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엘탄절공약/유혈]Praying prey 01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2 23:50:18
조회 2496 추천 102 댓글 21






00.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아이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침대 위가 아닌 찬 바닥에 엎어진 자기 자신을 보고 서글퍼야 했지만, 서글프지 않았다. 항상 있어온 일이었다. 아이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부스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등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있었던, 기절하기 전에 겪은 일들이 떠올랐다. 기억하기 싫은 듯 입술을 앙 다문 아이는 차갑게 물에 젖은 두 손과 멍이 든 팔뚝을 내려봤다. 또다시 그들은 아이에게 강요를 했다. 책을 읽고, 또래들과 뛰놀며, 다음 식사 때 무엇이 나올 것인가 넌지시 궁금해야 할 그런 아이 중 하나를, 그들은 때렸다. 약이 든 주사기를 꽂았다. 그리고 욕을 했다.
그럼에도 원망하고, 증오해야 했지만, 증오스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용서할 마음은 없었다. 눈 앞이 흐려졌다. 손 위 허공에 커다란 눈덩이가 생겨나 손 위로 떨어졌다. 그 위로 눈물 두 송이가 찰팍 하고 젖어들었다. 그 서글픔은 아이가 품을 수 없는 작은 위선이었다.
아이는 손에 쥐어진 눈덩이가 그들의 마음씨보다 따뜻하다 느꼈다.이것을 그들의 마음에 넣으면 더워서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일어날 리 없었다. 체념하면서 아이는 침대에 누워 구겨진 이불을 덮었다. 차게 식은 이불의 촉감에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누그려졌다. 아이가 잠에 들 것을 감지하듯 하얀 방의 불이 꺼졌다. 아이의 세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녹슨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간 것처럼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어렴풋이 들렸다. 딱딱한 혓바닥 위에 누운 아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방 안에서 오롯이 방금 만들어낸 눈덩이를 꼭 손에 쥐었다. 그러자 아이의 손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난 괴물이 아냐.’
“난 괴물이 아냐.”
아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괴물은 아무 말이 없었다.
괴물은 그저 기도하는 먹잇감을 삼켰을 뿐이었다.





01.


아이는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바라본 하늘이라곤 천장이 막힌 수십 미터 높이 실험장의 허공이었다. 그마저도 천장의 색깔은 하얀색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하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구겨짐 없는, 마치 하얀 도화지를 붙인 듯한 하늘은 눈이 쌓여 있었다. 저게 하늘일까? 아니면 내가 거꾸로 날고 있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그냥 지금 스쳐가는 바람을 만끽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을 감싸는 하얀 구조물, 그리고 하얀 옷의 악마들을 잠시나마 잊는다. 저 끝 설원 위에 붉은 색의 무언가가 희끗하게 보인다. 얼마 전까지 옆방에 있었지만, 지금은 하얀 악마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머리 색과 같은 것이었다. 그 아이일까? 아이는 그곳으로 날아가기로 한다. 날아가는 동안 세상의 눈은 내려지면서 때로는 올라간다. 그에 맞춰 아이의 몸도 위아래로 요동친다. 그 붉은 것에 가까워질수록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다. 닿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마음을 삼켰다.
지금 잡지 못하면, 다시는 잡지 못할 것 같았다.
아이는 끝내 평정을 잃고 추락한다.
추락하면서, 아이는 이 꿈을 꾸지 못할 것에 슬퍼했다. 느끼기 싫은 감정이었다. 아이는 눈을 감는다. 올라갈 날개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그저 체념했다. 아이의 곁에서 죽은 바람만이 쉭쉭 거리며 귀를 긁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뛰는 소리가 다급히 들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그 소리는 붉은 형체의 것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동도 안하던 그것이 퍽퍽 눈 밟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아이를 향해 다가온다. 아니, 그것은 흡사 뛰어오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눈밭에 붉은 발자국을 남기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아이를 향해 뛰고 있었다. 지면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것도 아이가 떨어질 곳에 서서 두 팔을 뻗었다. 귓가가 징 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또렸했던 의식이 둔해지고,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아이는 그 붉은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까지 보려 한다. 하지만 끝내 확인하지 못하고 검은 세상을 마주해야 했다.
그것은 양 갈래로 땋은 붉은 머리를 가졌다.




