼이라고? 엘사는 동생의 철없는 소리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결혼? 어이없는 소리였다. 엘사는 안나가 상처받지 않도록 돌려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체 언제까지 동생을 감싸줘야 하는것인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했다.


"당장 식을 올릴 수는 없지만, 준비를 바로 시작하면 가능할...."

"싫어."

"잠깐, 뭐?"


엘사는 뒤돌아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의 손이 엘사의 어깨에 닿기 전이었다. 엘사는 놀라 한발짝 뒤로 멀어지며 안나에게 말했다.


"난 그러지 않을거야. 네 결혼을 허락하지도 않을거고."

"대체 왜?"

"오늘 만난 사람과는 결혼 못 해."

"진정한 사랑이라면 할 수 있어."

"진정한 사랑? 네가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알아?"


진정한 사랑. 엘사는 오래 전 어머니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진정한 사랑... 왜 하필 지금 그 단어를 듣게 되는걸까. 엘사는 장갑이 얼어 뻣뻣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안나가 마법에 맞아 쓰러지던 장면이 떠올랐다. 혼자남은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은 언제나 엘사를 괴롭혔다. 엘사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두 손을 망토 뒤로 숨기며 안나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그러자 안나가 엘사에게 다가왔다.


"그래! 한스. 바로 그가 내 진짜 사랑이야!"

"아니. 그렇지 않아. 안나."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지고 좁혀짐의 반복이 계속되었다. 수백보는 될법한 정원이 엘사에게 좁게 느껴졌다. 엘사는 무서웠다.


"다가오지 마. 안나."

"그럼 도망가지 마. 내 얘기 안끝났어."

"아니. 우리 얘긴 끝났어. 그 남자와의 결혼은 없어. 안나. 제발."

"지금 장난해? 언니. 이런 식으로 끝낼 순 없어."

"안나. 내 말 들어."

"싫어! 언니나 도망가지 마!"


안나는 엘사의 어깨를 붙잡으려 오른손을 뻗었지만, 엘사가 몸을 돌려 피했다. 그 행동에 약이 오른건지 안나는 더욱 빠르게 엘사에게로 다가갔다. 이건 좋지 않아. 엘사는 생각했다. 안돼. 오지마. 멈춰. 엘사는 안나도 마법도 멈추길 간절히 바랐다. 등 뒤로 숨긴 장갑에는 이미 얼음결정이 맺혀 있었다. 안나에게 들켜서는 안된다. 들키지 않기 위해 그동안 떨어져 지냈는데... 기어코 안나의 손이 엘사의 어깨에 닿았다.


"아악!"


비명을 지른 안나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떨어졌다. 엘사는 자신이 본능적으로 안나를 밀쳐냈음을 생각했다. 그와 함께 휘둘러진 마법이 안나의 머리에 직격한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날과 같았다. 엘사는 놀라 안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손에 맺힌 마법이 다시 그녀를 얼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안나에게 다급히 외쳤다.


"진정한 사랑. 빨리 그에게로 가."


안나는 엘사의 외침에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엘사는 안나의 눈에 자리잡은 마법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꽃 결정이 빛나고 있었다.


"그걸 없애려면 진정한 사랑이 필요해. 안나. 한스와 네가 진정한 사랑이 맞다면... 그건 금세 녹아 사라질거야. 그러니까...."

"그게, 무슨...."

"빨리. 가. 안나. 그 얼음은 진짜야. 그러니 녹일수 있는 진짜 사랑을 찾아."


엘사는 손을 뒤로 숨긴채 안나를 재촉했다. 안나는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엘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옆을 보니 수반이 놓여 있었다. 엘사는 손을 내려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안나는 황급히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무언가 머리를 때렸고, 그 뒤로는 지독한 두통이 몰려왔다. 안압이 오른 듯 눈이 빠질듯이 아파왔다. 멀리 입구에 서있는 병사에게 손짓하여 연회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여전히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스 왕자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마친 시종장 카이가 안나에게로 다가왔다.


"공주님. 여왕 폐하를...."

"카이 아저씨! 한스 왕자 못 보셨어요?"

"예? 한스 왕자님이시라면...."

