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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안나 서머즈 Anna Summers, PA 07

번밀레(211.206) 2019.12.12 00: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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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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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평정심을 잃고 자기 아이폰을 책상에 대고 두드렸다. 데이트도 한 번하고. 꽃도 받고. 파티에서 인사도 했는데. 전화해서 뭐하냐고 묻는 건 너무 주제 넘는 행동일까?


분명 한스도 관심이 있었다. 그거 하난 확실했다. 하지만 저번 데이트 이후로 제대로 대화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혼자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한스는 높은 사람이고 바쁘니까. 안나는 주말에 짐 옮기는 거 말고는 바쁜 일도 없었다. 당연히 주말동안 연락도 안 왔고. 안나는 두드리는 걸 멈추고는, 초능력으로 핸드폰을 울리기라도 하려는 양 빤히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안나는 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엘사의 나긋한 인사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엘사가 노트북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메고는 양 손으로 끈을 붙잡고 서있었다. 엘사는 금요일 파티에서 그런 행동을 해놓고 점잖게 아침인사를 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엘사는 오늘 머리를 묶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크게 하나로 땋아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안나는 엘사의 머리가 곱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고운 걸 넘어 한스 머리와 견줄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좋은 아침이네요.” 안나가 말했다.


엘사의 머리는 부드럽겠지. 엘사가 만져준 자기 머리보다 훨씬 더 부드러울 것이다. 안나는 손으로 엘사 머리를 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사가 자신한테 해준 것처럼.


안나는 엘사가 가방끈을 마치 생명줄처럼 붙잡고선 고개를 바닥에 푹 박고 얘기하는 중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괜찮다면 보내기 전에 한 번 확인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요. 제가 너무 화나서 썼는데 당신이 좀 손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엘사의 볼이 붉었다.


“그럼요. 당장 볼게요.” 안나가 말했다. 엘사는 안나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엘사는 위즐턴 사에 보낼 이메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합병에 관해 몇 가지 짚어야 할 점에 대한 내용이었다. 안나가 메일을 훑었다.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 여럿 보이네요.” 안나는 그렇게 말하며 문제가 될 부분을 빠르게 고쳤다. 안나는 자기가 듀크 위즐턴을 잘 다룬다는 기분이 들었다. 원하는 점에 대해 말하는 건 쉽겠지만, 표현이 적절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엘사가 쓴 이메일은 당당했지만 이렇게 써서는 위즐턴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으리라. “여기 있어요.”


“고마워요.” 엘사는 안나를 향해 살짝 미소 짓더니 자기 커피를 쥐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머리가 허리께에서 흔들렷다.


안나는 문제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안나는 엘사를 평소처럼 대해야 했다. 엘사가 말 할 때마다 어색해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미칠 것만 같았다. 이건 옳지 못한 일이다. 안나의 욕망은 적절한 상대를 향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한스. 한스는 꽃말이 ‘첫눈에 반함’인 꽃다발을 안기면서 우물쭈물 거렸으니까.


물론 엘사도 안나에게 장미꽃을 한 아름 주긴 했다. 하지만 안나는 엘사가 준 꽃 생각에 파묻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안나는 씩씩대며 노트북을 열고는 오늘은 무슨 일정이 있는지 확인했다.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안나는 어쩌면 엘사에게 필요할지 모르는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했다. 엘사에게 확실하게 말해둘 점은, 오늘은 ‘테이블 반대 쪽에 어색하게 앉기’ 금지라는 것이다.


안나는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프로그램의 사이드바를 발견했다. 스케줄 표에 늘 떠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안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나한테 스케줄 조정할 힘이 있잖아.


안나는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주르륵 내려서는 한스라는 이름에 멈추었다.


한스는 점심시간에 두 시간이 비어있었다.


이제 꽉 찼어. 안나는 그 시간에 ‘개인적 용무’라는 일정을 추가하며 생각했다.


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엘사의 스케줄을 띄웠다.