02.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은 붉은 빛과 하얀 빛을 번갈아 토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눈덩이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이의 손에 남은 약간의 물기만이 그것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문 밖이 심상치 않았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그 너머의 발소리들이 평소의 박자보다 몇 템포 더 다급했다.
‘씨발, 대체 뭔데?’
‘침입이야, 누가 아래층 연구원을 다 죽였어.’
‘우리도 좆 되는 거 아냐?’
‘남은 아이들은?’
‘이미 말소됐어. 어차피 아이들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으니까 다시 시작하면 돼.’
그들의 불안 섞인 목소리에 아이는 괜스레 속이 후련했다. 항상 조롱하고, 사나웠던 그들도 저렇게 겁을 먹을 때가 있구나 하고 아이는 무심코 쿡쿡 웃었다. 하지만 더 웃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2호 개체는 의뢰인이 무조건 픽업하라 했잖아.’
‘그럼 어서 데리고 가자.’
‘얘를 노리고 있으면 우리도 죽을 텐데?’
‘씨발새끼들아, 어차피 안 데려가도 우린 다 죽어. 밑져야 본전이야.’
말이 끝난 직후 아이의 방문이 열렸다. 곳곳에 때가 묻은 흰 옷의 악마들의 손에 검은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아이의 옷을 거세게 움켜쥔다. 아이는 욱신거리는 팔로 그 손을 때려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있는 힘껏 깨물어 보아도 무용지물이었다.
“이거 놔아....!”
“진짜 끈질기네, 이번만이라도 말 좀 들어라!”
“시이러어어...!”
악마가 손에 든 검은 무언가를 아이의 머리에 내리쳤다. 아이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다루면 안 돼잖아! 자크, 미쳤어? 어린애를 그렇게 다루면 어떡해!”
“그럼 뭐, 쟤가 내 손 병신 만들 때까지 잡고 있어야 돼냐? 쟤 능력 못 봤어?”
“일단 둘 다 진정하고 어서 데리고 나가자. 이미 다 나가고 우리밖에 없을 거야. 제시카, 저 애를 업어줘.”
악마들은 섣불리 대화를 중단했다. 제시카가 아이를 들쳐멨고, 그들은 복도로 나와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 뒤에서 간간히 총성과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씨바아알... 한 때 동기였던 자들의 욕 섞인 비명이 벽 틈새를 파고들더니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소름이 돋았다. 이곳은 도저히 드러날 수가 없는 장소였다. 하물며 이곳에서 행해지는 실험은 그들과 그들의 동기, 그리고 고용주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들켰고, 왜 우리를 죽이려 드는 건가?
“여기서 어디로 나가지?”
자크가 뒤를 주시하면서 물었다.
“일단 옥상으로 나가자, 옥상에 수송 헬기가 있을 거야. 샘플들을 데리고 온 그 헬기 말이야.”
“우리가 못타면 어떡하지? 여기 운용 인원만 해도 수백인데...”
잠시 총성이 멎었다. 그들 사이에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권총의 총구가 총성이 멈춘 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아이들에게 죽은 동료들, 그리고 아이들이 피웅덩이에 잠겨있었다.
“이미 절반은 죽었어.”
단 한 명한테 말이야. 자크가 말했다. 아직 복도 끝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릴 버리진 않았겠지?”
“잡생각은 버리고, 일단 옥상으로 가자고, 옥상에도 없으면, 비상계단으로 빠져나가자. 딜런, 위성전화기 챙겼지? 밖에 나가면 전파가 터질 테니까, 일단은 나가서 생각하자고.”
딜런이 가운 주머니에 든 위성전화기를 어루만졌다. 분명 여기서도 터져야 할 전화기였다. 하지만 총소리가 울리기 불과 몇 분 전에 시설의 모든 통신이 끊겼다. EMP가 터진 것은 아니었다. 설령 터졌어도 차폐 기술이 적용된 딜런의 전화기는 멀쩡히 돌아가야 할 터였다. 시설 조명은 다 나갔지만 비상등은 멀쩡했다. 하지만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마치 유투브에서 본 조작 전문 유투버들의 심령 스폿 체험에 동행하는 것 같았다. 마침 배경도 비슷했다. 붉고 하얀 빛이 어른거리는 허공, 섬뜩한 시체 조각들과 피웅덩이. 딜런은 그것을 보고 초콜릿 퐁듀를 떠올린 자신을 혐오했다. 그래, 이건 엿같은 상황 때문에 그런 거야. 나도 미쳐가는 거라고.
“딜런, 빨리 좀 와!”
“어어, 알았어. 보채지 좀 마, 나도 노력하고 있어.”
총을 든 동료의 부추김에 딜런은 몸을 돌려 일행과 합류했다. 그리고 딜런은 찰나의 게으름을 몇 분 안 남을 평생 동안 후회했다. 등을 진 모퉁이에서 쏜 총알이 그의 후두부를 찢어발겼다. 딜런의 입이 꽃을 욱여넣은 화분의 주둥이가 되자, 제시카는 겁에 질려 아이를 내동댕이 치고 도망갔다. 자크는는 재빨리 권총을 들어 누군가가 오지 않게 사격을 가했다. 틱 하고 슬라이드가 후진했다. 그는 연신 욕을 외쳐대며 가운 주머니에 남은 탄창 하나를 갈아 끼웠다. 동시에 딜런을 죽인 누군가가 코너에서 튀어나와 총을 갈겼다. 총알 하나가 권총을 든 자크의 팔을 찢고 지나갔다.
“씨발, 좆같은 새끼야!”
충격에 넘어진 그는 다시 일어나려다 왈칵 쏟아지는 제 피에 미끌려 다시 넘어진다. 순식간에 그의 바지와 가운이 붉게 물들었다. 씨발, 내가 뒤지더라도 니 새낀 죽이고 말거야, 이 씨발년아!
“후윽, 후으으으”
새어나오는 신음을 애써 참으며 그는 뒤로 날아간 팔을 향해 기어갔다. 사후경직이 되기 전에 우그러진 손에서 총을 떼내야 했다. 하지만 관자놀이가 쿵쾅대며 그의 몸부림을 조롱했다. 문득 그의 시야에 쓰러져 누운 아이가 보였다. 그래, 네가 원흉이지. 이 씨발 괴물같은 년. 너부터 죽여주마, 그 다음-
그의 악에 받친 독백은 칼로 자른 것처럼 순식간에 끊겼다. 딜런이 죽은 것처럼 누군가 자신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는 걸 느꼈을 때, 검게 변색된 그의 세상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이마저도 완전히 어두워졌다.





