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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번역] A Crown amongst Peasants Ch.4

모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9.14 23:00:55
조회 574 추천 22 댓글 5

원작자 : Jasl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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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를 만난다, 만나지 않는다, 만난다, 만나지 않는다." 엘사는 계속 중얼거리다가 뜯긴 백합 꽃잎이 널브러진 사무실 책상에 한숨을 내뱉는다. 언제나 단호한 결정을 내렸던 엘사 여왕은 끊임없이 의문이 드는 자신의 딜레마에 빠져 이마를 부여잡고 의자에 엎어져 있다. 도서관에 있던 안나의 활기차고 편안한 모습은 좀 전의 걱정을 조금도 없애주지 못했다. 엘사는 집무실에 인사도 없이 들이닥치는 겔다를 인지하지도 못한다.
"지금 저녁을 드시겠답니다." 겔다가 엘사의 귓가에 속삭이자 엘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나가? 지금?" 엘사는 의자 가장자리를 쥐며 묻는다.
"거기로 가고 계십니다. 부엌에는 폐하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해뒀습니다."
급하게 방을 나가는 바람에 책상에 뒤엎어버린 문서 더미는 못 본 체하며 식당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엘사가 식당에 도착한 시간엔 어둑한 주황빛이 식당에 내려앉아 있고 시종들은 야간등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안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엘사는 탁자에 기대어 숨을 고르면서 나무판에 손가락을 두드린다.
안나가 여기 오면 뭘 하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따뜻한 저녁을 먹어야 하나?
기분 좋게 노래하는 안나의 목소리가 들리고 라벤더 향수 냄새까지 나자 엘사는 허둥지둥 기둥 뒤로 숨는다. 안나가 혼자서 식당에 들어오자 엘사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숨겨, 느끼지 마. 속으로 속삭인다. 하지만 눈송이가 땋은 금발 머리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엘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드러내어 안나에게로 향한다. 공주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주춤거린다. 얼굴이 창백해진다.
"에-엘사?" 안나가 숨을 삼킨다. 한 발짝 물러서다 의자에 발이 걸려 휘청인다. "어-언니가 여길... 왔네?"
"당연하지!" 엘사가 대답하며 여동생이 앉을 의자를 당긴다. "오늘은 너랑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거 좋네!" 안나는 그렇게 말하며 앉으려다 엘사가 아직도 일어나 있는 걸 보고 다시 일어난다. "그, 앉아도 돼...? 아니, 앉아도 될까요?"
"제발, 안나. 우린 자매야." 엘사는 단호하게 말하며 안나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나한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어."
안나는 제 어깨에 얹어진 언니의 손을 보더니 눈을 마주친다. 집사가 식당에 와서 저녁 식사 전부를 둘 앞에 늘어놓는다. 전채 요리부터 메인 디쉬와 디저트까지. 풍족한 삶을 쥐고 태어났음에도 안나는 음식이 놓인 광경에 넋이 나가 있다. 안나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엘사는 시종을 전부 물리고 문을 닫으라 손짓한다.
"오랜만이지 않니?" 엘사는 식탁 반대편에서 의자를 끌고 와 여동생의 옆자리에 둔다. 안나는 땅만 쳐다보며 엘사가 식사하려 의자에 앉기 직전 의자를 반대편으로 조금 옮겨앉는다.
"언니가 식사를... 나랑 같이할 줄은 몰랐어. 부담스럽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언니는 바쁜 줄 알았는데."
엘사는 빨간 갈래머리 사이에 엮인 한 줄기 금발 머리를 쳐다보다, 안나가 머리카락을 감자 샐러드 위로 끌자 인상을 찌푸린다. 엘사는 장갑 낀 손을 어깨로 뻗어 갈래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다. 안나의 얼굴에 홍조가 번진다. 안나는 간신히 옅은 미소를 짓고는 제 앞에 놓인 수많은 은 식기에 눈을 둔다. 제 언니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흘겨보더니 의자에 똑바로 앉아 나이프를 만지작거린다. 안나가 수프용 숟가락으로 샐러드를 떠 입으로 가져가도 엘사는 모른척하며 와인을 마신다.
엘사의 접시에 놓인 음식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다. 몸매를 유지하려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바로 곁에 단정히 차려입은 채 앉은 안나의 모습과, 안나가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축 늘어져 있던 그 밤의 기억이 쌓인 벽돌처럼 가장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 탓이다. 식욕이 사라진 엘사는 연어 살코기에서 당근 조각이나 찾으며 식사 시간을 흘려보낸다. 식기가 딸강이는 소리와 와인 홀짝이는 소리만이 거대한 식당의 텅 빈 공간에 메아리친다. 시종들은 문밖에 모여 귀를 갖다 댄 채로 두 자매가 서로 말도 없이 식사만 하는지 조용한 추측을 속삭인다.