이 분 뒤, 문자 메시지가 온 듯 핸드폰이 울렸다. 안나는 너무 서둘러 핸드폰을 잡으려다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정말 골칫덩어리가 따로 없네요.


크리스토프였다. 한스가 아니라. 안나는 핸드폰을 쏘아보았다.


“서머즈 씨와 점심”? 방금 한스 스케줄에 추가했네요.


골치 썩이는 게 아니라 로맨틱한 거죠.


로맨틱? 그게요?


꺼져요. 알빠아님.


나쁜 놈이라니까요. 할 수 있을 때 도망쳐요.


안나는 무음 버튼을 누르고는 핸드폰을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멍청한 크리스토프.


열 시 반에 책상 위 전화기가 울렸다. 안나는 수화기를 들고는 평소처럼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렌델 씨 사무실입니다.”


“핸드폰 연락이 안 돼서요.”


“한스!” 안나는 기뻐서 소리 지를 번 한 걸 겨우 참았다. 대신 너무 신이 나 앉은 채로 위 아래로 요동쳤다. 전화 반대편에서 한스가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토퍼 말로는 점심에 당신이랑 점심약속이 있다던 대요?”


“데이트죠.” 안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데이트요?”


“넵. 데이트해요. 시간이 좀 남으시길래 전지전능한 제가 당신 스케줄에 저랑 만나는 약속을 만들어 놨죠.”


한스가 웃으며 말했다. “어디로 갈까요?”


흐음, 좋은 질문이네.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한스가 다시 웃었다.


“깜짝 놀랄 곳에 데려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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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커피 받아들고는 ‘고마워요.’라고 하는 거예요. 얼음여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그냥 사람 대할 줄을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낸 문서 볼 때는 그렇게 꼼꼼할 수가 없다니까요. 하나하나 트집 잡긴 하는데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스는 안나에게 일이 어떠냐고 물었다. 안나는 십 분이 지나도록 엘사에 대한 얘기를 횡설수설 늘어놓고 있었다. 다행히도 한스는 크게 여의치 않은 눈치였다. 둘은 카페 안에서 창문을 따라 흐르는 봄비를 보며 편안하게 쉬는 중이었다.


안나가 지난주에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말하자 한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표정은 ‘너 참 멍청하다’라기 보다는 ‘당신 참 귀여워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고요?” 안나가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한스가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한스는 귀를 의심하는 듯 몸을 더 가까이해서 앉았다.

 

“그게… 엘사 씨는 파티가 좀 부담스럽나 봐요. CEO 자리도 별로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하나 남은 딸 말고는 방법이 없었겠죠.”


“정말로 힘든 일이었겠죠.”


안나는 자기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계속해서 말을 했더니 목이 타는 것 같았다. 한스는 자기 접시 위 남은 음식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죠?” 안나가 음료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사실, 엘사의 비밀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건 안나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상대가 한스라고 해도.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렇게 얘기해서는…”


한스는 테이블 건너 안나의 손을 잡더니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약속할게요.” 안나는 안도한 듯 미소 지었다.


한스는 안나의 손을 놓지 않고서 엄지로 살살 쓸었다. 안나는 한스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해고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세상은 참 완벽해.


한스는 한쪽 손을 놓더니 안나가 남긴 샌드위치 반의 반 쪽을 가리켰다.


“저거 먹을 거예요?”


안나는 샌드위치를 집어 들더니 한입에 전부 먹어버렸다.


한스는 놀란 듯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는 샌드위치로 볼이 가득해져서는 자기 손가락을 쪽 빨았다.


한스가 쿡, 웃었다. 안나는 무언가 애가 탔다. 안나의 볼은 다람쥐처럼 부풀어있었다.


“내 앵드이치” 안나가 입 안 가득 샌드위치를 넣고 말하는 통에 부스러기가 조금 튀어나왔다.


한스는 웃음을 와락 터뜨리며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안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알람이었다. 이런.


“-에!” 안나가 무어라 소리 질렀다. 안나는 더 큰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입을 부여 막고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까! 나웅에 바여!” 안나는 계속 입 안 음식을 우물거리며 손인사를 했다.