03.


이건 꿈일 거야.
두 번째 총성이 울리자, 자크의 욕설이 등 뒤로 전해졌다. 이윽고 권총의 격발음이 십여 번 울렸다. 제시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그녀는 처음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속했던 대피 집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겨우 3명이 남았을 때, 그녀는 딜런의 말을 따르면서 뒤를 보호할 생각으로 2호 개체를 업었다. 등 뒤로 전해지는 냉기에 소름끼칠 정도로 역겨워하며 어떻게든 두 사람이 자길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딜런의 죽음을 보고, 그녀는 완전히 이 상황에 질려버렸다. 결국 자크를 놔두고 그녀는 도망치기로 했다. 그는 권총을 가지고 있으니 최대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그 미치광이를 죽일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만 도착하면, 엘리베이터만 도착하면 게임 끝이었다. 곧바로 옥상까지 올라가 그녀가 고대하는 헬기를 타고 이 지옥에서의 출애굽기를 할 수 있으리라. 몇 분을 달렸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눈 앞에 있었다. 그녀는 풀리기 시작하는 다리를 끌고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듯 가운까지 벗어던졌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다다른 그녀는 숨을 골라 쉰 다음 상승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문 위의 스크린에도 엘리베이터의 위치가 뜨지 않았다.
“뭐야!”
제시카는 비명을 질렀다. 버튼을 연신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그녀의 초조함은 곧 신경질적인 발작으로 이어졌고, 어느덧 주먹으로 버튼을 내리키기 시작했다.
쾅.
“열어어어!”
쾅.
“왜 죽어야 되는 건데!”
쾅.
“이 씨발놈들아아아....”
주먹에서 흐르는 피가 스크린에 문질러졌다. 제시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차라리 권총이라도 챙겨 올걸, 하고 그녀는 느지막이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철로 된 안개는 열릴 일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등 뒤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딜런의 마지막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그의 두 눈은 순식간에 충혈되었고 입은 부자연스럽게 터져버렸다. 적어도 멀쩡하게 죽고 싶었다. 그래, 부탁하자. 부탁해 보는 거야. 그럼 가슴에 한 발 쏴 주겠지. 개같이 뒤지는 거보다 나아.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은 어느새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복면를 쓰고 야투경을 올려 쓴 그 사람은 총구를 그녀의 이마에 조준하고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할 말을 대신하듯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총구가 아주 약간, 그녀의 턱 밑으로 내려갔다. 짧은 탄식이 들렸다.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 비니를 쓴 사람의 것이었다.
‘울면 살려주겠지?’ 라는 잠깐의 멍청하지만, 지금으로썬 최선인 해결책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제발 살려주....”
“야.”
그녀와 똑같지만, 나이는 더 어린 듯한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비니에서 튀어나왔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새끼야?”
“어?”
아, 이게 아닌데. 그녀는 후회했다. 이윽고 들린 총성이 너덜너덜해진 고막을 터뜨렸다. 총알들은 그녀의 가슴팍을 난도질했다. 그 충격으로 그녀는 뒤로 밀려 문에 처박혔다. 그것은 마치 가슴이 잘게 부서진 피노키오를 닮았다.





04.



....새...끼
뭐.
악...마..새끼
...그 말이 나와?







05.