"오늘 저와 함께 있었던 남자 말이예요!"

"아, 그 분이라면 저 쪽 문으로 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별실에서 쉬시는중이 아닌지...."

"고마워요. 카이!"


안나는 소리치며 시종장이 손짓한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시종장이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려는게 있었음을 알았지만, 계속해서 느껴지는 두통이 여유를 사라지게 했다. 엘사가 한 말대로라면 한스를 만나 입맞춤을 하면 이 두통이 사라질 것이다. 안나는 지나가는 시종의 손에 들린 샴페인 잔을 낚아챘다. 술을 마시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 잔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안나는 잔을 기울여 얼굴을 비춰보았다. 안나는 자신의 눈에 자리잡은 얼음 결정을 발견했다.


"이게 뭐야...."


안나는 그제서야 엘사가 녹아 사라진다고 한 말을 이해했다. 얼음? 마법인건가? 하지만 언니가 어째서... 안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혼잡한 연회장은 사색에 잠겨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엉덩이가 안나를 밀쳤고, 그 덕에 안나는 휘청거리며 손에 쥔 잔을 떨어트렸다. 쨍그랑 하는 파열음과 함께 시선이 한순간 몰렸지만, 이내 다시 흩어졌다. 안나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올려 눈을 가렸다. 이내 시종이 청소도구를 들고 다가왔다. 안나는 짧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스가 향한 곳은 별실이 여럿 놓여있는 공간이었다. 커텐을 치고 쉬거나,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고 들었다. 안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며 한스가 있을 곳을 찾아 걸었다. 가까이 다가가 커텐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한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을까봐 최대한 발걸음을 조심스레 걸으며 틀키지 않게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해서 다행이야."

"축하드립니다. 왕자님."

"하하하."


안나는 그의 웃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구 옆에 서서 커튼 너머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아직 축하는 이르지만, 나쁘지 않군. 그래."

"이제 아렌델의 왕이 되시겠군요."

"쉿. 함벨. 입 조심해. 아렌델의 왕이라니."

"죄송합니다."

"그건 아무런 가치가 없어. 아렌델은 서던을 위한 발판일 뿐이야."

"맞습니다. 왕자님."

"공주가 그런 백치라서 다행이야. 하나도 배우지 못한 반푼이야. 여왕은 좀 더 나은것 같은데... 뭐 나야 고맙지."

"이게 다 한스 왕자님의 덕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


안나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조용히 걸음을 옮겨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얼음이 박힌 눈 부근은 시려웠다. 덕분에 눈물은 나지 않았다. 연회장에 가까워질 무렵, 모든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엘사의 연설이 울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파티의 마지막을 알리겠습니다. 부디 모두 즐거우셨길 바라며, 아렌델의 앞길을 축복해주시길."

""아렌델에 영광을""


사람들이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엘사는 연회장 한 가운데서 시선을 받으며 당당히 서있는 언니를 바라보았다. 높이 들어올린 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시종장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창 밖으로는 희미하게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안나는 지독한 두통을 느끼며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피해 연회장 벽에 기대 섰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피곤한 날이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안나 공주?"


안나는 감은 눈을 떳다. 한스 왕자였다. 안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같은 얼굴을 한 왕자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다. 안나는 자신을 붙잡는 왕자의 손을 거절하며 이야기했다.


"역시 결혼은 아닌것 같아요. 한스... 조심히 돌아가시지요."

"예? 아니, 그게 무슨... 공주?"


한스는 안나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안나가 빠르게 뿌리쳤다. 때마친 다가온 시종장이 무슨 일이냐며 둘 사이에 서며 중재했다.


"카이 시종장. 왕자를 성문까지 안내해주세요."

"예. 공주님."


시종장은 손짓으로 다른 시종들을 불렀다. 한스는 안나의 태도에 불만이 있는 것 같지만, 끌려나가는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기에 순순히 안내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안나는 성 문으로 향하는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안나의 방 문 앞에는 시녀가 서 있었다. 안나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궜다. 안나는 지끈대는 머리가 신경쓰였다. 따뜻한 물 안으로 머리 끝까지 집어넣었다. 눈 주위를 더듬는 손 끝은 변함없이 차가웠다. 저주일까? 하지만 엘사가 왜? 어떻게? 나를?