한스는 눈물까지 흘리며 계속 웃고 있었다. “다음에 또 봐요!” 한스는 쏜살같이 빠져나간 안나를 쫓아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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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금요일에 다시 데이트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나는 일정표의 신답게 전지전능을 발휘해 한스의 스케줄에 ‘일곱 시 반, 저녁 데이트’라는 일정을 추가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정도면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나올 시간은 충분하리라. 어쩌면 머리도 좀 제대로 하고 나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 안나는 심지어 약속을 잊지 않으려 자기 핸드폰에도 일정을 추가 해놨다.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다시 문자를 보낼 거라 예상했지만 점심이 끝나도록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좋아. 이제야 내 일에서 신경 끄기로 했나보네.


두 시 반이 되자,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일정 장소와 메시지가 같이 떠올랐다.


라 몬티에. 예약 완료.


“한스도 스케줄을 건드릴 수 있는 줄은 몰랐네.” 안나가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레스토랑이었다. 안나는 구글에 레스토랑을 후다닥 검색했다가 너무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다.


세 가지 메뉴만 있었다. 닭, 생선, 비건식. 네 가지 코스 요리가 나오는데 인당 129달러였다. 예약만 받는 곳이었고.


샌드위치에서 갑자기 너무 올라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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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씨? 여기서 뭐하세요?” 안나가 물었다. 엘사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고 안나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엘사는 놀란 듯 자신을 바라보는 엘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먼저 일정 잡은 건 안나 아니었나? 스케줄 읽을 줄 모르나? 엘사는 스케줄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레스토랑 사장은 둘을 번갈아 보더니 안나를 향해 물었다.


“다른 분을 만나기로 하신 건가요?”


“어….” 안나는 엘사를 빠르게 흘깃 보더니 사장을 향해 말했다. “리스트에 솔릭 씨는 없나요?”


사장은 클립보드의 종이를 휘릭 넘겨보았다. “죄송하지만 일곱 시 반에는 안나 서머즈 씨와 엘사 아렌델 씨 예약밖에 없네요. 두 분 맞으시나요?”


“네. 제가 안나 서머즈에요.” 안나가 리스트를 살피며 말했다.


엘사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엘사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로 창피한 일이었다. 엘사가 스스로에게 창피주기에 달인임을 생각해 봤을 때, 이번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자리는 여기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웨이터가 곧 올 겁니다.” 사장은 그 말만 남기고는 사라졌다. 안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레스토랑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서있었다. 이 틈을 타 엘사는 아무도 모르게 여기서 사라질 수 있지만…


안나는 자기 올라프베리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살펴보았다.


“혹시 스케줄 바꾸셨어요?” 안나는 이렇게 물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랬을 리 없죠.”


안나는 엘사 반대편 의자를 끌어당기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참 이상한 일이네요. 어떻게 스케줄이 바뀐 걸까요? 크리스토프 짓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왜 엘사 씨가 여기 계신 건지는 모르겠어요.”


엘사도 생각해보았다. 자기 스케줄에 저녁 약속을 넣은 게 안나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자기 일정을 조정할 권한을 가진 건 안나 말고는 단 한 명인데…


“올라프네요. 올라프가 했어요.” 확실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니와 이런 멍청한 짓을 저지를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엘사는 가방을 쥐고는 일어났다. “실례할게요. 가서 올라프를 죽여야겠어요.”


“잠깐, 기다려요!” 엘사는 안나를 보았다. 안나의 볼이 붉었다. “제 말은- 벌써 여덟 시가 다 됐어요. 배고프지 않아요?”


엘사를 배신하듯, 대답 대신 엘사의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치만….”


안나가 여기 있었다. 사실은 한스 솔릭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왔지만, 엘사가 둘의 데이트를 망친 셈이었다.

 

엘사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올라프와 크리스토프가 꾸민 짓 같아요. 아마 한스는 오지 않겠죠. 어쨌든 온 김에 얘기라도 하면 좋겠죠. 엘사 씨, 앉으세요.”


