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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매직썰] 하룻밤의 인연으로 서로에게 코 꿰인 엘산나썰 3

늦게인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7.17 21:55:38
조회 3948 추천 127 댓글 19

- 재미를 잃어가서 미안하다!!!


코 꿰인 썰 2


3.

 

 

알람소리가 나기도 전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에 엘사가 쉽게 눈을 떴어익숙하지 않았지만 거부감도 들지 않는 향에 한 번 얼굴을 부빈 후 일어나그때 그 침대야그 날도 여기서 일어났었는데그 날은 놀라서 바로 일어나 사라졌지만 오늘은 조금 이 푹신함을 즐기고자 해다시 눕지왠지 모르게 편안해서 좀 더 누워있고 싶어졌거든.

 

잠이 들었었나봐마지막 기억은 우는 거였는데 울다가 지쳤나그 어린 알파가 내내 안아줬었지생각보다 품이 넓고 따뜻해서 더 쉽게 잠이 들었던 거 같아덕분에 간만에 푹 잤다고 생각해속도 시원했어속을 계속 끓이다가 내뱉어서 그런 것도 있을거야며칠을 홀로 앓았거든임신했다는 사실은 일찍 알았지만 알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고민 많이 했거든이렇게 해결이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왔을텐데 싶어엘사는 잠기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누워있었어이제 일 년간 매일 맡게 될 향이야적당하니 깔끔한 거 같아.

 

침대에서 뒹굴고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고서야 엘사는 깨달아이 방과 향의 주인인 어린 알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제 옆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이 넓지 않은 침대는 제가 다 헤집었음에도 붉은 머리는 보이지 않았어엘사가 놀라 일어나일어나자마자 안도해왜 놀라고 왜 안도하는 지도 모른 채.

 

어디갔나 했더니 제 옆에 책상에 기대어 자고 있어적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이야옆으로 살짝 가르마 탄 앞머리가 귀여워확실히 어리다는 생각이 드는 인상이야물론 잠에 깨서 잔소리하거나 말할 때는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도 해답지 않게 무섭기도 하고.

잠이 드니 더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을 보면서 피곤할테니 깨우지 않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제 명함을 꺼내 안나의 책상 위에 올려일어나면 연락해달라고.

 

깨우지 못한데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어제 제가 너무 징징 댄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들었거든털어놓을 데가 없었으니까안나가 잠에 깨면 부끄러워서 말 못할테니 엘사는 조용하게 속삭여고마워요.

 

 

 

안나는 요리사 치곤 코가 둔해대신 귀가 보통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예민하지안나의 방이 익숙하지 않은 엘사가 움직이는 소리가 하나하나 캐치되어 안나의 귀로 들어가면서 안나가 잠에서 깨버렸어피곤한 눈을 억지로 떠서 엘사를 바라봐눈이 곧 마주치고 안나가 깨지 않게 나가려던 엘사가 민망한 표정을 짓지.

 

일찍 일어났네요?”

 

하품을 한 번하고 목을 이리저리 돌리던 안나가 폴짝거리다 일어나너무도 자연스럽게 엘사의 손목을 잡고 식당으로 이끌어.

 

뭐 먹을래요?”

입맛 없는데...”

아침은 먹어야 해요.”

입덧도 하고...”

... 적당한 거 만들어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뭐가 적당할지 고민하다가 양송이 버섯을 집어들지안나가 이래저래 재료 손질을 하는 동안 엘사는 확실히 하자는 생각에 펜을 들었어혼전 계약서를 적기 위해 다이어리를 펴고 이런 저런 것들을 적기 시작했어천천히 해도 되는 걸 알지만 엘사 스스로가 불안했어적지 않으면 더 불안해질 거 같았지엘사가 자기 생각에 빠져 이런 저런 걸 메모하는 동안에 안나는 준비한 요리의 맛을 보았지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데핀 빵과 함께 엘사에게 향해.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고 그리 작은 소리로 다가갔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엘사는 인기척을 못 느낀 듯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어아침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하며 살짝 보는데 어제 말했던 계약서 이야기야.

 

먹고 해요안 먹으면 먹여줄거예요.”

 

보지 못한 척 안나는 엘사에게 스프를 내밀어양송이 스프와 빵이야입덧을 한다는데 어떤 음식에 심하게 반응하는 지 몰라서 가장 무난한 음식을 골랐어입에 맞는 듯 한 번 두 번 천천히 입에 넣고 삼키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안나도 숟가락을 들어.

 

 

엘사보다 먹는 속도가 빠른 안나가 다 먹고 엘사를 지켜봤어머리가 제법 동글동글해백금발 머리가 끝내주게 잘 어울려처음 만난 날은 풀어져있었는데 오늘은 제법 잘 틀어올려져 있어둘 다 잘 어울리는 거 같아머리 구경을 하는데 눈이 마주쳐.

 

제 시선이 부담스러웠나 싶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어쩐지 눈썹을 접고는 저를 바라봐.

 

뭐 필요한 거 있어요?”

물수건 좀 줄래요...”

