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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운전교육 -13-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3.13 22:49:06
조회 545 추천 13 댓글 5


 ”...지금 상황은 어떤가?“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청축의 맑은 음색은 거슬지리 않게끔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푹신하고 기품있어 보이는 가죽 의자, 그리고 그 앞 멀리서 의자를 바라보고있는 한 남성. 한쪽은 뚱뚱하고 짙은 눈썹에 인상이 너무도 험악하다. 그런 그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오오라는 어두운 조명의 방안과 어울려 더욱 상대로 하여금 긴장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남성의 반대편, 서있는 것과는 다르게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살짝씩 조아리는 비루한 남성.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이 험악한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의 발끝만을 응시한체 입을 열었다.


 ”물론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주가도 오를겁니다. 조금만 기달려 주시면..“
 ”언제까지?“
 ”...아, 저, 그게..“


 의자에 앉아있던 남성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쉼 없이 뿜어져나왔다. 그가 입을 열때마다 쏟아내는 연기들은 이미 뭉게뭉게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 고약하면서도 취해버릴것만같은 시가의 치명적인 느낌들은 여러 사람의 머릿속에 박혀 제대로된 판단력을 흐트려놓고 있었다. 물론 비루한 옷차림의 남성도 연신 기침를 해대며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고있었다.


 ”최대한 빨리 15퍼센트 이상 올리도록 하게“

 ”네!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보게 로드먼, 다음 회의때 봄세“


 꾸벅, 땅에 닿을 듯이 바닥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는 천천히. 남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끔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로드먼 헤치콕. 그는 일류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운영하고있는 사장이였다. 방금 일대일 그룹회장과의 상담을 마친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메시지를 남겼다. 방안과는 다르게 맑은 공기가 코를 간지럽히자 참고도 참았던 큰 기침을 내뱉으며 그는 유유히 발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탔다.


 ‘무서운 사람이야..’
 ‘띵’


 1층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고 문이 열리자 걸음을 재촉했다. 로비 안은 굉장히 한적했고 겨우 몇 사람만이 이리저리 움직이고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대리석 바닥의 냉기에, 그는 풀었던 지퍼를 목 아래까지 올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꼿아 넣었다.


 어디선가 걸어나온 그의 비서.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히 그녀의 손에서 휴지를 받아들고 막힌 코를 뺑, 하고 풀었다. 걸어가며 보이는 휴지통에 아무렇게나 던진뒤. 회전문을 유유히 걸어나갔다.


 ”에..에..에취! 크흡!..누가 내 욕하나..?“
.
.
.

 ”...에취!“
 ”괜찮아? 감기걸린거 아냐?“
 ”..킁..괜찮아요.“


 다행이 비는 맞지않았다. 엘사의 빠른 몸놀림을 따라가느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먹구름은 그녀들이 차에 들어서자 마자 세찬 비를 뿌려대었고 다만, 급하게 뛰어오느라 흘린 땀이 식으며 찬 공기가 만나 몸이 으슬으슬 떨릴 뿐이였다.


 ”기달려봐“

 낑낑낑, 우웅. 곧 바로 엘사는 시동을 걸었다. 조용하던 차 안은 어디선가 새어들어오는 엔진소리에 귀가 간질거렸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안나에게 덮어줄 담요같은 것이 차 안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미간을 지푸렸다.


 ‘아 맡길 때 휴대품 가져오는걸 깜빡했네..’


 자신의 아우디에 보관중이던 담요가 떠오르며 입술을 물었다. 젠장. 이럴 때 필요한건 아무것도 없단말이야. 속으로 이런저런 욕지거리를 삼키고 눈을 돌렸건만. 새 차라 그런지 글로브 박스 안에는 선글라스 케이스와 사용설명서 뿐이였다. 쯧. 짧게 혀를 찬 엘사는 기어가 P 에 있는걸을 확인한뒤 악셀을 꾹 밟았다.


 우웅, 차가 요동치며 알피엠이 치솟았다. 그 모습을 안나는 아무말도 않은체 팔짱을 낀체로 몸을 웅크리고는 고개만 빼꼼 내민 자세로 지그시 바라봤다. 역시나 몸이 추운지 자신도 모르게 주체없이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닦아내며. 엘사는 입술을 깨문체로 몇 번이나 더 풀 악셀을 밟았다. 올라갔다 내려가는 알피엠 게이지와 함께 엔진도 으르렁 대더니 다시 잠잠해지고 다시 으르렁 대며 그것을 반복했다. 곧, 엘사가 콧김을 흥 내뱉으며 악셀에서 발을 때었고, 손을 뻗어 히터를 틀자 뜨거울 정도로 열이 받은 공기가 차안을 매섭게 감싸왔다.