아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복도는 기계가 부르짖는 비명 외엔 모든 소리가 죽어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아이를 데려가려던 악마들이 피범벅이 되어 드러누워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는 뒤로 물러났다. 내가 한거야? 나는 기억이 없는데? 아이는 두 손을 내려다봤다. 피가 묻어 있었다. 시선을 더 내리자, 아이가 입은 실험복이 피에 젖어 있었다. 정황상 자신이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 같았다.
"아냐,  아, 아냐."
아이는 애써 부정했다. 아무리 그들이 싫다고 해도, 괴물이라 불리어도 적어도 이 괴상한 현상은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신체 일부분이 없어질 정도로 비참한 고깃덩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안 했어...안 했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능력을 썼다면? 그래서 죽은 거라면? 아이는 자신이 항상 저들의 먹잇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저들이 말한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짓을 저지른  것 같았다.
이제껏 참아왔던 화가 터져나왔다. 아이는 목놓아 흐느꼈다. '왜 나는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엄마, 아빠, 나 무서워. 제발 구해주세요. 내가 안했어요. 나 말 잘 들었어요. 앞으론 안 울게요. 제발요. 잘못했어요, 제발.'
아이의 앞에 눈이 섞인 소용돌이가 생겨나 주변을 휩쓸었다. 시체들의 몸뚱아리가 발작에 빠지고, 고여있던 피들은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올라갔다. 팔 한짝이 소용돌이를 타고 천장에 파박 파박 핏자국을 남겼다. 소용돌이는 벽과 천장에 피를 흩뿌렸다. 마치 스프레이로 뿌리는 것처럼, 복도는 조명마저 피에 젖어 붉어졌다. 그때였다. 아이는 복도 끝에서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소용돌이가 형체를 잃고, 주인 잃은 팔은 반대로 꺾여 구석에 내팽개쳐진다. 아이는 눈물을 닦고 발소리의 주인을 좇았다.
그것은 하얀 악마와 같은 색이지만, 무겁고 두꺼워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아님에 마음이 놓여야 할 텐데, 오히려 그것이 쓰고 있는 복면과 이상한 관들은 아이를 움츠리게 했다.
"아."
그것은 그들보다 큰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방금 전 맞은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아이의 입가가 파르르 흔들리며 딸꾹질을 시작했다. 뇌가 움직이라고 비명을 질러도 두 다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저,  흐끅, 제가."
그것이 아이의 앞에 멈춰섰다. 찰박 하고 그것의 신발이 피를 밟는 소리가 났다.
"제가 안했는데.... 저 사람들이..."
그것의 눈과 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벽안이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이내 들고 있던 큰 무언가를 뒤로 감췄다. 그리고 몸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 했다. 그리고 아이를 들어 피가 닿지 않는 바닥에 앉혀놓았다. 그것은 아이의 흐느끼는 딸꾹질이 잦아들 때까지 탁한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괜찮니?"
그것의 입에서 나온, 아이가 들은 첫 울음소리였다. 아, 사람이셨구나. 아이는 내심 안도했다.
"제가 안했어요... 정말이에요."
그것은 아이에게서 떨어뜨린 시체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리니까 다들..."
"알아, 네 잘못 아니야."
그것이 머리에 끼운 관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했어."
그것의 한 마디는 아이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죽음이란 것을 여지껏 간접적으로나마 슬픈 내음의 향수 같다고만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 저 시체들을 보고 그 생각은 완전히 부서졌다. 죽음이란 조각배를 덮치는 비참한 포말이었다.
"어..저..."
그리고 묻고 싶었다. 저들을 저렇게 만들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아이는 공포와 후련함의 절벽 사이에 있었다.
"미안해."
뜻밖의 말이었다. 왜? 자신을 구해줬는데도? 아이는 당황했다. 죽었던 딸꾹질이 목젖을 다시 두드릴 것 같았다. 잠시 몸을 돌린 그것은 이제 복면마저 벗어버린 후였다. 그 안에는 땀에 젖은 붉은 머리가 있었다. 그것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
그것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

공약 이행 완료...

추천 비추천

102

고정닉 2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2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14 ai힘을 빌리면 개쩌는 픽썰 쪄지냐 ㅇㅇ(223.38) 11:41 2 0
1123713 이 음란한 갤 [1] ㅇㅇ(223.38) 11:39 6 0
1123712 안녕 털복숭이들 [1] ㅇㅇ(112.157) 11:26 5 0
1123711 청정한 헬요일 ㅇㅇ(223.62) 00:18 11 0
1123709 뒤조심)아 되게 충격적인 짤 봫는데 얘기할데가 여기밖에 없어 [7] ㅇㅇ(110.47) 06.09 66 0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06.09 11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1] ㅇㅇ(223.62) 06.09 25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5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06.09 30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06.09 24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06.09 16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2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6.09 16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32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8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5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4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7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6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0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20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1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56 5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22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9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9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21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5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7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3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31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6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6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4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21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21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8] ㅇㅇ(115.138) 06.07 86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3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05 10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12 11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53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24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8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6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8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3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