엘사는 그 말에 순순히 따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가방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건 그렇고 제가 와 본 곳 중에 제일 멋져요. 음식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그 말을 듣고 엘사는 미소 지었다. 엘사는 개인적으로 이런 장소에 감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음식도 대단하겠지만, 겔다가 해주는 밥에서만 느껴지는 무언가는 없겠지.


“좋아요.” 엘사가 말했다. “그 전에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어요.”


“뒷문으로 도망갈 생각은 아니죠?” 안나가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바로 들켰네. 세상에, 안나가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알고 있다니. 엘사는 빠르게 계획을 틀었다.


“안 그래요. 약속할게요.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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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


“올라프, 이게 대체 무슨 헛짓이야?” 엘사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 이를 바득 갈며 말했다. 그래도 소리가 컸는지 엘사 목소리가 화장실 벽에 부딪혀 울렸다.


“음…, 글쎄요. 방금 중국 음식 시키긴 했는데….”


“아니. 스케줄 얘기야. 안나랑. 데이트. 네가 한 짓이지.” 엘사가 아무리 목소리를 줄이려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오죽하면 화장실 안내직원이 엘사가 화장실 바닥에서 도축이라도 하는 것처럼 쳐다봤으니까.


“아, 맞아요!”


엘사는 숨을 후욱 들이셨다. “왜?”


“왜냐하면 크리스토프가 한스 스케줄을 바꿨으니까요.” 올라프는 그게 모든 일을 해명해준다는 듯 말했다.


엘사는 다시 숨을 들이켰다. “그건 이유가 되지 않아.”


“크리스토프 말로는 한스가 열받은 주머니곰처럼 안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니 어쩌니 그랬어요. 그런 말을 한참 하더라구요.”


“그 뜻이 아니야.” 엘사가 말을 끊었다. “왜 안나와의 데이트를 나한테 맡긴 거야?”


“크리스토프가 안나 스케줄을 바꾸지는 못했어요. 그대로 가다간 안나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엄청 슬퍼했겠죠.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엘사가 가면 되겠더라구요. 엘사는 착하니까요.” 올라프는 자기 말에 기쁜 것처럼 들렸다. 너무 매력적인 비서와의 대인관계를 박살내는 대신 천재적인 계획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엘사는 또 깊게 한숨을 쉬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네. 가끔 올라프에게 왜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이 불가능할 때가 있었다. 그러다 지금 엘사는 안나와 데이트할 상황에 처했고.


“이제 다시 데이트하러 가는 건 어때요? 아직 여덟 시에요.”


“나- 난… 화장실에 있어.” 엘사가 털어놓았다.


“그거 안 좋네요. 어서 가서 안나랑 대화해요. 얼마나 예쁜지 말해줘요. 얼른 가요.”


“올라프, 나는-”


올라프는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이런 젠장!”


안내직원이 아연실색한 눈빛으로 엘사를 바라봤다.


“죄송해요.” 엘사는 중얼거리더니 직원에게 엄청난 액수의 팁을 아무렇게나 주고서는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올라프는 엘사더러 안나가 얼마나 예쁜지 말하라고 했다. 당연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안나의 모습에 신경이 쓰였다. 엘사는 테이블에서 겨우 오십 센티미터쯤 남은 곳까지 왔지만, “예뻐 보여요.”라는 말이 목구멍에 콱 막혀 나오질 않았다. 평범하게 건네기 딱 좋은 말인데. 사실 저 말엔 어폐가 있었다. 안나는 엄청나게 예뻤으니까.


안나가 미소 지었다. 안나의 손이 제멋대로 머리로 향했다.


“약속장소가 여기라는 메시지 받고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커피 좀 마시고 진정했죠. 얼른 나가서 머리에 바를 것 좀 사왔어요. 엄청 좋더라구요. 여태까지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안나는 발목 언저리까지 오는 세련된 검정 드레스를 입고 간소한 목걸이를 했다. 얇은 목이 돋보였다. 안나는 파티에서처럼 머리를 말끔하게 빗었는데, 오늘은 앞머리를 모아 올려 핀으로 고정한 상태였다. 아주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엘사는 출근할 때나 입는 옷을 입고 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엘사의 가정교사는 외모가 성공의 반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말했다. 그런데 지금 엘사는 지난주까지 헤어 오일이라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보다 못나보였다.