 안나는 감자기 자신의 몸을 따듯하게 덥혀주는 공기에 잠시 축 늘어트려지다가도 흠칫 놀라 다시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엘사가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향해있던 운전석 히터도 돌려 그녀에게 열이 가도록 해주었다.


 ”그거 왜 밟은거에요?“
 ”말해도 못알아먹을꺼잖아“
 ”그렇긴 한데..헤헤“
 
 잠시뒤, 어느정도 몸이 녹았는지 손을 뻗어 히터에 가까이 대고는 손가락들을 조물락 조물락 대며 잼잼거리는 안나의 모습에 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에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고 저 멀리선 나뭇잎들이 흩날리는것마저 눈에 보였다.


 ”하.. 미안해 갑자기 비가오네“
 ”뭐 어때요...아쉽긴 하지만 오늘 데이트는 이걸로..“
 ”..뭐?“
 ”아,아니에요“


 잠깐의 정적, 괜히말했나. 하고 안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입이 문제야. 겨우 좀 좋아지려던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뿌렸다. 분명 엘사같은 여자는 싫어할게 뻔할텐데 굳이 데이트라고 말해버려서...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에 후회했다.


 ”아 맞다. 비도 오는데 사실 오늘 같이 밖에서 밥먹으려고 했거든요“
 ”밥? 나랑?“
 ”네, 근데 이미 계획이 틀어져 버린거 같은데 이참에 제 숙소에서 밥이나 먹을래요?“
 ”....“


 말이없다. 그저 부담이 되는지 팔자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무언가를 고민하듯 바닥만을 쳐다본다. 안나는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전달된 자신의 목소리에 감사하면서도 반대로는 제발, 제발 받아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잠시후 어느샌가 자신을 따라 두손을 주물럭 거리던 엘사의 손가락들이 멈추고, 그녀가 손을 뻗어 네비게이션에 가져가 대었다.


 ”..그래 밥. 같이 밥이나 먹자“
 ”예쓰!“
 ”풋, 그렇게 좋아?“


 엘사가 능숙하게 디스플레이를 조작해 목적지를 안나의 숙소로 설정해두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안나는 벨트를 매었고 엘사도 벨트를 매고는 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를 넣었다.


 ”근데 너 요리할줄 알아? 뭐 사갈까?“
 ”재료는 냉장고에 있을꺼에요. 요리는 당연히 할줄알죠 기대하세요“


 안나가 눈을 찡긋, 윙크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엘사는 흠, 고개를 갸웃거리며 클러치를 떼었다.


 빗방울을 뚫으며 차는 앞으로 전진했다. 유리 너머의 두 사람은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한명은 창밖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고있고, 한명은 핸들을 잡고 작게 미소지었다. 차는 점점 가속하더니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못하면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죄송해요오..“


 치이익, 두툼한 소고기를 굽는 소리가 집안을 매웠다. 코를 자극하는 고기냄세를 맡으며 안나는 소파에 앉아 무릎을 몸에 가져가댄체 꾹, 다리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숙소에 오는것까지는 좋았다. 안나가 대충 몸을 씻고 나올때까지 엘사는 티비를 보며 기다렸고, 드디어 요리를 시작하는건가 싶더니 십분도 체 되지않아 그녀들은 후라이팬에서 미친 듯이 터지는 기름방울과 사투를 벌어야만했다. 용감한 엘사가 손을 뻗어 불을끄고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쇼핑백을 덮지 않았다면 기름들은 이리저리 튀어올라 화상을 입을 뻔했다. 앨사는 무의식중에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그 말에 시무룩해진 안나는 결국 거실로 격리되었다. 그럼에도 엘사는 너무 미안했는지 안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스테이크 같은거 먹어도 되는거지?“
 ”네, 어짜피 스케쥴도 없어서 아무거나 막 먹어도 되요“
 
 ‘삑삑삑’

 ”어? 누구지?“
 
 갑작스레 들린 도어락의 소리에 엘사가 흠칫, 몸을 떨었다. 누군가 여기 사는 사람이있는건가. 속으로 생각하며 불안하고 당황한 표정을 내보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는 시계를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티비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현관쪽에서 불빛이 일었고, 쿵쿵거리며 발검을이 점점 다가왔다. 엘사는 들었던 고기와 후라이팬 과 그대로 몸이 굳어버려서는 베란다 창으로 비추는 현관을 바라봤다.


 ”안나! 나왔어“
 ‘남자 목소리?!’


 쿵쿵, 그의 발검음과 함께 엘사의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시작했다. -이거 완전 엿됬다.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고기냄새에 코를 킁킁대던 그 남성은 부엌으로 직행했고, 엘사와 눈이 딱 마주쳤다. 검은 비닐봉지를 두손에 들고 멈춰선 남성과, 팬과 고기를 들어 굳어버린 엘사. 그 사이에는 정적의 시간만이 존재했다.


