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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산나위크/판타지) 엘쨔는 심심해요모바일에서 작성

ㅇㅇ(60.28) 2015.05.04 03:01:06
조회 2302 추천 46 댓글 12


평화로운 마을이 눈보라에 휩싸이는 건 한순간이었어. 북쪽산에 사는 못된 마왕의 소행이었지. 마을을 통째로 눈으로 덮어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마왕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극소수만이 그의 정체를 알고있었지.
                

...정확히는 그녀였어. 북쪽산 꼭대기. 거대한 얼음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성은 마왕이 사는 집과도 같았지. 성의 대문은 어떤 도구를 들고와서 두드려도 금이 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그 문 옆에는 듬직한 문지기가 일초도 놓치지않고 지키고 있었어. 이 난공불락의 성을 누가 올 것인가! 그 누구도 감히 찾아오지 못 하였지.


그야 북쪽산을 오르는 건 쉽지 않았거든. 사나운 늑대라든지, 견딜 수 없는 추위로 눈을 조종하는 마왕을 쓰러트리려 등산하는 건 무리였어. 과감히 오른다면 늑대밥이 되거나, 자연의 일부분이 되거나 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 지도 몰라. 힘없는 주민들은 마왕을 쓰러트리는 용사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성 안. 얼음으로 만든 왕좌에 앉아 작은 눈사람만 만들던 마왕은 손가락만 퉁겨대다가 작은 눈사람이 쉰 개쯤 됐을 때 한숨을 푹. 쉬었어. 말도 못 하는 눈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건 이젠 힘들어. 작은 눈사람 체스도, 젠가, 도미노도 질린지 오래야. 북쪽산 곳곳에 잠복시켜둔 작은 눈사람들에게선 전혀 소식이 없고. 이러다 심심해서 죽는 건 아닐는지.


                                                      
심심한 나날을 피조물들과 지내던 마왕은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제 눈앞까지  다가오는 작은 눈사람에게 명했어. 심심하니 놀것을 가져오라고 말이야. 주인의 심성을 닮아 활짝 웃고있는 작은 눈사람은 미친듯이 고개들 끄덕이더니 통. 통. 왕좌에서 내려가 여러 작은 눈사람들을 끌고 성문을 나가. 마왕은 다시 가벼운 손짓으로 투명한 얼음판을 제 앞으로 가져오더니 세상을 비추는 거대한 화면을 만들어.


초고화질이라서 아주 선명하게 보여. 작은 눈사람이 보는 대로 화면에 비춰지니 꼭 영화라도 보는 것 같아. 마왕은 작은 얼음과 컵을 만들어 꼭 현대인들이 먹는 고소한 과자처럼 와작와작 씹어먹어. 몸뚱아리도 작겠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을테고. 손짓을 하면 다른 눈사람 시점으로 넘어가니 당분간 심심할 일은 없겠어. 마왕은 뿌듯했어.


최근 마왕의 난폭한 행위로 집을 잃어버린 북쪽산에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삽으로 눈을 퍼내다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빨간머리 여자에게 시선이 꽂혔어. 마왕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 이후로 웬만한 거대 장정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 여자애가 찾아오다니! 마을 사람들은 여자애를 맞이했어.


이름은 안나래. 등 뒤에 단단히 묶인 거대한 검은 그녀의 상징이었어. 맞아. 그녀는 용사야! 이미 깊은 바다에 사는 사나운 인어들이나, 무시무시한 용을 두드려 팼었던 엄청 센 용사님이었지. 그녀의 어깨엔 작은 버섯이 있었는데 그 버섯의 이름 용사의 이름과 유사한 안놔였어.


아무래도 안나 용사님은 마왕의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왔나봐. 마왕의 본거지를 묻는 용사님에 마을 사람들은 환호했어. 북쪽산까지 가려면 거리가 꽤 된다지만 상관없어.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그쯤이야! 안나 용사님은 평화를 기원하며 마을을 떠났어.


어쩐지 싸늘해지는 느낌이 훅 지나갔어. 북쪽산은 손바닥으로 가려질 정도로 먼데, 벌써부터 추위가 느껴지다니. 턱수염이 가득한 파마머리 마법사에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마왕은 어마어마한 미녀랬어! 용사님이나 용사님 어깨에 있던 안놔는 벌써부터 두근두근 했어. 아마 안놔는 갓이 두근두근 했겠지. 혹시 몰라. 마왕이랑 마주치자마자 심쿵사를 할지!


용사님의 발걸음은 굉장히 가벼워. 북쪽산에 있던 마왕도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움츠렸어. 얼음과자를 너무 많이 먹었나. 훌쩍. 흘러내린 콧물을 한번 팔로 슥 닦아낸 마왕은 작은 눈사람을 시켜 얼음과자를 치워냈어. 누군가 저를 찾아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고 얼음왕좌 위에서 한기를 느끼며 작은 눈사람들이 약탈해온 털담요를 온몸에 두를거야.


졸리기라도 한건지 마왕은 눈을 꿈뻑거리다가 화면 앞에서 왕좌에 기대어 잠들었어. 작은 눈사람을 통해 세상을 비추는 화면에 저를 찾아오는 손님의 얼굴이 거대하게 나와도 보지 못 하고 꿈나라로 떠났지. 다음엔 어떤 마을에 눈을 뿌려야 몽둥이라도 들고 찾아올까. 농작물이라도 망쳐놓을까. 계획까지 세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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