엘사는 갑자기 목이 텁텁해진 건 애써 무시하며 의자를 끌어 앉았다.


“그래서….” 엘사는 긴장한 듯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솔릭 씨가 올 줄 알았던 거예요?”


잘한다, 엘사. 못난 사장이랑 노는 대신 데이트하기로 한 거 아니냐고 다시 일깨워주다니.


“맞아요.” 안나는 입술을 살짝 내밀더니 눈을 굴리며 말했다 “좀 로맨틱하지 않을까 해서 일정을 묻는 대신에 제가 맘대로 데이트를 잡았어요. 그게 월요일이었죠. 그런데 크리스토프가 무슨 이유에선지 자꾸 훼방을 놔요. 꼭 제가 열여섯 살 때 우리 엄마 같아요. 그때 여자친구가 있었거든요. 사스카툰에 있는 대학에 갔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그 나이에 장거리 연애를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나 봐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맞긴 하죠. 그래도 여자친구랑 채팅하는데 인터넷 선 뽑아버렸을 땐 좀 많이 화났었어요.”


엘사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의 어떤 부분 때문에 머리가 고장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가장 확실한 것에 대해 묻기로 했다.


“어….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왜 없었겠어요? 여자 제대로 본 적 있어요? 너무 섹시하잖아요.” 엘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당연하다는 듯이 다른 여자애를 저한테 소개해줬어요.”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엄마가 딸한테 여자를 소개시켜줘? 정말 말도 안됐다. 엘사 입장에선 그랬다. 자기 아버지가 엘사한테-


“엘사 씨?”


엘사는 눈을 깜빡이더니 괴로운 생각 속에서 빠져나왔다. 안나가 궁금한 듯 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불편했다면 죄송해요.” 안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제 말은- 제가 양성애자인 건 별로 안 죄송해요. 남들한테 제 정체성에 대해서 미안해하지 않기로 다짐했거든요. 여자가 섹시하다느니 한 말이 불편했을 것 같아서요.”


“아…아뇨. 전 괜찮아요.” 엘사는 말을 더듬었다. 얼굴이 불타올랐다.


내가 괜찮아? 엘사는 자문했다. 어리고 순진했던 열네 살의 기억이 스물스물 떠올랐다. 하지만 엘사는 그 기억을 잠시 밀어두었다. 안나는 미안한 기색도 없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안나는 귀엽고 도움을 자처하고 속도 넓다. 엘사는 아버지의 편견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이다.


엘사는 ‘데이트’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안나의 엄마 집에는 무키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다. 안나는 모피를 좋아하지만 죄책감 때문에 절대 입지 않기로 했다. 안나는 학교 일진 얼굴을 나뭇가지로 후려친 적이 있다. 안나는 고등학생 때 럭비선수였다.


“운동 했었어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안나가 핸드폰 두 개를 떨어뜨리고는 세 번째 전화를 받으려고 허둥지둥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엘사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꽉 물었다. “아, 아니에요.”


엘사는 안나가 샌드위치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이 레스토랑에 샌드위치가 없어서 실망했다는 걸 알게 됐다.


“테이블이 열다섯 밖에 없는 오성 레스토랑이니까요, 안나. 당연히 샌드위치는 없죠.”


“샌드위치도 비쌀 수 있잖아요.”


안나와 엄마의 관계가 엘사에게는 낯선 세계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작년에 엄마 예순 번째 생신을 맞아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다가 카지노 리조트에서 묵었어요. 어쩌다가 엄마가 절 끌고 클럽에 갔는데 스트립 클럽인지 말도 안 했던 거 있죠! 안에 들어갔는데 정말 부끄러웠어요. 근데 불평할 수가 없더라구요. ‘나는 이제 예순이야, 아가. 내 나이 먹으면 너도 안 부끄러울 걸.’ 이러시는데!”