 ”...운전강사님..?“
 ”..저 아세요?“
 
 식탁 위의 세사람. 엘사는 나이프와 포크를 든체로 어쩔줄 몰라 눈만 힐끗거리며 자신 앞의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 남성을 보다가도 엘사와 눈이 마주치면 이상하게 밝은 웃음을 보내왔고 그 미소에 엘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일그러진 입꼬리만 올려대었다. 엘사 앞의 그 남성. 그는 안나의 매니저였다. 사실 엘사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였으나 그녀의 기억에서 단 일도 중요하지않았던 인물인지라 그가 처음 자신과 안나를 이어준 장본인 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니저는 껄껄껄 웃으며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좋아진 안나를 바라보다가도 무언가를 떠들어대며 엘사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하하핫! 다행이에요! 우리 강사님만 없었다면 안나가 회복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을텐데!! 다행입니다!!“
 ”오빠 쫌!“
 ”미안 미안! 하지만 어쩌겠냐 이렇게 기분차린 너 모습보는데 너무 좋은걸. 이참에 사장님한테도..“
 ”안돼!, 나 더 쉬고싶단말이야“


 사실은 엘사와 더 데이트하고싶다는 이야기였다. 안나는 그 말을 하던 와중에도 힐끗, 엘사를 바라보며 실없는 웃음을 보내왔고, 겨우 고기를 잘라 입으로 넣으려던 엘사는 그녀의 심상치않은 눈웃음에 땀을 삐질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이런거 싫은데..’


 모르는사람과의 식사자리만큼 고문인게 없다. 그런데 더군다나 그게 아는사람의 지인이면 더더욱 그렇다. 어떻게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예의없게 굴수도 없는노릇이고, 거기다 상대방은 자신의 밥줄(?) 을 쥐고있는 매니저다. 엘사는 속으로 연신 욕을 쏟아내며 완전 비 호감의 스타일인 매니저에게 맞장구 치며 억지 미소를 짓는데 집중했다.


 그가 식사를 마치고, 앞으로 안나좀 잘 부탁드린다며 부담스러운 악수까지 청했다. 다행이 안나와 눈을 이리저리 맞추더니 쌩, 하고 나가버렸긴했지만 엘사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알면서도 헤헤 웃으며 눈을 맞추는 안나의 모습에 엘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에 손을 짚고 안나옆으로 걸어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다음부터 누구 올것같으면 얘기해. 장롱에 숨어있게“
 ”킥킥, 표정 너무 웃긴거 알아요?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매니저 오빠 상처받아요. 은근히 여린사람이라구요“
 ”그래도 내가 딱 질색이란말야, 내 돈줄과 관련된 사람이면 더더욱“
 ”아직 사회생활을 못해서 그런거에요 원래 다~ 그렇게 싫은티 안내고 웃으면서 돈버는거라구요. 저 봐봐요, 싫어도 내색안하잖아요?“
  ”..그래..그래“


 엘사가 몸을 굽혀 그녀에게 다가왔다. 흠칫 놀라며 뭐지? 하던 찰나에 안나의 손에 엘사의 손이 맞닿았다. 순간 숨을 들이쉬며 긴장한 안나가 그녀의 하얀 머릿결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엘사는 그저 무덤덤하게 안나의 손에 쥐어졌던 리모콘을 빼더니 다시 몸을 들어 안나와 같이 무릎을 몸에 당겨 앉았다.


 ”딴거보자“


 ”...후..“
 ”...?“


 안나는 도저히 티비에 집중할수 없었다. 무덤덤하려고 노력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엘사가 자신의 집에서 같이 티비를 보고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거기다 완전 편한한 복장으로. 조금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면 이건 거의 드라마에서나 보던 신혼부부의 모습이였다. 자신도 주체할수 없는 그런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뛰놀자. 안나의 볼은 무엇보다도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그 와중에 차오르는 숨과 쿵쾅거리는 심장에 후, 하고 뱉은 한숨에 엘사가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보았다.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게?“
 ”네?, 아,아니에요 아무것도!“
 ”아픈거 아냐? 옆에 있기만 했는데 나까지 덥다“


 무방비 상태의 안나에게 엘사의 손이 덥쳤다. 자신이 열을 받아서그런지 차디차게 느껴지는 엘사의 손이 이마에 닿고 그 느낌에 안나는 터질 듯이 붉어진 얼굴을 어쩔줄 모르고 손만 버둥거렸다. 여차하면 두 귀로 수증기가 피어나올 듯이 정신 차리지 못하는 안나를 보고 엘사는 걱정되는 마음에 팔자눈썹을 늘어트리고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위해 안나와 지그시 눈을 맟주었다.