후식을 먹던 도중, 둘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엘사는 제 여동생이 남긴 음식을 가리킨다.
"콩이 싫으면 내가 언제든 주방장에게 다른 채소로 요리하라고 말해줄 수 있어." 엘사는 안나의 얼굴에 시선을 둔 채로 말한다.
공주는 자신의 후식 접시를 쳐다본다. 공주는 딸기 푸딩이 곤죽이 되도록 샐러드 포크로 휘젓는다. 눈을 감고, 엘사의 무거운 숨소리 위로 속삭인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숙녀가 된다며."
"넌 이미 숙녀잖니, 안나. 내 말은-" 엘사는 입을 떼려다 안나가 고개를 내젓는 걸 본다.
"아, 그래?" 안나가 떨리는 입술로 묻는다. 안나의 목소리에서 엘사는 그게 질문이 아님을 눈치채고는 할 말을 생각해낸다.
"안나," 엘사는 안나와 마주 보게 의자를 돌리며 말한다. "문제가 있으면 내게 말해줘. 뭐, 잘 안 풀리는 일이라든가. 내가 항상 네 곁에 있고, 너도 내게 뭐든 말할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안나가 언니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엘사는 여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에 가슴이 옥죄인다.
"언닌 이해 못 해." 안나는 속삭이며 손가락으로 엘사의 뺨을 쓰다듬는다. "언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렇다고 언니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도 아냐."
"뭐?" 엘사는 안나의 공격적인 말에 이마를 찌푸린다. 유창한 그 말에 엘사는 여동생이 그 말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는 걸 깨닫는다.
"들어 봐, 안나. 우리 대화 좀 해." 엘사는 그렇게 말하며, 안나의 손목을 잡고 긴 한숨을 뿜어낸다. "어젯밤에 반메도의 여관에서 널 봤어."
안나는 시선을 돌리며 손톱으로 식탁보를 긁는다.
"설명해 주겠니? 정확히 왜 그 늦은 밤에 마을에 있었는지? 또, 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지?"
"언닌 이해 못 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안나의 목소리가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벗어나야 했으니까."
엘사는 한숨짓는다. "안나, 넌 충분히 자랐어. 왕궁 밖으로 모험을 떠나는 건 안 막아. 내 말은, 크리스토프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안 되냐는 거지. 젊은 여자한텐 위험한-"
"이해 못 할줄 알았어." 안나가 대답하며 고개를 내저어 보인다. "모르겠어? 이건 왕궁하곤 관계가 없다고!"
"뭣-" 엘사는 숨을 삼킨다. 숨결에 덩굴손처럼 차가운 안개가 미끈하게 뻗어 나온다. 안나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공주는 얼굴을 옷소매에 파묻는다.
"저녁은 다 먹은 것 같으니까," 안나는 중얼거리며 엘사의 손에서 제 손을 떼어낸다. "나중에 또 봐. 언니한테 그럴 시간이 있다면야 언제든지."
공주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엘사는 그 공주의 팔을 붙잡는다.
"기다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엘사가 숨을 삼키자 얼음이 그 아래 바닥에서 솟아난다.
"끝났잖아?" 안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엘사의 얼어붙은 장갑에 경멸의 눈빛을 보내더니 장갑을 밀치고 떠나간다.
"부탁이야 안나, 제발 가지 마! 얘기 좀-"
안나가 눈물을 닦으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모습에 엘사의 심장이 불쾌하도록 아파온다. 떠오르는 기억에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도망치던 건 언제나 자신이었다. 방에서도, 무도회장에서도, 얼음 궁전에서도. 안나에게서 등을 돌리며 버려진 자의 실망스러운 한숨을 듣지 않으려던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닫힌 문 뒤로 사라진 안나에게 눈물로 흐릿한 시선을 던지자 죄책감이 엘사의 머리를 후려친다. 흐느끼는 엘사를 바스러뜨리고 무너뜨려 무릎을 꿇린다. 문이 삐걱거리며 다시 열리고, 문에서 들려오는 여동생의 떨리는 목소리를 향해 엘사는 눈물범벅인 얼굴을 든다.
"어젯밤 내가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있기는 했을까?" 안나는 소리친다. 그리고 다시 문을 쾅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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