엘사는 닭고기를 씹다가 목이 막혀 졸도할 뻔 했다. 안나는 엘사가 물을 급하게 마시는 걸 보며 킬킬 댔다.


“엄마들은 전부 자식들 골탕 먹일 생각만 한다니까요.” 엘사가 다시 살아나자 안나가 덧붙였다.


“저희 어머니에 대해 모르는 게 다행인 것 같네요.”


“아버지는 어떠셨어요? 이상한 짓 안하셨어요?”


엘사의 웃음이 사그라졌다. “별로요. 늘 일만 하셨으니까요.”


안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럼 누가 돌봐줬어요?”


“거의 유모랑 가정교사였죠.”


“그럼 누구라도 재미있는 곳 데려가준 사람 없어요? 바다라든지 그런 곳이요. 아니면 막 장난치고 놀리던 사람은요?” 안나가 물었다.


“카이랑 겔다가 있긴 해요.” 엘사가 말했다. “카이는 아버지의 친한 친구고 저한텐 삼촌 같은 분이에요. 저한테 스키 타는 법을 가르쳐줬죠.”


“스키 탈 줄 알아요?” 안나는 꽤 감명 받은 것 같았다.


“스키 좋아해요.” 엘사는 산을 내려갈 때의 속도를 떠올리고는 아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못 탄지 몇 년은 됐네요. 일이… 바빴으니까요.”


“같이 스키 타러 데려가고 싶은데 아직 삼월이네요. 제가 마지막으로 스키 탄 게 중학생 때인데 그 때 뇌진탕 걸렸었죠.”


“정말 럭비 한 거 맞아요?” 엘사는 안나가 머리를 너무 다쳐 환각이라도 본 건 아닌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맞아요….”


엘사는 와인잔 뒤에 얼굴을 숨기고는 혼란스러워 하는 안나의 표정을 보며 히죽 웃었다.


디저트로는 둘 다 초콜릿 무스를 골랐다. 디저트까지 끝낸 뒤, 엘사는 다시 무릎을 두드리며 앉아있었다. 저녁은 끝났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이제 물러나야하나? 저녁 내내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맥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사는 안나가 자기와 계속 있고 싶다고 어림짐작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엘사는 적당한 타협안을 찾았다.


“제가… 제가 집까지 태워다 줄까요?”


“엄청 좋죠.”


안나는 차 안에서 매일 초콜릿 무스만 만들어준다면 셰프가 어떻게 생기고 무슨 짓을 하건 기쁜 마음으로 결혼할 수 있다며 조잘거렸다. 조용한 차 안을 꽉 채워주는 안나 덕분에 엘사는 마음이 편하고 훈훈했다.


“같이 더 다녀야겠어요.” 차가 집 앞에 멈췄을 때 안나가 말했다. “제 말은- 엘사 씨가 원하면요. 엘사 씨에 대해 더 알게 돼서 기뻤어요.”


안나는 엘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지금 볼 빨개진 건가? 엘사는 가로등 때문에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럼 좋죠.” 엘사가 말했다. 갑자기 차가 엄청 좁게 느껴졌다. 편안하고 훈훈한 곳이 갑자기 비좁고 더운 곳이 됐다.


안나는 문을 열었다. “월요일에 봬요.” 안나는 행복한 듯 말하고는 차에서 폴짝 내렸다. “무슨 도넛 먹고 싶어요?”


엘사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초콜릿 뿌려진 거요.”


안나는 손을 흔들고는 문을 닫고 건물로 깡충깡충 뛰어 들어갔다. 엘사는 안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를 몰고 떠났다.



-



아니 왜 둘이 뽀뽀안해 뽀뽀하라구 뽀뽀해 누가 봐도 뽀뽀할 타이밍이잖아!~!~!~!!~!~!~! 내가 현퀘도 버리고 했는데 왜 뽀뽀안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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