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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교육 -24-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2.07 04:48:55
조회 376 추천 14 댓글 4


 “안한다고 했잖아”
 “아니..그래도 한번만 다시 생각해볼수 없을..”


 ‘쾅!’


 “내가 왜!..왜 해야되는건데. 이미 끝난 일이고 더 이상 난 올라서도 남들에게 피해만 줄뿐이야”


 피에르의 정비공장, 사무실의 테이블에 두잔의 커피와 엘사. 그리고 피에르가 앉아있다. 난처한웃음을 지으며 씁슬히 고개를 저은 피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그녀의 손은 내려친 테이블 위에서 꽉, 주먹을 쥔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여기저기 흩뿌려져있는 서류들에는 차량의 제원과 설계도면, 서킷의 평면지도등이 인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엘사.. 이제는 그만할때도 되었잖아. 너같이 실력있는 선수가 그저 묻혀있을수만은 없어. 그것도 엔지니어인 내가 보기에도 그정도 인데.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선배님을 생각한다지만..”

 “..닥쳐”
 “,,,,”


 피에르는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말하던 입을 꾹 닫고 아이스크림을 든 체로 조심스럽게 엘사를 바라보았다. 살짝은 붉어진 눈시울로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에 결국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사과했다.


 “...한번만 생각해주라..”

 “그 입, 닫아”
 “...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식은 커피를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에 피에르는 다시 자리에 앉아 손을 깍지를 끼고 자신의 더러워진 작업화를 보았다.


 자신과 같이 함께했던 시간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호쾌하고 자신감넘치며, 때로는 선배들에게 대들고 씩씩거리며 예의가 없다며 혼나기도 했다. 그가 엘사와 함께했고, 그녀는 스펀지마냥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급격히 성장했다. 한낮 메케닉일 뿐인 자신이 보아도 굉장한 성공이였다. 그가 죽고나서 자신도 힘든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겨내었고, 본래의 꿈을 찾아 다시 도약했다. 하지만. 그녀는 힘들어했다. 이젠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고, 슬픔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점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한숨을 쉰 피에르는 잠시 눈을 감더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듯했다. 엘사는 그럼에도 창밖을 지켜보기만했다.


 “..그래, 알았어. 이쯤되면 내가 너를 너무 잡는거같다. 이제 포기할때도 됐지. 미안하다.”
 “....”


 “엔진오일은 4그룹 합성유로 넣어줄게, 여기서 잠깐만 기달려줘 금방 끝나니깐.”


 한입에 다 마셔버린 커피잔을 다시 싱크대에 넣고는 피에르는 엘사의 등뒤,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금세 고요해진 방안은 또각또각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발소리만이 점점 멀어질 뿐이였다. 그의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낀 엘사는 그제야 이마를 테이블에 박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더니, 이내 축 늘어져 깊은 숨소리만 내쉬었다. 곧, 또르르 흘러내리는 한방울 눈물을 훔치며 살작금 훌쩍였다.


 ‘...씨발’

 알고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레이싱을 좋아하는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다. 허나, 잡을수가 없다. 다시는 머신에 올라타 경기에 설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광경이 떠오르고, 어떤 날은 매번 울부짖는 그 기억이 떠올라 술을 찾고는 했다.


 “씨발...씨이발!!”
 ‘쾅! 쾅!’


 “..나도..나도 하고싶어..다시..그런데 안되는데 어떡하라고..나보고 어떡하라고!!”


 그의 생각만 하면, 숨을 쉴수가 없다. 그냥 운전을 하더라도 그 일만 떠올리면 손이 떨리고 정신을 차릴수없이 떨리고 무서워 몇 번은 목숨을 잃을만큼 사고가 날뻔했다. 엘사 자신도 이겨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그 무언가가 도저히 떨어지지않는다. 이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왜 상처는 아물지 않는걸까.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왜 날 괴롭히는걸까.


 엘사는 훌쩍거림을 서서히 멈추고는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테이블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흩날린 서류가 눈에 보였다.


 잠시후 엘사는 조용히 잠을 청했고, 피에르는 사무실 아래, 정비공장의 리프트에 엘사의 차를 띄워놓고 뚝딱뚝딱 작업을 하기시작했다.
.
.
.


 “조심히 가고, 방금 말해줬던것처럼. 엔진오일이랑 얼라인먼트 다시 손봤어. 타이어는 아직 쓸만한거 같고, 컨트롤암 부싱이 좀 오래된것같은데 아직은 괜찮아, 혹시 추운날 소리나면 바로 와야된다 알았지?”

 “..고마워”

 “그래, 돈은 안내도 입은 착하네”
 “씨이..”


 피에르는 껄껄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정돈했다. 피에르보다 작은 키의 엘사가 그를 올려다보며 노려보자 별일아닌 듯 그는 뒤돌아 자신의 공장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던 엘사는 자신의 뒤에서 갸릉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는 고양이같은 애마를 보았다.


 “나 간다!”
 “그래 그래~ 조심히가라~ 생각있으면 연락하고~”
 
 빼액 소리치는 엘사를 무시하며 피에르는 손을 들어 살짝 까딱거렸다. 그가 공장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묵직한 차 문을 열고는 운전석에 들어선 뒤, 네비게이션에 안나의 숙소 주소를 검색했다.