"푸하!"


숨이 막혀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욕조 밖으로 나왔다. 시녀 둘이 붙어 몸을 닦았다. 시녀들은 안나가 지쳤음을 아는지, 평소보다 과하게 시중을 들었다. 원래같았으면 사양했을 정도였지만, 안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이 몸에 걸쳐주는 옷가지를 입고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 위로 몸을 쓰러트렸음에도 두통은 여전했다. 하지만 거의 하루동안 쉼 없이 움직었기에 순식간에 졸음에 빠졌다. 시녀들은 조용히 방을 정리하고 나갔다.


안나가 다시 눈을 떳을 때는 아침이었다. 안나는 몇 시간밖에 자지 못한것인가 생각했지만, 시녀의 말로는 하루가 넘게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여왕께서도 공주님을 보러 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안나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시녀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졸음이 덜 가신거라 생각하며 안나의 머리를 빗어 넘겼다. 다 되었다는 말에 안나는 나가보라며 손짓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뜬 안나는 시녀가 치장한 머리를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안나의 모습은 어제와 변함이 없었다.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에 안나는 어젯밤 일은 모두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본 자신의 왼쪽 눈동자에는 얼음 결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안나는 손으로 왼쪽 눈을 가렸다. 손바닥 아래에선 냉기가 느껴졌다. 안나는 손을 옮겨 오른쪽 눈을 가렸다. 갑자기 세상이 얼어붙었다. 안나가 놀라 눈을 가린 손을 치우자 세상이 돌아왔다. 심호흡을 한 안나가 다시 오른 눈을 감자, 얼어붙은 세상이 보였다. 가구에는 서리가 내리고, 천장에는 고드름이 자라 있었다. 온통 파란 얼음으로 뒤덮여있었다. 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이를 불렀다. 여왕님을 따라 외출했다는 시종의 말에 여왕의 행선지를 물었다. 부모님의 무덤이었다.

안나는 말을 꺼내오라 시킨 후에 묘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곳은 비어있었다. 그곳에 남아 정리하던 병사 둘은 안나를 알아보고 경례했다. 그들은 여왕께선 이미 성으로 되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안나는 다시 말을 재촉했지만 산길을 달려온 말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끈거리는 두통때문에 잔뜩 날카로워진 안나는 말 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이 났다.
두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안나는 나뭇가지에 생겨난 고드름을 피해 몸을 숙였다가 이내 그것이 왼쪽 눈에 비친 환상임을 알고 화를 냈다. 숲을 지나던 사내가 이상하게 바라본 것을 알았으나 그깟 것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안나는 빨리 언니를 만나 얼음을 녹일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미 믿지 않게 된 진실한 사랑이 아닌 다른 방법을 원했다.

안나가 성에 도착했을 때, 안나는 성문을 지나자 거칠게 말을 세워 내려왔다. 안나는 달려온 시종에게 고삐를 건네며 엘사의 행방을 물었다.


"여왕 폐하는 어디 계시지?"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뭐라고?"

"마, 마법의 숲을 보신다며 떠나셨습니다. 방금 배가 떠난...."

"왜 잡지 않았지? 왜!"

"예,옛?!"


안나는 시종의 옷자락을 잡으며 화를 냈다. 시종은 공주가 왜 이리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으며, 근무 순번이 꼬여 오늘 근무하게 된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다. 입구에서의 소란을 들은 것인지 시녀장 게르다가 다가와 안나를 다독였다.


"공주님 무슨 일이신지요. 그가 어떤 잘못으로 공주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안나는 게르다를 보고 시종을 붙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여왕, 언니는 언제 떠난거야?"

"출항을 배웅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묘지에 간 거 아니었어?"

"가시기 전에 출항 준비를 명령하시고는 돌아오시어 바로 떠나셨습니다."

"하...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

"시종장의 말로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을것이라고 했습니다."

"항해 치고는 짧네."

"네. 마법의 숲이 멀지 않고, 그마저도 멀리서 살펴보고 오실거라 하셨습니다."