 

손을 보니까 펜 잉크가 제법 묻어 있어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살짝 본 필체도 그렇고생긴 것만 보면 완전히 퍼펙트 걸인데 글씨도 약간 굴러다니고 잉크도 묻히는 모습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손을 보며 감추지 않은 안나의 웃음소리에 엘사의 뺨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여.

 

저는 요리하고 집은 건 그릇밖에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안나가 빵을 손으로 찢기 시작해한 입에 들어가기 좋은 크기로 다 잘라놓고선 한 조각을 들고 엘사의 접시에 충분히 적시지멍하게 제 손을 바라보는 얼굴이 어쩐지 어려보여서 안나는 또 다시 웃음이 나.

 

나 손 깨끗해요. ‘’ 해요.”

 

민망함에 엘사가 고개를 돌리곤 모른 척 해스물 아홉 살 맞냐고 물어보고 싶어지는 행동이야안나가 속으로 웃음을 삼켜내며 시무룩한 척 목소리를 흘려.

 

팔 아파요... 요리사는 팔이 생명인데?”

 

그제야 입을 벌려 받아먹지그렇게 하나하나 다 먹여주고 냅킨을 내민 후에 식사를 끝내고 안나도 제 수첩을 꺼내 뒷면에다가 적기 시작해.


1. 중요한 일 없을 때 저녁식사는 늘 함께하기

2. 무슨 일 있으면 서로에게 말해주기

3. 아이에 관한 건 싫어도 함께 해주기

4. 아이의 양육권은 상의 후 결정하기


진짜 나한테 바라는 게 이거예요?”

 

제 것을 먼저 훑어본 엘사가 어쩐지 기묘한 표정을 지어두 사람은 아직 많은 표정을 공유하지 못한 사이라 그 표정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

 

그게 다예요.”

 

어쩐지 멍해하는 엘사를 보다 안나는 어깨를 으쓱였어그리곤 엘사의 것을 받아 들어 읽었지.



1. 서로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도록 한다.

2.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지 않는다.

3. 결혼 기간 중 외도한 배우자는 벌금 4500달러를 지불한다.

4. 서로의 재산 문제는 관여하지 않도록 한다.


“... 기분 안 나빠요?”

 

그럴 거면 그런 겁먹은 표정을 짓지 말지지극히 현실적이라 안나는 상처받지 않아상처가 되지 않아어차피 우리는 아이로 묶인 관계니까여자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를 위한내 미래도 거기에 있을 거야.

 

안나가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엘사는 새 종이를 꺼내 옮겨적기 시작해그러는 동안 안나는 다시금 엘사가 쓴 글을 읽어봐다시 보면서 좀 더 깨달아제가 방금 생각했던 게 아니라 이것을 걱정한 거였나 싶어져이번엔 저를 배척하는 게 느껴졌거든맞아그 날도 그랬지이 여자는 알파에게 배타적이야알파에게 크게 상처 받은 일이 있었던 건가.싶지.

 

체향에 취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이 기억나다 자신을 엘사가 아닌 왓슨으로 본다고 그게 아니면 저를 씨받이 오메가로만 본다고알파는 다 똑같다며 비웃는 그 얼굴이 어쩐지 슬펐어.

 

참 이상한 생각이란 걸희한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어쩐지안나는 저 여자를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정말로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져저보단 나이가 많지만 어느 날의 제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아.계약이라고 적는 저 글씨를 보며 제 마음의 방향을 확신해.

 

왓슨으로 보는 건 제가 어린 시절 아렌델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 일거야안나도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느꼈던 거였어그 은근한 차별을상류층인 친인척들과 우성 집안을 표시하는 아렌델이란 서네임그건 제가 열성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모두 잃었어그러다 저는 이곳을 만났지. [the orient] 이곳의 사람들은 저를 그저 안나로 봐주었어열성이라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대우는 달라지지 않았어그저 한 번 꼭 끌어안아주었지많이 힘들었겠다고.

 

씨받이라그건 제가 말하기 어려운 문제란 걸 안나는 알아그래서 그저 안나는 한 가지 생각만을 떠올려알파의 종족번식은 본능이지만본능을 억누를 수 있기에 사람이라고본능을 인정하지만 그걸 누르지 못하면 짐승과 진배 없을 거라고세상엔 짐승 같은 사람도 많지만 인간다운 사람도 많아이곳에서 일하면서 많이 보았지오메가에게 힛싸가 찾아오면 깔아버리려는 알파도 있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억제제를 챙겨주는 알파도 있다는 걸물론 저는 엘사에게 전자에 가까운 알파로 보이겠지만.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고 알게 된 일들이야그러니 저 사람한테도 보여주고 싶어.

당신을 당신으로 봐주는 사람이그런 알파가 있을 거라고그리고 그 중에 내가 있을거라고.

일 년 동안 내가 보여줄게난 달라당신을 당신으로 봐줄거야엘사.

곧 엘사가 새 종이에 옮겨적은 걸 안나가 지켜봐어쩐지 불안해 하는 파란 눈을 바라보다 싱긋 웃고는 엘사의 서명 위에 안나가 정성스럽게 서명해.


Anna Arendelle. / Elsa Watson


사진 모바일 엑박이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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