 “..이 새끼...”


 삑삑 네비게이션을 치던 엘사는 조수석의 햐안것에 눈길을 돌려 그것을 보았다. 서킷의 지도와 머신의 제원. 팀 명단이 적힌, 드라이버 에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그 종이뭉치를 보며 엘사는 이를 드러내며 씩씩거렸으나, 이내 그것을 조수석 뒷공간으로 던져넣고는 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았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빠르게 공장을 빠져나가는 엘사의 차를 보며 피에르는 이층 사무실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슬며시 웃음지었다.


 ‘난 너가 필요해. 엘사’

.
.
.


 “차는 다 고친거에요?”
 “뭐 그럭저럭”


 아침 일찍 밖에 나가서는 노을이 질때즘에야 돌아온 엘사를 보며 안나는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녀에게 다시 옷을 입으라 재촉하는 안나는 먼저 차에 가있겠다며 문을 나섰다. 어깨를 쓰윽이던 엘사역시 현관의 문이 닫히기전 그녀를 따라나섰다.


 “뭔데 이렇게 급해?”
 “벌써 잊은거에요? 오늘 같이 장보러 가자고 했잖아요”


 어제 저녁을 먹고 잠들기전, 안나는 마트에서 사지못한것들이 산더미라며 같이 장을 보자고 무진장 졸라대었다. 그런 것은 딱 질색이였기에 엘사는 반대했지만 안나는 귀에 박힐만큼 제발 가지며 애원하는탓에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사실 소속사 측에서 엘사와 안나가 사귄다는 소문을 퍼트리기 위함이였다. 어떤 아이돌이 사적으로 연인을 대리고 공개된 장소에 나가겠는가. 그것도 동성을 좋아하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엘사는 그 사정을 모두 듣고는 어쩔수 없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안나는 쾌재를 부르며 엘사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었다. 결국 침대위에서 둘은 꼼지락거리고 깔깔 웃다가 지쳐 잠에 들었었다.


 차에 먼저 올라탄 안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안전벨트를 맸다. 두손을 모아 허벅지 위에 올린뒤 엘사가 차에 탑승하길 바라며 창밖을 보았다.


 “나 담배 한 대만 피고가자”
 “아씽! 빨리가요!”

 “허어!, 오늘 하나도 못펴서그래.”
 
 맨날 입에 달고살면서, 조용히 중얼거린 안나는 차의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다. 달칵, 자신의 발치에서 서랍하나가 열리고, 그곳 안에 가득 들어찬 앨범 시디들을 보며 안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하나씩 들어 살펴보았다. 죄다 알 수 없는 가수들의 시디였다.


 ‘내것도 나중에 하나 넣어놔야지’


 헤헤 웃으며 집어든 시디는 검은 표지에 크게 ‘AC/DC’ 라고 적인 앨범이였다. 언뜻 봐도 락밴드의 앨범같았다. 엘사는 이런 취향이구나 생각하면서 당연한걸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그때 운전석의 문이 열리고 엘사가 차에 탑승했다. 벨트를 매려던 그녀는 안나가 자신의 시디를 들고 멍하니 바라보자 피식 웃었다.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지 어떻게 알고”
 “아 정말요? 한번 들어봐도 되요?”
 “흐음, 충격먹을걸”
 “궁금해요오~”




 엘사는 안나가 건내준 시디를 소중한 듯이 조심스레 시디롬에 삽입했다. 네비게이션의 화면에 로딩한다는 문구가 뜨고 곧 차 이곳저곳의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잠깐 일더니, 곧 귀를 간지럽히는 일렉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장 보러 가볼까나”

 기타소리에 신난 엘사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기어를 넣고는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예아! 썬더!”
 
 어느새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는 연신 고개를 까닥거리는 엘사를, 안나는 질렸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렇게 신나는 노래인가. 쯧, 하며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왜 별로야?!”
 “아니! 너무 시끄럽잖아요!! 소리좀 줄여요!!”


 안나가 빼액 소리쳤지만 엘사는 가볍게 무시한체 차의 창문을 열고 팔을 내민체 몸을 흔들거리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때마다 하얀 머릿결이 바람에 날려 화려하게 흩날렸다.


 “좋기만 하구만!! 예아! 썬더스트럭!”
 “으아아아..”


 결국에는 점점 커지는 노랫소리에 기가 쭉 빠져버린체 마트에 도착하고, 안나는 축 늘어져 아직도 웅웅거리는 자신의 귀를 어루만졌다. 고막에서 이명이들리고 아직도 여운이 남은 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놀리는 엘사를 노려보았다.


 “다른것도 들어볼래? 이건 말이지..”
 “됐네요!, 빨리내려요. 얼른 사고 돌아가야죠”
 “에이 좋았는데..아쉽다..아! 집에 갈때는 슬립낫껏도 들어보자!”
 “...하”


 뒤에서 들리는 그녀의 신난 외침에 먼저 매장안으로 걸어가던 안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엘사의 기분이 좋으니 나쁘지는 않다만 한번 더 자신의 귀를 고문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삑삑 차문을 잠구고 안나에게 토도독 뛰어갔다.


 “썬더스트럭~”
 “아 쫌!!”
 “..하하..얼,얼른 장보러 갑시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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