 ”너 아픈거 맞지, 진짜 안 아파?“
 ”정말..정말이에요!“
.
.
.
 엘사는 한숨을 푹 쉬며 침대위의 안나를 바라봤다. 역시 아픈게 맞았다. 안 아프다고 그렇게 우기던 안나는 물 한잔 마시겠다고 소파에서 일어나자 현기증이 일었는지 몸을 휘청거렸고, 곧 무릎을 바닥에 찧으며 더운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자 엘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를 부축했다. 안나의 침실에 들어가 침대위에 눕히고는 무리가 간 허리를 어루만졌다. 이상한점이라면 아픈사람이 계속 자신을 보고는 실실 웃고있다는 것. 계속 자신을 보며 헤죽헤죽 웃는 안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엘사였다.


 ”..엘사“
 ”왜“
 ”자고가면안되요?“
 ”뭐?“


 기가 찬 듯이 흥, 하고 콧바람을 내쉬었다. 정말 아픈거 맞는지 의심될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쏘아대는 안나. 그런 눈빛으로 저렇게 애절하게 부탁하는 것은 엘사로서는 거절하기 너무 힘든 일이였다.


 ”매니저 불러줄까?“
 ”아잉..시간도 늦었는데 자고가요“
 ”허,..지금이 몇시더라“


 11시, 젠장. 조용히 욕설을 중얼거리며 엘사는 안나 침실의 시계를 바라봤다. -어느새 이렇게 지나갔지.. 많이 늦기는 했다. 평소에 열시즈음에 잠에 드는 엘사로서도 방금 전부터 졸음이 몰려와 가끔 하품을 내뱉었었다. 엘사는 입술에 손가락을 얹어 무언가를 고민하듯 바닥을 바라보다가도 안나를 슬쩍 보았다.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애절하고도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에 어쩔줄을 몰라 입술만 만지작거렸다.


 ”그래..알았어 그럼 잠깐 씻고올게. 화장실 써도 되지?“


 ‘아싸!!’


 ”흠..그럼요. 속옷도 드려요?“
 ”그..그래“
 ”저어기 서랍 두 번째요“


 드륵, 다행이 속옷은 단색계열의 심플한 디자인이였다. 혹시나 아이돌이라고 조금 야한것들만 있을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였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뒤통수에 느껴지는 강렬한 눈빛을 뒤로하고 엘사는 터덜터덜 걸어 화장실로 항했다.


  촉촉이 젖은 하얀 머릿결을 쓸며 침실로 걸어왔다. 자신이 씻고있는 사이에 잠들어 색색, 숨소리를 내뱉는 안나를 보며 엘사는 픽, 웃으며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관찰했다. -다행이 잘때는 조용하네. 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나가 몸을 뒤척이더니 그녀를 향해 돌았다. 안나의 침대는 넓었고 둘이 자기에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사는 자신의 몸을 비집고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연신 입술을 물으며 고민했다. 이미 밤은 늦었고 모든 불을 꺼졌건만 밖에서 비쳐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조금씩 드러나는 안나의 몸을 보니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엘사의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둡기는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몸, 자잘하게 도드라진 윤곽들에 엘사는 콧바람을 조용히 불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불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땅바닥에서 덮을 것 없이 눕기에도 딱히 끌리지는 않았다.


 계속 안나 옆에 우두커니 서서 망설이는 가운데 안나가 잠꼬대라도 하듯 창쪽으로 몸을 돌려 붙였다. 그 모습에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인 엘사가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정말 천천히 몸을 숙여 침대로 향했다. 먼저 손을 넣어 따듯한 온기를 느끼고, 그녀가 깨지 않게 다리들 들이밀었고 이어서 몸을 눕혔다. 아직 이불은 안나가 쥐고 있어 조금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버틸만 했다.


 ‘조금 뺏어와 볼까..’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안나가 꾹 쥐고 있던 이불의 끝자락을 잡아당겼다. 다행이 힘없이 풀린 그녀의 손에서 떨어져나온 이불이 스르륵 몸을 타고 엘사에게 넘어와 그녀의 몸도 감싸왔다. 한 이불에 같이 덮게된 엘사는 꼿꼿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자신의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안나의 온기와 숨소리. 그것을 들으며 자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슬쩍 옆을 바라보니, 희미하게 주근께가 보이는 안나의 등이 있었다. 엘사는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안나의 머릿결을 만졌다.


 ‘주황색 머리카락..’


 꼼지락 꼼지락, 엘사는 신기한지 안나의 머릿결을 하얀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등을 돌려 창쪽을 향하던 안나의 몸이 반대로 돌더니 엘사쪽으로 움직였고, 곧 거두지 못한 엘사의 팔이 안나에게 목베게를 해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숨을 멈춘 엘사의 눈앞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는 안나가 있었다.




 ”왜이렇게 늦었어요, 설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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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은 연기력도 수준급이라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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