"알곘어."


안나는 지끈대는 두통을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 좋지 않으시냐는 게르다의 걱정에 안나는 두통이 있다며 마땅한 약을 찾아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뒤로는 지독한 통증 뿐이었다. 게르다가 가져온 것은 약을 섞은 와인이었다. 안나는 그녀가 건네는 잔을 받아 마셨다. 약은 효과가 없었지만, 적어도 잠들수 있게 만들었다. 안나는 눈을 뜨면 약을 마셨고, 그 양은 점점 많아졌다. 어느새 게르다는 약을 뺀 와인만을 가져다 주었다. 안나는 제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았다. 정신은 잃을 정도가 되어야만 두통을 잊을 수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마주한 거울에서 안나는 초췌해졌고, 얼음 결정은 더욱 선명해졌다. 안나는 어느새 병째 가져다 둔 와인을 따라 마셨다. 창 밖은 어두운 밤이었다. 안나는 침대로 향해 몸을 뉘었다.
다시 눈을 떴을때, 안나는 밖이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횃불이 밝혀졌다. 여왕의 귀환이었다. 안나는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사를 만나려 침대 밖으로 뛰쳐나왔다. 화장대에 비친 모습에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 비친 얼굴은 엉망이었고, 왼쪽 눈은 하얗게 변해있었다. 안나는 게르다를 찾아 소리쳤다. 문 앞에서 있었는지 바로 달려왔다.


"와인을 더 가져올까요?"

"아니. 이제 됐어. 언니는 어디있지?"

"도착하시고 바로 방으로 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만나러 갈거야."


안나는 짧게 말하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 달려가는것에 가까운 속도로 엘사의 방으로 향했다. 낮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안나는 신경쓰지 않고 문을 열었다.


"...께서, 아. 공주님."


엘사의 옆에 서서 종이를 들고 있던 시종장이 안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엘사를 바라보자, 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보세요. 다시 찾을때 까지 주변에 아무도 없게 하시고요."

"예, 폐하."


안나는 그가 나가기도 전에 엘사를 향해 다가갔다. 엘사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보다 처참해진 안나의 모습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언니가 옳았어!"

"안나? 너 술 마셨니?"

"술? 하하. 몰라. 모르겠어. 언니가 옳았어. 내가 잘못했어."

"안나."

"그러니까 제발 이 얼음좀 녹여줘. 응?"

"안나. 정신차려. 나한테서 떨어...."

"응! 떨어질게! 그러니까, 제발 언니..."


안나는 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로 물러났다. 안나의 뒷걸음질은 관성에 멈출 수 없는 것인지 화장대에 기대서서야 겨우 멈추었다. 엘사는 처참해진 동생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엘사, 언니. 아니, 폐하. 제발 얼음을 녹여줘. 이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어떤지 알아? 온통 얼음뿐인 세상이 보여. 그 차가움이 나를 점점 얼려가. 그러니까, 그러니까...."


안나는 멀찍이 서서 애원했다.


"얼른 얼음을 녹여줘. 미칠것 같아. 고통이 나를 미치게 만들어. 아니 이미 미쳐버렸는지도 몰라. 오른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내 앞에 있는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온기를 가진 모든게 보이지 않아. 이게 미친게 아니고 뭐야? 응? 하하...."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있었다면 이미 없애버렸을 것이다. 잠든 안나에게 여러번 시도해밨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엘사는 부모님이 남긴 일기를 따라 마법의 숲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다. 과거 부모님이 찾아간 특별한 존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엘사는 절망했다.


"응? 언니...."

"..."

"...대답해!"


안나가 화장대를 내리치며 외쳤다.


"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건데?!"


안나의 외침이 방 안을 채우기가 무섭게 안나의 손에서 던져진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의자를 바라보던 엘사는 미리 사람들을 물러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분명 방 밖에서 대기하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결국엔 이상한 뒷 이야기를 퍼트렸을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지 아니면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안나는 잔뜩 흥분한 채로 몸을 비틀거렸다. 좁아진 시야 탓인지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했고, 비틀거리는 다리는 한쪽으로 기우는 몸을 쓰러지지 않도록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던 안나가 제 팔을 붙잡았을 때, 엘사는 순순히 그 힘에 끌려 움직여주었다. 하지만 이대로 둘 다 바닥으로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놓인 침대로 중심을 기울였고, 이내 엘사의 생각대로 둘은 침대로 쓰러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했다. 엘사는 하얗게 변해버린 동생의 왼쪽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에 존재한 얼음 결정이 옅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엘사는 스스로 동생의 눈에 박아버린 저주를 바라보았다.


"...난 못 해."

"뭐?"


마주한 눈동자에 차가운 분노가 차오름을 보았다. 마땅한 분노였다. 엘사는 안나의 분노를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 날, 웃음짓던 그 감정은 진심이었다. 엘사는 드디어 안나가 마땅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고, 멋대로 행동한 것은 안나였다. 그 날도 그랬다. 안나가 잠든 자신을 굳이 깨워 마법을 재촉했고, 제멋대로 행동한 탓에 마법이 그녀를 맞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끝내 잠들지 못한 엘사는 마법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나의 손이 거칠게 엘사 팔을 붙잡았다. 체중이 실린 손은 우악스럽게 엘사를 속박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인 안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못해? 장난해?"

"진짜야. 그 마법은...."

"진정한 사랑만이 푼다고?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안나가 비틀대며 중심을 잃었다가 이내 다른곳을 짚으며 엘사를 내려다보았다. 하필이면 엘사의 목 위로 향한 손이 엘사의 숨을 막았다.


"내가 그렇게 미웠어? 10년이 넘도록 나를 무시해왔으면서, 저주를 걸 정도로 나를 싫어하면서 왜?"


분명 그건 사고였다. 하지만 엘사는 애써 부정하고싶지 않았다. 숨이 막힌 것도 이유였지만,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것이 추악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이성을 잃고 엘사의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내가 싫으면... 그냥 나를 내보냈으면 됐잖아! 그 멍청이에게 기꺼이 내어줬으면 좋았잖아! 왜!"


엘사는 안나가 제정신이 아님에 안도했다. 안나는 마땅이 복수할 권리가 있었다. 안나의 손에 숨이 멎는다면, 마법은 사라지고 안나는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엘사는 숨이 막혀도 안나를 뿌리치지 않았다. 저항하려는 손을 등 뒤로 밀어 넣으며 체중으로 눌렀다. 엘사는 대관식이 있던 날, 수반에 비친 자신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되었다. 이제 안나는 자신을 잊지 않을것이다.

엘사는 닫힌 문 너머의 안나를 무시하면서도 다시 올 것을 기대했다. 안나가 오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안나가 미워졌다. 자신의 세상을 방 한칸에 가둬버린 안나가 자신을 잊고 지낸다는 것이 엘사를 화나게 만들었다. 엘사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안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그렇게 내 마지막을 바라봐. 그리고 잊지마. 네가 느꼈던 고통이 나 때문이었음을, 안나. 평생 나를 기억해. 네 손으로 죽인 나를...
안나는 섬찟한 기분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아니야."


안나는 자신이 여왕의 목을 조르고 있음을 알고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내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엘사는 기침과 함께 쌕쌕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안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압박되던 손에 혈색이 돌아 뜨거워졌다. 금세 붉어진 손에 쿵쿵대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지끈대는 머리가 더욱 아파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안나의 시야는 온통 파랗고, 그 사이에 엘사만이 붉고 또렷했다.
아직도 콜록이던 엘사는 안나를 찾아 바닥으로 내려왔다. 쿵. 쿵. 쿵. 심장 박동이 귀에서 울렸다.


"안나. 멈추지 마."


아름답다고 생각한 엘사의 목소리가 갈라져 들렸다. 엘사의 손이 안나의 손에 닿았다. 엘사는 안나의 손을 잡았다.


"여왕의 명령이야."


안나의 손이 엘사의 의지를 따라 가냘픈 목으로 향했다. 흰 목덜미는 붉은 손자국이 올라와 뜨거웠다. 엘사는 안나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심장소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안나는 지끈대던 두통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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